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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집부터 사라

최근 직원 한 분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화가 났다. 예전에 그가 살던 아파트의 집주인이 그 직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집을 사는 것보다 평생 월세로 사는 것이 더 편하고 유리하다." 이 말을 집이 없는 사람이 했다면 하나의 의견으로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임대업을 하는 집주인이 자신의 젊은 세입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괘씸하다. 그 말은 결국 나에게는 이렇게 들린다. "당신은 평생 나 같은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며 살아라."   만일 이제 막 결혼했거나 직장을 잡아 어느 정도 종잣돈을 마련한 젊은이가 나에게 재테크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집부터 사라." 물론 아무 집이나, 무리한 대출로 사라는 말은 아니다. 재정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내 집을 마련하라고 권한다.   월세는 세금을 모두 낸 뒤 남은 돈으로 낸다. 비용 처리도 되지 않고, 그저 이번 달만 해결하고, 한 번 지급하면 영원히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반면 집을 사면 매달 내는 모기지 중 원금은 내 자산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빚은 줄고, 내 지분(Equity)은 커진다. 거기에 집값이 오르면 자산은 더욱 불어난다. 게다가 자기와 배우자가 2년 이상 거주했던 집을 파는 경우에는 50만불까지의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   미국의 재무 전문가 데이브 램지(Dave Ramsey)는 "평생 월세를 사는 것은 좋은 장기 전략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월세는 계속 오르지만, 고정금리 모기지는 시간이 지나도 원리금이 크게 변하지 않고, 결국 집은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베스트셀러 『I Will Teach You to Be Rich』의 저자 라밋 세티는 "월세는 돈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직업이나 거주지가 자주 바뀌거나, 아직 집을 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월세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은 경우에 따라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직장이 안정되고, 장기간 한 지역에 거주할 계획이 있으며, 목돈도 마련한 젊은 급여생활자라면 내 대답은 여전히 같다. 집부터 사라.   집을 사야 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다. 자기 집은 마음의 안식처다. 그리고 집주인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임차인들이 모여사는 동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이웃환경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 형편이 허락한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한 단계 큰 집을 사는 것이 좋다. 물론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대출을 받으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젊은 부부의 소득은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난다. 처음 몇 년은 월납부액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승진하고 연봉이 오르면 훨씬 가볍게 느껴진다. 지금 딱 맞는 집을 사면 훗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금세 비좁아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금방 또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집은 주식처럼 쉽게 사고 파는 자산이 아닌데다가 집을 살 때도, 팔 때도 중개 수수료와 양도에 따른 여러가지 비용이 발생한다.   부부가 집을 샀다면, 각자 집의 대출금 잔액 정도의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좋다. 한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더라도 남은 배우자와 자녀가 살아 갈 보금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어 모기지를 다 갚은 자기 집은, 역모기지론을 받아서 죽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살면서, 매달 생활비까지 받을 수도 있는 마지막 연금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고정금리 모기지 대출금 잔액 평생 월세

2026.07.3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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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이콘과 이꼰

경제학에는 이상한 인간이 하나 등장한다. “이콘(Econ)”이다. 이콘은 경제학 교과서 속에만 사는 인간이다. 이콘은 늘 합리적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남의 말에 속지 않고, 광고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주식이 오른다고 흥분하지도 않고, 떨어진다고 공포에 떨지도 않는다. 이콘은 충동구매도 하지 않고, 보험을 들 때도 불안감이 아니라 확률과 기대값으로 판단한다. 한마디로 이콘은 모든 정보를 알고, 모든 계산을 하고, 늘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택만을 하는 완벽한 경제적 인간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은 세상에 없다. 현실의 인간은 이렇게 살지 않는다. 소비도 대부분 기분이 땡기는 대로 한다. 주식도 “반도체 호황”이라는 말에 흔들린다. 보험도 통계를 따지기 보다는 아는 사람의 권유나, 죽어서 무엇인가를 남겨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가입한다. 부동산 구입도 분위기에 휩쓸리고, 세금도 전문가의 한마디에 걱정과 안심을 반복한다. 실제 인간은 이콘보다 훨씬 덜 합리적이고, 훨씬 더 감정적이며, 훨씬 더 주변 분위기에 약하다.   내가 요즘 기피하는 인간 유형은 “이콘”이 아니라 “이꼰”이다. 이꼰은 내가 만든 말이다. “이기적인 꼰대”의 줄임말이다. 젊어서는 도전과 저항을 외치고, 독재에 항거하고, 권위에 맞서고, 기득권을 비판했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젊었을 때는 ‘나이가 들면 뇌가 썩는다.’고 주장했고,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라’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제 자신들이 나이가 들자 젊은이들을 ‘생각이 없는 자들‘ ‘혼이 나야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얕잡아 보면서, 딸의 학력과 경력을 위조하고, 아들의 시험을 대신 봐주는 이기적이며 고집센 꼰대가 되어버렸다.   이꼰의 가장 큰 특징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정의와 공정, 그리고 약자를 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가족, 자기 편, 자기 조직, 자기 진영의 이익만을 챙긴다. 이꼰은 늘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노골적인 이기주의자라면 차라리 알아보기 쉽다. “나는 내 이익만 챙기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최소한 정직하기라도 하다. 하지만 이꼰은 자기 이익을 정의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들은 평생 자기합리화를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든다. 그래서 누구나 조금씩 꼰대가 될 위험을 안고 산다. 경험이 쌓이면 말이 많아지고, 지킬 것이 생기면 방어적이 되고, 잃을 것이 많아지면 보수적이 된다. 이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윈스턴 처칠이 한 말로 흔히 일컬어지는 ‘젊어서 진보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들어서도 계속 진보면 뇌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문제는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정의로운 척하는 것이다.   이콘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합리적 인간이다. 하지만 이꼰은 현실 속에 너무나 많다. 이콘은 너무 완벽해서 문제지만, 이꼰은 너무 뻔뻔해서 문제다. 나이가 들면서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하더라도, 이꼰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자녀, 내 가족의 기회만 생각하기에 앞서 남의 자녀도 얼마나 귀한 지를 생각해야 한다. 나의 잘못을 변명하기 전에 객관적으로 나를 성찰해야 한다. 내편의 행동을 무조건 감싸기 전에 상대편의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젊었을 때 외쳤던 원칙을 다시 떠올려 보고, 내가 과거에 싸웠던 기득권을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치열하게 돌이켜 봐야 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경제학 교과 평생 자기합리화 변호사 공인회계사

2026.07.2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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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주어진 것과 얻은 것

세계적인 축구 스타 킬리안 음바페와 인종차별 발언을 한 파라과이의 한 여성 상원의원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프랑스와 파라과이의 월드컵 16강전에서 음바페는 경기 후 파라과이의 거친 플레이를 비판했다. 그러자 파라과이의 셀레스테 아마리야 상원의원은 음바페를 향해 "프랑스인 행세를 하는 식민지 출신 카메룬인",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야만인"이라는 인종차별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음바페 역시 "당신은 파라과이에 최악의 이미지를 심은 무능한 사람이며, 나는 이런 사람들이 전 세계에 증오와 인종차별을 퍼뜨리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프랑스 축구협회도 즉각 성명을 내며 음바페를 지지했고, 파라과이 정부 역시 "그 의원은 파라과이를 대표하지 않는다"며 서둘러 선을 그었다.   축구에 대한 비판에는 축구로 답해야 한다. 경기 내용이 억울했다면, 억울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된다. 그런데 축구나 상대방의 거친 플레이를 반박하는 대신에 상대방의 피부색과 출신 국가를 공격하는 순간, 더 이상 논쟁은 논쟁이 아니다.   음바페는 경기가 끝나자 상대 골키퍼가 내민 손을 외면했고, 골을 넣은 뒤 상대를 자극했다. 그가 무례했다면 그 무례를 지적하면 된다. 오만하고, 예의가 없고, 챔피언답지 못했다면 그렇게 말하면 된다. 그러나 그 의원이 집어든 단어는 '오만'이 아니라 '피부색'이었다. 잘못된 행동을 겨냥하면 정당한 비판이 되지만, 존재 자체를 비난하면 혐오가 된다.   인간은 태어날 때, 부모나, 피부색, 성별이나 국적, 신장과, 장애 여부를 선택하지 못한다. 우연히 주어진 것을 가지고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강요하는 것은 논리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 다만, 어쩌다 운 좋게 태어난 것이 전부인 사람들이 인생에서 자랑할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을 때, 그렇지 못한 사람들 앞에 우월감을 표출하는 것일 뿐이다. 피부색과 복권 당첨을 자랑하는 순간, 그는 이렇게 고백하는 셈이 된다. "제 인생에 내세울 것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여성 의원은 공개 편지를 내고, 자신 역시 피부가 검고 라틴아메리카 사람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멸시를 받아 왔다고 주장했다. 평생 자기 살을 베어 온 바로 그 칼을, 그녀는 남에게 휘두른 것이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노력한 시간, 흘린 땀, 실패를 이겨낸 인내, 약속을 지킨 신뢰, 남을 위해 베푼 봉사와 희생, 자기 스스로 갈고 닦은 실력과 경험이다.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선택과 노력으로 ‘얻은 것’이고, 자부심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낸 것에서 나온다. 인종을 학살했던 히틀러와 지식을 경멸하고 지식인을 학살했던 크메르 루주는 노력으로 얻는 것보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못난이들이자 학살자였다.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선택과 무관한 조건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자발적인 행동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당신은 그저 피부가 조금 더 하얄 뿐이지 외모는 음바페보다 훨씬 더 당신이 경멸하는 야만인과 닮아 있다고 저 여인에게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파라과이 정부 프랑스 축구협회 인종차별 발언

2026.07.1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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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배우자 죽이기

1927년 3월 20일 새벽, 뉴욕 퀸즈의 한 주택 침실에서 한 남자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남자는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고, 머리는 둔기로 맞았다. 목에는 그림 액자에 쓰는 철사가 감겨 있었다. 방 안에는 클로로포름 냄새가 남아 있었고 옆방에서는 그의 아내가 묶인 채 발견된다.   아내 Ruth Snyder는 울먹이며 말했다. 강도가 집에 침입했고, 자신을 묶은 뒤 남편을 죽이고 보석을 훔쳐 달아났다는 것이다. 말만 들으면 강도 살인이다. 그러나 경찰은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강도가 들었다는데 문과 창문은 멀쩡했다. 도난당했다던 보석은 집 안에서 나왔다. 아내가 묶여 있었다고 했지만, 그 묶인 모양도 너무 성의가 없었다. 한마디로 강도 사건이라기보다 “강도 사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만든 강도 사건”이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경찰은 제일 먼저 누구를 의심할까. 피해자가 결혼한 사람이라면 경찰은 우선 살아남은 배우자를 의심한다. 특히 그 배우자가 외도 중이었거나, 생명보험금을 받게 되어 있거나, 이혼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면 수사의 방향은 거의 자동으로 정해진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는 미움과 돈만 남고,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배우자는 어느새 제거 대상이 되는 것이다.   Ruth Snyder 사건은 미국 범죄사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자 살인사건 중 하나다. Ruth는 애인 Judd Gray와 함께 남편을 살해했다. Ruth는 남편 몰래 생명보험을 들어 놓았다. 남편이 사고나 폭력 사건으로 죽으면 보험금이 더 나오는 특별조항도 붙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그녀와 애인은 잠든 남편을 죽인 뒤 강도가 침입한 것처럼 꾸몄다.   경찰이 현장에서 “J.G.”라는 이니셜과 관련된 물건을 보고 Judd Gray를 추궁하자 Ruth는 무너졌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J.G.”라는 이니셜은 사실 남편의 옛 연인 Jessie Guischard와 관련된 것이었다. 남편의 죽은 옛사랑과 아내의 산 애인이 같은 이니셜을 가졌던 것이다. 고마운 우연이었고 죄를 짓고는 못사는 것이다.   Ruth Snyder와 Judd Gray는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1928년 싱싱교도소 전기의자에서 처형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더 유명해진 이유는 처형 그 자체보다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당시 사형장에는 카메라 반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사진기자 Tom Howard는 소형 카메라를 발목에 숨기고 들어갔다. 그리고 Ruth가 전기의자에서 처형되는 순간을 몰래 찍었다. 다음 날 New York Daily News 1면에는 그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고, 제목은 단 한 단어였다. “DEAD!” 미국 언론사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잔인한 1면 기사였다.   미국에서 전체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남성이 훨씬 많다. 미국 Bureau of Justice Statistics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 살인 피해자의 약 78%가 남성이었다. 남자는 집 밖에서, 거리에서, 다툼과 범죄 속에서 여성보다 훨씬 더 많이 죽는다. 하지만 여성 살인 피해자의 약 36%는 현재 또는 과거의 배우자나 연인에게 살해된다. 남성 피해자의 경우 배우자나 전 부인에게 살해된 비율은 6%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남자는 밖에서 더 많이 죽고, 여자는 가까운 지인 손에 더 많이 죽는다.   사랑이 식었다고 모두 살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미움과 돈과 질투로 바뀌는 순간, 집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되는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배우자 배우자 살인사건 아내 ruth 전체 살인사건

2026.07.0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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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재난이 오면 정의가 바뀌는가?

2026년 6월 30일, 일리노이 주정부는 Cook County를 포함한 11개 카운티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올해 봄과 초여름 동안 토네이도, 폭풍, 홍수, 강풍 피해가 이어졌고, 주정부는 복구와 지원을 위해 추가 자원과 인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재난지역 선포라는 말은 행정적으로는 건조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무너진 집, 끊어진 전기, 물에 잠긴 도로, 병원으로 가지 못하는 환자, 그리고 “우리는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는가”라는 잔인한 질문이 숨어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유명한 질문이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달려가고 있다. 그대로 가면 선로 위의 다섯 사람이 죽는다. 하지만 선로의 방향을 바꾸면 옆 선로의 한 사람만 죽는다. 당신이 선로를 바꿀 수 있다면 방향을 바꿀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하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그 한 명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리고 그 한 명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답은 더 이상 쉽지 않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덮쳤다.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제방이 무너지고 도시가 물에 잠겼다. Memorial Medical Center에는 환자, 의료진, 직원, 그리고 직원들의 가족들까지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병원이 피난처였다. 그러나 곧 병원 자체가 고립된 섬이 되었다.   병원이 병원 구실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 깨끗한 물과 전기다. 신장투석을 해야 하는 환자에게는 깨끗한 물이 필요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중환자에게는 전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카트리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빼앗아 갔다.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에어컨도 멈췄고, 인공호흡기도 위태로워졌다. 병원 실내 온도는 100도 가까이 올라갔다. 화장실에는 오물이 쌓였고, 오랫동안 씻지 못한 사람들의 냄새가 병원 안에 퍼졌다. 병원은 더 이상 치료의 공간이라기보다, 구조를 기다리는 거대한 난파선 같았다.   처음 며칠 동안 의료진은 필사적으로 환자들을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헬기와 배가 오기는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구조는 느렸고,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원 안 사람들은 혹시 자신들이 영원히 구조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때 병원 안에서는 환자들을 등급으로 나누는 일이 벌어졌다. 혼자 걸을 수 있거나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는 1등급 환자는 먼저 구조될 수 있었다. 반대로 상태가 위중하거나, 스스로 움직일 수 없거나, 심폐소생술 거부 지시가 있는 3등급 환자들은 뒤로 밀렸다. 평상시라면 가장 위중한 환자부터 돌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당시 Memorial 병원에서는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 옮기기 쉬운 사람, 빨리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이 먼저 구조되었다.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뒤로 밀렸던 것이다.   재난 상황이 수습된 뒤 Memorial 병원에서는 45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후 일부 환자들에게 모르핀과 진정제 미다졸람이 과다 투여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Dr. Anna Pou와 간호사 두 명은 2급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2007년 대배심은 이들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형사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구조될 수 없는 위독한 환자들에게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안락사가 행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memorial 병원 환자 의료진 병원 실내

2026.07.0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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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쿨리지 효과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미국 대통령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쿨리지 대통령 부부가 어느 농장을 방문했을 때, 영부인은 수탉이 하루에도 여러 번 교미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영부인은 “그 사실을 대통령에게도 알려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대통령은 “그 수탉이 매번 같은 암탉과 관계를 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요, 매번 다른 암탉입니다”였다. 그러자 대통령은 “그 사실을 영부인에게도 알려 달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일화에서 유래된 이름이 바로 ‘쿨리지 효과’다.   쿨리지 효과는 동물을 통한 여러 실험에서 나타난다. 먼저 수컷 쥐 한 마리를 실험 공간에 넣고, 발정 상태의 암컷 쥐와 교미하게 한다. 수컷은 암컷과 반복적으로 교미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성적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때 같은 암컷을 계속 두어도 수컷의 성적 반응은 크게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발정기 암컷을 넣으면, 성적으로 포화된 것처럼 보이던 수컷은 다시 관계를 시작한다.   1997년 Fiorino 등은 이 현상을 더 정교하게 실험했다. 수컷 쥐가 한 암컷과 교미하고 성적 포화 상태에 도달한 뒤, 같은 암컷을 다시 제시했을 때와 새로운 암컷을 제시했을 때를 비교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뇌의 보상•동기 회로와 관련된 부위의 도파민 변화를 측정했다. 새로운 암컷을 만난 수컷 쥐에게서는 도파민 반응이 다시 활성화되었고, 꺼져 있던 동기 회로가 다시 켜지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이런 현상은 암컷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관찰되었다. 다만 암컷의 경우에는 수컷처럼 단순히 새로운 상대가 등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반응하지는 않았다. 암컷은 스스로 자신의 교미 속도와 접근을 조절할 수 있는 환경, 즉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같은 수컷보다 새로운 수컷에게 더 높은 관심이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보고되었다. 쿨리지 효과는 새로움이라는 자극이 동물의 성적 동기와 보상회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쿨리지 효과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같은 자극에는 점점 무뎌지고, 새로운 자극에는 다시 반응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뇌는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처음에는 강렬했던 자극도 반복되면 감흥이 줄어든다. 반대로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뇌의 보상회로는 다시 켜진다. 쿨리지 효과는 성적 본능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익숙함에 싫증을 느끼고 새로움에 쉽게 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소비시장도 쿨리지 효과를 잘 알고 있다. 어제 산 물건은 금세 평범해지고, 오늘 나온 신제품은 다시 소비자의 마음을 흔든다. 시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앞세워 인간의 보상회로를 자극한다.   하지만 새로움이 언제나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이 늘 더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새롭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보일 뿐이다. 익숙한 것은 지루해 보이고, 새로운 것은 가능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는 대부분 반복과 신뢰 속에서 만들어진다. 결혼도, 직업도, 사업도, 우정도, 처음의 흥분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새로움의 불꽃은 강렬하지만 짧고, 반복되는 일상 속의 책임과 신뢰의 온기는 약해 보여도 오래 간다.   쿨리지 효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불편하지만 중요하다. 인간은 새로움에 흔들리고, 익숙함에 싫증을 느끼며, 늘 좀 더 강한 자극을 찾고 싶은 충동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다. 충동을 이해할 수 있고, 때로는 그 충동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다. 본능이 잘못된 선택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의 품격은 본능을 핑계 삼지 않고 책임 있는 선택을 할 때 빛을 발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쿨리지 쿨리지 대통령 캘빈 쿨리지 쿨리지 효과

2026.06.2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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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개기는 부하, 순종하는 부하

조직에는 두 종류의 부하가 있다. 하나는 상사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부하다. 다른 하나는 상사에게 사사건건 개기는 부하다. 훗날 누가 일인자가 될 확률이 더 높을까? 권력이 안정되어 있을 때는 순종적인 부하가, 권력이 약하거나 무너질 때는 상사에게 개기는 부하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미국 정치사를 보면 “순종하는 2인자”의 성공 사례가 많다. 미국 부통령 중에 조용히 순종하다가 대통령이 된 대표적인 인물이 린든 존슨이다.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대에 전반적으로 순종적인 부통령이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자 존슨은 곧바로 대통령이 되었다. 조지 H. W. 부시도 비슷하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밑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냈고,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레이건 시대의 안정적인 후계자였고 순탄하게 다음 번 선거에서 이겼다. 비교적 안정적인 미국의 제도권 정치에서는 대부분 “말 잘 듣는 부하”가 가장 안전한 승계자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전두환의 후계자로 지목된 노태우는 전두환의 친구이자 부하로서 전두환에게 충성하여 1인자가 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역동적이며 급변하는 한국에서는 충성하는 2인자는 결국에 1인자가 못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박정희 시대와 김대중 시대에 순종하는 2인자였던 김종필은 결국 2인자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인자가 되는 순간 전국민의 욕을 얻어먹기 때문에 1인자와 척을 져야만 다음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지도 모른다. 노태우에게 대들고 툭하면 지방으로 내려갔던 김영삼이 그랬고, 그런 김영삼에게 맞섰던 이회창이 그랬고, 이명박에게 맞섰던 박근혜가 그랬고, 문재인에게 끝까지 미움받고 맞섰던 이재명도 그랬다.   조직의 2인자는 너무 약하면 쓸모가 없고, 너무 강하면 위협이 된다. 1인자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은 1인자가 힘이 있는 동안은 안전하다. 그러나 1인자가 무너지는 순간 함께 무너진다. 반대로 1인자에게 대항하는 사람은 당장은 위험하지만, 1인자의 레임덕과 함께 “대안”이 된다. 그래서 평시에는 충성파가, 난세에는 반대파가 힘을 얻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장 말에 무조건 “예”만 하는 임원은 당장은 예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회사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런 사람은 “왜 그때 아무 말도 안 했느냐”는 말을 듣는다. 반대로 늘 “아닙니다”만 외치는 임원은 처음에는 소신이 있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 사람은 대안 없이 뒷다리만 잡는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좋은 부하는 조직이 위험하거나 필요한 순간에 브레이크를 밟는 사람이다. 좋은 부하를 만들고 인정하는 것은 좋은 상사다. 순종하는 부하만 옆에 두면 잠시 편할지 몰라도 조직 전체가 위험해진다. 모든 사람이 “잘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할 때, 조직은 절벽을 향해 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하가 조금만 이견을 내도 “개긴다”고 찍어내는 상사는 결국 자기 귀를 스스로 막는 사람이다. 역사 속 1인자들의 비극은 대개 간신 때문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충신의 쓴소리를 “개긴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부하 손헌수 케네디 대통령 이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2026.06.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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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바나나는 아직 거기 그대로 있다

원숭이 네 마리를 우리 안에 넣는다. 우리 한가운데에는 기다란 장대가 하나 세워져 있고, 맨 꼭대기에는 먹음직스러운 바나나 한 송이가 매달려 있다. 원숭이들은 며칠째 굶은 상태다.   우리 안에 들어가자마자 원숭이들은 정신없이 장대를 오른다. 원숭이 한 마리가 가장 먼저 바나나에 손을 뻗은 순간, 실험자는 강력한 물대포를 쏜다. 원숭이들은 흠뻑 젖은 채 혼비백산해 내려온다. 원숭이는 물을 몹시 싫어한다고 한다.   그 이후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 아무도 장대에 오르지 않는다. 다음 날, 원숭이 네 마리 중 두 마리를 빼고 새로운 원숭이 두 마리를 넣는다. 신참 원숭이들은 당연히 바나나를 향해 달려간다. 그런데 전날 물대포를 맞았던 고참 원숭이들이 신참 원숭이들을 붙잡고 때리며 장대에 오르지 못하게 막는단다. 결국 신참 원숭이들도 바나나를 포기한다.   그 다음 날에는 물대포를 맞았던 고참 원숭이들을 모두 빼고 또 다른 원숭이들을 넣는다. 이제 우리 안에는 물대포를 직접 경험한 원숭이는 한 마리도 없다. 그런데도 새로 들어온 원숭이가 장대에 오르려고 하면 나머지 원숭이들이 달려들어 막는다. 왜 막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예전부터 그래 왔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면 우리 안의 원숭이는 모두 교체된다. 물대포를 직접 경험한 원숭이는 한 마리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원숭이가 바나나를 향해 올라가려 하면 여전히 나머지 원숭이들이 달려들어 막는다.   사실 물대포는 첫날 이후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물대포에 사용되는 물탱크는 이미 비어 있다. 두 번째 날부터는 누가 바나나를 먹으러 올라갔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심리학 책과 경영학 책에서 종종 인용된다. 게리 해멀(Gary Hamel)과 C. K. 프라할라드(C. K. Prahalad)의 『Competing for the Future』에도 소개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KAIST 정재승 박사에 따르면 실제로 이런 실험이 수행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논문도 없고 연구 자료도 없다. 과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종의 '전설의 실험'으로 취급된다. 비록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 공감을 준다.   오늘날 조직에서 관행처럼 이어지는 일들은 과연 모두 합리적인가? 군대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또는 각종 단체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요구하는 일들은 정말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일까? 아니면 이유조차 잊어버린 채 반복되는 습관적인 행동일까? 조직에서 "왜?"라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져 본 것이 언제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과 경험은 중요하다. 조직의 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치며 축적된 지혜가 담겨 있다. 좋은 전통은 후배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전통은 존중의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환경은 계속 변한다. 기술도 변한다. 시장도 변한다. 그런데도 예전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순간 조직은 늙는다. 젊고 건강한 조직은 "왜 안 되는데?"라고 묻는 사람을 귀찮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환영한다. 오래된 경험을 공유하되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인다.    지금 우리 조직에도 바나나는 아직 그대로 매달려 있는지 모른다. 물탱크는 오랫동안 비어 있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장대에 오르려고 하는데 그저 오래된 관행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의 뒷다리를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나나는 아직 거기 그대로 있는데도 여전히 굶고 있는 것은 원숭이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늙어버린 조직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바나나 신참 원숭이들 고참 원숭이들 이후 원숭이들

2026.06.1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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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인맥이 필요 없는 이유

고국에서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일이다. 선배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같은 대학에 먼저 다니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본능적으로 나갔다. 학교생활뿐 아니라 훗날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배 한 분이 전화를 걸어 대뜸 여의도로 나오라고 했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일하던 분이었다. 갔더니 설문지 한 다발을 주며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설문을 받아 오라고 했다.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며칠 동안 학교를 돌아다니며 설문을 받고, 그것을 다시 그분에게 가져다 주었다. 꽤 많은 일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또 다른 대학 선배는 나에게 소위 '학습'을 시켜 주었다. 그는 당시 총학생회와 전대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매주 읽을 책을 정해 주고 카페를 옮겨 다니며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사회주의를 설명했다. 선배라는 이유로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었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훗날 그는 이른 바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되어 남파 간첩 혐의로 7년간 복역했다. 지금은 프랑스에 살면서 한국의 젊은 학생들이 찾아오면 여전히 '자주'와 '주체사상'을 이야기한다고 들었다.   이 두 사람은 참 극단적이다. 한 사람은 재벌과 기업을 대변하는 경제 단체 간부였고, 다른 한 사람은 지금도 사회주의를 믿는 강성 좌파였다. 그들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도움이나 기회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면 생각도 좁아진다. 반대로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세상을 입체적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인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맥에 대한 환상을 믿지는 않는다. 정말 소중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대개 공정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특별히 나를 봐 주지 않는다. 판사라면 나와의 친분 때문에 판결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공무원이라면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규정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무조건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의 대부분은 나에게서 더 큰 도움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원칙을 무시할 만큼 부패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인맥 때문에 특별히 유리한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일을 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사람은 결국 중요한 자리에 오래 남기 어렵다.   나는 이것을 '인맥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정말 영향력 있고 훌륭한 사람은 인맥 때문에 나를 도와줄 수 없고, 인맥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대개 그만큼 훌륭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인맥을 넓히는 것보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명함을 수백 장 모으는 것보다, 오랫동안 신뢰할 수 있는 친구 한 명을 곁에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인맥은 성공의 지름길이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준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진짜 이유는 그에게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 더 넓고 다양한 시각을 배우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이익이나 도움을 받기 위한 사람이 인맥이라면, 인맥은 필요 없다. 하지만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인연이라면, 인연은 여전히 필요하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인맥 자체 인맥 때문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2026.06.0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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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노란 비행기의 추락

미국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 스피릿 항공(Spirit Airlines)이 지난 2026년 5월 2일 영업을 완전히 중단했다. 망한 것이다. 비행기에 온통 노란색을 칠해서 ‘날으는 택시’처럼 항공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했고, 저가로 유명했던 이 항공사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싼 항공사”의 상징이었다. 가격이 싼 대신에 가방도 추가 비용, 물도 추가 비용, 좌석 지정도 추가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이 비행기를 탔다. 이유는 단 하나, 가격이 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4년 동안 하늘을 날던 스피릿은 결국 연료비 상승과 부채, 항공사 간의 치열한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약 1만7천 명의 직원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끊긴 전광판 앞에서 망연자실한 승객들의 사진이 뉴스에 등장했다.   스피릿 항공은 원래 대단히 혁신적인 회사였다. 스피릿은 “필요 없는 것은 다 빼버리자”는 철학으로 성장했다. 기내식도 없애고, 좌석 간격도 줄이고, 서비스도 최소화했다. 승객들의 불만은 많았지만, 불만을 받아줄 직원조차 눈에 보이지 않았다. 코비드 시기에 다른 항공사들은 조종사들을 해고하고 직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모든 항공사들에게 코로나 시기는 위기였다.     하지만 스피릿은 당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조종사들과 직원들을 최대한 유지하고 오히려 비행기를 추가로 구입했다. 코비드 사태가 끝나면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스피릿의 예상은 적중했다. 하지만, 스피릿이 예상 못한 것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여행 수요가 급증하자 다른 항공사들이 조종사들을 앞다투어 뽑았던 것이다. 더 좋은 조건을 따라 조종사들은 스피릿을 떠났고, 스피릿의 결항은 더 잦아졌다.         세탁소를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유지하던 고객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내가 세탁소를 수십 년 동안 유지하는 동안, 근처에 정말 여러 개의 세탁소들이 생겼다가 망했어요. 내가 셔츠 하나에 2불 50센트를 받을 때, 새로 생긴 세탁소들은 셔츠 한 개에 1불이라고 크게 광고를 해요. 그러다 보면 우리 가게 손님들 중에 그쪽으로 옮기는 분들이 생깁니다. 나는 가격을 내리는 대신에 일거리가 줄었으니 아직도 우리 세탁소에 찾아오시는 손님들의 세탁물을 더 정성을 들여서 세탁을 해드립니다. 새로 생긴 세탁소는 싼 가격 때문에 밀려드는 고객들로 서비스나 세탁의 질이 형편없어져요. 그러다 보면 약속도 못 지키고 직원들도 힘들어서 그만두고, 결국은 가만히 두어도 망해서 다 나가요. 그럼 그 세탁소 손님들까지 우리 가게로 또 다시 돌아온답니다.”   유명한 맛집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가끔 그 맛집 사장님에게 사업 감각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수요가 넘쳐나면 가격을 어느 정도 올려야 한다. 그래야 그 돈을 내고라도 반드시 그 식당에서 먹고 싶은 사람들만 기다리게 된다. 사람들을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해놓고, 배고픔에 지친 고객들에게 억지로 “맛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기꺼이 더 많은 돈을 내고라도 자신의 음식을 맛보겠다는 고객들을 위해 더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항공 사업의 본질은 승객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목적지까지 수송하는 서비스다. 아무리 값이 싸도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서비스가 형편없다면, 사람들은 결국 다시 찾지 않는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자기 사업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서비스업의 본질은 누가 뭐래도 신속, 정확, 그리고 친절이다. 신속하고 정확하며 친절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면, 가격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좋은 고객들은 반드시 돌아온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비행기 저가 항공사 부채 항공사 스피릿 항공

2026.05.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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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Punished by reward

“Punished by reward.” 직역하면 “상으로 벌한다”는 뜻이다. 잘못한 사람에게 벌 대신 상을 주게 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일을 시켜 보면 엉뚱하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도 잘 못 알아듣는다. 마감은 신경도 안 쓰고 진행 경과를 물어봐도 묵묵부답이다. 모르면 물어야 하는데, 질문도 하지 않는다. 중요한 일을 그런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중요한 일일수록 잘하는 사람에게 준다. 믿을 수 있고, 설명을 조금만 해도 알아 듣고, 마감도 지키고, 고객에게 실수도 적은 사람에게 일이 몰리게 된다. 잘한다는 이유로 더 많은 일을 맡고, 믿을 만하다는 이유로 더 어려운 일을 맡는다.   일을 못하는 사람은 점점 더 일이 없어진다. 편해지는 것이다. 회사에 나와 있지만 어려운 일은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일을 적게 하니 실수할 기회도 없다. 결국 회사 안에는 이상한 구조가 생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은 점점 더 편해지고, 일을 잘하는 사람은 지쳐간다. 이것이 바로 일 못하는 사람에게 “Punished by Reward” 하는 것이다.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상을 받는 것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칭찬과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과 책임을 받는다. 일 잘하는 사람은 “Rewarded by Punishment”, 벌을 상으로 받는다. 관리자는 일을 못하거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어진다. 그래서 설명도 하지 않고 고쳐 주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관리자는 자신이 무능한 직원을 무시함으로써 그 사람을 벌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벌이 아니라 오히려 상이다. 관리자와 부딪힐 일도 없고, 어려운 일을 안 해도 되고, 책임을 안 져도 된다.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개선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눈치도 없다.   조직은 점점 병들어 간다. 일 잘하는 사람은 억울해지고, 일 못하는 사람은 더 편해지고, 관리자는 문제가 생길까봐 일 못하는 사람에게는 일을 못주고, 일 잘하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이 몰릴까봐 자신이 직접 처리하는 일이 많아진다. 일 잘하는 사람과 함께 관리자도 점점 지쳐간다.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조직은 결국 와해된다. 업무를 난이도에 따라 나누고 배분을 명확하게 하며, 책임과 보상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난이도에 따라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작고 쉬우며 명확한 일을 주어야 한다. 실패해도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일을 주고, 체크리스트로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일 대신에 더 높은 수준의 일을 주어야 한다. 단순한 반복 업무는 줄이고, 중요한 고객 업무, 교육, 관리처럼 직원 스스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주어야 한다.   일을 못하지만 그래도 배우려는 사람은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못하면서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은 조직 전체를 망친다.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무능한 사람이 조직에 함께 섞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더 위험한 것은 무능한 사람이 편하게 지내는 동안, 유능한 사람과 관리자가 그들의 짐을 대신 지고 지쳐가는 구조다. 이 구조를 관리자가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면 좋은 직원부터 조직을 떠날 것이다. 유능한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자신이 계속 이용만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반대로 일을 안 하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뻔뻔해지고 용기가 생긴다. 무능한 직원이 벌 대신 계속 상을 받을 때, 그 조직은 결국 궤멸로 가는 커다란 벌을 받을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reward by reward 조직 전체 고객 업무

2026.05.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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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일, 돈, 사람머리

어떤 사람이 머리가 좋다고 말할 때,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거나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건 그냥 공부머리다. 학생 시절에 학교에서나 필요한 머리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머리는 공부머리와는 다르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라는 명언은 이 말을 아주 잘 나타낸다.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다양한 머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 가지 머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머리는 일머리와 돈머리, 그리고 사람머리다.   일을 맡기면 그걸 들고 어찌할 줄 몰라 계속 고민만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처음 해보는 일이라면 쉽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똑같은 상황이 주어졌을 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기한 내에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사람마다 ‘일머리’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일머리는 학교머리 또는 공부머리와는 또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느낀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Rich Dad Poor Dad)』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Robert Kiyosaki)는 자신의 친아버지를 ‘가난한 아빠’, 친구인 마이크의 아버지를 ‘부자 아빠’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의 친아버지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고, 공부머리는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친아버지는 하와이주 교육청의 고위 공무원이었고 박사 학위까지 가진 사람이었다. 안정적인 직업과 사회적 존경도 받았다. 반면 “부자 아빠”는 학력은 높지 않았지만 사업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기요사키는 어린 시절 두 사람의 말을 비교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가난한 아빠는 늘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가라.” “안정적인 직업이 중요하다.” “돈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부자는 탐욕스럽다.” “우리 집은 그걸 살 형편이 안 된다.”   반면 부자 아빠는 늘 반대로 말했단다. “좋은 직장을 찾기보다는 너의 사업을 만들어라.” “돈이 너를 위해 일하게 만들어라.” “그것을 왜 못 사는지 말하지 말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라.” “자산(asset)을 사라.” “학교는 좋은 직원을 만드는 곳이지 부자를 만드는 곳은 아니다.” 가난한 아빠에게 ‘공부머리’가 있었다면 부자 아빠에게는 ‘돈머리’가 있었던 것이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머리가 바로 ‘사람머리’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잘하고, 말 한마디를 해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재치 있는 말 한마디로 회식 자리의 분위기를 살리고, 또 말 한마디로 고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가끔 일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노는 자리에서는 어느새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사람 머리가 있는 사람들은 영업이나 고객을 상대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사회는 공부머리만으로 돌아가는 곳이 분명히 아니다. 일을 요령 있게 잘 끝내는 사람, 돈의 흐름을 읽는 사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함께 섞여 돌아가는 곳이다. 자기에게 어떤 머리가 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어떤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인지 알고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어떻게 배치하고 관리하는 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사람머리 손헌수 부자 아빠 반면 부자 변호사 공인회계사

2026.05.1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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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강남 거지의 비싼 방석

비싼 주택이나 비싼 자동차는 꼭 자산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계속해서 돈이 들어가는 골칫덩어리라고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비쌌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후배는 내게 이런 말을 한다. “형, 저희 가족 빼고 주변 이웃들이 전부 할머니 할아버지들밖에 없어요.”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들은 나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최근 고국의 인터넷에서는 한 치과의사의 글이 화제가 되었다. 표현은 조금 거칠었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비싼 아파트 하나 깔고 앉아서 자산이 몇십억이라고 자랑하지만, 그건 자산이 아니라 매우 비싼 시설 이용권일 뿐이다.” 그 치과의사는 비싼 집 한채가 전재산인 사람들에게 그 집이 자산이 아닌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유동성이다. 그는 “자산의 기본은 유동성인데, 당신들 그 집 정말 팔 수 있느냐”고 묻는다. 집값이 수십억이라고 하지만 막상 팔려고 하면 배우자가 학군 때문에 반대하고, 본인도 그 동네의 체면과 인프라를 포기하지 못한다. 결국 평생 그 집에 산다. 가격은 올랐지만 실제로는 현금화하지 못하는 돈이다. 거대한 전시용 자산인 셈이다.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면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 생활은 오히려 더 팍팍해진다. 재산세, 관리비, 수리비는 계속 올라간다. 겉으로는 자산가인데 실제로는 늘 현금이 부족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은퇴 이후다.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비싼 집을 팔아서 은퇴 후 여유롭게 여행 다니며 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생 강남의 병원, 백화점, 지하철, 학원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그 인프라를 떠나지 못한다. 결국 비싼 세금과 유지비를 계속 내면서 그 집을 지키는 게임을 계속하게 된다. 재테크라기보다 “좋은 자리를 지키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수위는 월급이라도 받지만, 아파트 주인은 세금과 관리비만 계속 내면서 수위보다 조금 더 높은층에서 잘 수 있을 뿐이다. 최근에 미국 영주권을 받아 미국으로 이민중인 후배 하나도 타워팰리스를 아직 팔지 못하고 고민 중이다. “한번 강남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그의 부인의 주장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한국의 비싼 상속세다. 평생 세금을 내며 어렵게 집을 지키고 집값은 올라갔는데, 결국 집주인인 노부부가 세상을 떠나면 자녀들은 한국의 비싼 상속세 문제를 맞닥뜨린다. 상속세를 낼 현금이 부족하면 자식들은 집을 급매로 팔거나 대출을 받아야 한다. 결국 평생 지킨 자산의 절반은 국가와 금융기관으로 흘러간다. 그 치과의사는 이 모습을 두고 “평생 관리비와 세금 내다가 마지막에는 상속세로 반토막이 난다”고 표현한다.   물론 진짜 강남 부자들은 집 한 채만 있는 경우가 드물다. 현금, 주식, 사업체, 배당소득까지 함께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강남 아파트는 단순히 비싼 방석이 아니라 실제 자산이다. 문제는 전 재산이 살고 있는 집 한 채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다. 진짜 자산은 내가 자고 있을 때도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배당금이 들어오고, 임대료가 들어오고, 사업이 돌아가고, 시스템이 돈을 벌어주도록 하는 것이 진짜 자산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강남 아파트 강남 거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2026.05.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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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가시를 자르는 시간

안창호 선생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 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다. 단순히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니라고 본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부족할 때, 우리의 말과 태도가 얼마나 거칠어질 수 있는지를 경고한 말이다. 가시가 돋는 곳은 입만이 아니다. 마음에도, 삶의 태도에도 자신의 몸에도 행동에도 자기도 모르게 가시가 자라난다.   다른 사람과 함께 부딪히며 생존하는 한 우리는 가시가 자라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라나는 가시가 남과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시를 혼자서 자르고 다듬는 관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시를 자르는 시간’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 생각하는 시간, 책을 읽는 시간, 생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시간이다. 오로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은 우리를 부드럽게 만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주고 내 안의 분노 수위를 낮춰준다.   가시를 더 빠르게 자라게 하는 시간도 있다. 끊임없이 타인과 부딪히는 시간, 특히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의 계속된 관계 속에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시간, 성과와 맡겨진 책임에 쫓기는 시간, 그리고 순간의 해소를 위해 선택하는 술자리 역시 가시의 좋은 먹잇감들이다. 나에게 23년째 이어져온 세금보고 시즌은 내 몸과 마음의 가시에게 너무나 좋은 자양분이다.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시기이지만 생존과 책임감으로 버티는 석달이 지나면 나는 늘 온몸에 가시가 돋아있는 괴물이 되어 있다.   한국에 본사를 둔 미국 자회사에서 수십 년째 지사장으로 성실하게 성공적으로 일하고 계신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에게 유일한 내면의 시간은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저녁이 되면 시차 때문에 한국 본사와의 소통이 이어진다. 그렇게 쉼 없이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오직 비행기 안에서만 비로소 혼자 있는 것이다. 그때서야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 쉬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바쁜 사람에게 가장 깊은 내면의 시간은 ‘이동 중의 고립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억지로라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인디언들 사이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말을 타고 오랫동안 달리던 그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춰 쉬는 이유는, 아직 따라오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육체는 앞서 나갔지만, 영혼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린다.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가시가 돋는다. 가시를 깎는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기도일 수 있고, 산책일 수도 있으며, 책 한 권을 읽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가시를 억지로라도 깎아야만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상처를 덜 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시간 성과 시간 생업 한국 본사

2026.04.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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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연봉이 오르는데 통장은 그대로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연봉이 눈에 띄게 올라가는 시점이 온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다. “그래 나도 이제부터는 좀 돈을 모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분명히 더 많이 벌고 있는데, 실제로 손에 남는 돈은 생각만큼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부부합산 소득이 꿈의 금액인 여섯자리 약 $100,000을 넘어서면서 $120,000, $150,000 구간으로 올라가는 시점부터 이런 체감은 더 뚜렷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때 “세금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간다. 미국 연방 세금은 총소득이 아니라 ‘과세 대상 소득’, 즉 AGI(Adjusted Gross Income)를 기준으로 계산된다. 이 말은 같은 연봉을 받아도 구조에 따라 세금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많은 직장인들은 이 부분을 놓친 채, 연봉이 늘어난 만큼 그대로 세금을 내고 있다.   실제 사례를 하나 보자. 시카고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 씨는 연봉이 약 $120,000이다. 이직을 통해 연봉이 크게 올라 기분이 좋았지만, 첫 세금 보고 이후 예상보다 높은 세금에 당황했다. 특히 “이 정도면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이 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 박 씨도 비슷한 연봉을 받고 있었지만 상황은 달랐다. 박 씨는 401(k)를 활용해서 과세 소득을 낮추고 있었고, 일부 세금 혜택 구간도 유지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비슷한 연봉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천 달러 이상의 수입과 세금의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 차이는 투자 능력이나 소비 습관 때문이 아니다. 단 하나, 소득 구조를 이해했느냐의 차이다. 연봉이 올라갈수록 중요한 것은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얼마가 과세 대상이 되느냐”다.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득이 늘어날수록 세금 부담만 커지는 구조에 들어가게 된다. 반대로 이 구조를 이해하면 같은 연봉에서도 훨씬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은퇴연금의 역할이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연금을 “나중에 쓰는 돈”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지금 당장의 세금을 바꾸는 도구다. 일정 금액을 은퇴연금에 불입하면 그만큼 과세 대상 소득이 줄어들고, 세금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절세를 넘어선다. 어떤 경우에는 세금 크레딧이나 공제 자격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은퇴연금은 단순한 저축이 아니라 “세금 구간을 조정하는 장치”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한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한 단계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FAFSA 기반 대학 학비 지원이다. “401(k)에 많이 넣으면 FAFSA에도 유리할까.” 그렇지 않다. FAFSA는 단순히 AGI만 보지 않는다. W-2에 표시된 은퇴연금 불입액은 ‘untaxed income’으로 간주되어 다시 소득에 더해진다. 즉, 세금에서는 줄어든 소득이 FAFSA에서는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은퇴연금 불입만으로 FAFSA 결과가 크게 개선되지는 않는다. FAFSA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핵심은 “소득의 크기”보다 “소득의 형태”다. FAFSA에 가장 불리한 구조는 W-2 급여나 보너스, 투자 이익처럼 그대로 드러나는 과세 소득이다. 반대로 가장 유리한 구조는 사업소득 또는 비과세소득과 같이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소득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세금 구조 과세 소득 세금 구간

2026.04.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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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2026년 세금보고의 변화들

2025년 세금보고가 지난 4월 15일을 기점으로 일단 마감되었다. 아직 보고를 하지 못한 분들은 대부분 연장 신청을 완료했을 것이다. 연장 보고 마감일은 10월 15일이니 아직 여유가 있다. 하지만 환급이 예상되는 분들은 연장 신청을 할 필요가 없다. 마감일로부터 3년 안에만 보고를 하면 벌금도 없고 환급도 받을 수 있다.   2026년 세금보고 시즌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환급이 늘어난 해’였다. 2025년에는 OBBBA의 영향으로 세법이 많이 바뀌었다. SALT 공제가 확대되고, Standard deduction 금액이 올라가고, 자녀들의 세액공제도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 급여(Payroll) 시스템은 이 변화를 아직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그래서 급여에서 세금은 예전 기준으로 많이 떼고 실제 세금은 조금 줄어들어서 그 차액을 환급 받은 것이다. 그래서 다른 해에 비해 그나마 개인 고객들의 불만이 적었던 해였다.     하지만 2026년 동안 급여 시스템들이 새로운 세법을 반영하게 될 것이므로, 내년에는 금년 대비 환급이 줄었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걱정이 벌써부터 든다.   올해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세금 보고 과정에서 AI의 본격적인 등장이다. 실제로 올해는 ChatGPT와 같은 AI를 활용해 세금 정보를 미리 찾아보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거 공제받을 수 있나요? ChatGPT는 된다고 하던데 왜 공제가 안 되나요?” 이런 질문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세금 관련 AI 사용 비율은 불과 1~2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세무 상담의 출발점이 ‘검색’에서 ‘AI 질문’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문제는 AI의 업데이트가 느려 예전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제공하는 정보들이 납세자들의 개별적인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세법 설명은 맞을 수 있지만, 실제로 각 개인이 처한 특별한 조건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한다. 명의는 환자를 보고 한눈에 정확히 병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한다. 환자의 상태와 특수한 조건에 따라 치료 방법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IRS도 크게 달라졌다. 한때 10만 명이 넘던 인력은 현재 약 7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무작위로 랜덤하게 대상자를 골라 감사를 했다면, 요즘은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선별적인 감사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모든 납세자를 고르게 놓고 선별하는 방식이 아니라, 위험도가 높은 사례를 뽑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에 눈에 띄는 변화는 이민자 세금 신고 감소 현상이다. 최근 IRS가 이민당국(ICE)과 일부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이민 납세자들이 세금 신고 자체를 꺼리고 있다. 실제로 이민자들의 세금 보고를 주로 대행하던 사무실들에서는 고객의 10~15%가 사라졌다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향후 10년간 최대 수천억 달러 규모의 세수 감소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미국의 노동시장과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인 변화다.   모든 변화는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AI의 전반적인 등장으로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기본적인 업무들은 점점 자동화되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상황을 해석하고 최적의 전략을 설계하는 전문가의 영역과 필요성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앞으로의 세금 보고는 “얼마를 신고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세금보고 손헌수 세금보고 시즌 세금 정보 이민자 세금

2026.04.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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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사실을 말해도 죄가 되는 나라

놀부가 흥부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너 사람 죽인 적 있지?” 이 말은 명예훼손일까 아닐까. 미국에서 “명예훼손(defamation)”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제3자에게 퍼뜨려 그 사람의 명성이나 직업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말한다. 중요한 요소는 세 가지다. 말한 내용이 거짓이어야 하고, 거짓을 사실처럼 말해야 하며, 제3자가 그 내용을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거칠고 모욕적이어도 그 말이 사실이라면 명예훼손이 아니다. 즉, 흥부가 실제로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면, 놀부가 방송국에 나가서 “흥부는 살인자다”라고 대놓고 말해도 미국에서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이 아니다. 또한 아무리 심한 말을 했어도, 그 말을 다른 사람이 듣지 않았다면 미국에서는 명예훼손이 아니다. 모욕일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는 명예훼손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명예훼손이 주로 민사적인 다툼이라서 잘못해도 형사처벌이 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이 등장한다. 명예훼손과 모욕의 차이다. 명예훼손은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모욕은 사실일 필요가 없다. “흥부는 인간 쓰레기다” 와 같이 단순한 비난도 모욕이다. 미국에서는 이 둘의 차이가 분명하다.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지만, 단순한 욕설이나 모욕은 대부분 처벌되지 않는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 자체가 미국에서는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명예훼손이 단순한 민사 문제가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명예훼손뿐 아니라 모욕도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명예훼손의 경우 한국에서는 사실을 말해도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과거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해 그 사람의 평판을 떨어뜨리면, 그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가 존재하지만, 이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국 한국에서는 “거짓말이냐 아니냐”보다 “그 말을 했느냐” 자체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같은 말이라도 나라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국에서는 “사실이면 말해도 된다”는 원칙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이라도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는 문화가 법으로 뒷받침된다.   1960년, 미국 남부에서 흑인 인권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돕기 위해 시민단체가 뉴욕타임즈에 전면 광고를 실었다. 광고에는 경찰이 킹 목사를 일곱 번이나 체포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체포는 네 번이었다. 이 작은 숫자 오류를 이유로 앨라배마의 경찰 책임자는 뉴욕타임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지역 법원은 신문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었다. 내용에 약간의 오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직자를 비판한 언론을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그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퍼뜨렸거나, 진실 여부를 무시한 채 무모하게 행동했다는 점까지 입증이 되어야만 한다.     이 판결 이후 미국에서는 언론과 시민의 발언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명예훼손을 엄하게 처벌하는 나라가 항상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이 집중된 사회에서는 “명예훼손”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는 일이 더 쉽게 일어난다. 사실을 말했는데도 처벌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점점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했던 말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모욕도 형사처벌 경찰 책임자 민사상 책임

2026.04.0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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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녹음과 믿음 사이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면 녹음을 해도 대부분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상대방 몰래 녹음하는 것은 어떨까? 미국 연방법은 대화에 내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면 상대방 몰래 녹음해도 된다. 심지어 대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대화에 참여한 사람 중 한 사람만 미리 동의했다면 제3자가 다른 대화 참여자들 몰래 녹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녹음이 범죄나 불법행위를 저지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거나, 제3자가 통신을 몰래 가로채는 행위라면 여전히 불법이다.   연방법은 이렇지만,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다. 어떤 주는 연방법처럼 대화 참여자 한 사람만 동의하면 되지만, 어떤 주는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동의해야만 한다. 녹음 버튼 하나를 눌렀을 뿐인데, 어떤 주에서는 합법이고 다른 주에서는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리노이주는 한때 이와 관련해서 가장 엄격한 주였다. 과거 일리노이주 법에 따르면, 대화 참가자 전원의 동의 없이 녹음하면 원칙적으로 처벌될 수 있었다. 법의 범위가 너무 넓다 보니, 극단적으로 보면 야구장에서 고함치는 사람의 목소리조차 그의 허락 없이 녹음하면 불법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었다.   결국 2014년 3월, 일리노이주 대법원은 이 법에 브레이크를 건다. People v. Melongo와 People v. Clark 사건에서 법원은 기존의 법이 지나치게 광범위 해서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두 가지 사건은 피고인이 공무원이나 판검사가 한 말을 녹음해서 문제가 된 경우였다. 법원은 프라이버시 보호는 중요하지만, 공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화까지 전부 녹음을 금지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판결한다. 그리고 2014년 12월 30일부터 새로운 법이 시행됐다. 새로운 일리노이주 법은 녹음을 무조건 풀어준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질문을 먼저 던진다.   “이 대화는 사적인 대화인가?”    현재 일리노이 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적(Private)’이라는 단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비공개이며 은밀한 대화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사적인 대화를 상대방 모르게 몰래 녹음하면 불법이다. 반대로 공개된 장소에서의 대화나 공적 성격이 강한 대화는 그렇지 않다. 결론적으로 현재 일리노이 주법은 “모든 녹음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대화를 몰래 녹음”하면 불법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화에 참여한 사람이 자신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합법이다. 한국에서는 ‘참여’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대화 참여자의 녹음은 상대방이 몰라도 합법이다. 하지만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남의 대화를 녹음하면 불법이다.   정리해 보자. 미국의 연방법은 한 사람만 동의하면 대화 녹음이 가능하고, 대화에 참여한 한 사람만 동의하면 제3자 녹음도 가능하다. 하지만 일리노이주에서는 대화 참여자라 해도 사적인 대화를 몰래 녹음하면 불법이다. 한국에서는 당사자 자신이 포함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전부 가능하지만, 제3자의 녹음은 금지다.   같은 녹음이라도 누가 했는지, 어디서 했는지, 어떤 대화 내용을 녹음했는지에 따라 불법도 되고 합법도 된다. 하지만 매일 대화를 하고 있는 우리는 합리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 우리 대화의 상대방이 대화를 녹음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내 의사에 반해 내가 한 말이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말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대화 녹음 대화 참여자들 녹음 버튼

2026.04.0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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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침팬지처럼 뺏고 늑대처럼 지켜라

무리의 리더를 ‘알파’라고 부른다. 알파는 무리 중에 가장 힘이 센 녀석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관찰에 의하면 늑대 무리의 알파는 가장 사납고 지배적인 수컷이 아니다. 사실은 가족 중심의 경험 많은 번식 리더, 즉 가족 사회를 처음 이루었던 어미와 아비라고 한다.        늑대 무리와는 달리 침팬지 무리의 알파는 경쟁자 중 서열 1위가 맡는다. 그래서 침팬지 무리의 알파는 싸움 능력도 뛰어나야 하고, 머리도 좋으며 때로는 잔인하고 교활하다.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때로는 다른 경쟁자와 동맹을 하고, 때로는 힘으로 제압하기도 한다.     늑대형 리더의 대표적인 예로 학자들은 아브라함 링컨을 든다.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남북전쟁을 이끈 대통령이다. 그를 늑대형 알파라고 보는 이유는 그가 권력을 잡은 방식보다 권력을 유지한 방식에 있다.     그는 자신을 강하게 비판했던 정치인들까지 내각에 포함시켰다. 이를 “경쟁자들과 이룬 팀(Team of Rivals)”이라고 부른다. 침팬지형 리더라면 경쟁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링컨은 경쟁자를 적으로 두지 않고, 자신의 무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국가가 분열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권력 유지가 아니라 집단의 생존이라고 본 것이다. 늑대 무리에서 부모 늑대가 새끼를 지키고 무리를 유지하듯이, 링컨은 자신의 감정이나 자존심보다 미국 전체를 살리는 선택을 했다.   침팬지형 리더의 대표적인 사례로 학자들은 스티브 잡스를 든다. 잡스는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인물이지만, 그의 리더십은 매우 강렬하고 때로는 거칠었다. 그는 회사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을 유도했고, 직원들에게는 극단적으로 높은 기준을 요구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바로 배제했고, 사람들을 거칠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동시에 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비전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언제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모습은 침팬지 사회의 알파와 닮았다. 침팬지 알파는 단순히 힘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동맹을 만들고, 경쟁자를 견제하고, 필요할 때는 무리를 압박하고 제거하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링컨은 무리를 지키는 데 탁월한 리더였고 잡스는 정상에 올라가는 데 뛰어난 리더였다. 인간 사회에서는 침팬지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늑대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현실적인 전략은 침팬지처럼 정상을 차지하고, 늑대처럼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인생에서 기회를 잡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경쟁하고, 관계를 만들고 자신의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자리를 차지한 이후에는 사람을 지키고 신뢰를 쌓고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진짜 리더는 상황에 따라 침팬지도 되고 늑대도 될 줄 알아야 한다. 사람 좋은 리더로 남아 무리를 모두 굶어 죽게 하는 것도, 치열하게 경쟁만 하고 잔인하게 제거만 하다가 모두에게 미움 받고 혼자 남겨지는 것도 진정한 리더가 피해야 할 일이다. 결국은 중용이고 결국은 균형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균형을 깨닫고 실천하는 순간, 단순한 성공을 넘어, 오래 살아남고, 무리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침팬지 침팬지형 리더 늑대형 리더 늑대형 알파

2026.03.2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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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탈세의 공소시효

소득세 보고 자료는 몇 년 동안이나 보관해야 할까? 세금을 내지 않고 소득을 줄여서 보고한 사람은 몇 년 동안이나 불안해야 할까? 납세자가 정상적으로 소득세 신고를 한 경우, IRS는 일반적으로 3년 이내에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소득세 감사의 기본 공소시효는 3년이다. 또한 세금 환급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도 신고 마감일로부터 3년이다. 하지만 소득의 25% 이상을 누락해서 신고한 경우에는 이 기간이 6년으로 늘어난다.   가끔은 납세자가 세금보고를 하지 않고 해외로 도망을 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정부는 공소시효가 멈춘 것(tolling)으로 가정을 한다. 그래서 납세자가 미국으로 다시 들어온 시기부터 6년이라는 기간을 세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보통 세금보고 자료는 6년 동안은 보관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부동산을 보유하고 세를 받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오랜 기간 세금보고 자료를 보관해야만 한다. 나중에 사업체나 부동산을 매각할 때 정확한 세금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의 모든 자료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금 관련 사건의 입증 책임은 납세자에게 있다. 세금을 줄이거나 비용을 공제받기 위해 자료를 보관하고 제시해야 할 책임이 납세자에게 있다는 말이다.   헐리우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는 한때 수백만 달러의 세금 문제로 IRS와 분쟁을 겪었다. 그는 개인 섬을 구입하고, 유럽의 성(castle) 구입 등 부동산 투자 실패와, 개인 전용 비행기 구입 등의 과도한 소비 지출로 인해 약 600만 달러 이상의 세금을 내지 못했다. IRS는 결국 그의 부동산에 유치권(lien)을 설정했고, 그는 결국 여러 채의 부동산을 급히 처분해서 세금을 납부해야만 했다.   액션 영화 블레이드 시리즈로 유명한 흑인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Wesley Snipes)는 아예 세금 신고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는 “세금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이론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그리고 영화출연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대략 알고 있던 IRS에 의해서 700만 달러 이상의 세금 문제로 기소가 되었고, 결국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실제로 감옥에서 복역했다.   한 사람은 세금 보고를 했지만, 납부하지 않아서 재산을 잃었고, 다른 사람은 세금 보고 자체를 하지 않아서 자유를 잃었다.   그렇다면 6년만 버티면 완전범죄가 될까? 아니다. 때로는 납세자가 죽어야만 끝나기도 한다. 공소시효가 6년을 넘어가는 경우는,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실수가 아닌 고의로 소득을 누락해서 신고한 경우다. 세금 보고를 해야만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만일 세금보고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공소시효는 시작한 적도 없는 것이 된다. 시작한 적이 없는 것은 끝날 수가 없으므로 세금보고를 하지 않은 경우는 공소시효가 없다. 또한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사기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러므로 IRS가 납세자의 탈세를 사기죄로 본다면 6년의 공소시효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세청이 아주 오래된 옛날의 세금 보고를 문제 삼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공소시효 손헌수 기본 공소시효 기간 세금보고 세금 신고

2026.03.1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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