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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가시를 자르는 시간

Chicago

2026.04.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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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손헌수

안창호 선생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 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다. 단순히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니라고 본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부족할 때, 우리의 말과 태도가 얼마나 거칠어질 수 있는지를 경고한 말이다. 가시가 돋는 곳은 입만이 아니다. 마음에도, 삶의 태도에도 자신의 몸에도 행동에도 자기도 모르게 가시가 자라난다.
 
다른 사람과 함께 부딪히며 생존하는 한 우리는 가시가 자라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라나는 가시가 남과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시를 혼자서 자르고 다듬는 관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시를 자르는 시간’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 생각하는 시간, 책을 읽는 시간, 생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시간이다. 오로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은 우리를 부드럽게 만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주고 내 안의 분노 수위를 낮춰준다.
 
가시를 더 빠르게 자라게 하는 시간도 있다. 끊임없이 타인과 부딪히는 시간, 특히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의 계속된 관계 속에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시간, 성과와 맡겨진 책임에 쫓기는 시간, 그리고 순간의 해소를 위해 선택하는 술자리 역시 가시의 좋은 먹잇감들이다. 나에게 23년째 이어져온 세금보고 시즌은 내 몸과 마음의 가시에게 너무나 좋은 자양분이다.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시기이지만 생존과 책임감으로 버티는 석달이 지나면 나는 늘 온몸에 가시가 돋아있는 괴물이 되어 있다.
 
한국에 본사를 둔 미국 자회사에서 수십 년째 지사장으로 성실하게 성공적으로 일하고 계신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에게 유일한 내면의 시간은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저녁이 되면 시차 때문에 한국 본사와의 소통이 이어진다. 그렇게 쉼 없이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오직 비행기 안에서만 비로소 혼자 있는 것이다. 그때서야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 쉬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바쁜 사람에게 가장 깊은 내면의 시간은 ‘이동 중의 고립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억지로라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인디언들 사이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말을 타고 오랫동안 달리던 그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춰 쉬는 이유는, 아직 따라오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육체는 앞서 나갔지만, 영혼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린다.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가시가 돋는다. 가시를 깎는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기도일 수 있고, 산책일 수도 있으며, 책 한 권을 읽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가시를 억지로라도 깎아야만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상처를 덜 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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