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가 흥부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너 사람 죽인 적 있지?” 이 말은 명예훼손일까 아닐까. 미국에서 “명예훼손(defamation)”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제3자에게 퍼뜨려 그 사람의 명성이나 직업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말한다. 중요한 요소는 세 가지다. 말한 내용이 거짓이어야 하고, 거짓을 사실처럼 말해야 하며, 제3자가 그 내용을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거칠고 모욕적이어도 그 말이 사실이라면 명예훼손이 아니다. 즉, 흥부가 실제로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면, 놀부가 방송국에 나가서 “흥부는 살인자다”라고 대놓고 말해도 미국에서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이 아니다. 또한 아무리 심한 말을 했어도, 그 말을 다른 사람이 듣지 않았다면 미국에서는 명예훼손이 아니다. 모욕일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는 명예훼손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명예훼손이 주로 민사적인 다툼이라서 잘못해도 형사처벌이 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이 등장한다. 명예훼손과 모욕의 차이다. 명예훼손은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모욕은 사실일 필요가 없다. “흥부는 인간 쓰레기다” 와 같이 단순한 비난도 모욕이다. 미국에서는 이 둘의 차이가 분명하다.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지만, 단순한 욕설이나 모욕은 대부분 처벌되지 않는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 자체가 미국에서는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명예훼손이 단순한 민사 문제가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명예훼손뿐 아니라 모욕도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명예훼손의 경우 한국에서는 사실을 말해도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과거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해 그 사람의 평판을 떨어뜨리면, 그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가 존재하지만, 이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국 한국에서는 “거짓말이냐 아니냐”보다 “그 말을 했느냐” 자체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같은 말이라도 나라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국에서는 “사실이면 말해도 된다”는 원칙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이라도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는 문화가 법으로 뒷받침된다.
1960년, 미국 남부에서 흑인 인권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돕기 위해 시민단체가 뉴욕타임즈에 전면 광고를 실었다. 광고에는 경찰이 킹 목사를 일곱 번이나 체포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체포는 네 번이었다. 이 작은 숫자 오류를 이유로 앨라배마의 경찰 책임자는 뉴욕타임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지역 법원은 신문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었다. 내용에 약간의 오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직자를 비판한 언론을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그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퍼뜨렸거나, 진실 여부를 무시한 채 무모하게 행동했다는 점까지 입증이 되어야만 한다.
이 판결 이후 미국에서는 언론과 시민의 발언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명예훼손을 엄하게 처벌하는 나라가 항상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이 집중된 사회에서는 “명예훼손”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는 일이 더 쉽게 일어난다. 사실을 말했는데도 처벌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점점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했던 말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