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내가 좋아하는 가수다. 지난 6월, 피콕 극장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에 남편과 함께 다녀왔다. 5000석 티켓이 거의 매진되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 근 40년을 살았지만, 그동안 내 또래의 그 많은 한국 사람과 한자리에 모인 적은 없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 공연을 보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웃을 수 있다니. 그 자체로 축복이었다. 콘서트를 기다리는 마음마저 벅찼고, 공연은 그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의 노래는 우리를 1980년대와 90년대, 청춘과 낭만이 흐르던 시절로 데려다 주었다. 지갑보다 마음이 넉넉했던 시절. 고된 이민 생활을 함께하며, 부딪치며 살아내는 우리에게 그의 노래와 이야기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왔다.
관객과 대화하는 코너가 있었다. 이문세씨가 애너하임 힐스에서 온 J씨에게 신청곡을 받겠다며 본인의 곡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물었더니, J가 망설임 없이 ‘세월이 가면’이라 답했다. 그런데 이문세 씨의 반응이 의외였다. 그가 쭈뼛하며, “응, 그 노래요.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하고 부르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J가 기쁘게, “네! 그 노래 맞아요!”라고, 대답하자, 그가 멋쩍게 말했다. “아. 그거. 제 노래 아니고요, 최호섭 씨 노래인데요. 저도 좋아합니다, 하하하.” 그러자 공연장이 한차례 웃음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처음엔 짜고치는 유머인가 했지만, 작가가 써도 이런 자연스러운 대본은 나오지 않으리라. 이어 그는 다시 말했다.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잖아요~. 혹시 이 노래 말씀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J가 쑥스러운 듯, “네, 그건데요!”라고 말했다. 또다시 폭소가 터졌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 시절 그대로였고, 댄스 가수는 아니지만 ‘샤방샤방’한 율동도 선보였다. 세월이 잠시 비켜선 듯했다. 하지만 우리가 앉은 곳은 이층, 무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노안이 찾아와, 눈이 침침하고 가까이 있어야 겨우 보이는 우리 세대. 실망스럽게도 양쪽에 설치된 스크린은 대부분 꺼져있었다. 멀리서라도 그의 모습을 비춰주었더라면, 그날 밤의 기억이 더 선명했을 것을. 주름 없는 예순이 어디 있으랴. 이문세를 보러 갔는데, 정작 이문세는 보지 못했다.
마지막에 앙코르곡으로 ‘붉은 노을’이 흐르자, 관객들이 떼창을 했다. 이 곡은 나의 그리고 우리의 젊은 날을 풍성하게 채워준 노래다.
그에게 고맙다. 다음에 그가 또 미국 무대에 서게 된다면, 이번엔 친구들과 함께 가겠다. 그들과 함께 20대의 아름다운 세월로 돌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