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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일가족 참극 무엇이 문제?… “분노·절망 상담할 핫라인 없고, 가족을 분리된 인격으로 생각 안해”

Atlanta

2025.09.0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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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LA서 일가족 살해 비극 발생
우울한 감정 방치가 극단적 폭력 낳아
부모·자녀 삶 분리해 보는 시각도 필요
존스크릭 세인트 아이비스 컨트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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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가족 사망’ 참극이 미주 한인사회에서 잇달아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민사회에서 가정 문제를 상담할 창구가 전무하고 가족 구성원을 본인과 분리된 인격으로 보지 않는 사고가 비극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1일 존스크릭 시에서 아내(52)와 딸(15)을 살해한 한인 치과의사 최씨(52)가 자택에서 숨친채 발견됐다. 그가 남긴 문자에는 “홀로 남겨질 아내와 딸이 안쓰러워 함께 떠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불과 8일 전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70대 한인 보석 사업가가 이혼 소송 중이던 아내와 딸을 총격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문가들은 극단적 방법을 택할 때까지 절망적 상황과 하소연을 들어줄 곳이 없던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시안아메리칸리소스센터(AARC)를 설립하고 30년째 조지아주에서 가정상담을 이어온 지수예 씨는 “일순간 감정이 폭발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보여도 그 뒷편엔 오랜기간 쌓인 우울과 분노가 있기 마련”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가족끼리 극단적 고립을 경험하면서 가정 내 정신건강 문제가 고착화됐다. 한인회에서 상담 핫라인을 구축하겠다고 한 것이 벌써 수년 전 일”이라고 짚었다.
 
미국 성인 29%가 진단 경험이 있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할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하지만 가족 관계, 건강, 재정 문제로 우울증을 앓더라도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이 두려워 아예 병원을 찾지 않거나 약 복용을 거부하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노크로스 라이스(R.I.C.E) 상담교육 연구소의 한 상담사는 “신체적 학대가 아니더라도 정서적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한인 가족 사례가 적지 않은데, 대부분 억눌린 감정을 방치하다 극단적 폭력, 징계로 표출되는 상황”이라며 “평소 상담을 통해 본인 정서를 살피는 훈련을 해야한다”고 당부했다.
 
둘루스 라이트오브호프 카운슬링의 김미영 상담사는 “사춘기 아이를 둔 가족의 경우 자녀와 부모간 갈등이 부부간 갈등으로 번지기 쉽고, 그렇게 가족 구성원간 대화가 끊기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겪기 쉽다”며 “자녀들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30대에 접어들면 스스로 정신건강을 위해 상담을 찾는 경우가 많지만 한인 부모는 개인 또는 가족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잘못된 시각도 문제다. 이는 “부모인 내가 우울하니까 자녀도 우울할 것”이라는 오판을 낳는다. 김 상담사는 “차라리 가족 구성원 모두가 죽는 게 낫다는 판단은 자신과 자식의 삶을 분리하지 못한 결과”라며 “힘든 이민생활을 애써 견디는데 가족들이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의 좌절감이 반복되면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아시아태평양계(AAPI) 비영리단체 P.E.A.C.E.(피스) 상담전화 404-509-1941, 404-512-0886을 통해 전문가의 한국어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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