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한흑혼혈모임서 '블랙코리아' 관람하며 공감대 넓혀 배우 제니 강씨 “아시안보다 아시안 흑인으로 살기 더 힘들어”
지난달 KBBA 모임에 참석한 한흑 혼혈인 가족들.
지난달 30일 낮 애틀랜타 사우스풀턴의 한 주택. 60여명의 ‘KB'(한흑 혼혈인·KoreanBlack)가 가족과 함께 모였다. 조지아 한흑혼혈인 모임 ‘KABA’를 이끄는 조은영씨의 초대로 영화 ‘블랙코리아’의 패티 길 감독과 배우 제니 강씨가 공동 상영회를 열었다.
매년 한 차례 모이는 KABA에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이날 모임에 처음 방문한 캔디 씨는 “둘루스 한식당 음식 솜씨가 엄마만 못하다”고 말할 만큼 이미 한국 문화에 친숙하다. 아버지가 복무한 DMZ를 직접 방문한 적도 있다. 12살에 처음 모임에 참석, 이제 갓 성인이 된 다이야나씨는 “어렸을 때는 단순히 한국음식점을 방문해 색다른 음식을 맛보는 게 즐거웠다”면서 “이젠 우리의 유산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그과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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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함께 관람한 영화는 2017년 개봉한 25분짜리 단편영화 블랙코리아. 미군 출신 흑인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김영희가 13살 된 딸 패티와 5살 아들을 시댁에 두고 사라지는 내용으로, 패티 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개봉 이듬해 한국인 어머니를 연기한 제니 강 배우가 흑인영화제인 ‘브론즈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강씨는 “미국 땅에서 동양인으로 사는 것, 그보다 더 힘든 게 아시안 흑인 혼혈인으로 사는 것”이라며 “정 문화, 음식 등 한흑간 공유하는 지점이 많은데 사람들은 보지 않으려 하고 알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계 미국 싱어송라이터 앤더슨 팩의 첫 영화감독 데뷔작 ‘케이팝스(K-POPS!)에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는 딸 패티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혼혈에 대한 사회적 낙인, 가정해체, 정체성 갈등, 사회적 보호 부재 등 다양한 맥락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패티 길 감독은 “많은 한흑 혼혈인이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것은 당시 1950년대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고 특히 미국이라는 외딴 곳에서 여성이 가정 밖에서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며 “내 어머니는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안전한 피난처를 구하러 시카고 외할머니 댁까지 달려갔다. 그렇게 하기까지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전했다. 아직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 그는 이달부터 블랙코리아 장편 작업에 착수한다.
조은진 KABA 조지아 대표의 가족들
KABA를 함께 이끄는 블레인 스웰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2살때 미군 아버지를 따라 텍사스로 이주했다”며 “비슷한 배경을 가진 한흑 혼혈인이 많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일본인-흑인 혼혈인도 방문해 공감을 나누기도 했다. 두 딸 은진, 진달래와 아들 세종을 둔 조은영씨는 “KABA를 통해 우리가 흑인이자 동시에 한국인임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가시화하고, 개개인이 가진 여러 겹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