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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창간호와 부적

New York

2025.09.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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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무엇인가 모으는 게 있습니까? 돈 말고 모으는 게 있습니까?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우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우표를 모았습니다. 하긴 저는 단순히 모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산 우표를 팔아서 다른 우표를 사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우표가 투자의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무엇을 모으는 사람은 가치가 높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때 우표의 가치가 많이 하락했습니다. 아직도 꽤 갖고 있는데 말입니다.
 
친구 중에는 외국 동전을 모은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외국에 나가기가 어렵고, 외국 동전을 갖기가 힘들었으니 모으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죠. 저도 어릴 때 외국 동전을 꽤 모았습니다. 주로 일본 옛날 돈이 많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몇 번의 이사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쉽네요. 때로는 친구끼리 희한한 나라의 희한한 동전을 모으면 서로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그 나라에 가 본 사람처럼 말입니다. 동전이나 우표는 어린 시절 우리에게 새로운 곳에 대한 꿈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요즘 제가 모으고 있는 것은 창간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어 관련 학술지의 창간호를 모으고 있습니다. 국어학, 국어국문학, 문학지 등 학술지나 잡지의 창간호를 보이는 대로 모으고 있습니다. 아직 많이 모은 것은 아니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창간호를 보면 마음이 뭉클합니다. 어떤 학술지는 제 나이보다도 오랜 것도 있습니다. 오래된 학술지에는 국어국문학계의 큰 선생님이 젊었을 때 쓴 논문이나 글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풋풋합니다.
 
창간호를 모으는 것은 창간호에 담긴 정성과 진심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첫 시작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창간호가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을 다해서, 전력을 다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창간호 속에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창간호를 보고 있자면, 그런 기운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부적처럼 말입니다.
 
문학 작품 창간호 같은 경우는 더더욱이나 그 글을 실은 사람의 마음까지 담겨 있습니다. 신인의 경우라면 더욱 그러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부적을 모은다는 생각으로 창간호를 모읍니다. 실제로는 놀라운 것은 창간호를 만든 사람이나 창간호에 글이 실린 사람들조차 그 창간호가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경희대 국문과 학생회에서 만든 창간호도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편집에 참가하였던 친구들도 창간호는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갖고 있는 창간호를 보고, 향수에 젖더군요.  
 
앞으로는 다른 분야의 학술지나 잡지의 창간호도 최대한 모아볼까 합니다. 특히 미술 관련된 잡지나 박물관 관련 잡지도 모으면 어떨까 합니다. 옛 향기와 예술 감각이 좋아질 듯한 기대도 생깁니다. 헌책방을 더 다녀야겠네요. 창간호를 모으려면 다른 생활비도 아껴야겠습니다. 하지만 창간호를 모을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저인 듯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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