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김해 김씨 김수로왕의 대를 이어갈 74대 손자가 둘이나 있다. 난 한국에서 30세에 장가를 가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미국 유학을 보낸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수의 기업에 취직했고 객지에서 혼자 지내는 게 안쓰러워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며느리가 첫 아들을 순산했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수고했다는 축하금도 보내주고 서울의 친구들을 불러모아 한턱 푸짐하게 대접하고 세상에서 나만 손자를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그때 내 나이가 59세였다. 그런데 이 손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서 장가갈 때가 됐으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둘째 손자도 다 커서 나처럼 ROTC 교육을 받고 공군 장교로 임관해 영국 런던에 가있다.
경영하던 회사를 정리하고 일찌감치 은퇴해 미국으로 이민와서 공기 좋고 물 맑은 샌프란시스코 아들 집에서 살다가 테니스 친구들 따라 이곳 LA로 와서 살고 있다.
가끔 손자들이 보고 싶어 사진 좀 찍어 보내라고 해도 일이 바빠서인지 저희들 놀기 바빠서인지 별 반응이 없다. 그래서 궁리 끝에 깜작 이벤트로 ‘엎드려 절 받기’를 시작했다.
한글이 서툰 손자들이 “엎드려 절받기가 뭐에요?”하고 묻겠지만 제 아비에게 물어 보던지 구글에 찾아보면 되니까. 나도 영어가 불편하진 않지만 영어보다 내가 편한 한글을 고집한다. 그래야 손자들이 한글을 한자라도 배울 수도 있고 해서.
큰 손자에게는 최근 사진과 내가 애용하는 나이키 테니스 신발을, 그리고 둘째에게는 테니스 백팩을 요구했다. “너희들이 이 할아버지에게 평생 처음으로 깜짝 선물해주면 정말 행복할 거 같다”고 했다. 쇼핑의 번거로움과 주머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100불 미만의 모델과 색상을 알려줬다.
그랬더니 효과가 백 퍼센트다. 당장 연락이 왔다. 사진도 메일로 보내주고 대성공이다. 이제는 새 신발과 새 가방 메고 테니스 코트에 가서 손자 자랑할 일만 남았다. 자랑하느라 만나는 사람들 점심 접대비가 선물 값 보다 많이 나와도 이 할아버지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