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 속에서 수많은 전쟁 고아와 영·유아 입양이 유관 기관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 입양아 대다수는 미국으로 보내졌다. 당시 국내에도 부모나 가족이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보호시설이 있었지만, 그 많은 아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적절한 돌봄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런 현실에서 해외 입양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품에서 양육 받는 것이 천리이자 천륜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을 벗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보호시설 수용이나 입양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입양은 이를 필요로 하는 가정의 자발적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입양 전후의 준비와 양육 과정이 대체로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입양아를 친자식처럼 정성껏 키워 훌륭하게 성장시킨 미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모든 입양이 아름다운 결실만을 맺는 것은 아니다. 불의한 양부모를 만나 혹독한 학대를 겪거나 끝내 비극으로 이어져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입양제도 전반에 대한 회의를 낳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또 다른 문제다. 입양아가 성장해 사회에 나오는 과정에서, 입양 전후 신분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성인이 된 뒤 불법체류자로 드러나는 일이 상당수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입양은 합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왜 일부 아이들은 필요한 절차가 생략되고, 성인이 될 때까지 무관심 속에 방치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입양을 알선한 기관이나 입양을 청원한 측의 무지 혹은 무책임에서 비롯된 문제이며,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출생과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파에 내던져진 입양인들에게 제도적 불이익을 더해 또 다른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미국 입양 이들 입양아 사고 입양제도 입양 전후
2025.11.30. 17:04
중앙일보 10월 29일자 ‘포니 신화 50년’ 기사를 읽고, 오래전 포니차와 함께했던 추억이 문득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1977년, 나는 첫 해외공관 발령지로 아프리카 카메룬에 부임했다. 마침 현대자동차가 첫 해외 수출 모델로 포니를 내놓던 시기였다. 외교관으로서 “현지에서 우리나라 차를 더 많이 팔아보자”는 각오를 세우고 4000달러에 포니 한 대를 구입해 선편으로 카메룬까지 보냈다. 한 달 만에 도착한 차를 보니 당시로서는 정말 잘 만들어진 차였다. 후드를 열어보니 주요 부품 곳곳에 ‘Made in Japan’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실제 운행을 해보니 사소한 결함도 발견됐다. 오른쪽 깜빡이를 켜면 왼쪽이 들어오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경적이 울리는 식의 작은 문제들이었다. 엑셀을 끝까지 밟아도 70km(44마일) 이상 속도가 나지 않는 점도 특이했다. 그래도 카메룬에는 고속도로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포니를 현지에 본격적으로 소개해보자는 마음으로 현지인 에이전트를 고용해 최초로 50대를 수입했다. 대당 5000달러로 가격을 책정해 판매를 시작했지만, 한국 차에 대한 인지도가 전무하다 보니 초기 반응은 미미했다. 그러던 중 포니의 운명을 바꾼 일이 벌어졌다. 어느 로터리에서 벤츠와 포니가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명성이 자자한 벤츠는 크게 부서진 반면 포니는 거의 손상 없이 도로 한가운데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사실은 이 나라의 열악한 견인 시스템 때문에 하루 종일 방치된 것뿐이었지만, 이를 지켜본 주민들은 “저렇게 멀쩡한 차가 어느 나라 제품이냐”며 감탄했고, 그렇게 포니는 입소문을 타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이후 수입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일도 있다. 어느 날 북한의 박성철 부주석이 카메룬을 방문했다. 나는 특성상 그의 도착과 동선을 파악해 서울에 보고해야 했기에 체류 기간 내내 그의 움직임을 쫓아다녔다. 마침 같은 시기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출장차 카메룬에 와 있었는데, 박성철 일행과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박성철이 엘리베이터에서 한국 직원들을 발견하고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 ‘말 그린 차’를 몰고 우리 뒤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아느냐.” 그 당시의 현대차는 지금과는 달리 앞 그릴과 뒷면에 말 모양의 로고를 붙였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포니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자 신화가 됐다.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포니와 함께 뛰었던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박대원 / LA거주·전 외교부 대사독자 마당 카메룬 아프리카 카메룬 출장차 카메룬 한국 직원들
2025.11.23. 18:00
형식이 내용을 구속한다고 했던가. 형식의 테두리 안에서 내용이 생성되고, 보존되며, 발전한다는 뜻일 것이다. 링과 규칙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 활발한 게임이 벌어지듯이, 헌법의 효력이 준엄해야 국가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듯이 “튼실한 형식에 건강한 내용”이라는 이치일 것이다. 거꾸로 내실이 부실하면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괴테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저 푸른 생명만이 영원하다”고 설파한 명구도 뉘앙스는 다르더라도 맥락은 비슷하지 않은가? 니체는 더 나아가 “낯설게 하기”를 내세워 껍데기에서 벗어나자는 창조적 파괴를 외쳤다. 형식이 내용을 옥죄면 권위주의의 성벽이 높아지고, 내용이 형식을 무시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역사는 그 원리를 수없이 증언해왔다. 결국 공동체가 평화롭고도 성장을 구가하려면 내용과 형식을 조화롭게 운용하려는 사회 성원들과 지도층의 자세와 의지가 요체라고 할 수 있다. 형식에 사욕이나 집단 이기주의가 똬리를 틀거나, 내용에 개인적인 욕망의 독소가 오염되면 그게 곧 시대를 역행하는 부조리이고, 비리이며, 혐오의 대상이 돼 불만과 저항을 부르게 된다. 미국에서나 한국사회에서 정치인들이나 지도층이 지나치게 함부로 형식과 제도를 뜯어고치려 하고, 내용과 운용까지 좌지우지해 갈등과 퇴행을 빚고 있음은 정권과 이념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궤도를 탈선하는 대단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형식과 내용의 동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정치와 기관, 집단과 단체 할 것 없이 겸허하게 사욕과 배타의식을 누르고, 3류들이 설치는 현실이 정화되고 업그레이드돼야 건전한 나라, 선진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제도는 질서를 엄격히 세우면서도 ‘포용과 자유’를 품는 여유를, 내면은 전향적으로 ‘파격의 경지’가 융성해야 변혁의 시대에 안정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미래가 열릴 수 있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독자 마당 하모니 형식 나라 선진사회 사욕과 배타의식 집단 이기주의
2025.11.09. 18:00
일본의 지성을 대표하는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93)는 그의 출세작 『청춘의 문』 이후 발표한 『타력(他力)』에서, “나 이외의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력(自力)’의 신화를 조용히 부정했다. 그에게 타력이란 종교적 개념을 넘어, 인생의 불확실함 속에서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어떤 온기의 이름이었다. 그것이 신이든, 우주든, 혹은 타인의 따뜻한 마음이든 상관없이, 인간의 삶은 결국 ‘나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통찰이다. 이츠키는 이렇게 말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만 반복될 때는 체념하라.” 그의 체념은 포기가 아니라, 받아들임에 가깝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세상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맡길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의미다. 그는 또 “힘들 때는 격려보다 위로가 필요하다”고 했다. 위로는 ‘더 잘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럼에도 괜찮다’는 수용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가 있다. 정치인이자 작가로, 대중 강연가로 활동하는 유시민은 한 강연에서 인생의 태도를 세 단어로 정리했다.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그중에서도 마음에 남은 말은 ‘Amor Fati’였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바꾸기보다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뜻이다. 이 또한 결국 이츠키 히로유키가 말한 타력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언제나 완전한 주체로 살 수 없고, 때로는 삶의 흐름을 인정해야 한다. 억지로 상황을 통제하려 할수록 더 큰 절망이 찾아오지만, 그 흐름을 받아들일 때 삶은 오히려 자연스러워진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엔 자력(自力)의 한계를 느낀다. 아무리 애써도 벽이 무너질 기미가 없을 때, 우리는 체념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체념은 패배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다른 힘의 순서를 기다리겠다”는 성숙한 선언이다. 기도나 명상, 예불이나 고요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타력의 바람을 기다린다. 그것은 단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겸허한 자세이기도 하다. 김영훈·LA독자독자 마당 대중 강연가 memento mori 종교적 개념
2025.11.02. 17:30
내게는 김해 김씨 김수로왕의 대를 이어갈 74대 손자가 둘이나 있다. 난 한국에서 30세에 장가를 가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미국 유학을 보낸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수의 기업에 취직했고 객지에서 혼자 지내는 게 안쓰러워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며느리가 첫 아들을 순산했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수고했다는 축하금도 보내주고 서울의 친구들을 불러모아 한턱 푸짐하게 대접하고 세상에서 나만 손자를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그때 내 나이가 59세였다. 그런데 이 손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서 장가갈 때가 됐으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둘째 손자도 다 커서 나처럼 ROTC 교육을 받고 공군 장교로 임관해 영국 런던에 가있다. 경영하던 회사를 정리하고 일찌감치 은퇴해 미국으로 이민와서 공기 좋고 물 맑은 샌프란시스코 아들 집에서 살다가 테니스 친구들 따라 이곳 LA로 와서 살고 있다. 가끔 손자들이 보고 싶어 사진 좀 찍어 보내라고 해도 일이 바빠서인지 저희들 놀기 바빠서인지 별 반응이 없다. 그래서 궁리 끝에 깜작 이벤트로 ‘엎드려 절 받기’를 시작했다. 한글이 서툰 손자들이 “엎드려 절받기가 뭐에요?”하고 묻겠지만 제 아비에게 물어 보던지 구글에 찾아보면 되니까. 나도 영어가 불편하진 않지만 영어보다 내가 편한 한글을 고집한다. 그래야 손자들이 한글을 한자라도 배울 수도 있고 해서. 큰 손자에게는 최근 사진과 내가 애용하는 나이키 테니스 신발을, 그리고 둘째에게는 테니스 백팩을 요구했다. “너희들이 이 할아버지에게 평생 처음으로 깜짝 선물해주면 정말 행복할 거 같다”고 했다. 쇼핑의 번거로움과 주머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100불 미만의 모델과 색상을 알려줬다. 그랬더니 효과가 백 퍼센트다. 당장 연락이 왔다. 사진도 메일로 보내주고 대성공이다. 이제는 새 신발과 새 가방 메고 테니스 코트에 가서 손자 자랑할 일만 남았다. 자랑하느라 만나는 사람들 점심 접대비가 선물 값 보다 많이 나와도 이 할아버지는 행복하다. 김영훈 /LA독자 마당 이벤트 나이키 테니스 테니스 친구들 테니스 코트
2025.09.07. 19:00
요즘은 세월이 더 빨리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어느덧 8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됐다. 매년 8월 15일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그날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눈 감으면 아련해지는 아버지의 얼굴, 그리고 그날의 기적. 80여 년 전의 그 시간을 홀로 걷노라면, 그리움에 목이 메고 소리없이 눈물이 흘렀다. 얼마 전,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깨어나 보니 꿈이었지만, 그 꿈을 이어가고 싶어 한참을 눈 감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문득 달력을 보았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날은 바로 아버지의 58주기 기일이었다. 꿈이 현실에 닿아있다는 사실에 신비로움을 느꼈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임을 철저히 가르쳤다. 학교에 끌려가 억지로 참배해야 했던 순간에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 힘겨웠던 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한글을 익히게 했다. 덕분에 나는 해방 후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학생이 될 수 있었다. 일제의 박해는 점점 더 심해졌고, 아버지는 감옥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결국 사형 집행일이 8월 18일로 정해졌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사형 집행을 불과 3일 앞둔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다. 모진 고문으로 앙상하게 마른 몸이었지만, 해방의 기쁨에 행복해하시던 그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만약 그날이 3일만 늦었더라면.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를 ‘살아계신 순교자’라고 부르며 마음속 깊이 존경을 표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신앙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역사의 엄중함과 자유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날의 기적과 아버지의 삶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영원한 빛으로 남아 있었다. 이영순·샌타클라리타독자 마당 아버지 광복 사형 집행일 일제강점기 우리 우리 형제들
2025.09.02. 20:18
세상 사람 사는 모습은 각양각색 천태만상이다. 최근 86세 동갑내기 두 명과 84세, 81세 독거 노인 친구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깜짝 놀랐다. 첫 번째 동갑내기 친구는 부산의 큰 섬유회사를 경영하는 부모 밑에서 부유하게 잘 살아서인지 집안이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가구도 아주 비싼 건 아니지만 품격이 있었다. 부친이 물려준 큰 사업체를 경영하던 친구인데 불행하게도 아내의 외도로 이혼하고 사업도 실패해 미국에 혼자 왔다. 예전에 카지노에서 한번 수십만 불을 땄던 기억 때문인지 요즘에도 가끔 카지노를 찾는 게 취미다. 정반대로 어렵게 부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두 번째 동갑내기 친구는 두뇌는 명석한데 집안은 온갖 고물로 가득한 엉망친장이었다. 젊어서 입던 옷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죽 허리띠도 끊어지면 스테이플러나 테이프로 이어서 쓴다. 속옷 역시 해지고 걸레가 될 때까지 입는다. 다행히 연방공무원으로 20년 근무해 연금이 나와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생활비를 아껴서 저축한 돈으로 해외여행 가는 게 취미다. 글 친구로 만나서 가끔 이 친구가 챙겨온 럼주도 한잔 같이 마신다. 세 번째 친구는 나처럼 무역업을 대구에서 크게 하던 친구인데 지금도 사업 재기를 꿈꾸고 있어 그 용기가 가상하다. 이 친구는 외출시 항상 정장을 입고 집안 정리가 깔끔하게 잘 되어있어 놀랐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네 번째 친구는 사실 내 동생과 동갑인 다섯 살 아래이지만 ‘객지 벗 10년’이라는 말처럼 허물없이 지낸다. 우체국에서 성실하게 근무하고 정년퇴직 해서 연금으로 산다. 서울에서도 구청 공무원이었다고 하는데 아내와 이혼하고 이곳에 와서 혼자 산다. 한때 술을 즐겼는데 지금은 당뇨가 심해서 술을 입에도 못 댄다고 한다. 이 친구가 최근에 15년 만에 새 TV를 샀는데 조작법을 몰라 도움을 요청해 집에 가봤더니 집안이 어지럽다. 어쩔 수 없이 내친김에 아내와 함께 집 정리를 도와주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실로 천태만상이다. 김영훈 / LA독자 마당 이야기 친구 동갑내기 친구 인생 이야기 입고 집안
2025.08.04. 19:08
세월이 흐르면 세상은 변하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의 생각 또한 자연스레 변화해야 마땅하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듯, 과거에 갇힌 사고는 시대를 병들게 할 뿐이다. 유교 사상이 지배했던 조선 시대의 삼강오륜은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미풍양속으로 존중받을 만하다. 그러나 ‘남녀칠세 부동석’이나 ‘칠거지악’과 같은 낡은 사상은 시대착오적인 폐습일 뿐이다. 변화하는 사회의 가치관 속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일부 명칭 변경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과거 북진통일을 염원하고 헌법에 그 뜻을 담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고 흡수통일보다는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헌법 역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의 총기 소지 권리 역시 마찬가지다. 건국 초 서부 개척 시대, 인디언의 습격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조항이었으나, 지금은 그 효용성을 잃은 지 오래다. 막강한 무기상들의 로비로 정부조차 손을 쓰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언제까지 자본주의 논리에 갇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 법을 외면할 수는 없다. 종교 또한 예외는 아니다. 미국 유타주에 본거지를 둔 후기성도 교회(몰몬교)가 초창기 박해를 피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했던 것은 당시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은 극소수 광신자를 제외하고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교나 유대교의 규율 역시 과거 특정 필요에 의해 제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환경이 변화한다면, 이러한 규율 또한 유연하게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흐르는 물이 생명력을 가지듯, 우리의 생각 또한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해야 한다. 변화에 발맞춰 적절한 시기에 사고의 전환을 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길이다. 우리는 과연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영훈 / LA독자 마당 세월 생각 수정헌법 제2조 유교 사상 극소수 광신자
2025.07.20. 19:00
샌루카스 지역 아파트에 15년간 거주하며 전화와 인터넷은 줄곧 AT&T를 이용해왔다. 그러던 지난 4월8일, 갑작스러운 인터넷 불통 사태가 발생했다. AT&T에 문의하자 구리선 절도범들이 전선을 끊어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문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로 닥치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강 선진국인 미국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AT&T는 새로운 구리선 설치와 복구 작업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4월 20일에나 개통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은행 업무부터 관공서 일까지 모두 인터넷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2주 가까이 인터넷이 끊긴다는 말에 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앞집에 부탁하여 스펙트럼(Spectrum) 인터넷을 잠시 빌려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T&T의 약속은 번번이 어겨졌다. 4월20일 개통 예정일은 5월10일로 연기됐다. 5월에도 한두 번 더 연기가 거듭되면서, 결국 인터넷은 두 달간 ‘먹통’ 신세가 되었다. 더 이상 앞집에 미안해서 인터넷을 빌려 쓸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5월20일 서울에서 온 손녀가 스마트폰 개인용 핫스팟으로 노트북을 연결하는 법을 알려주어 잠시나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비디오나 유튜브는 데이터 소모가 커서 길게 쓸 수 없었다. 서울 같았으면 금방 해결될 일이 두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라니, 고통스럽고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6월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젊은 사람이라면 진작 해결했을 일이지만, 85세 노인에게는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 다행히 친구의 조언을 받아 AT&T 윌셔 매장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ALL-Fi gateway라는 새로운 인터넷 연결 방식을 알게 되었다. 비록 좀 더 비쌌지만, 이를 설치하자 드디어 인터넷이 개통되었다!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계정은 계약 기간이 없어, 예전 인터넷이 복구되면 즉시 해약하고 장비는 반품하면 된다고 안내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달 27일, 아파트 앞에 통신사 차량이 와서 배선 공사를 하는 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기술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3개월에 걸친 길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오늘 아침, 장비를 반납하고 계정을 폐쇄하는 기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3개월은 인터넷 ‘먹통’ 잔혹사 그 자체였다. 김영훈·샌루카스독자 마당 인터넷 잔혹사 인터넷 잔혹사 인터넷 연결 인터넷 불통
2025.07.08. 20:49
1950년 7월 1일, 6.25 전쟁 발발 닷새만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다급한 전갈을 받은 맥아더 장군은 딘 소장 휘하의 미 24사단 보병 병력을 한반도에 투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 미군 장병들은 오산에서 한국전쟁의 첫 참혹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이후 8월, 워커 사령관의 대전 사수 명령을 받은 딘 소장은 밀려드는 적의 전차 부대에 맞서 오직 보병 병력만으로 대전을 지켜내려 사투를 벌였다. 그는 직접 3.5인치 로켓포를 들고 적의 T-34 전차를 격파하며 전장을 누볐다. 그러나 혼전 속에서 부대와 떨어진 딘 소장은 36일간 산속을 헤매다 안타깝게도 한 농부의 밀고로 북한군에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3년간의 길고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 끝에 풀려난 딘 소장에게 미국 정부는 미군 장성으로서 보여준 그의 군인 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최고 훈장을 수여하려 했다. 그러나 딘 소장은 “사단장으로서 적군의 포로가 된 행위는 결코 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이를 극구 사양했다. 그는 적 전차 격파는 어떤 하사관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겸손하게 세상의 관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딘 소장은 단돈 5달러에 자신을 밀고하여 3년간의 포로 생활을 겪게 했던 그 농부가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무지한 농민이 살기 위해 한 행동임을 헤아려 한국 정부에 감형을 간청했고, 결국 그 농부가 출소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딘 장군의 이러한 숭고한 정신은 당시 북한군 심문 통역을 맡았던 이규현(전 중앙일보 사장·문공부 장관 역임)씨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만약 외국에 파견된 우리 군 사령관이 그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 민간인의 밀고로 포로가 되었다면, 우리 국민과 국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딘 소장의 사례는 단순한 희생을 넘어선 인간적인 고뇌와 용서,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에 대한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윌리엄 전쟁 전쟁 영웅 소장 휘하 밀고로 포로
2025.06.29. 16:20
눈을 뜨니 벽에 걸린 전자시계의 숫자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다. 오전 6시10분. 매일 6시 전후로 잠이 깨는 습관은 이제 익숙하다. 거실로 나가 남쪽 창의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면, 눈부신 아침 햇살이 쏟아진다. 제일 먼저 시선이 닿는 곳은 작은 탁자 위의 난(蘭) 화분들이다. 올해 2월부터 한 송이씩 피기 시작한 꽃들은 이제 제각기 만개하여 더없이 화사한 얼굴로 웃고 있다. 작년 봄과 여름, 지인들에게 선물 받은 난 화분 세 개는 이삼 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한 송이씩 시들더니 톡, 톡, 소리없이 떨어져 버렸다. 결국 가을이 되자 젓가락보다 가는 기둥에 앙상한 가지 몇 개만 남은 채 마치 죽은 화분처럼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 생명을 다했다 생각하고 버렸을 화분이다. 하지만 10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가 떠올랐다. 친구 집에서 꽃이 다 져버린 난 화분을 얻어와 기어이 다시 꽃을 피워내고 아이처럼 기뻐하던 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나도 한번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꽃집에 가서 가지치기와 물 주는 법을 물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 한동안 아무 소식 없던 마른 가지에 어느 날 좁쌀만 한 돌기가 맺혔다. 그것은 이내 팥알만큼 자라나더니, 이윽고 앙증맞은 꽃봉오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세 개의 화분은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부지런히 생명의 기지개를 켰다. 지난 2월, 마침내 가장 먼저 커진 봉오리 하나가 활짝 터졌다. “아, 내가 꽃을 피웠네! 꽃이 살아났어!” 기쁨에 겨워 식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할머니가 꽃 피웠어! 어서 와 봐, 어서!” 처음에는 한 송이 핀 것을 보고 시큰둥하던 아들과 며느리도 이내 다가와 들여다본다. 한 달쯤 지났을까. 흰색, 분홍색, 그리고 자주색 무늬를 가진 세 화분의 난들이 서로 사랑하듯 모두 활짝 예쁜 얼굴을 내밀었다. 식구들이 아직 잠든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만나는 꽃들에게 나는 속삭인다. “예쁘다, 정말 예쁘게 피었어.” 친구가 꽃도 칭찬하면 알아듣는다고 말했는데, 정말인가 보다. 오늘 아침도 가장 먼저 나의 작은 정원과 마주한다. “잘 잤니? 오늘도 참 예쁘구나.” 친구의 말처럼 칭찬을 알아듣는 것일까. 나의 인사에 활짝 핀 꽃들이 화답하며 웃는 듯하다. 죽은 줄 알았던 화분 속 뿌리에 생명력이 있어 다시 꽃을 피웠듯이, 돌아가신 나의 언니도 언젠가 하느님께서 생명력을 넣어 주신다면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꽃의 부활처럼, 그날을 기다려본다. 정현숙·LA독자 마당 새벽 난이 흰색 분홍색 자주색 무늬 여름 지인들
2025.06.15. 12:24
나눔은 그 시작이 작더라도 소중하며, 꾸준히 지속될 때 비로소 큰 변화의 물꼬를 튼다. 흔히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든다고 말한다. 변호사이신 부친 곁에서 자연스레 법조인의 꿈을 키웠고, 이화여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시험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부동산 전문업에 뛰어들어 40여 년간 한 길을 달려왔다. 숨 가쁘게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나눔의 기쁨에 동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2017년부터 림스패밀리재단(Rims Family Foundation)이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자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오래 살다 보면 쌓아 올리는 것보다 비워내고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아진다. 어쩌면 인생이란 조금씩 자신을 비우고 가진 것을 내려놓으며,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유한한 인간에게 의지하기보다 영원한 존재에게 마음이 기울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4월 한국에 잠시 들러 모교인 이화여대에 작은 나눔을 이어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학생들이 학업에 정진하여 훌륭한 여성 법조인으로 성장하고,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법률적 요구에 응하며 정의 구현에 이바지하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가슴 벅찬 감사함을 느낀다.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마음을 모아 전달한 정성 어린 감사패를 받고, 나눔의 씨앗이 맺은 결실을 확인하며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무한한 기쁨과 감사의 보람을 선물한 귀가길이 되었다. 오직 나 자신과 소유를 위해 살았던 시간들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타인을 위해 나누고 베풀었던 시간들은 보람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속에 영원히 남는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야 할 것은 거창한 업적이나 재산이 아니라, 따뜻한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삶이 아닐까. 감사를 나누고 사랑을 베푸는 삶이야말로 가장 충만하고 참된 삶임을 깨닫는 요즘이다. 임순·LA독자 마당 의미 나눔 이화여대 법학과 감사 인사 여성 법조인
2025.05.15. 19:01
캘리포니아 북쪽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레드 우드 국립 공원(Red Wood National park)에 처음 다녀 온 지가 43년 전이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붉은 색을 띤 장엄한 원시림을 둘러보면서 감탄이 쏟아졌다. 그 나무들 중 어떤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키의 큰 나무라고 하니 마치 수풀의 왕으로 여겨졌다. 가장 큰 나무의 키는 300피트고 제일 오래된 나무의 나이는 2400세라고 했다. 어떤 나무는 얼마나 뚱보인지 어른 10명이 손에 손을 잡고 둘러싸도 쌓이지 않을 정도이다. 또 어떤 나무는 그 몸통에 굴이 뚫려서 승용차가 드나들 수 있었다. 참으로 가슴 설레게 하는 신비스러운 광경이었다. 그 때 감탄만 쏟아부었지만 우리에게 제시하는 깊은 뜻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 후 얼마 지나서 알게 되었지만 이 공원의 밑바닥은 모두 암반으로 되어있어 나무들이 전부 암반 위에서 자란다고 한다. 이 나무들이 휘몰아치는 태풍에도 끄떡없이 오랜 세월동안 견디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나무 뿌리는 밑에 깔린 암반 지층 때문에 뿌리가 3m 혹은 4m 이상 내려가지 못하며 암반도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나무들이 거센 태풍을 견디며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생명력 있게 자라 온 것일까. 그것은 이 나무들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레드 우드 나무의 뿌리는 깊이 내리지 못하지만 서로 손에 손을 단단히 잡고 옆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는 하나인 나무인 셈이다. 비록 깊이 뿌리는 내리지 못해도 서로 연결된 뿌리는 거센 바람이 몰아칠 때에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서로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고 가뭄 때에는 영양분이 부족한 나무에 영양분을 나누어 주어 서로 도와 준다고 하니 너무나 신기하다. 레드 우드는 이런 시련의 순간마다 인내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목을 지탱해주는 힘은 함께하는 연합에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레드우드 나무들의 생태를 통해 성경의 말씀을 이해할듯하다. 이 공원의 위치에서부터 그곳의 기후 습도 등 모든 조건을 어우르게 하여 엄청난 진리를 우리의 눈으로 보게된다. 2400년 동안이나 건재하고 있는 그 나무는 서로 손에 손을 잡고 똘똘 뭉친 연합의 결과로 이룩한 위대한 모습이다. 요즘 온 세상은 참으로 혼란 하다. 문득 이 레드우드 공원을 통해 보여 주신 창조의 오묘하심에 가슴이 뭉클해 진다. 나의 조국 그리고 제 2 조국인 미국에 레드우드에서 본 연합의 진리가 있기를 기원해 본다. 이영순·샌타클라리타독자 마당 연합 레드우드 나무들 레드우드 공원 레드 우드
2025.05.11. 16:16
17세기, 형식주의에 갇힌 영국 국교회에 대한 반발로,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며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좇아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온 것은 400년 미국 역사의 서막이었다. 그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신앙을 토대로 근면과 성실함이라는 개척 정신을 발휘하며 위대한 국가 건설의 초석을 놓았다. 초기 정착 과정에서 원주민의 도움을 받았으나, 이후 유럽 각지에서 밀려드는 이민자들의 증가로 불가피하게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고, 결국 수적 우위와 현실적 역량을 앞세운 이주민들이 신대륙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미국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끊임없는 혁신과 발전을 거듭한 미국은 20세기 들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절제된 생활과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개척하려는 지적 호기심과 뜨거운 열정의 융합을 통해 ‘미국 정신’이라는 독특한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며 세계 무대로 도약했다. 그러나 세계 각지의 빈곤층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유입,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다양화는 자유, 평등, 정의, 양심, 공정, 공동체 의식 등 미국의 핵심 가치들을 약화시키고 사회 질서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최근 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범죄와 노숙자 문제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으며, 정치와 행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점차 하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출범한 트럼프 정부는 과감한 정책들을 쏟아내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기존의 관행에 안주해 온 이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충격일 수 있지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슬로건은 미국의 재도약을 염원하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정신의 부활은 특정 정권의 노력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건국 초기 청교도들의 숭고한 정신과 개척자들의 불굴의 의지를 되새기고, 시대 변화에 맞춰 미국의 핵심 가치를 재정립하고 사회 시스템 전반의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어나갈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기보다는 현재의 위기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미래를 향한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력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미국 재조명 개척 정신 기독교적 가치관 세계 각지
2025.04.27. 17:44
지나간 날들은 다시 올 수는 없어도 내 마음은 때때로 그 옛날에 머물곤 한다. 아주 선명하게 그 황홀했던 현장에 말이다. 조개잡이 가시는 아빠를 따라 언니와 함께 깡충깡충 뛰면서 따라갔던 그 해당화 만발한 그 언덕은 지금도 그대로 있을까. 따져보니 그때가 4살쯤 되었을 때인데 마치 어제 일과도 같다. 그땐 햇볕도 부드럽게 우리를 깜싸줬다. 언니와 손 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해당화 만발한 해당화 언덕에서 마치 꽃 속의 나비처럼 얼마나 즐거웠던가. 화사하게 뽐내며 피어 있던 해당화의 자태는 어찌 그리 평화롭고 우아했던지. 하늘도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던 것 같다. 그 언덕에서 평화스럽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그대로 어른거린다. 언덕을 지나면 탁 트인 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의 모래 사장은 마치 보석이 깔린 벌판 같아 반짝였다. 그때의 아버지는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리고 살살 바다 속으로 들어가시던 젊은 아빠였다. 오염이 없는 맑고 깨끗한 바다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트위스트 춤을 추듯 요리 조리 발을 움직이시던 젊은 아빠가 이따금 조개를 건져 올릴 때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에서 난 행복을 보았다. 얼마 안가 하나씩 하나씩 바구니에는 탐스러운 조개가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우리 셋은 마치 개선 장군처럼 집으로 향했다. 다시 해당화 언덕을 넘어 집으로 돌아 올 때 언니는 머리에 조개 바구니를 이고, 나는 아빠의 목마를 타고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곳은 러시아 경계선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 바로 옆인 함경북도 ‘서수라’라는 곳이다. 그 해당화 만발한 언덕 현장의 추억이 선명하게 펼쳐질 때면 가슴이 설렌다. 언젠가 통일이 되는 날 꼭 다시 가리라고 꿈꿨지만 희망을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흘렀다. 조국의 분단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내 조국, 금수강산. 그 수난의 세월은 우리 민족의 아픔이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속에서 그 언덕을 걷는다. 해당화 만발한 언덕에서, 그때 그 시절처럼. 이영순 / 샌타클라리타독자 마당 해당화 만발 해당화 언덕 언덕 현장 조개잡이 가시
2025.03.24. 19:29
고대 철학자의 말처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는 사람이 온전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계 맺음이 확장되어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형성하며, 나아가 민족과 국가를 이루게 된다. 만약 개인이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는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불안정 속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현대 사회에서 홈리스라는 개념은 단순히 주거 공간의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서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상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담아둘 곳이 없는 상황을 포함한다. 한편, 사회가 건전하지 못하다면 혼란과 무질서가 발생하며, 개인은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 또한, 국가가 미약하면 국민의 안전과 생존이 보장되지 않으며, 이는 많은 사람들을 유랑민으로 만들 수 있다. 결국, 국가의 존속과 번영은 강한 사회적 기반에서 비롯되며, 그 출발점은 개개인의 가정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사회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건전한 가정을 이루고 이를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들이 모여 올바른 사회를 형성하고, 이러한 사회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기 좋은 강한 국가를 만들어간다. 결국, 국가와 사회의 근본적인 기초는 개인과 그들이 형성하는 가정이다. 그러나 현대의 젊은 세대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으며, 결혼과 출산을 삶의 부담으로 여기면서 비혼자가 증가하고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는 인구 감소와 국가의 존속 위기를 초래할 수 있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동양 윤리의 근간인 충효 사상은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적용될 가치이다. 조상과 부모가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며, 이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아는 것은 중요한 삶의 덕목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자녀와 후손을 위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역할이다. 이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할 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저출산, 가정 해체, 사회적 불안정과 같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필요성 사회적 불안정 현대 사회 사회 공동체
2025.03.16. 17:32
나는 자주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동물들의 생존 방식은 경이롭고도 치열하다. 어떤 물고기는 스스로 낚시질을 한다. 이마에서 낚싯줄처럼 가느다란 돌기를 뻗어 그 끝에 작은 미끼를 달고 살랑살랑 흔든다. 이 미끼를 보고 작은 물고기들이 다가오면, 기다렸다는 듯 입을 활짝 벌려 단숨에 삼켜버린다. 악어는 숨어 있다가 목마른 동물들이 물가에 다가오는 순간, 번개처럼 튀어나와 한순간에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매복 사냥의 대가인 악어를 가장 잘 잡아먹는 동물은 ‘백수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가 아닌, 그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표범이다. 표범은 악어가 일광욕을 하기 위해 물가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쉬고 있을 때, 살금살금 다가가 잽싸게 목덜미를 물어버린다. 사자는 비록 ‘백수의 왕’이라 불리지만,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면 더 이상 무리에서 먹이를 나눠 받지 못하고 결국 외톨이가 된다. 그렇게 늙은 사자는 더 이상 사냥할 수 없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물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 사자처럼 왕좌에 있던 존재도 결국 세월 앞에서는 힘을 잃고, 한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득 거울을 보니 어느새 87세가 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배가 고프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잔뜩 있지만, 정작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음식을 앞에 두고도 젓가락을 들기 어려운 날들이 많아진다. 그럴 때 나는 물을 마신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다. 그 순간, 문득 착각에 빠진다. 혹시 나도 늙어버린 사자처럼, 한때는 기세등등했지만 이제는 물로 배를 채우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자연이 그러하듯, 삶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가 살아남는다. 늙어가는 것도 자연의 일부이며,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지혜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물을 마시며, 사라져가는 것들과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서효원 / LA독자 마당 백수 착각 악어가 일광욕 생존 방식 매복 사냥
2025.03.10. 18:46
오늘 아침 신문에서 한 여성이 마켓에 갔다가 명품 핸드백을 강탈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느 때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녀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 이 기사를 읽으며 문득 내 방 한쪽 선반 위에 놓인,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명품 핸드백이 떠올랐다. 그 가방은 2년 전, 동부에 사는 딸이 보내준 선물이었다. 예쁘고 고급스러웠지만, 한 번도 실생활에서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값비싼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어딘가 부담스러웠고, 무엇보다도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그저 선반 위에 조심스레 모셔둔 채, 가끔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지난해 어느 날, 남편과 잠깐 외출할 일이 생겼다. 문득 ‘오늘 하루만이라도 딸이 보내준 이 가방을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오랜만에 외출하는 친구를 챙기는 기분으로 조심스레 팔에 걸었다. 그런데 가방을 든 내 모습을 본 남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갑자기 웬 핸드백이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너무 외롭게 선반에만 있어서 미안하잖아.” 그러자 남편은 픽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럼 방 안에서라도 들고 다니면 되잖아.” 그 말에 우리는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가방을 메고 어린아이처럼 방 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가방은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 구경을 나온 것처럼 내 팔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장난스럽게 웃고 떠들었지만, 현실은 그저 유쾌한 놀이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도 후배가 마트에 갔다가 핸드백을 노린 강도로 인해 큰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길을 걸을 때조차 주변을 살피고, 값비싼 물건을 소지할 때마다 불안감을 느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핸드백이 단순한 패션 아이템을 넘어 위험 요소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과연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정말로 핸드백 없이 사는 것이 더 안전한 세상이 되어버린 걸까. 이영순·샌타클라리타 거주독자 마당 핸드백 명품 핸드백 한쪽 선반 패션 아이템
2025.03.06. 18:25
과학자들에 의하면 모든 생명체의 1차적인 목표는 삶을 부지하는데 있다고 한다. 즉, 죽지 말아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을 먹는 것이고 그 다음은 안전문제다. 모든 동물들은 암컷과 수컷으로 되어 있는데 암컷들이 수컷들보다 더 안전하게 행동한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동물들은 대개 암컷이 수컷들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한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동물들은 대개 네 발로 걷는다. 다만, 사람을 포함한 유인원들은 두 발로 걷는다. 이때 네 발로 걷는 것이 두발로 걷는 것보다는 안전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네 발로 걸으면 넘어질 확률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두 발로 걷는 것일까. 양팔과 양손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양팔과 양손을 사용하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이해득실 면에서 득이 실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네 발도 아니고 아니고 두 발도 아니고 세 발로 걷는 경우는 어떨까. 나는 나이 많은 노인이다. 세 발로 걸은 지 벌써 오래됐다. 두 발 이외에 지팡이라는 보조발을 사용한다. 두발로 걷다가 자주 넘어져서 세 발로 걸었더니 덜 넘어지게 되었다. 사람도 어릴 때는 다른 짐승들처럼 네 발로 걷는다. 그러다가 두 발로 걷게 되고 세 발로 걷게 되고 아주 늙게 되면 또다시 네 발로 걸을 수밖에 없다. 신은 공평하고 잘못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나는 자연(nature)이라는 것도 신 또는 신의 일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자연은 잘못 하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을 순리에 따라서 처리한다. 그 원칙과 법칙을 섭리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이라는 의미로 쓴다. 생도 자연의 일부이고 죽음도 자연의 일부이다. 마찬가지로 기쁨도, 슬픔도 자연의 섭리다. 안달복달한다고 해서 생과 사가 뒤바뀌는 것이 아니다. 서효원·LA 거주독자 마당 섭리 생도 자연 암컷과 수컷 양팔과 양손
2025.02.09. 16:35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출생시 시민권 부여 관련 행정명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에서 출생한 자녀가 자동으로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출생 당시 부모 중 최소 한 명이 영주권자 또는 미국 시민권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행정명령은 학생, 주재원, 연구원과 같은 합법적 비이민 비자 소지자에게도 적용된다. 즉, 이들 비자 소지자들이 미국에서 출생한 자녀에게도 자동 시민권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명령이 발표된 후, 18개 주의 법무장관들이 연방대법원에 헌법적 이의를 제기했다. 현재의 시민권 관련 법은 1868년에 비준된 미국 헌법 수정 14조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해당 조항은 미국에서 출생한 모든 자녀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1898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재확인됐다. 대법원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중국 이민자 부모의 자녀인 왕킴아크가 비록 중국 배척법이 적용되었을지라도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시민권자로 인정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이번 행정명령은 정치적 동기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보수 성향의 대법원 구성을 고려할 때, 이 명령이 유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헌법 조항에서 ‘미국에서 출생한 모든 사람’이라는 문구에 대한 예외를 적용하여 특정 자녀들의 자동 시민권을 부정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14차 개정안을 제정한 이들의 의도는 분명히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에 있었다고 보인다. 핵심 쟁점은 대법관 다수가 법적 원칙과 헌법 텍스트의 본래 취지에 따라 법을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동기가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있다. 사법부의 본질을 고려할 때,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판사는 정치인이 아니며, 이 근본적 차이가 미국 법체계가 존중받고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이승우·변호사독자 마당 행정명령 시민권 출생시 시민권 자동 시민권 이번 행정명령
2025.01.28.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