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내용을 구속한다고 했던가. 형식의 테두리 안에서 내용이 생성되고, 보존되며, 발전한다는 뜻일 것이다. 링과 규칙이 정해지면 그 안에서 활발한 게임이 벌어지듯이, 헌법의 효력이 준엄해야 국가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듯이 “튼실한 형식에 건강한 내용”이라는 이치일 것이다.
거꾸로 내실이 부실하면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괴테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저 푸른 생명만이 영원하다”고 설파한 명구도 뉘앙스는 다르더라도 맥락은 비슷하지 않은가?
니체는 더 나아가 “낯설게 하기”를 내세워 껍데기에서 벗어나자는 창조적 파괴를 외쳤다.
형식이 내용을 옥죄면 권위주의의 성벽이 높아지고, 내용이 형식을 무시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역사는 그 원리를 수없이 증언해왔다.
결국 공동체가 평화롭고도 성장을 구가하려면 내용과 형식을 조화롭게 운용하려는 사회 성원들과 지도층의 자세와 의지가 요체라고 할 수 있다.
형식에 사욕이나 집단 이기주의가 똬리를 틀거나, 내용에 개인적인 욕망의 독소가 오염되면 그게 곧 시대를 역행하는 부조리이고, 비리이며, 혐오의 대상이 돼 불만과 저항을 부르게 된다.
미국에서나 한국사회에서 정치인들이나 지도층이 지나치게 함부로 형식과 제도를 뜯어고치려 하고, 내용과 운용까지 좌지우지해 갈등과 퇴행을 빚고 있음은 정권과 이념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궤도를 탈선하는 대단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형식과 내용의 동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정치와 기관, 집단과 단체 할 것 없이 겸허하게 사욕과 배타의식을 누르고, 3류들이 설치는 현실이 정화되고 업그레이드돼야 건전한 나라, 선진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제도는 질서를 엄격히 세우면서도 ‘포용과 자유’를 품는 여유를, 내면은 전향적으로 ‘파격의 경지’가 융성해야 변혁의 시대에 안정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미래가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