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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전쟁 영웅 윌리엄 딘 소장

Los Angeles

2025.06.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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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1일, 6.25 전쟁 발발 닷새만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다급한 전갈을 받은 맥아더 장군은 딘 소장 휘하의 미 24사단 보병 병력을 한반도에 투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 미군 장병들은 오산에서 한국전쟁의 첫 참혹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이후 8월, 워커 사령관의 대전 사수 명령을 받은 딘 소장은 밀려드는 적의 전차 부대에 맞서 오직 보병 병력만으로 대전을 지켜내려 사투를 벌였다. 그는 직접 3.5인치 로켓포를 들고 적의 T-34 전차를 격파하며 전장을 누볐다. 그러나 혼전 속에서 부대와 떨어진 딘 소장은 36일간 산속을 헤매다 안타깝게도 한 농부의 밀고로 북한군에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3년간의 길고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 끝에 풀려난 딘 소장에게 미국 정부는 미군 장성으로서 보여준 그의 군인 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최고 훈장을 수여하려 했다. 그러나 딘 소장은 “사단장으로서 적군의 포로가 된 행위는 결코 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이를 극구 사양했다. 그는 적 전차 격파는 어떤 하사관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겸손하게 세상의 관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딘 소장은 단돈 5달러에 자신을 밀고하여 3년간의 포로 생활을 겪게 했던 그 농부가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무지한 농민이 살기 위해 한 행동임을 헤아려 한국 정부에 감형을 간청했고, 결국 그 농부가 출소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딘 장군의 이러한 숭고한 정신은 당시 북한군 심문 통역을 맡았던 이규현(전 중앙일보 사장·문공부 장관 역임)씨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만약 외국에 파견된 우리 군 사령관이 그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 민간인의 밀고로 포로가 되었다면, 우리 국민과 국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딘 소장의 사례는 단순한 희생을 넘어선 인간적인 고뇌와 용서,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에 대한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노영자·풋힐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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