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1일, 6.25 전쟁 발발 닷새만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다급한 전갈을 받은 맥아더 장군은 딘 소장 휘하의 미 24사단 보병 병력을 한반도에 투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 미군 장병들은 오산에서 한국전쟁의 첫 참혹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이후 8월, 워커 사령관의 대전 사수 명령을 받은 딘 소장은 밀려드는 적의 전차 부대에 맞서 오직 보병 병력만으로 대전을 지켜내려 사투를 벌였다. 그는 직접 3.5인치 로켓포를 들고 적의 T-34 전차를 격파하며 전장을 누볐다. 그러나 혼전 속에서 부대와 떨어진 딘 소장은 36일간 산속을 헤매다 안타깝게도 한 농부의 밀고로 북한군에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3년간의 길고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 끝에 풀려난 딘 소장에게 미국 정부는 미군 장성으로서 보여준 그의 군인 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최고 훈장을 수여하려 했다. 그러나 딘 소장은 “사단장으로서 적군의 포로가 된 행위는 결코 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이를 극구 사양했다. 그는 적 전차 격파는 어떤 하사관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겸손하게 세상의 관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딘 소장은 단돈 5달러에 자신을 밀고하여 3년간의 포로 생활을 겪게 했던 그 농부가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무지한 농민이 살기 위해 한 행동임을 헤아려 한국 정부에 감형을 간청했고, 결국 그 농부가 출소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딘 장군의 이러한 숭고한 정신은 당시 북한군 심문 통역을 맡았던 이규현(전 중앙일보 사장·문공부 장관 역임)씨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만약 외국에 파견된 우리 군 사령관이 그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 민간인의 밀고로 포로가 되었다면, 우리 국민과 국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딘 소장의 사례는 단순한 희생을 넘어선 인간적인 고뇌와 용서,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에 대한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윌리엄 전쟁 전쟁 영웅 소장 휘하 밀고로 포로
2025.06.29. 16:20
나라 안팎의 위기로 국민의 일상이 위협받고 있다. 국내에선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무차별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이, 국외에선 이란 공습으로 인한 보복 테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공권력과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독선은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지난 14일 전국적인 시위 이후 ICE의 불체 단속의 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라고 외친 수백만명의 목소리를 정부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 집앞 정원, 심지어 다저스타디움과 같은 스포츠 경기장까지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비인도적인 단속에 항의하는 시민, 종교인은 물론이고 선출직 공무원들까지 수갑을 채우고 있다. 합법적 비판마저 억압하려는 공권력의 폭주다. 국내의 혼란은 국외의 위기와 맞물려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난 21일 미국은 이란의 주요 핵시설을 전격 공습하면서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에 직접 개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전에 개입한 것을 두고 “국민에게 쓸 돈을 해외에 퍼붓는 멍청한 짓”이라고 했다. 이번 이란 공습은 다른가. 이 판단이 과연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이제 두려움은 국민의 몫이다. 지난 23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8명은 보복 테러를 우려한다. 일부에서는 ‘이란은 종이호랑이’라며 그럴 능력도 없다고 일축한다. 9.11 테러의 비극은 바로 그런 오만에서 시작됐다. 진짜 공포는 따로 있다. 이민자 단속이나 보복 테러 위협 그 자체가 아니다. 위기와 갈등을 부추기는 리더십, 그로 인한 짙은 불확실성이야말로 미국 사회를 짓누르는 공포의 근원이다. 또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나의 일상을 뒤흔들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리더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익과 이념을 넘어 국민 다수의 평안을 고민하고 있는가. 지금의 불안은 단지 기우에 불과한 것인가.사설 단속 전쟁 전쟁 국민 국민 다수 불법체류자 단속
2025.06.25. 19:19
지난 25일 오전 11시 시카고 한인문화원 비스코 홀에서는 6.25전쟁 7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중서부지회가 주최하고 시카고 한인회, 시카고 총영사관, 재향군인회 미중서부 지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시카고지역협의회가 협찬한 이날 기념식에는 중서부 지역 참전용사 25명을 비롯 한인 150여 명이 참석해 순국 선열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렸다. 이날 기념식은 재미시카고해병대전우회의 기수단 입장으로 시작돼 표경진 씨의 애국가 선창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중서부지회 이주열 회장은 “자유와 평화는 결코 공짜가 아니라, 피와 생명을 바친 대가”라며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 위협 속에서도 굳건한 한미동맹과 안보 의식을 유지해야 한다. 전쟁이 되풀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Luke Shin기념식 전쟁 이날 기념식 25참전유공자회 중서부지회 시카고 한인문화원
2025.06.25. 14:00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소련제 탱크가 나타나 평화를 짓밟았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운명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다. 3년1개월간의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토는 폐허가 됐다. 미국을 포함한 16개국의 유엔군이 참전했고, 중국공산군 또한 개입하면서 한국 전쟁은 국제전 양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6.25전쟁은 해가 가면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듯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여전히 ‘Korean War’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남아 있다. 어쩌면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더 한국전쟁을 잘 알고 있다는 예기다. 흔히 미국인에게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리지만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에게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전쟁은 냉전 시대 미국의 개입과 희생을 상징하며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에도 전쟁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LA에서 북서쪽 60마일가량 떨어진 곳에 샌타폴라(Santa Paula)라는 인구 2만 명의 작은 농촌 도시가 있다. 이곳에선 매년 한국전에서 희생된 이 고장 출신 전몰장병 추모식이 열린다. 백발의 한 할머니는 “오렌지 밭에서 일하던 오빠가 소집영장을 받고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머나먼 한국땅에서 전사했어요”라며 고인의 명패가 있는 자리에 꽃다발을 놓고 옆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곳 인근을 지나는 하이웨이 126번 도로에는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Highway’라는 표시판이 서있다. 미국 전역에 여행하다 보면 크고 작은 한국전 참전 기념물을 보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베트남전쟁보다 한국전쟁을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이 전쟁 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며 ‘기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한국은 전쟁의 피해를 직접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을 점점 잊는 듯하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세대 변화로 인해 젊은 층은 전쟁보다 현재의 삶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특히 남북관계가 복잡한 가운데 정치적 이유로 전쟁의 의미가 변화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6.25전쟁을 남북한 간의 역사로 보는 시각이 강한 반면,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와 자유진영 간의 충돌이라는 국제적 이념사건으로 바라본다. 한국전쟁은 잊지말아야 하고 꼭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다. 6.25전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전쟁으로 인해 분단이 고착화되었으며, 북한 핵 문제 등 현재의 안보 문제 또한 전쟁의 결과와 연결된다. 따라서 세대가 바뀌어도 전쟁의 교훈을 기억하고, 역사 속에서 현재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잊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6.25전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뿌리이기도 하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교육을 넘어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고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중요한 과정이다. 군인의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전쟁의 교훈을 통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기 위해 올바른 인식을 전해야 한다. 모름지기 기억하는 것이 곧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이재학 / 6.25 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전쟁 한국 전쟁 전쟁 75주년 한국전 참전
2025.06.15. 12:26
한미여성재단(회장 강명희)은 5일 6.25참전 유공자와 보훈단체장을 비롯한 내빈 등 70여 명을 모시고 ‘6.25전쟁 호국 영웅 위로 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애난데일 한인타운 인근에 있는 코리안커뮤니티센터 강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국민의례에 이어 강명희 회장 인사, 신진균 6.25참전 유공자회 회장대행, 김인철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동부지회 회장, 이길현 대사관 보훈관, 김용선 대사관 군수무관의 격려사,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의 감사장 전달, 오찬 순으로 진행됐다. 강명희 회장은 “바쁜 주중인데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참전 용사 및 내외 귀빈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올해로 6회 째를 맞이한 보훈행사를 힘이 닿는 그날까지 계속해 진행할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 강 회장은 “6.25참전 유공자를 비롯해 국가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영웅들을 예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식순에 이어 오찬을 함께 한 참석자들은 삼삼오오 75주년을 맞이한 6.25 한국전쟁을 회상하며 한미동맹의 필요성과 발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안수화 메릴랜드 한인회장, 김덕만 버지니아 한인회장, 김용하 몽고메리 한인회장 등도 내빈으로 참석 자리를 빛냈다. 김성한 기자 [email protected]호국영웅 전쟁 25전쟁 호국영웅 위로 행사 25참전 유공자회
2025.06.05. 13:17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UC 시스템과 하버드대학교 등 주요 대학들을 상대로 반유대주의 관련 대규모 소송을 예고했다. 유대계에 대한 역차별을 대학들이 간과하거나 방조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리오 테럴 법무부 민권국 선임 법률 고문은 28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주 UC 시스템과 동부·서부·중서부의 주요 대학들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이 있을 것”이라며, 증오범죄 및 민권법 위반 혐의 제소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UCLA, USC, UC 버클리,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뉴욕대, 조지워싱턴대, 존스홉킨스대, 노스웨스턴대, 미네소타대 등 10개 이상의 대학이 정부 태스크포스의 반유대주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고도 밝혔다. 소식이 알려지자 해당 대학들은 적극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레이첼 젠츠 UC 시스템 대변인은 “반유대주의는 용납할 수 없으며, 우리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지속해서 대응하고 있다”며 “정부와의 협조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USC도 “유대인 학생을 포함, 모든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해왔다”며 “반유대주의는 명백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태스크포스 측은 “조사팀의 캠퍼스 방문이 대학 측의 ‘저항’으로 무산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어떤 방식의 저항인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압박은 구체적으로 집행되고 있다. 일단 연방 교육부는 지난 3월 UC 샌디에이고, 산타바버러, 버클리, 데이비스를 포함해 총 60개 캠퍼스에 경고 서한을 보내 “유대인 학생 보호에 실패하면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 포모나 칼리지, 스탠퍼드, 채프먼대, 샌타모니카 칼리지, 새크라멘토 주립대 등도 포함됐다. 법무부는 UC 시스템 내 유대인 직원에 대한 차별의 ‘패턴’이 존재할 가능성을 지적하며 민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반유대주의 배척 등 교육정책 변경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는 하버드에 대해 외국 학생 비율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하버드대는 우리에게 외국 학생의 명단을 보여줘야 한다”며 “거의 31%가 외국인 학생이며 우리는 그 학생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트럼프 전쟁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 uc 반유대주의 조사
2025.05.28. 20:33
한국전쟁참전기념비재단은 26일 오후 워싱턴DC에 위치한 한국전쟁참전기념공원에서 메모리얼 데이 추모식을 개최했다. 6.25전쟁 제75주년을 기념한 이날 행사에는 한미 참전단체 대표 및 참전용사, 한미 정부 주요 인사, 그리고 한인 향군 단체 등이 참석해 전몰 용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메모리얼 데이 퍼레이드와 추모식에 모두 참여한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동부지회(회장 김인철)와 6.25참전유공자회(회장대행 신진균) 회원들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반도 평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새로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성한 기자 [email protected]추모행사 전쟁 25전쟁 제75주년 한미 참전단체 참전용사 한미
2025.05.27. 11:58
1876년 6월 25일, 몬태나주 리틀 빅혼 강 근처에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가 이끄는 제7기병연대와 시팅 불(Sitting Bull),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가 이끄는 수우족(Sioux), 북샤이엔족(Northern Cheyenne), 아라파호족(Arapaho)의 연합 부대가 부딪쳤다. 남북전쟁 직후 서부 개척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개척민들의 다툼은 잦아졌다. 이에 미국 정부는 철도 건설을 보호하기 위해 1873년 커스터의 제7기병대대를 다코타 준주에 보내게 된다. 1874년, 커스터는 라코타족의 성지이자 터전이었던 블랙힐스에서 금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블랙힐스 골드러시의 촉발제가 되었고, 그때 생겨난 마을 중에는 무법천지로 악명 높았던 데드우드도 있다. 수천 명의 광부들이 금을 찾아 이곳에 몰려들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을 침범하게 되었고, 원주민들과 광부들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기존에 원주민들과 맺었던 조약을 수호해야 할 미국 정부는 오히려 원주민에게 경고했고, 이에 분노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저항은 1876년 블랙힐스 전쟁으로 이어진다. 제7기병연대의 지휘자인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남북전쟁에 북군으로 참전해,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인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군인이었다. 전쟁 후 정규군 중령으로 임관하여 서부에 파견되어 주로 수우족과 싸웠으며, 능력 있는 지휘관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커스터의 병력은 2천여 명의 원주민 연합군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였고, 그는 개틀링 기관총과 야포 같은 최신 병기들을 기동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져가지 않았다. 또한 전력 차이를 경고하는 정찰병들의 조언도 무시했다. 결국 약 210명의 커스터 부대는 적의 위치도 모른 채 무작정 공격하다가 리틀 빅혼 강 근처에서 전멸당했다. 이 전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침략자인 미 육군을 상대로 한 위대한 승리였다. 크레이지 호스는 원주민의 영웅으로 기억되어 조각상으로도 남게 된다. 그러나 이후 분노한 미 육군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항복을 받아냈으며, 제7기병연대는 너무나 끔찍한 ‘운디드니 학살’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커스터와 리틀 빅혼 전투의 실상은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서부 영화 《작은 거인(Little Big Man)》에서 잘 묘사되어 있으며, 존 포드 감독의 《아파치 요새》에서도 다뤄진다. 이 영화들은 의외로 미국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63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 역시 미 육군 기병대와 수우족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 2부작 드라마 《Son of the Morning Star》는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제작되기도 했다. 시간이 된다면 영화로 리틀 빅혼 전투를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서부 개척민들에게는 뛰어난 군인으로 평가받았던 커스터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잔인하고 공포의 대상이었다. 커스터 시티는 골드러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정착지로, 처음에는 남부연합 장군 스톤월 잭슨의 이름을 따서 “스톤월”이라 불렸지만, 이후 “커스터(Custer)”로 개명된 도시다.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인구 1,919명의 작은 도시지만, 미군과 원주민의 전쟁 무대였으며, 블랙힐스에 백인들이 세운 가장 오래된 마을이기도 하다. 지금은 관광이 지역 경제의 핵심이다. 커스터 시티 주변에는 다양한 유명 관광지가 있다. 미국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새겨진 러시모어 마운틴, 크레이지 호스 기념관, 세계 최초로 동굴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윈드 케이브 국립공원, 약 1,500마리의 바이슨과 다양한 야생 동물이 서식하는 커스터 주립공원이 20분 거리 내에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커스터 시티의 상징이자 2016년 미국의 국가 포유동물(National Mammal)로 지정된 ‘바이슨(Bison)’. ‘버팔로(buffalo)’라고도 불리지만, 버팔로는 들소류를 포괄하는 말이며 바이슨은 아메리카 들소를 가리키므로 ‘바이슨’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바이슨은 아메리카 원주민보다 먼저 이 땅의 주인이었다. 19세기 초에는 수천만 마리에 이르렀지만, 철도 건설의 방해물로 간주되어, 사냥의 대상으로, 원주민 자원의 말살 수단으로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결국 멸종 위기에 놓였고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운명과도 겹친다. 현재는 보호 노력 덕분에 미국 전역에 약 3만 마리가 생존하고 있으며, 미국의 힘과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동물로, 흰머리 독수리와 함께 미국을 대표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이나 커스터 시티 인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푸른투어에서 진행 중인 50개 주 프로젝트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중, 서부 개척 역사를 만나는 “AMERICA THE BEAUTIFUL!” 일정에 커스터 시티가 포함되어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슬픈 역사, 아름다운 블랙힐스의 자연, 국가 기념물과 야생 동물이 공존하는 커스터 시티에 관심이 있다면 푸른투어에 문의해 보기를 권한다. “13년 후, 그들의 집은 파괴되고, 그들의 버팔로는 사라졌으며, 마지막 남은 수우족은 네브래스카주 로빈슨 요새에서 백인에게 항복했다. 평원의 위대한 기마 민족 문화는 사라지고, 서부 개척지 또한 그렇게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져 갔다.” 관련기사 [푸른투어] 전화 한 통이 만든 ‘UFO 도시’ 로즈웰의 진실푸른투어 미국 전쟁 아메리카 원주민들 원주민 연합군 블랙힐스 전쟁
2025.05.19. 14:11
미주복음방송(GBC)이 주최하는 ‘2025 GBC 나눔On 희망On 자선콘서트’가 오는 14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 공연은 감사한인교회, 인랜드교회, 샌디에고갈보리장로교회, 얼바인온누리교회, 에브리데이교회, 충현선교교회 등 남가주 6개 교회에서 진행된다. 이번 공연은 LA 산불 피해자와 전쟁 난민을 돕기 위해 마련됐으며, 티켓 판매 수익 전액이 기부에 사용될 예정이다. ‘나눔On 프로젝트’는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중 시작됐으며, 현재까지 약 95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금해 재난·전쟁 피해자를 지원해왔다. 올해는 LA 산불 피해자를 비롯해 미얀마 카렌족,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다. 이번 공연은 ‘더 은혜 워십팀’ 의 손경민 목사(리더·작곡가), 주리(보컬), 이윤화(보컬), 김정희(피아니스트), 이기명(색소포니스트)이 무대에 오른다. 손 목사는 “이번 콘서트의 주제를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장 15절)로 정했다”며 “산불과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티켓은 20달러이며, 미주복음방송 웹사이트(kgbc.com) 또는 공연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문의:(714)484-1190 강한길 기자자선콘서트 게시판 산불과 전쟁 감사한인교회 인랜드교회 미주복음방송 웹사이트 교회 희망 전쟁 난민 캘리포니아 미국
2025.02.13. 20:19
올해 상반기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퍼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 초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는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다. 말로만 위협한 게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는 듯한 언론플레이도 했다. ICBM 추정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순항미사일을 열흘 동안 수중 해상 육상에서 네 번이나 시험 발사했다. 남포조선소를 방문해서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독려하고 “전쟁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10월 초순 북한군 폭풍군단 병력 3000명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배치했다. 한미 정보당국은 연말까지 북한군 1만2000명이 러시아에 파병될 것으로 판단했다. 남침 전쟁을 준비하면서 대규모 병력을 외국으로 파병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쟁의 마무리는 지상군이 적의 영토를 장악해야 끝나기 때문에 적을 압도하는 지상군 병력을 확보하는 것은 군사 상식이다. 게다가 지상군의 남침 통로로 이용할 수 있는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파괴하고 방벽을 세웠다. 북한이 과연 남침 전쟁을 준비하는 걸까? 김정은의 속내를 파악할 단초는 2023년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노선을 폐기하고 남북관계를 적대적 국가관계로 규정한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1972년 7월4일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평화통일 3대 원칙을 공동성명으로 발표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가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을 폐기했다. 남북관계에서 “민족”과 “통일”을 지우겠다는 뜻이다. 북한 주민들은 “미국의 식민지에서 헐벗고 굶주린 남조선 동포를 해방해야 한다”고 사상교육을 받아 왔다. 그런데 갑자기 남한은 같은 “민족”도 아니고 “통일”할 대상이 아니라 “교전 중인 적국”이라고 사상교육 내용을 바꿨다. 할아버지의 업적까지 폐기하면서까지 남한을 “교전 중인 적국”으로 규정한 것은 남한 문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이다. 같은 민족인 남한의 문화를 알려고 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지난 6월 공개한 ‘2024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이른바 ‘3대 사회통제 악법’을 근거로 적극적으로 주민 통제에 나서고 있다. 이 보고서는 다수 탈북민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했다. 3대 악법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이다. 특히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적대국의 녹화물을 많은 사람에게 유포하거나 집단적으로 시청·열람하도록 조장한 경우 최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남한 노래·드라마 등 외부 정보가 1990년대부터 북한에 유입됐으며 2000년대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전파가 가속화됐다. 2010년 이후에는 휴대전화가 주요한 정보공유 매체가 됐고 SD카드, USB 등 정 보공유 방식도 다양해졌다. 단속은 해도 처벌은 많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남한 영상물이나 노래를 시청·청취했다는 이유로 사형까지 당하는 사례도 나왔다. 탈북민 단체들이 쌀과 달러 지폐를 포함한 전단지를 풍선에 실어 북으로 날려보내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경기를 일으키는 것도 전단지에 남한의 실상을 알리는 글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을 폭로한 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외부 정보의 유입은 북한주민의 사상통제를 어렵게 해 결국은 김정은 정권 유지를 위태롭게 한다. 김정은이 선대의 정치이념인 “민족 통일”을 모두 버리고서라도 남한 정보 유입을 차단하려는 이유이다. 그래서 ‘남조선’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대한민국’이라 지칭하면서 남한을 “통일해야 할 같은 민족”이 아니라 “초토화해 버릴” 적대국으로 만들어 교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 한다. 지금 김정은은 정권 유지를 위해 외부 정보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쇄국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무영 / 뉴미디어 국장이슈 진단 김정은 전쟁 남침 전쟁 민족인 남한 남한 문화
2024.12.03. 20:08
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한인 여성이 오랜 시간 모국의 아동들을 후원해온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이러한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경상남도는 해당 여성을 명예도민으로 선정했다. 경상남도는 린디 순 커리(이정순.1953년생)씨를 경상남도 명예도민으로 선정하고 명예도민증을 전달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상남도 측 설명에 따르면, 커리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고아로 발견돼 ‘진해 희망의 집’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지난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지냈다. 이후 지난 1957년 3월 홀트 입양기관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에서의 삶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하프연주자와 한국의 전래동화를 전파하는 스토리텔러로 성장했다. 그는 고국을 잊지 않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한국 전통 민담을 통해 한국을 알려왔다. 커리씨는 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지난 1995년 서울 동부사회복지관에서 아기를 입양해 가정을 이뤘다. 그는 지난 2000년 10월 우연한 기회로 한국에 방문하면서 자신이 지냈던 진해 희망의 집을 찾았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모국의 아이들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커리씨는 미국의 가족들과 분기별로 진해 희망의 집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선물과 후원금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지난 2002년 미국에서 비영리단체 ‘브리지 오브 호프(Bridge of Hope)’를 설립했다. 커리씨는 단체를 통해 진해 희망의 집 아이들을 위한 후원 활동을 계속했으며 지난 2018년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커리씨는 현금 후원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을 돕기 위한 피아노, 첼로 등 악기 등도 지원했다. 또 그는 매년 2~3명의 한국 입양 아동을 미국으로 초청해 미국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지금까지 커리씨가 미국에 초청한 아동 수는 38명에 이른다. 이러한 공로를 높이 산 사회복지법인 경신재단과 경상남도사회복지협의회의 추천으로 커리씨는 경상남도 명예도민이 되었다. 커리씨는 “가슴속에 묻어 둔 고국의 경상남도 명예도민이 되어 감격스럽다”며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경상남도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경상남도 측은 경상남도 LA사무소장을 통해 미국에 거주 중인 커리씨에게 명예도민증을 전달했다. 김경준 기자 [email protected]전쟁 고아 시간 모국 경상남도 명예도민 한국전쟁 당시
2024.11.18. 20:08
월드시리즈에서 LA다저스가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가운데 양 도시 간의 치열한 '음식전쟁'도 LA가 승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LA타임스(LAT)는 LA가 뉴욕에 비해서 훨씬 더 나은 음식들을 갖추고 있다며 항목별로 설명하는 기사(사진)를 게재했다. 기사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음식에 대한 부분이다. LAT는 "LA의 코리아타운이 더 크고 더 윤택하고 더 밝다"며 "뉴욕 코리아타운보다 더 나은 게 확실하고 여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2스퀘어마일 안에 가득 차 있는 한식당 중에는 한국 각지의 향토 음식부터 단 하나의 품목을 위해 운영하는 곳까지 있어 "LA시민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덧붙였다. LAT는 지난 3월 발행한 LA 한인타운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을 선별해 소개한 특집기사를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LA를 가장 싫어하는 뉴요커조차 LA의 한국음식이 훨씬 더 낫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특집기사를 통해서는 라우더스, 치믈리에, 꼴통치킨, 비비큐치킨 등의 치킨집과 오리진 코리안 바비큐, 아가씨 곱창, 북새통, 해장촌, 길목, 박대감네, 숯불집 등의 구이집이 소개됐다. LAT는 한식에 더해 다른 음식도 뉴욕보다는 LA가 훨씬 더 앞선다고 강조했다. 뉴요커들은 뉴욕의 베이글과 피자가 더 낫다고 주장하지만, 훨씬 더 부드러운 식감의 LA 베이글과 더 다채로운 스타일을 지닌 LA 피자가 뉴욕을 뛰어넘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뉴욕이 자랑하는 쉐이크쉑 버거와 서부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인앤아웃 버거를 비교해도 '마술과도 같은 맛'을 지닌 스프레드 소스가 함께하는 인앤아웃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LA와 뉴욕의 음식 대결에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핫도그와 타코의 대결이었다.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트리트 푸드의 대명사를 비교한 것이다. LAT는 가주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멕시칸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있는 주고 전체의 30%가 가주에 위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LA에 있는 어느 동네를 가도 볼 수 있는 타코 스탠드나 트럭에 있는 타코는 맛과 가격에서 핫도그와 견줄 수 없다며 수천 개가 넘는 타코집이 LA의 우위를 굳혀준다 말했다. LAT의 기사는 짤막한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더 이상의 논쟁은 없다. LA는 뉴욕보다 더 나은 미식의 도시다. 다저스 파이팅!" 조원희 기자음식 전쟁 뉴욕 압도 뉴욕 코리아타운 음식 전쟁
2024.10.29. 20:35
지난 7일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지 1년 되는 날이다. 가자 지구 전쟁 발발 1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는 추모 행사 및 시위가 잇따라 열렸다. 이날 뉴욕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관계기사 6면〉 [로이터] 관련기사 가자전쟁 1년 맞아 하마스·후티·헤즈볼라 '합동 공습'지구 전쟁 지구 전쟁 이스라엘 국기 팔레스타인 무장
2024.10.07. 20:34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전쟁이 어느덧 1년을 맞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오히려 레바논, 이란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등 확전 양상을 보인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오래 싸우는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휴전을 촉구하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전쟁을 끝낼 의사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위해 계속 전쟁을 하려는 것인지 명분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생존을 이유로 무력 사용을 정당화했다. 지난 1948년 건국 이후,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등 주변 이슬람 국가와 반이스라엘 무장 세력들로부터 지속해서 공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하마스였다.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7일 약 5000발의 로켓을 기습적으로 발사하고, 이스라엘 국경을 침입해 1200여명을 살해, 250여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은 자위권의 행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 점점 확대되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에 국제 사회는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특히, 군사 작전의 목표가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같은 반이스라엘 무장 세력에 국한되지 않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민간 거주지역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6월 19일 이스라엘 공격 분석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민간인과 무장세력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 9일부터 12월 2일까지 가자지구의 학교, 난민 캠프, 건물 등에 GBU-31(2000파운드), GBU-32(1000파운드) 등 고성능 폭탄을 투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민간인이 떠안고 있다. 지난 6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국제이주기구 등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사상자 수는 사망자 4만여 명을 포함, 14만 명에 이른다. 난민 숫자도 약 190만 명으로 집계됐다. 또 레바논의 사상자 숫자도 지난 5일 기준 1만1000명을 넘어섰으며, 난민 규모도 54만 명 이상으로 기록됐다. 아랍계 언론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이스라엘 역시 98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전력과 물 부족으로 200만명 이상의 주민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등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전쟁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전쟁을 이끄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전만 해도 지지율이 바닥이었다. 지난해 사법부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행정부의 힘을 강화하려다 국민의 저항에 부딪혔다.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후퇴시킨다는 이유였다. 약 50만 명이 반대 시위에 참여하면서 그의 재임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이 와중에 전쟁이 발발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신속히 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 결과, 그의 지지율은 반등했다. 지난해 초 10%대에 머물던 그의 지지율이 지난달 29일 기준 38%까지 올랐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동 정세는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76년 전으로 후퇴할 위기에 놓여있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방어적 전쟁’의 논리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그동안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이 더는 국제사회가 묵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명분이 전쟁의 동력이라면, 이 명분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명확한 답을 요구한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전쟁의 명분에 대해 근본적인 재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전쟁 이스라엘 기습공격 가자지구 전쟁 반이스라엘 무장
2024.10.07. 18:39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했다. 전쟁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당하는 등 한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이후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전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맥아더 장군의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이 결정적이었다. 이어 9월28일에는 서울 탈환에 성공했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압록강까지 북진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달라졌다. 그 겨울 영하 30~4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 동사자까지 발생했다. 세계 전쟁사에 겨울 전투로 유명한 ‘장진호 전투’도 이때 벌어졌다.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대가 주축인 유엔군 3만 명이 중공군 10만 명에 맞서 벌인 전투였다. 당시 유엔군은 끝 없이 밀려오는 인해전술의 중공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백마고지 전투도 국군 9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에 맞서 벌인 전투였다. 10일 내내 백마고지의 주인이 24차례나 바뀔 정도였다니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런 전투 중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전쟁 발발 3년1개월2일(1129일)만이다. 무수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지만 전쟁은 휴전했을 뿐이지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도 북한은 온갖 도발 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다. 끊임없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젠 오물풍선까지 남한으로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휴전선은 1953년 휴전 협정을 통해 생겼다. 지금도 남북 간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다. 올해는 9·28 서울 수복 74주년이 되는 해다. 6·25 전쟁의 교훈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가 필요하다. 전쟁은 힘의 대결이고 평화도 힘이 있어야 유지된다. 강한 힘만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킬 수 있다. 노영자·풋힐랜치 거주독자 마당 전쟁 세계 전쟁사 백마고지 전투도 장진호 전투
2024.09.24. 18:38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극 지역 개발을 위해 거물급 인사를 극지 연구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는 북극항로에 대한 전략과 비전을 나타낸 것으로 아시아(한국, 일본 및 중국)와의 물동량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과 북극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최근 중국 화물선의 북극항로 이용이 크게 늘고 있다. 수에즈 운하와 희망봉 항로는 효율 면에서 최악이기 때문이다. 미국 또한 북극항로 개척에 천문학적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북극과 아무 관계가 없는 국가다. 100여 년 전 알래스카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미국의 북극항로 개척 전초기지는 알래스카 서부지역의 대표도시이며 북극 입구에 위치한 놈(Nome)이다. 놈은 한국 극지 연구소와의 공동 연구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우선 놈에 항공모함이나 유람선도 접안할 수 있는 규모의 부두 개발 예산을 확보했다. 이 부두는 베링해와 북극해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이것은 북극항로의 수요가 점차 증가할 것을 예상한 투자이다. 2009년 이래 북극항로 이용 선박이 두 배나 늘어난 시점에서 시기적절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특히, 연안경비 강화 차원에서 놈에 군 주둔이 필요하다. 선박의 안전운항 및 사고방지를 위해 인적 및 물적 지원을 한다는 복안이다. 더욱이 사고로 인한 오염 및 기후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등 방법도 포함하고 있다. 놈은 원주민이 3800명으로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한다. 앞으로 많은 인구 증가가 예상되며 대부분의 토지는 원주민이 소유하고 있어 원주민의 역할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북극의 해빙 감소로 북극항로의 활용이 증가할 것은 뻔하다. 그래서 북극은 미래의 전략기지이자 핵심 무역 항로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북극에서 유전 및 천연가스를 개발하면서 한국에 LNG선을 주문한 적이 있다. 한국은 이런 사례를 활용해야 한다. 러시아가 일 년 내내 북극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 쇄빙선을 보유한 덕이다. 반면 캐나다 방면의 북동항로는 섬이 많아 쇄빙선이 있어도 러시아보다 활용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선뜻 항로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미국은 놈을 개발하기 위해 큰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새로운 쇄빙선 건조도 2025년 마무리 된다고 한다. 이 쇄빙선은 해안경비대 소속이 된다고 한다. 북극은 군사 목적의 군함 출입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한국도 제2의 쇄빙선을 건조한다고 하지만 시기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의 쇄빙선(아라온)만으로 남극과 북극을 감당하기엔 무리다. 선장과 선원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는 형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항공, 우주, 천연자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러시아와 지속해서 연구 및 산업활동을 해야 한다. 불곰사업은 한국의 군수물자 수출에 원동력이 되었고,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에도 러시아의 기술이 접목되어 있다. 비록,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모든 과학 및 산업 분야의 통로가 차단된 상태지만 말이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사할린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천연가스를 개발해 안정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1월 앵커리지 주재 일본 영사관에서 산업 및 환경에 관한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다. 우연한 기회에 참석했지만,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평화 속에서는 뭐든 할 수 있다. 심지어 전쟁 중이라도 국가는 자국 산업과 국민을 위해 뭐든 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과연 북극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러시아와의 관계는 물밑에서라도 긴밀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북극 전쟁 북극항로 이용 북극항로 개척 이래 북극항로
2024.09.10. 19:12
2차 세계대전 후 한반도 허리에 그어진 38선은 민족의 사선이었다. 6·25 한국전쟁은 유엔군과 중공군의 참전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으로 비화할 뻔했다. 그러다 1953년 7월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따라 총성이 멈추었다. 올해는 정전협정 71주년이 되는 해다. 3년 1개월 동안이나 계속된 동족상잔의 치열했던 전쟁은 UN이 나서고서야 중단됐다. 남북이 체결한 정전협정은 지금까지도 한반도 평화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유엔군에 속한 16개 회원국 외교부 장관들은 “한국이 통일되고 독립적이며 민주적인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정전협정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다짐했고 “다시 북한의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즉각 한국에 대한 지원을 재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전협정으로 인해 남북 간 전투는 중단되었지만, 공식적인 종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한반도가 여전히 전쟁 상황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는 의미다. 정전은 일단 전쟁 상태를 중단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위협이 여전한 상태여서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는 상황이다. 3대에 걸친 세습으로 이뤄진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인민의 생존과 유엔의 제재 등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가파식 고집으로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만 열을 울리고 있다. 또한 지속적인 도발을 통해 대한민국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우리는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토 통일의 문턱에서 후퇴했다. 이후 그토록 ‘휴전반대’를 외쳤던 우리 정부가 정전협정을 받아들인 것은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다는 이유도 있었다. 또한 정전협정에는 유엔의 깃발 아래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국가들의 희생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전쟁에 대비한 전략도 매우 달라지고 있다. 변화하는 북의 위협에 대응하는 군사적 전략 수립과 훈련 방식이 필요함은 물론 유사시에 대비해 긴밀한 외교적·군사적 협력 관계를 만들어 두는 것도 필요하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뜻을 같이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위협에 함께 대응해 줄 우방이 있고, 가치를 공유하며 서로의 이익을 존중하는 국가들이 70여 년 동안 유엔사의 구성원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북한은 휴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전쟁승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한국군 전사자는 13만 7000여명이었던 것에 비해 북한은 52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북한에는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묘지 하나 없다. 숱한 희생자를 낸 전쟁범죄자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죽어서도 호사를 누리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정부는 마지막 한 명의 전사자라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적군이지만 사망자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 한구석, 지도상에서 찾기도 어려운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용사들에게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희생에 보답해야 한다. 6·25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니라 ‘잊어선 안 될 전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지켜준다’는 현충원과 호국원에 잠들어 있는 젊은 넋을 기리는 일이기도 하다. 자유민주 국가의 존재 가치란 숭고한 희생은 국가가 영원히 기억해 주는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전쟁 전쟁 희생자 전쟁범죄자 김일성 전쟁 상태
2024.08.04. 19:07
예상대로였다. 공보 형식으로 공개된 회의 결과는 기존 ‘중국식 현대화’ 방안을 종합적으로 정리했을 뿐이다. 지난주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기 3중전회 얘기다. ‘별것 없네~’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원래 그렇다. 3중전회는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경제 개혁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회의다. 공보에 숨긴 그들의 ‘미래 셈법’을 읽어내는 건 우리의 몫이다. 2가지 사안을 주목하게 된다. 첫째 ‘고품질발전(高質量發展)과 국가 안보(안전)의 상호 연동’이다. ‘고품질발전’은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중국식 현대화’ 달성의 핵심이다. 디지털화, 스마트화 등을 통해 산업 체질을 첨단 고부가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그걸 국가 안보와 결부시켰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산업 전략을 짜고, 독자적인 공급망 구축으로 경제 안보를 지키겠다는 의미다. 미국과의 경제 전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둘째 ‘인재강국(人才强國)’ 전략이다. 공보는 ‘교육, 과학기술, 인재야말로 중국식 현대화의 기초이자 버팀목’이라고 했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 구축을 위해 교육 개혁에 나서겠단다. 둘을 종합하면 이렇다. ‘미국 경제 압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산업을 고도화하고, 이를 위해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들에겐 인재 양성이 곧 미국과의 경제 전쟁에 대비하는 길이다. 3중전회가 끝나기 무섭게 중국 관영 매체는 과학기술 분야 교육 개혁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의 과학기술 연구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학계 권위를 인정받는 ‘네이처 인덱스’는 중국이 올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과학 연구 분야 1위에 올랐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 최상위 연구기관(대학 포함) 10곳 중에서 7곳을 중국이 차지했다. 그런 중국이 아직도 부족하다며 ‘인재 강국’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공보는 모든 개혁을 2029년까지 완성할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향후 5년 그들은 전쟁하듯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매진할 태세다. 우리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고등학교 인재는 의대로 몰리고, 대학은 학과 이기주의에 막혀 필요 산업 인력을 충분히 배출하지 못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분야는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MBC를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과학기술 관련 법안 심사는 뒷전으로 밀리는 게 우리 정치 수준이다. ‘2029년 한국과 중국의 기술 수준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3중전회 공보를 읽으며 드는 걱정이다. 한우덕 / 한국 차이나랩 선임기자중국읽기 전쟁 과학기술 인재 교육 과학기술 과학기술 분야
2024.07.22. 20:55
제74주년 6.25 전쟁 추념식이 지난 6월25일(화) 오전 11시 달라스 한인문화센터에서 거행됐다. 달라스 한인회(회장 김성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회장 오원성), 주달라스영사출장소(소장 도광헌)가 공동으로 주최한 추념식에는 100여명의 한인들이 참석해 6.25 전쟁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을 추모했다. 우성철 달라스 한인회 수석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념식은 윤석렬 대통령의 축사 영상으로 시작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한 도광헌 소장을 대신해 이율리 영사가 기념사를 했고, 이철모 6.25 참전전우회 전 회장, 김성한 달라스 한인회 회장, 그리고 오원성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 회장 순으로 기념사를 했다. 이율리 영사는 기념사에서 “74년 전에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과 참전용사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면서 “이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대한민국을 더 크게 발전시키고 지켜 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철모 달라스 6.25 참전 전우회 전 회장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소련과 중공의 공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진격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현재의 휴전선을 기점으로 해서 마침내 1953년 7월 27일을 기해서 3년 간의 전쟁을 종식하고 휴전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하며 “전쟁 중 목숨을 잃은 18만여 명의 전사들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닥칠지 모를 국난의 때를 대비해 다같이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이철모 전 회장은 6.25 전쟁 당시 미육군단에 예속된 한국군 64단 수석 중대장으로서 세계 전쟁사에 기록된 용문산 전투에서 부대를 이끌며 전쟁에 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서부전선에 이상 없다’는 소설의 한구절인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오직 사라질뿐이다”를 외치며 기념사를 마쳤다. 김성한 한인회장은 “6.25 전쟁에서 한국군 13만 8천명이 전사하고 45만명이 부상했으며 2만5천명이 실종되었다. 이 전쟁으로 대한민국은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으나 다시 일어서서 세계10위권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고 상기시키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참전용사들이 전쟁터에서 흘린 땀과 피와 눈물의 댓가다. 남북 평화를 위해서 미국 주류사회와 전 세계에 평화와 화해를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자”고 호소했다. 마지막 기념사에서 오원성 회장은 “6.25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포성을 멈추게 한 정전협정은 현재진행형이다. 통일된 한반도를 이뤄내야 비로소 6.25 전쟁은 분단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다함께 힘을 모으기를 거듭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통일을 꿈꾸면 통일은 반드시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도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는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정책에 기여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통일된 한국을 이끌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전하며 기념사를 맺었다. 모든 기념사가 끝난 후 6.25 기념 영상 시청을 통해 호국용사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이후 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태극기를 들고 6.25 노래를 제창하면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추념식에는 달라스에 거주하는 총 5명의 참전용사들 중 이철모, 김성제, 정명진 참전용사가 참석했다. 이들에게는 감사의 표시로 꽃다발이 증정됐다. 정명진(91) 참전용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에 이민 와서 36년 동안 살고 있지만 항상 고국을 잊지 못하고 고국의 번영을 바라고 있다”고 전하며 “기념식에 참석한 다른 참전용사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 조국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도광헌 소장은 6.25 전쟁 추념식에 앞서 6월18일(화) 한식당 수라에서 6.25 한인 참전 유공자들을 초청해 오찬을 갖고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오찬에는 DFW 지역에 거주하는 4명의 참전용사들이 참석했다. 캐서린 조 기자마침표 전쟁 전쟁 추념식이 김성한 한인회장 세계 전쟁사
2024.06.28. 10:30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악몽 때문에 매일 밤 소파에서 잠을 청합니다” 6·25 전쟁 발발 74주년을 맞은 오늘.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려 온 이 전쟁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그날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지난 22일 롱아일랜드 하팍 자택에서 만난 살바토르 스칼라토 뉴욕주한국전참전용사회(KWVA) 롱아일랜드 지회장. 지하실을 가득 메운 전쟁 기록에서 한국전 참전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반나절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보인 한맺힌 눈빛에서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1951년부터 해군으로 복무한 그는 이듬해인 1952년 인천에 도착해 최전방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1953년, 손과 목,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로 미국에 돌아왔다. 한국을 증오했다던 그는 어쩌다 “내 심장은 한국에 두고 왔다”고 말하게 됐을까. 미국과 한국을 모두 증오했다 “너무 많은 동료들이 내 품에서 죽어 나갔다”는 그는 처음으로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던 그날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일주일을 앞둔 동료는 갑작스런 공격으로 총알을 맞고 스칼라토 회장의 몸 위로 쓰러졌고, 복부 압박을 했지만 결국 그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증오했고, 왜 우리가 남을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해야 하는가에 대해 분노했다”고 전했다. 주머니 속 잘린 아이의 손 그랬던 그는 한 아이의 죽음을 목격하며 생각을 바꾸게 된다. 전쟁 중 폭격을 맞아 주민 대부분이 사망한 한 마을에서 손이 잘려나간 한 남자아이를 발견한 그는 잘린 손목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아이를 안고 의사가 있다는 고아원으로 향했다. 그는 “공포에 질린 아이가 남은 한쪽 손으로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며 “아이를 의사에게 넘겨주고 나왔다가, 주머니 속 아이의 손이 생각나 다시 들어가 전달했지만 이미 아이가 죽은 후였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시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던 그는 그때 결심했다고 한다. 이 죄 없는 한국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노라고. 그 어디에도 없었던 기록 통역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KWVA 하세종 수석부회장은 “전쟁에 참여한 미군 17만5000명 중 10만5000명은 부상, 8600명은 실종, 8000명은 포로로 잡혔다”며 “살아 돌아온 미군 중 70~80%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귀국 후에도 병원 신세를 지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목숨 바쳐 싸웠으나 몇십 년이 지나도록 미국에서 한국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살바토르 회장은 “1985년 한국전에 대한 리포트를 쓰겠다는 딸에게,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보라고 전한 뉴욕의 한 참전용사는 ‘그 어디에도 자료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이에 심각성을 느껴 KWVA가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에서 ‘잊혀지지 않은 전쟁’〈Unforgotten War〉으로 1999년 연방의회 결의안 통과로 예우받기 시작 전국 참전용사들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 착수 한국 위상 높아지며 인식 개선…교육은 여전히 부족 어쩌다 ‘잊힌 전쟁’이 됐을까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전쟁 영웅으로 예우를 받기 시작한 건 전쟁 발발 약 50년 후인 1999년부터다. 이전까지 한국전은 트루먼 대통령 재임 당시 지시된 군사 작전(police action) 정도로만 규정됐고, 1999년 한국 정부가 미국의 참전용사들에게 메달을 지급하고 싶다고 요청하며 연방의회에서 결의안이 통과돼 전쟁 지위를 회복했다. ‘잊혀진 전쟁’에서 ‘잊혀지지 않은 전쟁’으로 살바토르 회장은 요즘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땡큐 포 유어 서비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물론 문화·경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보다 많은 이들이 한국전에 관심을 갖게 된 덕분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50개주 참전용사들의 피나는 노력도 들어가 있다. 협회가 결성된 이후 전국의 참전용사들은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잊혀진 전쟁’으로만 남을 게 아니라, 한국을 위해 싸운 이유와 목적을 차세대 청소년들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참전용사들이 직접 발벗고 나섰다.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강연했고, 또 교회와 도서관을 다니며 일반 시민들에게 체험담을 공유했다. 한국전 교육 여전히 부족 참전용사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살바토르 회장은 “지금은 예전보다 도서관에 가면 한국전 관련 책들이 몇 권 생겼다”며 “그래도 한국전은 베트남전 등에 비해 미국에 큰 의미가 없는 전쟁이라, 역사 교과서에서도 1~2페이지만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도 이전에 비해 활발히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남아 있는 참전 용사들이 얼마 없고, 대부분의 참전용사들이 고령화돼 외부 강연이 힘들기 때문이다. 하세종 부회장은 “협회 창립 당시 회원이 3만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며 “차세대 한인들도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시 찾은 대한민국은 반짝였다 전쟁 후 한국을 9번이나 방문했다는 살바토르 회장은 “다시 찾은 대한민국은 반짝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0년 방문 당시 동료 참전용사가 서울의 야경을 보고 “맨해튼과 다를 게 없지 않냐”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국에 갈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그는 “전쟁 당시 움츠렸던 대한민국은 이제 두려운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전했다. 아직도 생생한 전쟁의 기억 때문에 침대에서 잠을 이루기 힘들어 소파를 찾는다는 살바토르 회장. 마지막으로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전을 기억해달라”고. 그리고 “우리의 희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잊지 말아달라고”. 글·사진=윤지혜 기자전쟁 악몽 한국전 참전용사들 전쟁 기록 전쟁 지위
2024.06.24.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