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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50년 전 카메룬 누빈 포니

Los Angeles

2025.11.23 17:00 2025.11.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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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0월 29일자 ‘포니 신화 50년’ 기사를 읽고, 오래전 포니차와 함께했던 추억이 문득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1977년, 나는 첫 해외공관 발령지로 아프리카 카메룬에 부임했다. 마침 현대자동차가 첫 해외 수출 모델로 포니를 내놓던 시기였다.  
 
외교관으로서 “현지에서 우리나라 차를 더 많이 팔아보자”는 각오를 세우고 4000달러에 포니 한 대를 구입해 선편으로 카메룬까지 보냈다.
 
한 달 만에 도착한 차를 보니 당시로서는 정말 잘 만들어진 차였다. 후드를 열어보니 주요 부품 곳곳에 ‘Made in Japan’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실제 운행을 해보니 사소한 결함도 발견됐다. 오른쪽 깜빡이를 켜면 왼쪽이 들어오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경적이 울리는 식의 작은 문제들이었다. 엑셀을 끝까지 밟아도 70km(44마일) 이상 속도가 나지 않는 점도 특이했다. 그래도 카메룬에는 고속도로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포니를 현지에 본격적으로 소개해보자는 마음으로 현지인 에이전트를 고용해 최초로 50대를 수입했다. 대당 5000달러로 가격을 책정해 판매를 시작했지만, 한국 차에 대한 인지도가 전무하다 보니 초기 반응은 미미했다.
 
그러던 중 포니의 운명을 바꾼 일이 벌어졌다. 어느 로터리에서 벤츠와 포니가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명성이 자자한 벤츠는 크게 부서진 반면 포니는 거의 손상 없이 도로 한가운데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사실은 이 나라의 열악한 견인 시스템 때문에 하루 종일 방치된 것뿐이었지만, 이를 지켜본 주민들은 “저렇게 멀쩡한 차가 어느 나라 제품이냐”며 감탄했고, 그렇게 포니는 입소문을 타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이후 수입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일도 있다. 어느 날 북한의 박성철 부주석이 카메룬을 방문했다. 나는 특성상 그의 도착과 동선을 파악해 서울에 보고해야 했기에 체류 기간 내내 그의 움직임을 쫓아다녔다. 마침 같은 시기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출장차 카메룬에 와 있었는데, 박성철 일행과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박성철이 엘리베이터에서 한국 직원들을 발견하고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 ‘말 그린 차’를 몰고 우리 뒤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아느냐.”
 
그 당시의 현대차는 지금과는 달리 앞 그릴과 뒷면에 말 모양의 로고를 붙였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포니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자 신화가 됐다.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포니와 함께 뛰었던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박대원 / LA거주·전 외교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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