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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85세 노인의 인터넷 잔혹사

Los Angeles

2025.07.0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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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루카스 지역 아파트에 15년간 거주하며 전화와 인터넷은 줄곧 AT&T를 이용해왔다. 그러던 지난 4월8일, 갑작스러운 인터넷 불통 사태가 발생했다. AT&T에 문의하자 구리선 절도범들이 전선을 끊어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문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로 닥치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강 선진국인 미국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AT&T는 새로운 구리선 설치와 복구 작업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4월 20일에나 개통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은행 업무부터 관공서 일까지 모두 인터넷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2주 가까이 인터넷이 끊긴다는 말에 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앞집에 부탁하여 스펙트럼(Spectrum) 인터넷을 잠시 빌려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T&T의 약속은 번번이 어겨졌다. 4월20일 개통 예정일은 5월10일로 연기됐다. 5월에도 한두 번 더 연기가 거듭되면서, 결국 인터넷은 두 달간 ‘먹통’ 신세가 되었다. 더 이상 앞집에 미안해서 인터넷을 빌려 쓸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5월20일 서울에서 온 손녀가 스마트폰 개인용 핫스팟으로 노트북을 연결하는 법을 알려주어 잠시나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비디오나 유튜브는 데이터 소모가 커서 길게 쓸 수 없었다. 서울 같았으면 금방 해결될 일이 두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라니, 고통스럽고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6월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젊은 사람이라면 진작 해결했을 일이지만, 85세 노인에게는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 다행히 친구의 조언을 받아 AT&T 윌셔 매장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ALL-Fi gateway라는 새로운 인터넷 연결 방식을 알게 되었다. 비록 좀 더 비쌌지만, 이를 설치하자 드디어 인터넷이 개통되었다!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계정은 계약 기간이 없어, 예전 인터넷이 복구되면 즉시 해약하고 장비는 반품하면 된다고 안내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달 27일, 아파트 앞에 통신사 차량이 와서 배선 공사를 하는 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기술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3개월에 걸친 길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오늘 아침, 장비를 반납하고 계정을 폐쇄하는 기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3개월은 인터넷 ‘먹통’ 잔혹사 그 자체였다.

김영훈·샌루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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