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식업계에서 미쉐린 가이드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작년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통해 미쉐린 출신 셰프들의 실력이 조명받으면서 미쉐린이라는 브랜드의 권위와 영향력을 대중들도 실감하게 됐다.
[오레노라멘 대표 메뉴 카라빠이탄 라멘]
미쉐린 스타가 파인다이닝 최고급 식당에 부여되는 최고의 영예라면, 미쉐린 빕 구르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주어지는 인증이다. 서울의 경우 4만5천원 이하의 가격대가 기준이다. 하지만 실제로 7년 연속 미쉐린 빕 구르망에 선정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매년 재심사가 이뤄질뿐더러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 방식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2019년 미쉐린 빕 구르망에 선정된 61개 식당 중 2025년까지 연속 선정을 유지한 곳은 32곳에 불과한데, 이 중에서도 라멘 전문점으로서는 유일하게 7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바로 합정동에 본점을 둔 ‘오레노라멘’이다. 지난 8월 이전 개원을 했는데 단순히 일본 라멘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과학적 분석과 체계적 운영으로 독자적인 경쟁력을 구축한 사례로, 한국 라멘 시장의 성숙도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식자재 전문가들은 오레노라멘의 성공 요인을 ‘식품공학적 접근법’에서 찾는다. 한국식자재연구소 김왕민 소장은 “신동우 오너셰프는 식품공학적 지식을 정교하게 적용해 라멘을 만든다. 닭고기를 기본으로 육수를 만들고 핸드 믹서기로 거품을 내는 방식으로, 육수 속 지방이 공기를 머금고 미세한 거품으로 변하면서 입과 혀에 닿는 식감이 좋아질 뿐 아니라 맛도 훨씬 풍성하고 고급스러워진다”고 설명하며 그 부분을 국내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에 등장한 라멘집이 된 비결로 꼽았다.
27년차 라멘 경력을 가진 오레노라멘의 신동우 오너셰프는 일본 도쿄의 조리학교를 졸업한 후 현지 외식업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일본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라멘을 개발해냈다는 평가다.
2017년 합정동 열 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한 오레노라멘은 현재 합정 본점을 비롯해 강남, 인사동, 송파, 은평, 롯데월드점까지 총 6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 직영점이다. 외식업계에서 빠른 확장을 위해 가맹점 사업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오레노라멘이 직영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맛과 서비스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여러 직영점에서 동일한 맛을 유지하기 위한 오레노라멘의 시스템은 외식업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면은 일본에서 직접 들여온 제면기로 매일 뽑아 하루 숙성한 것을 사용하고, 야채는 매일 새벽 가락시장 경매를 통해 수급한다. 매장에 게시된 원산지 표기를 보면 돼지고기, 닭고기, 배추와 쌀 등 주요 재료는 모두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한다. 매일 아침 첫 음식의 맛은 직원들이 테스팅해서 공유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위생과 청결 관리도 체계적이다. 새벽 외주 청소업체의 청소 외에도 매일 저녁 영업 종료 후 매장별 정리정돈을 철저히 한다. 가스불 사용을 최소화하고 대부분 전기를 사용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도 특징이다.
외식 업계 관계자들은 “라멘집을 창업하려면 여기서 일을 배워야 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운영 시스템이 체계적”이라고 평가한다. 오레노라멘 측에서는 “매장에서 트레이닝을 받아 창업을 한 청년이 10명 이상”이라며, “상권 선택부터 인테리어까지 창업을 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업계 전반의 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오레노라멘 잠실롯데월드몰점을 찾은 고객들이 매장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로컬에서 글로벌로, K-푸드의 새로운 가능성
미쉐린 7년 연속 선정뿐 아니라 월 450만 페이지뷰를 기록하는 싱가포르 음식 리뷰 사이트 DanielFoodDiary.com와 전 세계인이 이용하는 여행 플래너 앱 원더로그닷컴 등에도 소개되면서 해외에서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카카오맵이 발표한 2024년 ‘트렌드 랭킹’에서 서울 맛집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업체의 성공을 넘어, 한국 외식업계의 품질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오레노라멘의 성공은 한국 라멘 시장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과거 일본 음식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과학적 분석과 체계적 운영을 통해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며 ‘K-라멘’ 트렌드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성공 사례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기 수익에 급급한 확장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품질 관리와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레노라멘의 7년 연속 미쉐린 선정은 한국 외식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빠른 확장보다는 지속가능한 품질, 단순한 모방보다는 창의적 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