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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등록은 깨끗하게, 진입은 가격으로

Los Angeles

2025.09.2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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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재 사회부 기자

정윤재 사회부 기자

H-1B는 본래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특수 전문직을 일정 기간 보완하려 만든 비자다. 지난 19일 발표한 백악관의 ‘특정 비이민 노동자 입국 제한’ 포고령은 이 취지를 현실에 맞게 정렬하기 시작했다.
 
지난 21일 이후 접수되는 신규 H-1B 고용 청원서(I-129)에는 10만 달러 납부가 연계되고, 미납이면 비자가 나와도 입국 단계에서 제한된다. 대상은 신규 접수분으로 한정되며 기존 보유자·9월 21일 이전 접수분·갱신·여행·재입국은 제외된다. 운용은 12개월 한시, 국가이익 예외는 케이스별 적용이 가능하다. 닫는 조치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책임을 지고 들어올지를 앞단에서 가려내는 설계다.
 
이미 등록 단계의 선필터는 수치로 확인됐다. 2026 회계연도 전자등록에서 수혜자를 개인 단위로 묶고 여권 정보를 확인하자 유효 등록이 전년 47만342건에서 34만3981건으로 26.9% 줄었고, 1인당 평균 등록 수는 1.01까지 내려갔다.
 
그럼에도 일반 6만5000·석사 2만 쿼터는 지난 7월 18일 전량 소진됐다. 수요는 살아 있고, 중복과 허수만 빠졌다는 뜻이다. 여기에 21일부터 입국 단계의 10만 달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가격 신호는 ‘싼값에 많이’ 넣는 대량 신청의 계산을 앞단에서 바꾸고, 실제 가치가 분명한 자리만 추첨장까지 들어오게 만드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추첨은 남되, 추첨장 입장은 먼저 엄선되는 구조로 방향이 바뀌는 중이다.
 
이 흐름은 제도 설계와도 맞물린다. H-1B를 쓰려면 고용주는 노동조건신청서(LCA)로 직무·임금·근무지·기간을 신고·공개하고, 회사 내부 실제임금과 지역 통상임금 가운데 더 높은 금액을 최저선으로 지급해야 한다. 파업·직장폐쇄 중 대체 투입 금지와 회사 사유의 비생산 시간 임금 지급 의무까지 붙어 있어 “미국인 연봉 12만 달러 자리에 H-1B 7만 달러”식 임금 덤핑은 애초 계산이 잘 맞지 않는다.
 
이번 변화는 이 기본 구조에 입구의 비용 필터를 한 겹 더 얹어, 많이 넣는 복권 게임을 제값을 치르는 커밋 게임으로 바꾸는 단계다.
 
여기에 포고령 제4조가 다음 수순을 분명히 걸어뒀다. 노동부에는 통상임금 수준을 재조정하는 규정 개시를, 국토안보부에는 고임금·고숙련에 우선순위를 두는 선발 기준 마련을 각각 지시했다. 등록을 깨끗하게 하고, 진입을 가격으로 확인하며, 기준을 규정으로 고정하는 삼중 여과가 제도 안에 자리 잡도록 설계한 것이다.
 
단기 파장도 있다. 초기·영세 기업에는 체감 비용이 커질 수 있고, 일부 직무·지역에서는 구인 비용과 채용 리드타임이 늘 수 있다. 전환기에는 행정 안내와 심사 기준이 현장에 퍼지는 동안 일시적 혼선도 가능하다.
 
다만 이번 조치는 신규 접수분으로 한정되고 12개월 한시이며, 전략 분야·핵심 인력에는 국가이익 예외가 열려 있다. 축은 ‘채용을 막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책임을 지고 들어오느냐’로 옮겨가는 중이다.
 
평가는 데이터로 하자. 10만 달러 납부는 9월 21일 이후 접수분부터 본격 작동했으니, 효과의 본무대는 2026 회계연도 말과 2027 회계연도 초에 드러난다. 그때 우리는 등록·추첨의 중복 축소 폭, 승인 분포에서의 고숙련 유지와 중소 스폰서 진입률, 임금·선발 기준 개정 이후의 실제 임금 분포 변화를 보면 된다.
 
지금까지의 사실만 놓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간단하다. 제도는 문을 닫지 않았다. 추첨장에 아무나 들어오던 길을 정리했고, 끝까지 책임을 지는 쪽만 남게 만드는 길로 조용하지만 뚜렷하게 방향을 틀었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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