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한국을 적국으로 규정하며 평화통일을 포기하는 대남 정책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요청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북한은 이미 지난 2023년 말 ‘남북이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니’라고 규정하며 ‘적대적 두 국가론’을 꺼낸 바 있는데, 이번에 이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외교 공세를 강화한 것이다.
한편, 이에 대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한은 이미 사실상의 두 국가”라며, “국민 다수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성을 인정하는 게 영구 분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며, 이른바 ‘평화적 두 국가론’을 강조했다.
‘두 국가’라니? 통일의 꿈은 이렇게 자꾸만 멀어져만 가는 건가?
‘삼팔따라지’의 후손인 나는 통일이라는 낱말을 대하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나라가 반 동강 난지 어느새 75주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로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남북 간에는 종전선언도 없는 현실이니 계속 전쟁상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새 정부 들어서서, 다각적으로 대화 재개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에 일단 기대를 걸어본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현실을 마주하면 맥이 빠진다.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너무 빠르게, 많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2024 통일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35%를 기록했다고 한다. 국민 3명 중 1명이 북한과 통일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것이다.
특히, 2030세대는 절반 가까이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0대 응답자 47.4%는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고, 22.4%만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고 한다.
통일 불가론도 20대 45.1%, 30대 43.1%로 다른 세대보다 높았다.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에 부정적이라는 이야기다. “6.25를 모른척하며 산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 △통일 이후 생겨날 사회적 문제 △남북 간 정치체제 차이 등이었다.
이런 통계수치를 보고 있노라면 울컥 서글퍼진다. 통일이 이렇게 타산적으로 따질 일인가? 반드시 이루어야만 할 민족의 절체절명의 과제 아닌가?
되돌아보면 그동안 우리는 통일을 위해 참으로 많은 시도를 되풀이해 왔다.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선언문 발표도 여러 차례 있었고,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같은 파격적인 시도도 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세계를 울렸고, 그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남과 북의 공연단 상호방문 공연은 상당히 많았고, 올림픽 남북단일팀 참가까지…. 해볼 만한 일은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이제부터 새로운 기발한 일을 꾸미려 애쓰기보다 지난날 했던 일들 중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지금 현실에 맞게 다듬어서 다시 시도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너무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일부터 소박하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령,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에서 연주한 ‘아리랑 변주곡’, 윤이상 선생이 제안했던 남북 합동교향악단의 판문점 공연 같은 것.
나는 개인적으로 신영복 교수의 통일론에 공감한다. 선생께서는 “정치적 통일(統一)이 아니라 평화 정착과 교류협력을 통해 남과 북이 폭넓게 소통하고 함께 변화하는 화화(和化)로서의 통일(通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겨레의 뜻과 마음이 하나로 통(通)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한민족만의 과제가 아니라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