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는 “역사는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고,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가들이 말했듯,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하고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거울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감독 김덕영)’는 우리가 외면해 온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이 나라를 세웠는가?” “그 위에서 누가 피와 눈물을 흘렸는가?”
영화 속 장면들은 충돌과 혼란, 배신과 살육으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현재 한국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정의의 문제를 끄집어냈다. 우리는 아직도 ‘건국’이라는 단어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건국 역사를 특정 이념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에 따라 왜곡될 수 있고, 해석하는 자에 따라 기억이 달라질 수 있다. ‘건국전쟁 2’는 이런 왜곡과 침묵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영화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의 혼란기를 조명했다. 이는 단순히 좌우 대립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세우려는 세력과 공산주의 혁명을 꾀한 남로당 세력 간의 치열한 ‘건국전쟁’이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민주화’와 ‘반독재’라는 이름 아래 해방 공간을 단선적으로만 기억해왔다. 좌익 활동의 실체에 대해 말하면 ‘색깔론’이라며 입을 막았고, ‘반공’을 언급하면 낡은 시대의 유물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이념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었다. 제주 4.3 사건과 여순사건은 아픔의 역사지만, 그 배후에 있었던 조직적인 무장봉기와 폭력 또한 분명히 기록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진압하려 했던 국가와 지도자들의 판단 또한, 이해와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영화의 한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졌다. 좌익 세력이 경찰서를 장악하고 인공기를 내걸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그들의 자유를 보장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건국을 위해 단호히 제어했어야 했을까. 이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역사 교과서가 진실을 온전히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국전쟁 2’는 좌익 활동의 실체와 그 상처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당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깊은 분열과 갈등을 겪었는지 알게 했다. 이 영화는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을 재조명하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내렸던 어려운 결정들을 조명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권력 남용과 정치적 갈등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료 중심의 해설, 미국과 소련의 비밀문서, 생존자 증언을 바탕으로 충실한 기록을 제시했다.
영화 관람 후 느낄 수 있는 불편함,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적 반발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역사이다. 사료 해석은 논쟁적일 수 있고, 감독의 시선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자체가 이미 의미가 있다.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가 말했듯, “역사는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