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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후회로 남은 유품 정리

Los Angeles

2025.10.05 19:00 2025.10.0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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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섭 / 동서장례 대표

이효섭 / 동서장례 대표

사촌 동생이 “다 쓰레기들 이네(They are all Garbages)”라고 하는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러 앉았다. 그리고 10여 전 전 내가 한 행동들이 어제일 인양 눈앞에 펼쳐졌다. 후회의 아픔이 밀려왔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정리할 걸….
 
우리 집안의 요셉과 같은 분인 숙부님과 숙모님의께서 지난 몇 년 동안 집과 양로시설과 병원을 오가시며 살아가고 계신다.
 
이제 때가 되었는지 자식들이 부모님을 가까이서 돌보겠다고 모시고 간다. 아들 둘이 숙부님 집에 와서 이사 준비를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실 때 당신들께서 짐을 줄이고 줄였는데 이제 자식들이 부모의 거주지를 옮기고 있다. 그 살림살이를 보며 사촌동생이 한 말이 “They are all garbages”였다.
 
13년 전 부모님이 7주 간격을 두고 사이좋게 귀향하셨다. 텅 빈 집을 정리해야 했다. 며칠 동안 큰 박스를 옆에 두고 부모님의 흔적들을 쓰레기처럼 던져 넣었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받은 모범직장인 상패도 있었고 매일 생활을 기록한 손때 묻은 수첩도 있었다. 한국에서 평생을 교직원으로 살아오신 어른의 미국 첫 직장은 맥도날드 밤 청소였다. 영업시간이 끝난 후 밤 11시부터 이튿날 아침 7시까지 혼자서 청소하셨다.  
 
곧은 성격에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정리한 것이 보스에게 전달되어 ‘Employee of the month’, 이달의 종업원으로 선정되어 작은 선물과 상패를 받으셨다.  
 
사실 그 상패는 이민생활을 시작할 때 낮과 밤을 바꾸어 살아온 아버지의 존재와 생활의 증거였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 버렸던 그 상패가 내 가슴에 남아 생각만 하면 아버지 모습과 겹쳐져 가슴이 꽉 메인다.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하며 정리했어야 했는데….
 
숙부님은 6.25의 화약 냄새가 없어지기 전 유학을 오셨다. 첩첩산중에서 태어나 대구라는 도시로 중학교 유학을 가고 대학은 미국으로 이어졌다.  
 
유학시절의 미국 생활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흑인 전용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요구를 받기도 하였으니 지금 이민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나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행이 숙부님을 후원하신 닥터 밀러라는 분은 영향력이 있어 한국인으로는 처음 법대에 입학하도록 도와 주셨고 이후 뉴욕 변호사가 되었다.  
 
대법관 고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의 고문이 되기도 하셨다. 그래서 작은집에는 공로패들과 프레임 되어있는 증서들이 많다.
 
한 생을 마감하며 살아온 자취들이 남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촌 동생의 말 “They are all garbages”라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맥도날드 식당의 모범 종업원 상패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다면 아버지가 그립고 추모할 때에, 그리고 자식들에게 할아버지 얘기를 전해줄 때 귀한 유품이 될 텐데 버린 것이 참으로 후회스럽고 아쉽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무교병을 먹는다. 그들은 4000년 전 조상의 출애굽과 어려웠던 삶을 오늘도 잊지 않으려고 맛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는다고 한다. 역사를 알고 기억하는 것이 오늘을 살고 내일을 계획하는 추진력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 집안의 어른이시고 우리 가족 모두가 이 미국에 살도록 이끌어 주신 숙부님이 저물어 가신다. 남기고 가는 증거들은 대체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이다.
 
쓰레기는 절대 아닐 터다. 사촌 아우들이 내가 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효섭 / 동서장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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