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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내게 로스엔젤레스는

Los Angeles

2025.10.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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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실 / 수필가

김현실 / 수필가

제2의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LA라 말한다. 60평생 이곳에서 제일 오래 살았다. 정확히 35년을 거의 같은 지역에서 뱅뱅 돌았다. 내 반평생 넘는 세월이다.
 
그런데 아무리 오래 살아도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주는 깊이를 제2의 고향이 대신 해주진 못한다. 더 좋은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났고 풍요로운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 맘이 맹숭맹숭한 건 뭔지 모르겠다. ‘제2’란 말이 주는 차선의 이미지 때문일까.
 
이곳에선 저절로 얻어지는 게 없다. 정을 쌓아가는 데도 힘써야 한다. 집안에서 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니 해찰할 일도 없고 스치는 인연도 없다. 너무나도 깔끔한 사람 사귐이 재미없다. 이리저리 얽힌 관계 속에서 사람 노릇 하기 골치 아프다는 한국 친구들의 불만조차 부럽다.
 
언어 문제도 크다. 자연스레 익힌 모국어와 달리 제2 외국어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영어로 치고 들어온 사람한테 스스로 주눅 들어 버린다. 담담한 표정으로 아는 척해보나 어색함이 남는다. 한국에 산다면, 하는 애먼 생각이 올라와 눈길을 먼 곳으로 돌린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이방인이라 여겨진다, 무심히 지나쳐도 아는 말이 들리는 거리를 짝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남가주는 하루 한 번도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곳이기는 하다. 이곳 한인이 타지역 동포들보다 영어가 서툴다는 말을 들었다. 해외에서 남가주에 한인이 제일 많다고 한다. 200만 넘는 미국 이민자 중 60만 정도가 남가주에서 생활하고 있단다. 한인은행과 마켓이 여러 개가 있어 골라 다니며 일을 본다. 한국 생활을 미국제도 안에서 편리하게 하고 있다. 미국 내 여러 지역에서 살아본 내 이웃은 남가주가 살기 제일 좋은 곳이라며 엄지척한다.
 
젊은 날, 미국에서 학위 받으려 공부하는 남편을 뒷바라지 한 친구들은 귀국 후 미주 지역으로 다시 왔다. 형편 따라 이민이 된 친구도 있고 아이들 교육을 위한 기러기 가족으로 산 친구도 있다. 자녀만이라도 미주에서 터 잡아 살기 원했다. 친구보다 남편들의 열망이 컸다. 한국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친구들은 이곳 사는 나를 부러워하지만 나는 돌아갈 곳 따로 있는 손님 같기만 하니 어인 일인지 모르겠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면 그들은 손사래를 친다. 어디서 사나 마찬가지란다. 가족과 친지 문제로 힘든 것은 이곳 사는 사람들 생각 이상으로 크단다. 당일치기 교외 나들이라도 해야 숨통이 트인단다. 낀 세대인 우리 나이가 문제라며 화살을 세월 탓으로 돌렸다. 한결 맘이 가벼워졌다.
 
우리는 모두 제2의 고향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고향에서 삶이 시작됐고 제2의 고향에서는 현재를 살아내야 한다. 나는 제2의 고향 LA 땅에 발을 굳건히 딛고 있다. 이왕이면 잘 살아야겠다.

김현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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