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가을, 10월의 하늘은 분명히 맑고 높았다. 그러나 그 푸른 가을빛은 전쟁의 비극과 함께 한국인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인천상륙작전의 대승리로 서울을 되찾고, 북진의 발걸음이 평양을 넘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온 겨레의 가슴은 마치 통일의 문턱에 선 듯 벅찬 희망으로 차올랐다. 드디어 분단의 아픔을 끝내고 하나 된 조국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그러나 바로 그때,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한국인의 가슴에 천추의 한을 새겼다. 수십만의 병력이 물결처럼 밀려 내려와 압록강변의 전황을 뒤바꾸었고, 마침내 국토통일의 꿈은 눈앞에서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UN군과 한국군은 피할 수 없는 후퇴를 거듭했고, 낙동강 방어선에서부터 기적처럼 되찾은 국토의 절반이 다시 전장의 불길 속에 휩싸였다. 그 후 이 땅의 분단은 굳어졌고, 남과 북의 철책선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가슴에 깊은 못을 박아놓았다.
참전한 노병은 아직도 그날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한참 북쪽까지 전진했던 부대가 후퇴를 거듭하며 다시 그 끔찍한 낙동강의 그림자를 떠올려야 했을 때, 가슴 속 깊이 치미는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겨레가 하나 되는 순간이 눈앞에 있었지만, 통일은 한 줌의 연기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10월의 한’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중공군의 참전은 단순한 전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겨레의 운명을 뒤흔들어 오늘까지 이어지는 분단의 근원을 굳건히 만들고 말았다. 그날의 후퇴는 전쟁에서의 물러섬이었을 뿐 아니라, 통일의 문 앞에서 무너져 내린 민족적 좌절이었다. 천년을 우리 조상에 몹쓸 짓으로 괴롭혀 온 이웃나라의 한 맺힌 악행의 역사가 되새겨지는 기억이다.
75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좌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와 번영이 얼마나 값진 대가 위에 세워졌는지 깊이 깨달아야 한다.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토와 민족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장에 몸을 던졌고, 이름 모를 고지마다 그들의 피와 땀이 스며들었다. 그 희생은 비록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남았지만, 자유 대한민국의 기틀을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가 되었다.
10월의 역사가 남긴 교훈의 하나는 평화와 통일은 결코 값없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민족이 다시는 그날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굳건한 안보와 민족적 단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통일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그해의 경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준다. 자유를 지키는 힘이 없을 때, 희망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우리는 그날의 비극을 다시 곱씹으며 새로운 결의를 다져야 한다. 미완의 통일을 이루지 못한 한을 넘어,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자유와 정의 위에서 하나 된 조국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말이다. 1950년 10월, 통일의 꿈은 좌절되었으나, 그때의 교훈은 오늘의 한국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그때 어느 유명 시인은 ‘초토’란 시에서 ‘피 흘리며 누운 자리에/ 잡초가 자라고/ 통곡의 소리조차/ 바람에 묻혀 사라졌다’라고 전쟁이 휩쓸고 간 참상을 묘사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짐해야 한다. 10월의 한을 역사적 교훈으로 새기되, 미래를 향한 희망의 발판으로 삼자. 통일의 길은 멀고도 험하나,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는 한, 한국인은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