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살며 생각하며] 바르셀로나

New York

2025.10.15 17:5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이번 우리 썬플라워 북클럽 가을 여행은 바르셀로나로 시작되었다. 원래는 뮌헨에서 시작하여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같은 알프스 지역, 이탈리아 호수 지대, 중세 도시 등을 방문해 유럽의 자연과 문화를 균형 있게 경험하는 8박 9일짜리 ‘Scenic Europe’ 투어가 계획이었다.  
 
문제는 항공이었다. 뮌헨 왕복이 무려 1200불! 투어가 1599불인데! 억울해 인근 도시들을 알아보다 2016년 까미노를 걸을 때 잠시 들려 늘 아쉬웠던 바르셀로나가 생각났다. Expedia VVIP가 돼서 그런지, 왕복 항공과 5성급 그랜드 하얏트 호텔 5박에 1000불짜리 패키지가 나왔다. “그렇다면 바르셀로나로 갔다가 뮌헨을 가자!” 이렇게 바르셀로나의 5박은 예상치 못한, 그러나 완벽한 덤 같은 선물이 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인문학 투어들을 통해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들뿐 아니라 그의 생애에 푹 잠겨보았다. 그 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La Sagrada Familia)은 140년째 지어지고 있는 그의 걸작이다. 어느 방향에서든 성당의 장엄한 전경이 보인다. 전에 머문 작은 호텔에서도 성당이 바로 눈앞에 보여 아침저녁 바라보곤 했다.  
 
가우디는 자연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보았고, 그 신앙의 눈으로 성당을 설계했다. 아침이면 푸른빛, 오후에는 붉은빛으로 물드는 스테인드글라스 창, 나무줄기처럼 하늘로 솟은 기둥들 속에 서 있으면 성당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이 만드신 숲속에 들어온 듯한 경외감이 밀려왔다. 예수님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세 개의 파사드(외벽)와 탑, 그리고 수많은 조각 속에서, 이 성당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그의 신학적 예술 작품임을 느꼈다.
 
그라시아 거리(Passeig de Gracia)는 바르셀로나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거리다. 가우디의 대표작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가 있고, 보도에는 그가 직접 디자인한 물결무늬 타일이 깔려 있다. 비 오는 날이면 그 위로 흐르는 물이 반짝이며, 바다처럼 일렁이는 도시의 표정을 만든다고 한다. 구엘 공원의 벤치와 기둥 하나하나에서도 그의 섬세함과 유쾌한 상상력이 살아 있었다.
 
마지막 날, 구시가지 고딕 지구의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서 멋진 외관에 홀려 들어간 한 카페는, 짜고 느끼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점심값 때문에 지금도 살짝 화가 난다! 하지만, 몬주익 언덕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의 발자국에 발을 맞추던 순간, 그리고 건물 자체가 예술인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에서 내려다본 스페인 광장의 풍경은 그 모든 걸 잊게 했다.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곳은, 저녁 무렵 찾아간 산 펠립 네리 교회(Sant FelipNeri)였다. 이 작고 고요한 교회는 가우디가 종종 찾아와 기도하던 장소였다. 1926년 6월 7일, 그는 일과였던 저녁 산책 중, 이 교회로 향하던 길에 전차에 치인다. 초라한 옷차림 탓에 사람들은 그가 가우디라는 사실도 모른 채 거지로 오해했고, 제때 치료받지 못한 그는 며칠 뒤인 6월 10일,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겉으로는 외롭고 비참한 죽음처럼 보이지만, 그의 혼과 신앙은 여전히 바르셀로나 곳곳의 건축물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 흠뻑 취했던 날들, 저녁이면 슈퍼에서 사 온 와인과 하몽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이야기에 빠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다음 주, 스위스에서 내게 ‘사랑의 불시착’이 일어날 줄은!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