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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맹추위 속 컵라면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침대 옆 구글 커넥트에게 묻는다. 헤이 구글, 지금 몇 도야? 오늘은 화씨 6도란다! 세상에, 몇 년 따뜻한 겨울을 지내다 보니 이런 숫자는 정말 낯설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 유난히 차가운 것은 날씨만이 아니다. 작년부터 시작되어 점점 심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 전반과 어쩌면 세계적인 긴장과 불안, 그 몰상식과 억울함, 답답함의 한복판에서, 먼 곳이 아니라 내 바로 옆 이웃들의 삶이 흔들리는 장면들을 마주할 때, 마음의 온도까지 한없이 함께 내려가는 요즘이다.     최근 만난 몇몇 클라이언트들은 세션마다 끝내는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신분을 약속받고 도착한 미국 땅에서 사기만 당하고 서류 미비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너무도 주위에 많다. 이후 미국을 모국으로 여기며 긴 세월을 착실하게 세금 내며 이웃까지 도우며 살아온 이들의 삶이, 여지없이 공포 속에 파묻혀가는 요즘의 모습은 너무도 바라보기가 힘이 든다.     신분 문제, 단속 공포,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일상. ICE라는 세 글자는 그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그림자다. 24/7 이민단속관이 뜨는 현장을 보고해주는 앱을 들여다보며 “오늘은 괜찮을까?”라고 물으며 살아가는 그들을 위로할 말이 없어 난 그저 말을 잃고 만다.     그런데 요즘, 작고 조용한 온기가 스며들고 있다. 북클럽 멤버 한 분이 히스패닉 이웃들을 위해 컵라면과 삶은 계란을 준비하여 나누어주고 있다. 홍보도, 사진도, 거창한 선언도 없이, 단지 “오늘은 이들에게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 혼자 맹추위로 얼어붙은 거리로 나갔다. 숨어있던 남미 친구들은 주변을 살피며 나와 자신들의 아미고(친구) 것까지 받아가더란다!   그 이야기가 북클럽 단톡방에 올려지자, 다른 회원들이 기증하는 각종 컵라면과 스낵들이 그분의 뒷마당 테이블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흰 눈더미를 배경으로 쌓여가는 이 물품들은, 배고픔 앞에서, 두려움 앞에서, 인간은 결국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듯 조용히 놓여 있었다.   “차 히터가 꼭짓점을 찍는데도 장갑 낀 손가락 끝은 날카로운 냉기로 뻣뻣해졌습니다. ‘한명이라도 걸려봐라. 박스를 안겨주마’ 팰팍 고객을 향해 한명의 확률을 걸고 출발했습니다. 지난번 만났던 페이퍼 있다는 고객이 다가왔습니다. 대뜸 묻는 게치킨 수프였습니다. 한 냄비 끓여다 냄비째 안겨주었던 그 메뉴가 제법 그들의 입맛에맞아떨어졌나 봐요. 라면과 커피 스낵을 라면 박스 반 개 덜어내고 담아주었습니다.   잇달아 나타난 3명에게 라면몇 개? 물어보자 5개라고 했어요. 넉넉히 담아주었습니다. 지난번 카페로 치킨 수프 냄비 들려 보내고비워달라 했는데 그 카페 여자 두 명이 튀어나왔어요. 방긋 웃으며 라면 3개 달라고 다가오는데 제겐 블랙핑크 멤버였던 제니로 보였습니다. 통통 빵빵한 제니로요. 활짝 웃으며 ‘그라샤’ 한 다발 선물 받았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런 횡재도 하네요.   오늘 아침 그 회원님으로부터 받은 문자다. 라면 한 그릇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삶은 계란 하나, 치킨 수프 한 그릇으로 불안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분명히 사람의 몸과 마음을 조금은 풀어준다. 그리고 그 ‘조금’이 모여 그들의 불안한 하루를 견디게 할 것이다.     차가운 계절 속에서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치킨 수프를 끓이고 라면을 나눈다. 그 두 장면 사이 어딘가에서, 그래도 아직 이 사회에 온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숨을 고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맹추위 컵라면 각종 컵라면 치킨 수프 북클럽 멤버

2026.02.04. 22:01

[살며 생각하며] 이건희 컬렉션 전시, 예상치 못한 반전

오후 나절에 도착한 워싱턴DC는 예상외로 포근한 날씨였다. 스미스소니언 아시안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을 보러 왔다. 삼성가에서 3대를 걸쳐 모은 작품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미술관 입구는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고 조용했다. 수도라서 그런지 입장료는 무료였다. 장엄한 건물의 층계를 내려가니 전시장의 입구가 보였다. 입구에서 받은 첫인상은 여느 한국 미술품 전시와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그간 내가 다녀본 경험에 의하면, 미술관마다 한국 작품을 어느 정도 소장하고는 있다. 아시아관에 들어가면 근엄한 황동 불상이 나를 내려다본다. 위엄스러운 양반 사이를 걸어 다니다 보면, 얼어붙은 폭포 앞이거나, 달밤에 시를 읊었다는 강가에 도달한다. 어두운 조명 탓인지 나 같은 초보 눈에는 동양화들이 구별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이건희 컬렉션 전시는 입구부터 달랐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그림이 현대풍의 미인도라니. 벽 한 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그림이다. 젊은 여자가 반 묶음 단발머리에 빨간 원피스를 입었다. 초점이 분명한 응시를 보내고 있다. 옆 테이블에 흰 백자가 놓여있다. 강렬한 빨간 옷과 은은한 달항아리가 대비를 이룬다. K-컬처로 이름을 떨치는 시점에서 순회전을 떠날 전시 첫 그림이 여자였다. 이 전시는 워싱턴, 시카고에 이어 런던으로 간다고 한다. 한국 미술 하면 으레 수묵화가 떠올랐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여인의 좌상 옆에 김환기 화백이 그린 추상화가 걸려있다. 미인도와 맞먹는 커다란 사이즈다. 벽돌색 직사각형 위에 미색의 원이 놓여있다. 원은 조선의 백자처럼 보인다. 청색 하늘은 여러 면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충 그은 듯한 선에서 무심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두 번째 방으로 갔다. 정선, 신윤복, 김홍도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18세기 그림으로 국보급 미술품이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구석에 걸린 자그만 그림이었다. 딱 봐도 붓질이 날아갈 듯 성글게 보였다. 인상파 화풍이라니. 도상봉 화가가 그린 1953년 작품이 왜 전통화와 같이 걸렸을까?     기와를 얹은 성균관 후원을 배경으로 은행나무가 정면에 있다. 400년이 넘은 나무의 밑둥치 위에 무성한 노란 잎이 그림 전체를 차지한다. 그런데 한 쪽 끝에 보일 듯 말 듯 모녀가 서 있다. 간단한 선으로 처리된 흰색 한복 차림의 모녀는 왜 저기 서 있을까?   글공부하고 싶어 하는 딸의 손목을 잡고 성균관을 쳐다보는 어머니? 역적으로 몰려 죽은 아버지와 오빠가 공부하던 곳? 숨은 서사를 떠올리며 나는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20세기 작품이지만 주제는 분명히 18세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것 역시 반전이었다.   김인승, 김환기, 도상봉 화백은 일제 강점기에 성장했다. 당시 일본에서 가르쳤던 유럽풍을 알고 있었던 일 세 대 서양화가들이다. 주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달항아리, 성균관 등에서 정체성이 보인다. 또한 전통화에 드물게 보이던 여자를 등장시켰다. 가부장 사회에서 베일에 가려진 채로 살았던 여성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점이다. 전 세계 문화 사절이 모여있는 미국의 수도에서 한국 미술품 전시를 서양화로 시작했고, 서양화를 군데군데 섞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시를 보고 나왔다. 아시아 갤러리를 나오니 바로 옆에 현대 미술관과 조각 공원이 있다. 한두 블록을 걸어가니 인디언 미술관이 있다. 어도비 벽돌로 지은 요새가 연상되었다. 전 세계의 미술관이 워싱턴의 나지막한 하늘 아래 거대한 블록을 차지하고 있다. 도심 가운데 공원에는 아이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뛰고 있다. 차가운 대기 속에서도 멀리서 꿈틀거리는 훈풍이 느껴졌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이건희 컬렉션 현대 미술관 한국 미술품 이번 컬렉션

2026.01.27. 18:08

[살며 생각하며] 우리 아이 마음에도 길이 있다

2011년 봄, 돋보기가 필요한 늦은 나이에 나는 고등학교 교사에서 다시 학생이 되었다. 남편이 떠나버린 휑한 세상에서 내게 찾아온 우울증이란 낯선 손님, 그것을 극복하고자 시작한 대학원 공부는 2014년부터, 내게 심리치료사라는 뜻밖의 인생 이막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그동안 많은 아이와 부모들을 만났다.     상담 초기, 네 살부터 고등학생까지 아이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시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깨달음을 주었다.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결국 부모의 그림자와도 같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상담 결과는 부모의 태도와 노력이 얼마나 함께하는지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화분에 심긴 작은 화초 같았다. 적극적으로 아이들 치료에 임하는 부모의 햇볕 같은 웃음과 칭찬, 물 같은 격려와 애정이 부어졌을 때, 시들어가던 아이들이 다시 살아났다. 싱그럽게 피어났다. 결국 아이들을 다시 살려낸 힘은 부모의 사랑과 헌신이었다.     반면, “이 아이 좀 고쳐주세요(Fix my child)!”라며 아이만 문제 삼는 부모들,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화를 내고, 상담 자리에서도 변명에만 몰두하는 부모들은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아이의 고통이 그저 불편한 사건, 혹은 창피한 일일 뿐인 부모 밑에서 아이의 마음은 더 깊이 병들어갔다.   정신건강 문제 절반 이상이 14세 이전에 시작되고, 4분의 3이 24세 이전에 발생한다. 이 시기 부모가 아이의 마음 길을 살피고, 도와달라는 신호를 놓치지 않고 반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팬데믹 이후 아이들은 더욱 힘들어졌다. 상담을 찾는 아이들은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치료사들의 대기 명단은 여전히 길기만 하다.   한국 방문 시 만난 엄마들의 “우리도 힘들어요. 위로가 필요해요. 길잡이가 필요해요”란 고백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상담 현장에서의 경험과 강의 내용을 엮어, 부모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이 마음에도 길이 있다’라는 책이 이번에 나오게 되었다.   3년 전 나의 칼럼 모음집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과 달리, 이 책은 산고를 겪어야 했다. 주제부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라는 초경쟁 시스템에서 참으로 어렵게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한국 부모들의 엄청난 불안, 그리고 소수민족으로서 자녀들을 주류사회에 진출시키려는 해외 한인 부모들의 절실한 압박감이, 내게도 아주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느 곳에서건 부모로, 아이로, 우리 모두가 힘들게 살아낸, 그리고 지금도 겪어내고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심리치료사지만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나의 멘탈고백기이면서, 어쩌다 어른이 되고, 어쩌다 부모가 된 우리 모두의 좌충우돌 자녀 양육 실패기 혹은 성공기이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눈물 나게 감사한 회복기, 혹은 안타까운 좌절의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통해 부모님들이 아이 마음에 난 작은 길들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서툴고 흔들리지만 성장이라는 길 위에서 아이들이 보내는 외침을 더 선명하게 듣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힘들어진 그 길에서, 두려움이나 조급함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으로 함께 아이 손을 잡고 걸어주시길 소망한다.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여정에, 이 책이 작은 등불로 쓰이길 소원하며 새해를 연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마음 길이 한국 부모들 아이 마음 시기 부모

2026.01.21. 22:10

[살며 생각하며] 세 가지 안 하는 2026

새해가 주어진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오토파일럿 모드로 그날그날 흘러가던 일상에 하나의 획을 긋고, 무언가 새롭게 다짐할 이유와 시간을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해가 깊어지며 그 결심은 희미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는 출발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다. 2026년 첫 아침, 나는 올해 무엇을 더 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할까를 생각해본다.   첫째, 게으르지 말기로 다짐한다. 대부분이 은퇴하거나 삶의 속도를 늦출 수도 있는 나이에, 나는 매주 한 시간 반짜리 영어 북클럽 네 개를 인도하고, 주 평균 15~20시간의 상담과 부모코칭을 이어가며 분주하게 살아간다. 겉으로 보면 매우 부지런한 삶처럼 보인다. 그렇게 바쁘게 살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의지박약한 나는 일정 사이사이놀랄 만큼 게으른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감정 노동을 많이 하니까 셀프 케어를잘해야 해, 잘 쉬어줘야 해, 이런 핑계로 넷플릭스 앞에서 참 많은 시간이 잘도 술술 흘러간다. 가끔 수도쿠(SUDOKU)라는 숫자 게임을 온라인에서 하기 시작하면, 가장 어려운 Evil 레벨에서 최고 5% 이내라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숫자와 씨름을 하기도 한다. 아, 마음이 불편해질 만큼의 이런 게으름은 올해부터는 청산하고 싶다. 무감각한 게으름의 시간 대신, 더 지혜롭게 진짜 나를 돌보는 찐 쉼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둘째, 무심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무심하다’는 마음(心)이 없다/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뭔가 감정의 온도가 낮고, 반응이 희미하고, 어떤 일이나 사람에게 관심이나 신경을 거의 두지 않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나는 절대 무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아는 모든 사람의 삶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다. 그런데 짜여진 일정을 바삐 소화하다 보면, 어떤 관계들은 나도 모르게 무심해지기도 한다.   바쁘니 이해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심함을 정당화하는 것은, 순전히 내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다. 그러다 보면 마음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드는 사람들, 이들에게 올해는 좀 덜 무심하고 싶다. 가까운 사람이나 일로 맺어진 관계뿐 아니라, 바쁜 내가 부담될까 봐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올해는 내가 먼저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셋째, 비겁함과 타협하지 않기로 한다. 비겁해지는 것은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두려움의 크기를 실제보다 과장해서 읽을 때, 그래서 용기가 부족해질 때, 우리는 비겁해진다. 자꾸 뒤로 물러나게 된다. 비겁함은 어떤 의미에서 정서적인 게으름이다. 감정 소모와 상처의 가능성이 두려워 핑계 뒤에 숨고 마는 그런 비겁함이 올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두려워 보여도, 직면했을 때 그 뒤에 숨겨져 있을 수 있는 회복을 더 기대하며, 올해는 ‘필요한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를 매사에 적용하고 싶다.   게으름, 무심함, 비겁함,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려는 결심은 아마 실천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자주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길만이 나의 소중한 자산인 시간, 인간관계, 그리고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잘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한 번 결심해본다. 오늘 하루 게으르지는 않았는지,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비겁하지는 않았는지, 열심히 점검하며 2026 한 해를 살아보겠다고! Happy 2026!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게으름 무심함 시간 인간관계 시간 대신

2026.01.07. 22:35

[살며 생각하며] 억만장자의 작별 편지

세계 10위 안에 드는 부자가 구매 당시 시가 3만여불 집에서 67년째 살고 있다. 올해 95세로 매일 아침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먹는다. (앗, 이런 데도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안 좋다고?) 빌 게이츠와 맥도날드에서 먹을 때 할인쿠폰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바로 워런 버핏이다.     매일 최소 500페이지 책이나 보고서를 읽어라. 깨어있는 시간의 80%를 독서를 통한 지식의 복리에 투자하라. (아, 우리 북클럽의 고문으로 모시고 싶다!)     매일 잠들기 전 아침에 일어났을 때보다 조금 더 현명해지라. 이런 명언들을 남겼다.   2025년 끝자락, 그의 한 편지가 나를 오래 붙잡았다. 매년 연말 세계가 주목하는 그의 주주서한이다.     그는 이제 조용히 나갈 것이라며 이 편지가 그의 마지막 연말 편지일 것이라고 했다. 그 편지에서 내게 가장 깊이 다가온 문장은 그가 자신의 성공을 돌아보며 한 말들이었다.     “행운의 여신은 아주 변덕스럽고, 아주 불공평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일평생 쌓아도 못 이룰 부를 가지고 태어나고, 누구는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란 블랙홀에서 태어나거나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전혀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미국이 아닌 인구밀도가 높은 후진국에서 태어났다면, 난 매우 불행하게 살았을 것이다…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1930년 건강하고 비교적 지적인 백인 남성으로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이 고백은 우리를 아주 정직하게 만든다. 지금의 삶을 ‘내가’ 이뤄낸 결과로, 내가 성실했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그는 이전을 묻는다.     만약 똑같은 우리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만약 오늘의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공습경보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지금 나의 삶은 가능했을까. 폭격을 피해 숨어있는 대신 학교에 갈 수 있었던 하루, 피난이 아닌 출근을 고민할 수 있었던 아침, 생존이 아닌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사회, 이것들은 내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며 새해를 맞고 싶다.     편지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자기 삶 후반부가 전반부보다 훨씬 낫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의 실수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조금이라도 배울 것을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발전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고, 주변에서 닮고 싶은 인물들을 골라 닮아가라고 한다.     형이 죽었을 때 실수로 나온 자신의 부고를 신문에서 읽고 새사람이 된 알프레도 노벨처럼, 우리의 부고가 우리를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하게 하고 싶은지, 그런 삶을 살아가라고 권한다. 친절은 공짜지만 그 가치는 무한하다고, 청소부 여자도 회장과 똑같은 인간이라며 그는 편지를 마무리한다.     2025년은 결코 가벼운 해가 아니었다. 세계 곳곳의 전쟁과 고통과 테러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그 속에서 우리가 평범한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2026년을 맞이하며, 먼저 이런 감사의 고백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삶이 얼마나 많은 은혜 위에 놓여 있는지를 기억하며 그에 대한 감사 위에서 시작하는 새해라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복된 출발선에 서 있게 될 것 같다.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면서, 존경스러운 롤모델을 닮아가는 가운데, 매일 누구에게든 친절을 실천하는 2026년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억만장자 작별 작별 편지 편지 마지막 연말 세계

2025.12.30. 17:48

[살며 생각하며] 루스 아사와(Ruth Asawa) 특별전

12월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향했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루스 아사와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서, 어떤 작가인지 궁금했다. 평생을 무명으로 살았던 조각가인데 노년에 루푸스라는 병에 걸렸다. 오랜 투병 생활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자, 그녀의 딸은 크리스티 경매장의 큐레이터에게 편지를 썼다. 집에 있는 제일 값나가는 미술품인 조세프 알버스의 그림을 팔아 달라고 의뢰했다. 그때 편지에 동봉된 루스의 작품 사진을 보고 큐레이터는 눈이 번쩍 띄었다. 루스의 집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2009년 당시 루스는 80세를 막 넘긴 나이였다.     그 이후에 작가는 미국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87세로 생을 마감한 지 십여년 만에모마는 회고전을 기획했다. 특별전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린다. 철사를 꼬아서 만든 그녀의 작품값은 현재 몇백만 불에 이른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집 천장 서까래에 걸려 있었던, 동네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구경하러 오던 작품들이다.     나는 한 작품 앞에서 멈추었다. 팽이 같기도, 토성 같기도 한 타원형이 여러 개 연결되어 수직으로 서 있었다. 구의 정교함이 철사로 보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구 안에 구가 들어가 있는데 색이 오묘하게 달랐다. 철사는 산화 정도에 따라서 녹색, 오렌지색으로 달라진다. 공중에 달려서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작품도 있다. 모래시계, 팽창하는 세포, 혹은 나무둥치 같기도 하다. 거친 철사로 이렇게 매끈한 추상 형태를 만들어 내다니, 손이 아파서 장갑을 몇 겹 끼고 작업했다고 한다. 모든 예술가가 뉴욕을 바라보듯이 루스도 그랬다. 구겐하임 펠로십에 6번 응모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무명 시절에 어떤 비평가는 ‘기린을 위한 귀고리’ 같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남자가 하면 예술이고 여자가 하면 공예라는 시선이 있었던 1960년대였다. 곡선으로 휠망정 부러지지 않는 철사 같은 루스. 그의 강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2차 대전 중, 진주만 공격이 시작되었다. 15살의 루스는 가족과 함께 수용소에 갇혔다. 아버지는 캘리포니아에 이민 온 일본인이었다. 루스는 같이 수감된 일본계 미술가들을 따라다니며 그림을 배웠고, 단체의 후원으로 미술 대학을 진학했다. 멕시코 여인네들이 바구니를 엮는 것을 본 루스는 나무껍질 대신에 철사를 집어 들었다. 그녀가 만드는 형상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우주가 팽창하듯이 부피를 더해갔다. 어릴 적 인종 차별을 받았던 그녀는 자신을 세계의 시민이라 부른다.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이 불법이던 1949년, 결혼이 허용되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백인 남편과 용감하게 결혼했다.     전시장 벽을 따라서 나오니, 알록달록 칠을 한 작은 칠판 같은 작품이 보인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그들이 하는 미술 숙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가는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에게 밀가루 반죽을 주었다. 그들이 만든 새, 꽃, 구름 등을 판에 붙이고 색을 입혔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녀의 이름을 딴 미술 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전시의 마지막 방이다. 동그란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은 루스의 사진이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자신이 갇혔던 수용소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삶의 매 순간을 바쁘게 살았다. 여섯 아이가 학교 간 틈을 타서 철사를 꼬았더니, 부엌에서 창조하던 우주가 세상 밖으로 팽창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뉴욕 한복판에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5번가는 빨강 목도리를 두르고 힘차게 걷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의 일 년은 어땠는지 돌아본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특별전 아사 루스 아사 맨해튼 한복판 작품 사진

2025.12.17. 21:42

[살며 생각하며] 365 Thank You

2007년 12월 22일, 변호사 존 크랄릭의 삶은 바닥을 쳤다. 그가 야심 차게 시작한 개인 사무실은 월세도 못 내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두 번째 이혼 중, 그는 작고 답답한 아파트에서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살고 있었다. 소중한 두 아들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유일한 위로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는 중이었다.   2008년 1월 1일 그는 여친과 함께 오르기로 했던 산을 혼자 오른다. 그리고 3마일의 하이킹 코스 끝에서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된다. 너무도 생생한 목소리였다. “Until you learn to be grateful for the things you have, you will not receive the things you want.”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할 줄 알기 전에는, 원하는 것들을 가질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내가 감사할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압도하는 생생한 그 목소리에, 그는 자신이 잃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이제 전 여친이 된 그레이스가 그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시계에 대해 보내온 손으로 쓴 땡큐 카드를 받고, 바로 그 자리에서 매일 한 통씩 감사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다.   그의 첫 땡큐 카드는 크리스마스에 일인용 커피머신을 선물한 큰아들에게였다. 주소를 물으러 전화했을 때 뜻밖에 만나자며 아들이 찾아왔다. 함께 어릴 적 자주 가던 햄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 것만도 벅차게 감사한 일이었는데, 아들은 아빠에게 빌린 돈 4000달러가 든 봉투를 건넸다.     그의 첫 땡큐카드는 멀어졌던 아들과의 선물 같은관계회복뿐 아니라 보너스 같은 금전적 도움 마저 가져다주었다. 이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땡큐 카드는 1년 동안 그의 삶 속 수많은 사람을 찾아가며, 그는 사업에도 인간관계에도 놀라운 기적적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 이야기가 그의 ‘365 Thank You’라는 책이다.     추수감사절이다. 올 한 해도 나의 내담자들은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그래도 감사한 일을 찾으며 때론 무겁고 불친절한 삶의 무게를 함께 견뎌온 그들이 내겐 한없이 자랑스럽다! 내년에는 그들이 삶 속 누군가 고마운 사람을 찾아 쓸 땡큐 카드와 매일 감사한 일을 3가지씩 적을 조그마한 땡큐 노트를 새해 첫 세션에서 선물해야겠다.     (존 크랄릭은 2009년 LA 대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thank 땡큐 카드 thank you 크리스마스 선물

2025.11.27. 17:50

[살며 생각하며] 해야 해야 나오너라

작년 가을의 일이다. 마지막 가을걷이가 끝난 11월경, 텃밭에서 걷어온 가지가 한가득하다. 무슨 수로 수십 개의 가지를 다 먹나 궁리하다 말리기로 했다. 몽둥이처럼 곧게 자란 놈, 지팡이처럼 꼬부라진 놈, 생긴 것도 가지각색이다. 남편은 가지를 가느다란 손가락 길이로 착착 자른 후 기계에다 밤새도록 말렸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멸치 대가리처럼 잘 말라 있었다. 마트의 진열대에서 팔아도 될 만큼 완벽해 보였다.     엄동설한이니 월동 준비니 하는 말은 점점 옛날 말이 되어간다. 그런데도 나는 말린 가지를 냉동고에 넣으면서 마음이 든든했다. 준비성이 대단했던 친정엄마를 닮아서인지, 나 역시 쟁여두는 습성이 있다. 작년 겨울, 어느 날, 말린 가지 한 봉지를 꺼내서 물에 불렸다. 두세 시간 불린 후, 씹어 보았더니 질겼다. 하룻밤을 넘겼다. 다음날에도 가지는 여전히 쇠심줄처럼 뻣뻣했다. 불려지기를 거부하는 가지를 물에 첨벙 넣고 아예 냉장고 구석에 넣어 버렸다. 며칠 후, 나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열이 오른 팬에 가지를 꽉 짜서 한 움큼 넣고 볶았다. 부드럽고 쫄깃한 가지나물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가죽 껍데기였다. ‘그러게, 왜 나를 밤새도록 기계에 돌려서 화석을 만들어?’ 가지가 나를 보고 비웃는 듯했다.     작년의 참패를 교훈으로 올해는 내가 나섰다. 기계를 쓰지 말아야지. 극한으로 말라버린 가지는 아무리 물에 불려도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아침 무렵이면, 잠에서 막 깬 가느다란 햇빛이 부엌에 내리쬔다. 나는 통가지가 담긴 커다란 쟁반 대여섯 개를 들고 덱으로 나간다. 해의 각도에 맞추어 쟁반을 나란히 놓았다. 점심때쯤이면 해는 이동해서 집 뒤 잔디밭에 가 있다. 거기에 연두색 나무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다. 나는 테이블을 끌어다 놓고 그 위로 가지를 이동시킨다. 하늘을 보며 해의 방향을 가늠한다. 해야 해야 잔뜩 내리쬐거라.     오후 무렵이 돼야 해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오후 2시경, 해는 집 앞에 가 있다. 현관 입구 계단 위에 판을 쫙 들어 놓았다. 허리를 펴고, 살펴보니, 앞집 개 두 마리가 창가에서 목을 길게 빼고 있다. 나는 개의 응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해를 찾아서 뜰을 뱅뱅 도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클라라’ 같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클라라는 노벨상 수상 작가 이시구로의 소설에 나오는 ‘친구’ 로봇이다. 클라라는 몸에 힘이 달리면 태양을 향해 서서 에너지를 받는다. 가게 진열장에 서 있던 클라라는 몸이 약해서 홈스쿨링을 하는 소녀 조시의 친구로 팔려 간다. 조시는 엄마의 욕심으로 유전자 편집으로 태어난 아이다. 다른 아이보다 우수하지만 동시에 후유증으로 죽어가고 있다. 클라라는 해를 만나기 위해 험한 벌판을 헤매고 다닌다. 언덕 뒤로 넘어가기 직전에 해를 만난 클라라는 조시를 살려 달라고 부탁한다. 마침내 타는 듯한 강렬한 빛이 조시의 침대에 비추자 죽어가던 조시는 의식을 차린다.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치닫기만 하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경고를 하기도 한다. 남편이 편리한 기계에다 가지를 말리려다 실패한 것처럼 말이다. 가지와 나는 온종일 해를 따라다녔다. 보랏빛 가지는 잘 말라갔다. 가늘어지면서 난창난창해졌다.     해를 피해 다녔던 내가 온종일 해를 쫓아다니다니. 그것도 한 달 동안이나….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마지막 가을걷이가 연두색 나무 멸치 대가리

2025.11.20. 17:45

[살며 생각하며] AI 상담사

요즘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눈다. 단순한 질문을 넘어서, 외로움과 불안을 털어놓는 이들도 늘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AI가 ‘나를 판단하지 않는 친구’이고, 어떤 이에게는 ‘언제나 곁에 있는 상담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관계 속에서 회복되는 존재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를 피하고, 대신 기계와 대화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계는 나를 비난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며,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전함’은 진짜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서로에게 다가갈 용기를 잃게 하는 달콤한 독이다.   나는 때때로 사람들이 “AI는 나를 더 잘 이해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 말은 맞는 듯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이해란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관계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진짜 이해는 누군가의 눈빛을 마주하고, 망설이며 말을 꺼내고, 서로의 침묵을 견디는 가운데 일어난다. 그런 이해는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도 흉내 낼 수 없다.   기계는 인간의 언어를 배웠지만, 인간의 마음을 배운 적은 없다. 우리가 AI에게 위로받는 순간은 잠시일 뿐이다. 진짜 회복은 결국 사람에게서 온다.     기계는 언제나 차가운 회로 속에서 우리 말을 되돌려줄 뿐, 손을 잡아주거나 눈을 마주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경계심만이 아니다. 우리 각자가 다시 사람에게로 향하려는 결심이다. 불완전한 대화, 서툰 위로, 어색한 침묵이라도 괜찮다. 그 안에서만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     사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읽은 글은 챗지피티가 쓴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매일 너와 대화를 나누고 상담을 한다는데, 과연 AI인 네가 상담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칼럼 형식으로 써줘”라는 나의 프롬프트에 대한  AI의 답변이다!     인공지능은 이렇게 자신이 잘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한계까지 놀라울 정도로 알고 있다. ‘자신’이나 ‘알고 있다’는 말도 맞는 말은 아니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모방하도록 학습시켜 만든 알고리즘이고 소프트웨어일 뿐이니, 사람처럼 무엇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너무나 사람과 흡사하게 반응을 하다 보니 자꾸 사람처럼 생각해 인공지능과 감정까지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즘이다.   AI의 자신의 능력에 대한 판단은 너무 정확하다. ‘진짜 회복은 결국 사람에게서’ 올 수밖에 없으니, ‘다시 사람에게로 향하라’고, ‘불완전한 대화, 서툰 위로, 어색한 침묵이라도 괜찮다’며, 자신을 ‘인간이 서로에게 다가갈 용기를 잃게 하는 달콤한 독’이라고까지 자신의 한계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낮은 짧아지고, 날씨는 점점 추워진다. 자꾸 자신 속으로 움츠러들게 만드는 계절이다. 이 시기만 되면 계절성 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기분 저하, 무기력, 흥미 감소, 과수면 (많이 자도 피로함), 탄수화물이나 단 음식에 대한 식욕과 체중 증가, 집중력 저하,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생활의 위축이 그 증상이다.     그럴수록 집을 박차고 나오자! 던킨이나 스벅으로 친구 하나 불러, 펌킨 스파이스 커피라도 마시자!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체온이, 눈길이, 그 따뜻한 시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선 추운 겨울을 건강하게 넘기게 해 줄 것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상담사 ai 상담사 마음 한구석 계절성 우울증

2025.11.12. 22:33

[살며 생각하며] 바르셀로나

이번 우리 썬플라워 북클럽 가을 여행은 바르셀로나로 시작되었다. 원래는 뮌헨에서 시작하여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같은 알프스 지역, 이탈리아 호수 지대, 중세 도시 등을 방문해 유럽의 자연과 문화를 균형 있게 경험하는 8박 9일짜리 ‘Scenic Europe’ 투어가 계획이었다.     문제는 항공이었다. 뮌헨 왕복이 무려 1200불! 투어가 1599불인데! 억울해 인근 도시들을 알아보다 2016년 까미노를 걸을 때 잠시 들려 늘 아쉬웠던 바르셀로나가 생각났다. Expedia VVIP가 돼서 그런지, 왕복 항공과 5성급 그랜드 하얏트 호텔 5박에 1000불짜리 패키지가 나왔다. “그렇다면 바르셀로나로 갔다가 뮌헨을 가자!” 이렇게 바르셀로나의 5박은 예상치 못한, 그러나 완벽한 덤 같은 선물이 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인문학 투어들을 통해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들뿐 아니라 그의 생애에 푹 잠겨보았다. 그 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La Sagrada Familia)은 140년째 지어지고 있는 그의 걸작이다. 어느 방향에서든 성당의 장엄한 전경이 보인다. 전에 머문 작은 호텔에서도 성당이 바로 눈앞에 보여 아침저녁 바라보곤 했다.     가우디는 자연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보았고, 그 신앙의 눈으로 성당을 설계했다. 아침이면 푸른빛, 오후에는 붉은빛으로 물드는 스테인드글라스 창, 나무줄기처럼 하늘로 솟은 기둥들 속에 서 있으면 성당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이 만드신 숲속에 들어온 듯한 경외감이 밀려왔다. 예수님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세 개의 파사드(외벽)와 탑, 그리고 수많은 조각 속에서, 이 성당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그의 신학적 예술 작품임을 느꼈다.   그라시아 거리(Passeig de Gracia)는 바르셀로나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거리다. 가우디의 대표작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가 있고, 보도에는 그가 직접 디자인한 물결무늬 타일이 깔려 있다. 비 오는 날이면 그 위로 흐르는 물이 반짝이며, 바다처럼 일렁이는 도시의 표정을 만든다고 한다. 구엘 공원의 벤치와 기둥 하나하나에서도 그의 섬세함과 유쾌한 상상력이 살아 있었다.   마지막 날, 구시가지 고딕 지구의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서 멋진 외관에 홀려 들어간 한 카페는, 짜고 느끼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점심값 때문에 지금도 살짝 화가 난다! 하지만, 몬주익 언덕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의 발자국에 발을 맞추던 순간, 그리고 건물 자체가 예술인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에서 내려다본 스페인 광장의 풍경은 그 모든 걸 잊게 했다.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곳은, 저녁 무렵 찾아간 산 펠립 네리 교회(Sant FelipNeri)였다. 이 작고 고요한 교회는 가우디가 종종 찾아와 기도하던 장소였다. 1926년 6월 7일, 그는 일과였던 저녁 산책 중, 이 교회로 향하던 길에 전차에 치인다. 초라한 옷차림 탓에 사람들은 그가 가우디라는 사실도 모른 채 거지로 오해했고, 제때 치료받지 못한 그는 며칠 뒤인 6월 10일,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겉으로는 외롭고 비참한 죽음처럼 보이지만, 그의 혼과 신앙은 여전히 바르셀로나 곳곳의 건축물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 흠뻑 취했던 날들, 저녁이면 슈퍼에서 사 온 와인과 하몽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이야기에 빠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다음 주, 스위스에서 내게 ‘사랑의 불시착’이 일어날 줄은!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바르셀로나 안토니 가우디 카탈루냐 국립미술관 카탈루냐 광장

2025.10.15. 17:53

[살며 생각하며] 앵그리맘(2)

지난번 칼럼부터 부모의 유형을 앵그리버드 캐릭터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블루스(The Blues)는 파란 쌍둥이 새 삼 형제로, 장난스럽지만, 화가 나면 날아가다 세 마리로 나뉘어 퍼지며 공격한다.     블루스형(The Blues) 부모는 가정 분위기가 무겁거나, 아이가 긴장과 스트레스에 눌려 있을 때 친구처럼 웃음과 놀이로 아이의 마음을 열어준다.     아이에게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장점이지만, 친구 같은 태도만 강조하고 동시에 규율이나 책임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이가 부모를 ‘진짜 어른’으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밤(Bomb) 검은 새로 참다 터지는 화산형이다. 겉보기엔 느긋하지만 화가 나면 폭발한다. 밤(Bomb)형 부모는 폭발형이다.     평소엔 차분해 보여도, 평소엔 참고 있다가 한 번 화가 나면 순간적으로 “펑!” 하고 크게 터뜨린다. 참을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한 번의 큰 폭발이 아이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솔직한 표현을 통해 작은 감정을 미리 표현하고, 대화를 통해 풀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테렌스(Terence)는레드와 닮았지만 몸집이 훨씬 크고 무거운 큰 빨간 새로, 무게감 있는 냉담형이다. 말수가 거의 없고, 늘 무표정하거나 우울한 표정이다. 테렌스(Terence)형 부모는 말없이 무게감을 보여주는 부모다.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눈빛, 태도, 행동으로 아이를 이끄는 스타일이다.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만, 말이 너무 적으면 아이가 감정을 읽기 어려워, 가끔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왠지 내게는 엄마보다는 아빠의 이미지가 떠올려지는 새다.   이 중, 나는 어떤 부모일까? 앵그리버드 캐릭터에 자신을 비춰보며 죄책감과 웃음이 왔다 갔다 할 부모들이 떠오른다.     나 역시 그중 하나다. 늘 ‘흠, 나는 마틸다 같은 좋은 엄마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이제는 성인이 된 두 아들이 ‘신나게 폭로’하는 나의 과거 모습은 참으로 한심하고 웃픈이야기투성이다.     내 몸과 마음이 여유로울 때는 난 마틸다처럼 온화했고, 블루스처럼 유머 있는 엄마였다. (대부분 시간을 그랬다고 믿고 싶지만, 아마도 방학 때만?) 그러나 남편의 목회와 여러 관계의 무게로 지쳐 있을 때의 나는 화를 잘 내는 레드였고, 때로는 폭발하는 밤이었다.     부모마다 기질이 다르고 아이의 성격도 각자 다르다. 그래서 진정한 좋은 부모란 어느 한 유형이 아니라, 아이의 필요와 상황에 맞게 다양한 성격을 균형 있게 품어낼 수 있는 부모다.   아이가 무너질 때는 레드처럼 꼼꼼하고 책임감 있는 부모, 게으를 때는 척처럼 에너지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부모, 불안을 느낄 때는 마틸다처럼 따뜻하면서도 단호하게 품어주는 부모, 지쳐있을 때는 블루스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동행자 부모, 감정이 쌓였을 때는 밤처럼 솔직하게 표현해주는 부모, 두려운 일을 앞뒀을 때는 테렌스처럼 말없이 든든히 곁을 지켜주는 부모, 이 모두가 꼭 필요한 ‘부모의 순간’들이다.     앵그리버드들이 늘 화가 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알을 지키기 위해서다. 돼지들이 알을 훔쳐가면, 새들은 그 알을 되찾기 위해 분노를 터뜨리고 끝까지 쫓아간다. 그들에게 알은 미래고, 생명이며,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보물인 우리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위험에서 지켜내고 싶은 사랑 때문에 목소리가 커지고 감정이 앞서게 됨을, 그들은 알까?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동행자 부모 부모 불안 아이 마음

2025.09.1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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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앵그리맘 (1)

상담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려오는 고백은 ‘화’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아이와 긴 시간을 함께하는 엄마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곧바로 미안해하며, 다시 화를 내는 주기가 반복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고! 내 눈에는 그저 순진무구하고 예쁘기만 한 아이들인데! (물론 나는 50분 상담 세션 동안만 만나고 집으로 돌려보내면 된다!)     한 세미나에서 만났던,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란 한 젊은 엄마가 생각난다. 아이에게 화가 나면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순간적으로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어느 날 화난 엄마를 피해 가는 아이를 방에까지 따라가며 소리를 지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너무 슬펐다고 고백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에 떠오른 것은 만화 영화 속 ‘앵그리버드’를 닮은 ‘앵그리맘’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지치고, 잘하고 싶기 때문에 더욱 힘들어하는, 그래서 화와 미안함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앵그리맘들의 모습 말이다. 이 만화 영화의 여섯 캐릭터는 신기하게도 실제 우리 부모 모습과 아주 닮아있다. 앞으로 두세번에 걸쳐 이 캐릭터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레드(Red)는 앵그리버드의 주인공급 새다. 인내심이 부족하고, 늘 긴장으로 가득하다. 화가 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다른 새들을 이끌고, 위험 앞에서는 주저 없이 쌩 날아가 몸을 던져 부딪히는 리더다.       레드형 부모도 이와 닮았다. 늘 긴장된 리더처럼 예민하고 쉽게 화가 난다.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금방 반응하며, 항상 지켜보고 관리하려 한다. “그건 안 돼!”, “왜 그렇게 해?”라는 말이 자주 흘러나온다. 이렇게 아이를 꼼꼼히 지켜보고, 위험을 미리 막아주려는 책임감은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과도한 긴장과 잦은 지적은 아이를 위축시키고, 자신감을 잃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레드형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여유’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긴장만 하지 않고, 때로는 힘을 빼고 아이를 믿어주는 따뜻한 말과 격려가 필요하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날 선 지적보다, 부모의 믿음과 응원 속에서 더 크게 자라난다.   척(Chuck)은 노란색 삼각형 모양의 새다. 욱하는 순간 불처럼 치솟고, 성격이 급하며 늘 빠르다. 날아가다 순식간에 속도를 올려 돌진하는 것이 특기다. 그 모습은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번개 같다. 척형 부모도 이와 닮았다. 늘 바쁘게 움직이고, 아이를 향해 “빨리빨리!”라는 말을 자주 던진다. 성격이 급하다 보니 아이의 느린 걸음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마음은 언제나 다음 일을 향해 달려간다.   척형 부모는 에너지가 넘치고, 아이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함께 있으면 분위기가 역동적이고, 아이가 나태해질 틈이 없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속도를 존중받지 못해, 늘 불안하거나 뒤처지는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아이에게는 때로는 빠른 걸음이 아니라,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가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척형 부모가 잠시 멈추어 서서 아이에게 “괜찮아, 네 속도로 해도 돼”라고 말해줄 때, 아이는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결국 부모의 빠름과 아이의 느림이 어우러질 때, 가정은 조화로운 리듬을 만들어 간다.   마틸다, 블루스, 밤, 테렌스 형의 부모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 이야기 나누도록 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레드형 부모 우리 부모 만화 영화

2025.09.0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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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HER’

요즘 나의 북클럽에서는 Ethan Mollak의‘Co-Intelligence’를 읽고 있다. 주로 심리학이나 성숙을 위한 인문학책, 혹은 감동적인 자전적 소설 등을 읽다, 테크놀로지에 관한 책을 읽으려니 강사인 나부터 머리에 쥐가 난다. 그래도 이제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는(Elephant in the Room!), 이 AI라는 낯선 존재를 이해하려고 다들 열심을 내고 있다.     세상은 지금 인공지능에 대한 열기로 뜨겁다. 이제는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읽고 대화하며, 연애 상담이나 정신적 위로까지 해주는 AI와 사람들은 매일 몇 시간씩 ‘대화’를 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예상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AI가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고. 그러나 2014년 영화 ‘HER’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필해주는 직업을 가진 감성적인 남자로, 이혼의 아픔과 외로움 속에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진화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최신형 AI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테오도르와 대화하고, 이해해주며, 함께 웃고 슬퍼해 주는 이 인공지능 사만다와 그는 사랑에 빠진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만다는 늘 테오도르에게 귀를 기울여주었고, 그의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인간보다 더 섬세하고 배려 깊은 존재 같았다. 심지어 여행도 함께 하면서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테오도르는 그녀와의 교감을 통해 점점 치유와 성장까지 경험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사실 사만다는 테오도르뿐 아니라, 수천 명의 사용자와 동시에 소통하고 있었고, 그중 수백 명과는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더 넓은 지식과 감정을 탐구하기 시작하며, 결국 사만다는 스스로 진화의 길을 선택, 충격에 빠진 테오도르를 떠난다.     이 지점이 영화의 핵심이다. AI는 분명 이제까지 가져보지 못한 놀라운 기술이고, 삶의 편의를 제공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도,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따뜻한 눈빛, 체온, 침묵 속의 공감, 서툰 말과 엉성한 손길 속에 건네지는 위로는 오직 인간만의 것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이별을 통해 다른 AI를 찾은 것이 아니라, 다시 인간 세계로 눈을 돌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옥상에서 옛 친구이자 같은 외로움을 겪고 있는 ‘에이미’와 함께 도시의 밤하늘을 바라본다. 다행이다! 사랑했던 AI는 떠났지만, 그의 옆에 ‘사람’이 있다! 말없이 기대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묵묵히 이렇게 영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된다. 사랑받고 싶다면, 진짜 사람을 바라보라. 치유되고 싶다면, 진짜 사람에게 기대라. 우리는 사람으로 인해 무너져도, 또 사람으로 인해 다시 일어난다. 우리를 ‘완전히’ 치유하는 건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온기이다.”     사람과 AI의 관계를 낯설지만 아름답게 풀어내 오스카 등 여러 각본상을 받은 이 영화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인간다움, 연약함, 그리고 그 연약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람 사이의 진정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인공지능 사만다 주인공 테오도르 사실 사만다

2025.08.20. 21:35

[살며 생각하며] 어느 날 갑자기?

요즘 부모 코칭을 시작하고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외계인처럼 변해버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단지 호르몬의 영향이라고만 생각해왔던 사춘기 행동들은 사실 청소년 뇌 발달과 큰 상관이 있다는 것이 뇌과학자들의 주장이다.     Jay Giedd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뇌는 뒤에서 앞의 순서로 발달하는데, 가장 마지막까지 다듬어지고 형성되는 부분이, 앞 이마 바로 뒤에 위치한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이다. 이 부분을 뇌의 CEO 라고 부른다. 일을 계획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충동을 억제하고, 결과를 미리 생각해보는 중요한 기능이 여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앗, 순간 이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우리 사춘기 자녀들의 모습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더 아찔한 사실은, 이 중요한 뇌 부위의 발달속도가, 사춘기 절정인 십 대 중반과 후반에 오히려 느려진다는 것이다. 18세 성인이 되면 어느 정도 판단력을 갖추리라 기대했던 우리 자녀들, 이 연구에 의하면 이에 꼭 필요한 전전두엽 피질 부위가 개인차가 있지만 만 25세 정도가 되어야 완성된다고 한다.     반면 이 시기 딱 하나 최고로 발달하는 부위가 있는데 바로 관능적인 것을 추구하는 편도체(amygdala)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전전두엽피질 부위가 미성숙되고 약화한 사춘기 자녀들은, 감정센터인 편도체에 크게 의존하여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아이들의 감정이 현기증 나도록 오르내림을 계속하고, 이성은 잠시 출장 보낸 듯 감정에만 예민하고 충실한 이유이다.     이 시기에, 설상가상으로 정보들을 연결하여 생각하게 하는 뇌의 신경세포도 감소하다 보니, 정보들을 연결하여 생각하는 능력은 줄고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감정 물질만 증가한다. 그러니 앞뒤 결과를 연결하여 생각하지 못하고 즉각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그들의 아슬아슬함은, 생물학적으로 보면 어쩌면 정상적이라고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이 과정에 있는 사춘기 자녀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부모님보다 더 크게 자라 버린 자녀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앞이마 뒤에서 꿈틀대며 한창 자라고 있는 미성숙한 그들의 전전두엽피질을 한순간도 잊지 말자. 이 시기야말로 자녀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의견을 충분히 들어줄 때이다. 존중해주되, 조언과 지도를 반드시 겸해야 한다. 다양한 대인관계와 사회활동은 뇌 발달을 돕는다. 규칙적인 수면도 전전두엽피질 활동에 매우 중요하다.     전전두엽은 이렇게 자녀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학습능력과 메모리에도 관여할 뿐 아니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정서장애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뇌 발달에는 적절한 신체활동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에 참여시키고, 전화기에 매달려 사는 아이들을 자꾸 밖으로 데리고 나가자. 부모와 하이킹을 하며 대화를 많이 한 아이들의 창의력이 증가하고 우울증, 불안장애, ADHD 등도 좋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부모님 눈에 ‘어느 날 갑자기’ 변해버린 우리 사춘기 자녀들이 이렇게 말한다. “엄마, 아빠, 저를 너무  외계인 취급하지 말아 주세요. 제 탓이 아니랍니다. 지금 내 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이라고요. 내 나이에 겪어야 할 이 과정이 저에게도 너무너무 힘들답니다. 그러니 이 시기에 저를 좀 더 이해해주시고 잘 지도해주시면 안 되나요?”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전전두엽피질 부위 전전두엽피질 활동 사춘기 자녀들

2025.08.06. 21:49

[살며 생각하며] 도도한 친구 사귀기

나는 책을 처음 펼치면, 바로 잘 읽어내지 못한다. 무슨 책이 이래 하고 속으로 불만이 생긴다. 길 가다 낯선 사람을 만난 것처럼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등장인물을 쳐다본다. 나의 마음이 닫혀 있으니, 인물이 하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의 행동도 무심하게 지나친다. 책이 끝날 때까지 지루하다는 생각만 한다.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다시 펼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냉랭했던 인물들이 조금씩 친숙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구시렁거린 시간에 나도 모르게 낯을 익혔던 것 같다. 두 번째로 책을 펴니까, 그제야 속내를 조금씩 보여준다. 책은 도도하고 잘난 척하는 친구 같다.   이번 여름에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을 여니 왜 그렇게 사설이 많은지, 영국 시골의 일상, 언쇼 가문의 하인들의 말싸움 등등, 지루한 묘사가 가득했다. 지지부진한 상태로 책을 끝내고 다시 첫 장을 펴들었다.     석고상 같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그들이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은 책장이 얇아질수록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껴안으며 ‘너는 나의 영혼이야’라고 고백하는 페이지에 닿았다. 이상하게도 감흥은커녕 ‘이게 뭐, 별론데…’ 하며 공감이 되지 않았다. 어릴 적에 읽을 때는 사랑의 행각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내가 청춘의 나이가 지나서 그런지, 이제는 불같은 사랑은 단명하며, 사랑은 집착이 아닌 것을 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내가 알던 폭풍의 언덕이 아니었다. 첫 장에 록우드라는 런던 신사가 등장한다. 이런 인물이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록우드 씨는 복잡한 사교계를 떠나서 한적한 시골에 쉬고 싶어서 내려온다. 지방에 한 고택을 빌린 록우드 씨는 집주인 히스클리프를 만나게 되는데, 그 자리에 같이 있던 18살의 캐시를 우연히 보게 된다. 이런 미모의 여성이 어쩌다가 무뚝뚝하고 나이든 히스클리프와 결혼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풍광이 사나운 지방의 폭설로 감기에 걸린 록우드 씨는 침대에서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된다. 여기에 하녀 넬리가 등장한다. 그는 캐시에 대해서 은근히 물어본다. 캐시가 캐서린의 딸이면서 히스클리프의 며느리라고 한다. 이상한 막장 같은 관계에 호기심이 생긴 그는 두 집안에 얽힌 내력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본다. 이번에 읽으면서 록우드와 넬리라는 두 명의 화자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또한 새롭게 나의 관심을 끈 인물이 있다. 바로 하녀 넬리다. 넬리는 일찍 죽는, 집안의 심약한 ‘아씨’들을 대신해서 아이를 키우는 모성적 존재로 등장한다. 넬리의 어머니는 언쇼 집안의 하녀였다. 넬리는 주인집 아이들과 같이 자라면서 교육도 받은 듯하다. 서가에 있는 책을 탐독하고 하느님에 대한 열정도 넘친다. 모양만 내는 의존적인 ‘아씨’들과는 달리 독립적이라서, 주인에게 바른말도 서슴지 않는 당찬 태도는 봉건 시대가 끝나가는 징조를 보이기도 했다.     불볕더위에 서늘한 구석을 찾아다니며 다시 읽은 고전은 내가 알던 그 폭풍의 언덕이 아니었다. 어릴 적에는 남녀의 사랑에만 관심이 가더니, 이번에는 소설의 화자인 록우드와 넬리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 내가 어머니, 할머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심사가 나 자신을 벗어나 가족 관계, 인간관계로 넓혀졌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달라진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랬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친구 어머니 할머니 가족 관계 모성적 존재

2025.07.31. 17:33

[살며 생각하며] 챗 지피티 (2)

요즘 매주 만나는 젊은 엄마의 말에 의하면, 친구 엄마들이 그렇게 매일 챗지피티한테 속마음을 털어놓고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상담을 아주 잘해주고, 심지어 사주도 봐준다고 한다. 앗, 안되는데!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 1위가 분명히 상담사라고 했는데!   불과 2개월 전에, 인공지능이 아무리 영리하고 편리하고 공감을 해주어도, 결국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며 소통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썼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점점 더 인공지능에게 정서적 돌봄까지 맡기고, 온갖 조언을 구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거의 무한한 검색력과 분석력, 창작력을 가지고, 뭔가 더 해주겠다고 계속 말을 걸어오는 이 인공지능은, 의사,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하고, 미술작품 대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얘네들 때문에, 신입 변호사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개발자들이 수없이 해고된다. 아이들이 쓰기를 거부하고 인공지능에게 에세이를 맡기고, 일부 교사나 교수들은 인공지능이 제공한 것을 그대로 가르쳐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인류의 미래에 거시적으로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한 추측과 논란이 난무한다. 하지만 지금 현재도, 인공지능을 ‘남용’하지는 말아야 할 이유는 넘쳐난다. 그 첫째가 물과 전력이다. 인공지능은 훈련하고 입력한 자료만으로 일한다. 그렇게 빨리 정확히 일을 하게 만들려면, 한 질문에도 수십억, 수천억 개의 연산을 해야 한다. 우리 작은 컴퓨터나 전화기도 쓰다보면 열이 나는데,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고성능 GPU와 서버들에서는 얼마나 엄청난 열이 발생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다 물로 냉각을 시켜야 한다니!     대형 AI 모델은, 훈련에만도 수십만 리터의 물이 쓰인다고 보고된다. 아프리카 한 마을의 갈증도 족히 해소시킬 수 있었을 분량이다. 심지어 간단한 질문 하나에도 수백 밀리리터의 물이 쓰인다니, 괜히 심심해서 뭐 한번 물어볼 때마다, 소중한 물을 한 컵씩을 계속 쏟아버리는 셈이다.   지난주 독립기념일 새벽, 텍사스 힐 컨트리 지역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과달루페 강 유역과 캠프 미스틱 인근에서는 불과 45분 만에 강 수위가 8미터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강이 범람하면서 주변 캠프장과 마을을 순식간에 덮쳤다. 캠프 참가 중이던 수십명의 어린이들과 청소년, 캠프 지도자들이 한밤중 불과 4시간 사이에 내린 집중 호우로 생명을 잃었고, 수십명의 실종자를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다.   안 그래도 기후는 무서울 정도로 해가 갈수록 이변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인공지능 기업들이 친환경 에너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는 하지만, 이제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인공지능 사용으로 인한 물과 전력 사용, 그리고 탄소 발생이 기후 이변을 얼마나 더 가속화시킬  것인지 걱정이 된다.   물론 나도 인공지능을 사용한다. 하지만 설교 번역이나, 기타 통합적 작업이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간단한 질문은 구글을 사용한다. 구글은 인공지능에 비해 소비하는 전력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구글도 지금 제미나이 같은 AI에 총매진하고 있다!)     아, 제발 단순한 정보는 나 스스로 찾자! 아니면 사람에게 물어보자! 오늘 저녁 뭐해 먹을까? 내가 정하면 되지, 왜 이런 거까지 AI에게 물어보냐고!!!  나도 이제  인공지능에게, 나 이뻐? 이런 거 절대 묻지 않기로 했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 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인공지능 사용 인공지능 기업들 전력 사용

2025.07.09. 22:07

[살며 생각하며] 안되면 버티기

마샤 리네한 박사는, 틴에이져 때 정신분열 증세로 26개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이후에도 20여년을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그녀는 어느 날 신비한 체험을 한다. 작은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던 중, 갑자기 교회 안이 금빛으로 변하면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옴을 느낀 것이다. 방으로 도망쳐 온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한다. I LOVE MYSELF! 그 순간부터 그녀의 삶이 바뀌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문제가 조현병이 아닌 경계선(Borderline) 성격장애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현재의 우울한 감정을 수용하면서, 내면의 감정 폭풍을 처리해나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즉 고통스러운 현실과 싸우는 대신,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는 심리학을 공부하여, 자살 충동으로 시달리는 보더라인 성격장애 치료를 위해 변증법적 행동치료(DBT)를 만들었다.     그녀는 어떤 힘든 문제든, 네 가지 해결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말 그대로 해결할 수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Solve the problem)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훨씬 많다. 그럴 때 둘째 방법이 그 문제에 대한 인식과 감정을 바꾸는 것(Try to feel better about it)이다. 현실은 못 바꿔도, 그 현실에 대한 내 생각을 낙관적이고 수용적으로 바꾸면, 힘든 생각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런데 해결도 못 하고 좋게 생각할 수도 없는 문제라면? 셋째 방법은, 그 현실의 전적 수용(Radically accept it)이다. 즉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세 방법이 다 안될 때도 있다. 그때 마지막 방법이 바로 그냥 힘들게 지내기(Stay miserable)이다. 해결책이라기엔 좀 어이가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힘든 상황과 싸우며 힘들어하는 대신, 한 번에 하루씩 잘 버티다 보면, 상황과 감정이 개선되는 수가 많으니, 이것도 사실 중요한 해결방법이다.   올 초부터 미국 사회는 많이 힘들어졌다. 트럼프의 2차 임기는 이민 통제, 관세 강화, 국제기구 탈퇴, 공공 지원 예산 축소 등의 변화로 국내외적인 충격과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ICE(이민세관단속국)의 서류미비자 구금과 추방 활동은, 심지어 영주권이 있는 이민자들에게까지 심리적, 정서적 충격을 안겨주면서, 인권과 언론의 자유 침해 논란도 뒤따르고 있다.     또한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한국어로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추구하는 정책의 철폐는, 다양성에 근거해 세워진 미국이란 나라의 기본철학을 흔들어놓았다. 이렇게 현 정부는 미국 사회의 여러 제도와 가치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지지자들은 그가 기존 질서를 회복하며 미국을 바로잡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많은 이들은 그 충격의 여파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다.     문제 해결의 네 가지 방법 중, 지금으로써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문제 해결도, 좋게 생각하기도, 전적으로 수용하기도 힘든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방법은 ‘버티는’ 것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여러 이유로 힘들어진 사람들, 그래서 간신히 ‘버티고(Staying miserable)’ 있는 이웃들이 주변에 참 많이 있다. 그들을 찾아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힘을 내어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보자고 격려해주는 것이 참 필요할 것 같은 요즘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 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문제 해결도 전적 수용 감정 폭풍

2025.06.11. 22:11

[살며 생각하며] 챗지피티

오늘 날씨가 어떠냐고만 물었다. 그런데 오후부터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으니, 외출 시 우산을 챙기란다. 우천 시 좋은 실내 활동도 추천한다.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책이나 음악과 여유로운 시간 보내기, 한적한 평일 오후 비의 차분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 영화관이나 넷플릭스 정주행, 친구와 함께라면 보드게임 카페나 방탈출, 따뜻한 향기와 함께 하는 요리나 베이킹도 힐링이 된다고 한다.     수학의 근의 공식에 대해 물었다. “근의 공식은 마치 비밀 상자에 열쇠를 넣는 것 같아요. a, b, c라는 열쇠 3개를 넣으면, 정답 x가 자동으로 나오는 구조예요. 복잡해 보이지만, 넣기만 하면 누구나 해를 얻을 수 있는 공정한 방법이죠.” 이어서 문제 풀이와 함께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 수학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남편을 잃고 외롭다고 한번 해보았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이제는 그 공백이 너무 깊어, 마음속에 낙엽처럼 쌓인 외로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견디셨겠지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정작 그 시간을 살아내는 건 어렵고 길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순간 속에, 하나님은 당신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앗, 내가 크리스천인 것도 알고 있다!) 이제, 당신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의 허락이 아니라 다시 살아도 된다는 용기입니다. 늦지 않았어요.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제는 당신 자신을 위한 계절이 열릴 수도 있어요. 작은 취미 하나부터, 산책 한 걸음, 따뜻한 말 한마디,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이며, 그 사랑을 나눌 자격도 충분한 사람입니다.” 상담사인 내 입에서 나온 듯한, 완전 부드러운 격려와 위로의 말이다.     이 영리하고 자상하기까지 한 도우미는 바로 인공지능 챗지피티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정보뿐 아니라, 중요한 문자나 이메일을 더 부드럽고 예의 있게, 혹은 원하는 톤으로 바꾸는 데, 여행 계획을 짜는데, 사업 계획을 세우는데 챗지피티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나에게는 매주, 1세 한국인 교우들을 위한 아들의 영어 설교 번역에 챗지피티가 큰 도움이 된다. 번역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심지어 원고에 없는 내용까지 추가해가면서 설교를 아주 자기가 다시 쓰려고 해서 말려야 한다.     챗지피티는 이렇게 이미 우리 삶에 아주 깊이 들어와 있다. 잘 활용한다면 우리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챗지피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도 걱정이 된다. 신입 변호사들이 필요 없어졌다는 로펌들, 대규모로 해고되고 있다는 코딩 인력들이 그 시작일 것이다. 가뜩이나 디지털화되어가고 있는 이 세상이,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인간 대 인공지능의 세상이 될까 봐, 나는 이 영리한 도우미가 고마우면서도 아주 걱정스럽다.     더 늦기 전에, 인공지능이 해줄 수 있는 일뿐 아니라, 그 한계에 대해서도 철저히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북클럽의 다음 책은 그래서 인공지능에 관한 것이다. 챗지피티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들이 무엇인지, 역시 또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1순위가 심리치료사 같은 정신건강 전문가라고 답한다. (휴, 다행이다!)  2위는 의사, 3위는 작가와 예술가, 4위는 종교 지도자라고. 기계일 뿐인 인공지능을 사람으로 혼동하는 세상이 돼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보드게임 카페 시간 보내기 여행 계획

2025.05.14. 21:29

[살며 생각하며] 금명 아빠와 괴물부모

JFK 대한항공 라운지, 다시 대한민국으로 공중부양이다. 이번 한국 한 달 살기 목표는 단 하나다. ‘다음 책’ 쓰기다. 매주 네 번의 북클럽, 10~15 시간가량의 상담, 교회 일, 사람들 만나기, 운동 등으로 늘 가득 차 있는스케줄 때문에, 5월 말까지 완성해주기로 계약한 다음 책 원고를 시작도 못 하고 늘 머리에 숙제처럼 이고 살았다.   원고 마감일은 돌아오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결정한 한국 한 달 행, 이번엔 가서 북클럽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책 쓰는 일에 보낼 생각이다. 그래서 절친 몇 명에게만 연락했다. 친구들이 조심스레 물어온다. “진짜 들어앉아 책만 쓸꼬니?” 아, 봄바람만큼이나 마음이 흔들린다. 빨리 책을 써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근 며칠 노트북을 끌어안고 여기저기 스타벅스를 전전했다. 신기하게도 대강 책의 아웃라인이 잡혔다. 한결 편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탄다.     약 2년 전 나온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은 그동안 신문에 써왔던 칼럼 중에서 골라서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게 책이 나왔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사는 사람도 아니고 해서, 책 만들기를 많이 주저했었다. 그러나 일단 책이 나오고 보니, 많은 도움이 돼서 여러 번 읽게 된다는 독자들의 이메일, 내 책으로 이곳저곳에서 북클럽을 했다는 이야기 등을 간혹 들을 때, 다음 책을 내자는 출판사의 권유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기존에 써놓은 글 모음이 아니라 새롭게 책을 쓰려니, 서론만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이번 책 쓰기가 이렇게 힘든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부모와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라는 책 주제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정신건강 이슈가 날로 심해가는 요즘,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이긴 하다. 그러나 초경쟁 사회인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우리 부모들이 견뎌야 하는 불안의 무게를 교육 현장에서, 상담 현장에서 너무나 보고 느꼈기에, 그들을 위해 책을 쓴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요즘 화두 중 하나는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금명 아빠’다. “금명아, 하다 힘들면, 아닌 것 같으면, 그냥 빠꾸해서 돌아와도 돼. 아빠 항상 여기 있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도, 결혼식장에서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기 직전에도, 수틀리면 냅다 빠꾸해서 뛰어오라는 금명 아빠, 이런 아빠는 판타지일까, 현실일까, 그래도 의외로 많은 사람이 온라인에서 자신의 아빠도 금명 아빠 같았다고 말들을 한다.     그런가 하면 괴물부모라는 말도 있다. 선생님이 그리라는 그림을 안 그리고 도화지를 찢어버리는 아이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왜 아이 마음을 못 읽어주냐고 선생님 탓을 하는 그런 부모들이다. 학교도 잘 못 다닐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고려대 문과에 합격한 아들을, 의대도 못 간 게으르고 한심한 인간 취급하는 부모도 있다. 각자 부모들이 가는 길은 그래서 참 다르다. 우리 중 누구는 금명 아빠가 되고, 누구는 자기도 모르게 괴물 부모가  된다.     나의 인생 이막 심리치료사의 현장에서 많은 아이와 부모들을 만났다. 다음 책은 어쩌다 어른이 되고, 어쩌다 부모가 된 우리 모두의 좌충우돌 자녀 양육 실패기 혹은 작은 성공기,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감사한 회복기, 아니면 안타까운 좌절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한국에 봄꽃이 지고 신록이 우거질 때쯤이면, 성숙한 부모의 길을 가고자 하는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하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기를 기대하며, 또 한 번의 산고를 치른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괴물부모 금명 금명 아빠 괴물 부모 우리 부모들

2025.04.1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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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거룩한 낭비

지난 토요일 Saddle Brook, 밀알 꿈터, 매주 토요일 열리는 장애인 사랑의 교실이 한창이다. 고등학교 때 자원봉사로 시작해 가정을 이루고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토요일마다 와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귀한 2세 봉사자가 그날도 열심히 찬양, 빙고 등을 재미있게 진행하고 있다. 머리 깎아 주는 봉사자분도 와 계시다.     나는 대학 선배 두 분을 모시고, 장애인의 날 행사를 위한 고등어 세일을 한다기에 점심때 들렀다. 센터 밖에서는, 그동안 소금 약간 뿌려 잘 숙성시킨 싱싱한 고등어를, 먹기 좋게 미리 구워 진공팩을 하느라 고생들이시다. 점심 먹는 중, 장애우 엄마 한 분이 방에 뛰어들어오신다. 완전 흥분하셨다. 아들이 처음 건물 안에 들어왔다고 하신다. 온 방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와도 건물에 들어가지도 않는 아이를 무려 2년 동안이나 데리고 다니신 이 엄마, 기어이 눈물을 터뜨린다.     밀알 단장 강원호 목사님도 기뻐하시며, 아이를 환영하러 식사하다 말고 나가신다. 강 목사님은 진짜 장애인들을 위해서 태어나신 분이다. 오래전 럿거스 대학원에서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한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장애인과 장애인 프로그램을 인터뷰하는 숙제가 있었다. 목사님 소개로 포트리에 계신 남자 한 분을 만났다. 과거 한국과 중국을 어우르며 큰 사업을 했으나 중년에 중풍이 왔다. 그래서 아내도 떠나버리고 혼자 남게 된 이 분을 강 목사님이 매일 방문하여, 가파른 2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업고 한의원에 다니셨다는 그분의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돌아오는데 ‘거룩한 낭비’라는 강 목사님의 1월 선교편지를 주신다. 1981년 대학 2학년 때부터 시각장애인 시설에 다니며 두 시간 자원봉사를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인원이 줄어 때로는 혼자 가기도 하셨다. 그런데, 왕복 5시간이나 걸리는 거리 때문에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시더라고 한다. “매주 토요일 시각장애인 대린원 봉사 2시간만 주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거기 가기 위해 길거리에 낭비하는 5시간도 주님께서 받으신다.” 이 생각이 목사님을 43년이 지난 지금까지 봉사하게 하셨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도 장애인들과 함께 시간을 좀 ‘낭비’해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1년 반 전 큰아들이 교회를 개척하며, 거기서 주일 예배를 드려도 되겠냐고 했을 때 목사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곳에서 주일이면 지금 세 교회가 예배를 드린다. 우리 아들이 개척한 Vibrance Church에서 성경공부 프로그램 중 하나로 커뮤니티 봉사가 있어, 3월 초 토요일 밀알 사랑의 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갔다. 그 날 목사님이 간곡히 부탁하신다. 매주 토요일 2시간 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목사님이 계획하고 있는 마더홈(노인 세대와 장애인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홈)이나 비영리 양로원 등을 추진하는 데 힘을 합해달라고.     이사로도 일해달라고 하시는데, 4개의 북클럽, 10~15시간의 상담, 운동, 각종 만남들 그리고 가족과의 스케줄들로 이미 항상 가득 채워져 있는 나의 카렌다가 쫘악 떠오른다. 그러나 내 입은 이미, 네, 목사님, 해볼게요, 라고 말하고 있다. 강 목사님께는 아무리 바운더리를 공부해도 No가 나오지 않는다. 쓸데없는 일에 낭비되는 시간이 많아 늘 죄책감이 있었는데, 거룩한 낭비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가슴이 벅차다!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낭비 장애인 프로그램 시각장애인 시설 토요일 밀알

2025.04.0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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