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살며 생각하며] 맹추위 속 컵라면

New York

2026.02.04 21:01 2026.02.04 22:0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침대 옆 구글 커넥트에게 묻는다. 헤이 구글, 지금 몇 도야? 오늘은 화씨 6도란다! 세상에, 몇 년 따뜻한 겨울을 지내다 보니 이런 숫자는 정말 낯설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 유난히 차가운 것은 날씨만이 아니다. 작년부터 시작되어 점점 심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 전반과 어쩌면 세계적인 긴장과 불안, 그 몰상식과 억울함, 답답함의 한복판에서, 먼 곳이 아니라 내 바로 옆 이웃들의 삶이 흔들리는 장면들을 마주할 때, 마음의 온도까지 한없이 함께 내려가는 요즘이다.  
 
최근 만난 몇몇 클라이언트들은 세션마다 끝내는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신분을 약속받고 도착한 미국 땅에서 사기만 당하고 서류 미비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너무도 주위에 많다. 이후 미국을 모국으로 여기며 긴 세월을 착실하게 세금 내며 이웃까지 도우며 살아온 이들의 삶이, 여지없이 공포 속에 파묻혀가는 요즘의 모습은 너무도 바라보기가 힘이 든다.  
 
신분 문제, 단속 공포,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일상. ICE라는 세 글자는 그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그림자다. 24/7 이민단속관이 뜨는 현장을 보고해주는 앱을 들여다보며 “오늘은 괜찮을까?”라고 물으며 살아가는 그들을 위로할 말이 없어 난 그저 말을 잃고 만다.  
 
그런데 요즘, 작고 조용한 온기가 스며들고 있다. 북클럽 멤버 한 분이 히스패닉 이웃들을 위해 컵라면과 삶은 계란을 준비하여 나누어주고 있다. 홍보도, 사진도, 거창한 선언도 없이, 단지 “오늘은 이들에게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 혼자 맹추위로 얼어붙은 거리로 나갔다. 숨어있던 남미 친구들은 주변을 살피며 나와 자신들의 아미고(친구) 것까지 받아가더란다!
 
그 이야기가 북클럽 단톡방에 올려지자, 다른 회원들이 기증하는 각종 컵라면과 스낵들이 그분의 뒷마당 테이블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흰 눈더미를 배경으로 쌓여가는 이 물품들은, 배고픔 앞에서, 두려움 앞에서, 인간은 결국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듯 조용히 놓여 있었다.
 
“차 히터가 꼭짓점을 찍는데도 장갑 낀 손가락 끝은 날카로운 냉기로 뻣뻣해졌습니다. ‘한명이라도 걸려봐라. 박스를 안겨주마’ 팰팍 고객을 향해 한명의 확률을 걸고 출발했습니다. 지난번 만났던 페이퍼 있다는 고객이 다가왔습니다. 대뜸 묻는 게치킨 수프였습니다. 한 냄비 끓여다 냄비째 안겨주었던 그 메뉴가 제법 그들의 입맛에맞아떨어졌나 봐요. 라면과 커피 스낵을 라면 박스 반 개 덜어내고 담아주었습니다.
 
잇달아 나타난 3명에게 라면몇 개? 물어보자 5개라고 했어요. 넉넉히 담아주었습니다. 지난번 카페로 치킨 수프 냄비 들려 보내고비워달라 했는데 그 카페 여자 두 명이 튀어나왔어요. 방긋 웃으며 라면 3개 달라고 다가오는데 제겐 블랙핑크 멤버였던 제니로 보였습니다. 통통 빵빵한 제니로요. 활짝 웃으며 ‘그라샤’ 한 다발 선물 받았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런 횡재도 하네요.
 
오늘 아침 그 회원님으로부터 받은 문자다. 라면 한 그릇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삶은 계란 하나, 치킨 수프 한 그릇으로 불안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분명히 사람의 몸과 마음을 조금은 풀어준다. 그리고 그 ‘조금’이 모여 그들의 불안한 하루를 견디게 할 것이다.  
 
차가운 계절 속에서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치킨 수프를 끓이고 라면을 나눈다. 그 두 장면 사이 어딘가에서, 그래도 아직 이 사회에 온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숨을 고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