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나절에 도착한 워싱턴DC는 예상외로 포근한 날씨였다. 스미스소니언 아시안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을 보러 왔다. 삼성가에서 3대를 걸쳐 모은 작품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미술관 입구는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고 조용했다. 수도라서 그런지 입장료는 무료였다. 장엄한 건물의 층계를 내려가니 전시장의 입구가 보였다. 입구에서 받은 첫인상은 여느 한국 미술품 전시와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그간 내가 다녀본 경험에 의하면, 미술관마다 한국 작품을 어느 정도 소장하고는 있다. 아시아관에 들어가면 근엄한 황동 불상이 나를 내려다본다. 위엄스러운 양반 사이를 걸어 다니다 보면, 얼어붙은 폭포 앞이거나, 달밤에 시를 읊었다는 강가에 도달한다. 어두운 조명 탓인지 나 같은 초보 눈에는 동양화들이 구별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이건희 컬렉션 전시는 입구부터 달랐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그림이 현대풍의 미인도라니. 벽 한 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그림이다. 젊은 여자가 반 묶음 단발머리에 빨간 원피스를 입었다. 초점이 분명한 응시를 보내고 있다. 옆 테이블에 흰 백자가 놓여있다. 강렬한 빨간 옷과 은은한 달항아리가 대비를 이룬다. K-컬처로 이름을 떨치는 시점에서 순회전을 떠날 전시 첫 그림이 여자였다. 이 전시는 워싱턴, 시카고에 이어 런던으로 간다고 한다. 한국 미술 하면 으레 수묵화가 떠올랐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여인의 좌상 옆에 김환기 화백이 그린 추상화가 걸려있다. 미인도와 맞먹는 커다란 사이즈다. 벽돌색 직사각형 위에 미색의 원이 놓여있다. 원은 조선의 백자처럼 보인다. 청색 하늘은 여러 면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충 그은 듯한 선에서 무심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두 번째 방으로 갔다. 정선, 신윤복, 김홍도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18세기 그림으로 국보급 미술품이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구석에 걸린 자그만 그림이었다. 딱 봐도 붓질이 날아갈 듯 성글게 보였다. 인상파 화풍이라니. 도상봉 화가가 그린 1953년 작품이 왜 전통화와 같이 걸렸을까?
기와를 얹은 성균관 후원을 배경으로 은행나무가 정면에 있다. 400년이 넘은 나무의 밑둥치 위에 무성한 노란 잎이 그림 전체를 차지한다. 그런데 한 쪽 끝에 보일 듯 말 듯 모녀가 서 있다. 간단한 선으로 처리된 흰색 한복 차림의 모녀는 왜 저기 서 있을까?
글공부하고 싶어 하는 딸의 손목을 잡고 성균관을 쳐다보는 어머니? 역적으로 몰려 죽은 아버지와 오빠가 공부하던 곳? 숨은 서사를 떠올리며 나는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20세기 작품이지만 주제는 분명히 18세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것 역시 반전이었다.
김인승, 김환기, 도상봉 화백은 일제 강점기에 성장했다. 당시 일본에서 가르쳤던 유럽풍을 알고 있었던 일 세 대 서양화가들이다. 주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달항아리, 성균관 등에서 정체성이 보인다. 또한 전통화에 드물게 보이던 여자를 등장시켰다. 가부장 사회에서 베일에 가려진 채로 살았던 여성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점이다. 전 세계 문화 사절이 모여있는 미국의 수도에서 한국 미술품 전시를 서양화로 시작했고, 서양화를 군데군데 섞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시를 보고 나왔다. 아시아 갤러리를 나오니 바로 옆에 현대 미술관과 조각 공원이 있다. 한두 블록을 걸어가니 인디언 미술관이 있다. 어도비 벽돌로 지은 요새가 연상되었다. 전 세계의 미술관이 워싱턴의 나지막한 하늘 아래 거대한 블록을 차지하고 있다. 도심 가운데 공원에는 아이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뛰고 있다. 차가운 대기 속에서도 멀리서 꿈틀거리는 훈풍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