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향했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루스 아사와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서, 어떤 작가인지 궁금했다. 평생을 무명으로 살았던 조각가인데 노년에 루푸스라는 병에 걸렸다. 오랜 투병 생활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자, 그녀의 딸은 크리스티 경매장의 큐레이터에게 편지를 썼다. 집에 있는 제일 값나가는 미술품인 조세프 알버스의 그림을 팔아 달라고 의뢰했다. 그때 편지에 동봉된 루스의 작품 사진을 보고 큐레이터는 눈이 번쩍 띄었다. 루스의 집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2009년 당시 루스는 80세를 막 넘긴 나이였다.
그 이후에 작가는 미국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87세로 생을 마감한 지 십여년 만에모마는 회고전을 기획했다. 특별전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린다. 철사를 꼬아서 만든 그녀의 작품값은 현재 몇백만 불에 이른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집 천장 서까래에 걸려 있었던, 동네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구경하러 오던 작품들이다.
나는 한 작품 앞에서 멈추었다. 팽이 같기도, 토성 같기도 한 타원형이 여러 개 연결되어 수직으로 서 있었다. 구의 정교함이 철사로 보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구 안에 구가 들어가 있는데 색이 오묘하게 달랐다. 철사는 산화 정도에 따라서 녹색, 오렌지색으로 달라진다. 공중에 달려서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작품도 있다. 모래시계, 팽창하는 세포, 혹은 나무둥치 같기도 하다. 거친 철사로 이렇게 매끈한 추상 형태를 만들어 내다니, 손이 아파서 장갑을 몇 겹 끼고 작업했다고 한다. 모든 예술가가 뉴욕을 바라보듯이 루스도 그랬다. 구겐하임 펠로십에 6번 응모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무명 시절에 어떤 비평가는 ‘기린을 위한 귀고리’ 같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남자가 하면 예술이고 여자가 하면 공예라는 시선이 있었던 1960년대였다. 곡선으로 휠망정 부러지지 않는 철사 같은 루스. 그의 강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2차 대전 중, 진주만 공격이 시작되었다. 15살의 루스는 가족과 함께 수용소에 갇혔다. 아버지는 캘리포니아에 이민 온 일본인이었다. 루스는 같이 수감된 일본계 미술가들을 따라다니며 그림을 배웠고, 단체의 후원으로 미술 대학을 진학했다. 멕시코 여인네들이 바구니를 엮는 것을 본 루스는 나무껍질 대신에 철사를 집어 들었다. 그녀가 만드는 형상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우주가 팽창하듯이 부피를 더해갔다. 어릴 적 인종 차별을 받았던 그녀는 자신을 세계의 시민이라 부른다.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이 불법이던 1949년, 결혼이 허용되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백인 남편과 용감하게 결혼했다.
전시장 벽을 따라서 나오니, 알록달록 칠을 한 작은 칠판 같은 작품이 보인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그들이 하는 미술 숙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가는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에게 밀가루 반죽을 주었다. 그들이 만든 새, 꽃, 구름 등을 판에 붙이고 색을 입혔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녀의 이름을 딴 미술 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전시의 마지막 방이다. 동그란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은 루스의 사진이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자신이 갇혔던 수용소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삶의 매 순간을 바쁘게 살았다. 여섯 아이가 학교 간 틈을 타서 철사를 꼬았더니, 부엌에서 창조하던 우주가 세상 밖으로 팽창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뉴욕 한복판에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5번가는 빨강 목도리를 두르고 힘차게 걷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의 일 년은 어땠는지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