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 돋보기가 필요한 늦은 나이에 나는 고등학교 교사에서 다시 학생이 되었다. 남편이 떠나버린 휑한 세상에서 내게 찾아온 우울증이란 낯선 손님, 그것을 극복하고자 시작한 대학원 공부는 2014년부터, 내게 심리치료사라는 뜻밖의 인생 이막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그동안 많은 아이와 부모들을 만났다.
상담 초기, 네 살부터 고등학생까지 아이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시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깨달음을 주었다.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결국 부모의 그림자와도 같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상담 결과는 부모의 태도와 노력이 얼마나 함께하는지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화분에 심긴 작은 화초 같았다. 적극적으로 아이들 치료에 임하는 부모의 햇볕 같은 웃음과 칭찬, 물 같은 격려와 애정이 부어졌을 때, 시들어가던 아이들이 다시 살아났다. 싱그럽게 피어났다. 결국 아이들을 다시 살려낸 힘은 부모의 사랑과 헌신이었다.
반면, “이 아이 좀 고쳐주세요(Fix my child)!”라며 아이만 문제 삼는 부모들,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화를 내고, 상담 자리에서도 변명에만 몰두하는 부모들은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아이의 고통이 그저 불편한 사건, 혹은 창피한 일일 뿐인 부모 밑에서 아이의 마음은 더 깊이 병들어갔다.
정신건강 문제 절반 이상이 14세 이전에 시작되고, 4분의 3이 24세 이전에 발생한다. 이 시기 부모가 아이의 마음 길을 살피고, 도와달라는 신호를 놓치지 않고 반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팬데믹 이후 아이들은 더욱 힘들어졌다. 상담을 찾는 아이들은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치료사들의 대기 명단은 여전히 길기만 하다.
한국 방문 시 만난 엄마들의 “우리도 힘들어요. 위로가 필요해요. 길잡이가 필요해요”란 고백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상담 현장에서의 경험과 강의 내용을 엮어, 부모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이 마음에도 길이 있다’라는 책이 이번에 나오게 되었다.
3년 전 나의 칼럼 모음집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과 달리, 이 책은 산고를 겪어야 했다. 주제부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라는 초경쟁 시스템에서 참으로 어렵게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한국 부모들의 엄청난 불안, 그리고 소수민족으로서 자녀들을 주류사회에 진출시키려는 해외 한인 부모들의 절실한 압박감이, 내게도 아주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느 곳에서건 부모로, 아이로, 우리 모두가 힘들게 살아낸, 그리고 지금도 겪어내고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심리치료사지만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나의 멘탈고백기이면서, 어쩌다 어른이 되고, 어쩌다 부모가 된 우리 모두의 좌충우돌 자녀 양육 실패기 혹은 성공기이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눈물 나게 감사한 회복기, 혹은 안타까운 좌절의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통해 부모님들이 아이 마음에 난 작은 길들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서툴고 흔들리지만 성장이라는 길 위에서 아이들이 보내는 외침을 더 선명하게 듣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힘들어진 그 길에서, 두려움이나 조급함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으로 함께 아이 손을 잡고 걸어주시길 소망한다.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여정에, 이 책이 작은 등불로 쓰이길 소원하며 새해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