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교차가 큰 가을입니다. 가을 하면 저는 최백호 씨의 노래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라는 슬픈 가사가 떠오릅니다. 한의학에서는 가을을 ‘용평(用平)의 계절’이라 부릅니다. 봄·여름의 뻗고 들뜬 기운을 거두고 수렴하는 시기이기에, 결실의 계절이면서도 후회와 걱정이 몰려드는 슬픔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별이라면 차라리 겨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상징은 전어(錢魚)입니다. 전어는 가을이 제철인 생선입니다. 그 이름은 비늘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옛 동전(錢·엽전)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그래서 가을철 반짝이며 무리지어 다니는 전어를 보면 “돈(錢)이 몰려오는 것 같다”는 인식도 있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 저는 LA한인타운의 유명 횟집에서 전어회를 먹었습니다. 깻잎 한 장에 쌈장을 바르고, 세꼬시 전어 몇 점과 마늘을 얹어 한입에 넣으면 아작아작 씹히는 맛이 일품입니다. 전어는 연탄불에 소금을 살짝 뿌려 구워 먹어도 최고입니다.
허영만 작가의 만화 ‘식객’에서도 전어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강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남자를 전어 굽는 냄새로 살려낸 장면인데, 그만큼 전어구이는 향이 구수하고 매력적입니다.
가을에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많아져 가장 맛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가을 전어’라는 표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속담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사실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냄새에 돌아온 게 아니라,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착각해 돌아왔다는 일본 전래설화도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일본 해안 지방, 한 노인은 영주가 딸을 첩으로 삼으려 하자 딸이 죽었다고 속이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관 속에는 딸 대신 전어(このしろ·고노시로)를 넣었고, 전어 타는 냄새를 맡은 신하들은 이를 진짜 화장 냄새로 착각했습니다. 덕분에 딸은 정혼한 청년과 행복하게 살 수 있었고, 전어가 ‘子の代(고노시로·자식 대신)’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본 전래설화가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전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전어는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합니다. 또한 DHA, EPA 성분은 두뇌 건강과 기억력에 도움을 주며, 이뇨 작용으로 부종 개선에도 좋습니다. 뼈째 먹을 수 있는 생선이라 칼슘이 풍부해 노년층의 관절염·골다공증 예방에도 좋습니다.
가을 전어 못지않게 한의학적으로 건강에 좋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양릉천(陽陵泉)혈입니다. 이 혈은 담경(膽經)에 속하며 무릎 아래 종아리뼈 머리 앞·아래쪽에 위치합니다. 근육·관절 질환의 대표 혈자리로 뻣뻣함, 경련, 마비, 관절통 완화에 좋습니다. 또한 담 기능을 조절해 소화 장애, 담낭염, 담석증에도 활용되며, 중풍 후유증 재활에도 쓰입니다. 가을철 건강관리의 묘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냄새로 돌아왔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돌아왔든, 이런 설화가 이어져 내려온 것을 보면 고부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사회적 문제였던 듯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고급 아파트 이름은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어렵게 외국어가 길게 붙어야 잘 팔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가을은 기운이 수렴하는 계절입니다. 욕심과 과도한 언행을 줄이고,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렸다면 며느리가 집을 나갈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친김에 오늘 저녁은 전어구이를 해 먹어야겠습니다. 집 나간 며느리를 기다리는 시어머니의 마음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