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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가을 전어와 양릉천<陽陵泉>

요즘 일교차가 큰 가을입니다. 가을 하면 저는 최백호 씨의 노래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라는 슬픈 가사가 떠오릅니다. 한의학에서는 가을을 ‘용평(用平)의 계절’이라 부릅니다. 봄·여름의 뻗고 들뜬 기운을 거두고 수렴하는 시기이기에, 결실의 계절이면서도 후회와 걱정이 몰려드는 슬픔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별이라면 차라리 겨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상징은 전어(錢魚)입니다. 전어는 가을이 제철인 생선입니다. 그 이름은 비늘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옛 동전(錢·엽전)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그래서 가을철 반짝이며 무리지어 다니는 전어를 보면 “돈(錢)이 몰려오는 것 같다”는 인식도 있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 저는 LA한인타운의 유명 횟집에서 전어회를 먹었습니다. 깻잎 한 장에 쌈장을 바르고, 세꼬시 전어 몇 점과 마늘을 얹어 한입에 넣으면 아작아작 씹히는 맛이 일품입니다. 전어는 연탄불에 소금을 살짝 뿌려 구워 먹어도 최고입니다.   허영만 작가의 만화 ‘식객’에서도 전어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강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남자를 전어 굽는 냄새로 살려낸 장면인데, 그만큼 전어구이는 향이 구수하고 매력적입니다.   가을에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많아져 가장 맛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가을 전어’라는 표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속담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사실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냄새에 돌아온 게 아니라,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착각해 돌아왔다는 일본 전래설화도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일본 해안 지방, 한 노인은 영주가 딸을 첩으로 삼으려 하자 딸이 죽었다고 속이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관 속에는 딸 대신 전어(このしろ·고노시로)를 넣었고, 전어 타는 냄새를 맡은 신하들은 이를 진짜 화장 냄새로 착각했습니다. 덕분에 딸은 정혼한 청년과 행복하게 살 수 있었고, 전어가 ‘子の代(고노시로·자식 대신)’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본 전래설화가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전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전어는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합니다. 또한 DHA, EPA 성분은 두뇌 건강과 기억력에 도움을 주며, 이뇨 작용으로 부종 개선에도 좋습니다. 뼈째 먹을 수 있는 생선이라 칼슘이 풍부해 노년층의 관절염·골다공증 예방에도 좋습니다.     가을 전어 못지않게 한의학적으로 건강에 좋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양릉천(陽陵泉)혈입니다. 이 혈은 담경(膽經)에 속하며 무릎 아래 종아리뼈 머리 앞·아래쪽에 위치합니다. 근육·관절 질환의 대표 혈자리로 뻣뻣함, 경련, 마비, 관절통 완화에 좋습니다. 또한 담 기능을 조절해 소화 장애, 담낭염, 담석증에도 활용되며, 중풍 후유증 재활에도 쓰입니다. 가을철 건강관리의 묘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냄새로 돌아왔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돌아왔든, 이런 설화가 이어져 내려온 것을 보면 고부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사회적 문제였던 듯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고급 아파트 이름은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어렵게 외국어가 길게 붙어야 잘 팔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가을은 기운이 수렴하는 계절입니다. 욕심과 과도한 언행을 줄이고,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렸다면 며느리가 집을 나갈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친김에 오늘 저녁은 전어구이를 해 먹어야겠습니다. 집 나간 며느리를 기다리는 시어머니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강병선 / 한의학 박사·강병선 침뜸병원 원장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가을 전어 가을 전어 가을철 건강관리 전어 냄새

2025.10.1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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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는 가을

  지난 14일 오후, 한국 광주 북구 용강동 일대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드넓은 들판 한가운데서 한 농부가 농기계를 몰며 벼를 수확하는 모습이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장맛비를 견뎌낸 벼 이삭들은 이제 알차게 익어 고개를 숙였고, 들판 위에는 수확의 뿌듯함이 쌓이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순환이 만들어낸 가을의 장관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결실의 계절, 들녘은 그 자체로 한 폭의 풍경화처럼 평화롭고 아름답다.   [연합]가을 계절 들녘 북구 용강동 들판 한가운데

2025.10.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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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가을에 온 손님

집 안의 여러 군데가 눈에 들어온다. 부엌 싱크대가 있는 뒤 벽면이 거슬린다. 물이 튀겨서 까맣고 빨간 곰팡이가 피었다. 집안의 수리공인 남편은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시꺼메진 실리콘을 뜯어내고 다시 바르고 있다. 부엌 캐비닛에도 밀가루와 양념 같은 것이 말라서 달라붙어 있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이층 손님 방은 오하이오와 시카고에서 오는 친구가 묵을 것이다.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고, 이불은 빨아 놓았다. 민트색과 하늘색의 타월 두 세트도 사 놓았다. 아래층 작은 방은 플로리다에서 온 친구가 묵을 것이다.   나는 집 안 청소와 음식 준비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이렇게 하면 마치 오래전 잘못이 없어지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삼십오 년 전, 케네디 공항으로 손님을 마중 나가기 전날이다. 아 뭐를 해야 하지. 어릴 적에 엄마가 손님이 오실 때면 김치부터 담그던 것이 생각났다. 무슨 배짱에서 배추랑 무랑 양념을 사들고 왔는지, 그것도 다 저녁에 나가서, 김치가 한두 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았나 보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배추가 널브러진 채로, 무는 부엌 바닥을 구르고, 퍼질러진 파, 소금, 고춧가루가 얼룩진 부엌을 그대로 두고 공항으로 나갔다.   몇 년 만에 손주와 딸과 사위를 본 엄마는 기분이 최고로 좋았다. 환하게 웃으며 당시 세 들어 살던 집으로 들어왔다. 부엌을 보더니 엄마의 안색이 변했다. “이게 다 뭐니?” “김치 담그려고” “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었니? 조금 사 먹지.” “아니, 엄마가 온다기에 담그려고.”   엄마의 얼굴에 한심한 기색이 확 번졌다. 눈썹이 올라가면서 버럭 화를 냈다. “내가 김치 먹으러 미국에 왔니!!” 어리숙한 딸에 대한 염려가 꾸중으로 올라왔다.   결국 엄마는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김치를 수습하느라 도착한 하루를 꼬박 보냈다. 나는 머리가 하얘져서 별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김치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김칫소를 넣으면서 엄마는 한숨처럼 나직하게 말했다. 아 그렇구나, 엄마는 김치를 잘 드시지 않는구나.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엄마는 시커먼 부엌 바닥을 닦느라고 내가 출근한 사이에 온종일 청소했다. 마루에 깔린 꺼칠한 카펫은 하도 낡아서 회색인지 검정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집안 전체가 색깔 없는 색이었다.   엄마가 한국으로 가시기 전날 끓여 주던 미역국, 듬뿍 얹은 고기 사이로 참기름이 반지르르하던 국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나는 막 취직이 된 일년생 교사로 말 같은 고등학생을 상대하다가 지쳤는지, 나의 고가 점수를 매기는 교장과 교감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지치고 심드렁한 얼굴로 퇴근하곤 했다. 엄마는 불룩한 책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나를 반색하셨다. “미연아 이거 먹어봐라, 참 맛있다.”   나는 미역국을 흘깃 한번 보고는 할 게 많다며 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무슨 죄나 지은 사람처럼 간절한 눈으로 나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나를 보러 올 친정엄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대신에 비행기를 타고 친구가 나를 보러 온다. 보름달처럼 살이 찐 애호박은 잘라서 말려 놓았다. 앞뜰에는 가을볕에 무르익은 보라색 가지가 귀고리를 드리우고 있다. 흰색도 있어야 하니 들깨가루를 넣고 숙주도 무쳐놓았다. 주홍색 당근, 살짝 갈색이 돌게 볶은 표고버섯에, 근대국까지…. 친구들이 공항에서 내리면 피곤해서 저녁은 깔끔한 비빔밥이 좋을 것이다.   나는 멀리서 오는 친구들을 맞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마치 옛날 그 누군가에 대한 잘못을 빌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김미연 / 수필가이아침에 가을 부엌 바닥 부엌 캐비닛 부엌 싱크대

2025.09.3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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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텍사스 다양한 가을 축제 행사

 여름이 저물고 가을의 기운이 찾아오면 북 텍사스는 호박 농장, 각종 축제, 건초 마차 체험, 할로윈 행사 등 다채로운 이벤트로 활기를 띤다. 다음은 28일자 달라스 모닝 뉴스가 소개한 달라스-포트워스 지역에서 열리는 가을 축제 가이드다.(※ 날씨 등으로 인한 일정 변경 가능성이 있으니 방문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텍사스주 박람회(STATE FAIR OF TEXAS) 가장 사랑받는 가을 전통 행사로 올해로 138회째를 맞았다. 입장시 ‘빅 텍스(Big Tex)’에게 인사한 뒤, 24일 동안 새로운 프라이드 푸드, 미드웨이 놀이기구, 가축 전시, 그리고 다양한 텍사스 문화와 가족 친화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기간: 9월 26일~10월 19일 -시간: 일~목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 금·토요일 오전 10시~오후 10시 -장소: 달라스 페어 파크(3809 Grand Ave., Dallas) -요금: 성인 15~25달러, 어린이·노인 5~18달러, 2세 이하 무료 ■코튼우드 아트 페스티벌(COTTONWOOD ARTS FESTIVAL) 미전역에서 모인 200여명의 예술가들이 회화, 조각, 도자기, 보석, 사진, 섬유, 유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는 권위 있는 미술 축제다. 올해의 초청 작가는 다비드 델 솔라(David Del Solar)다. -기간: 10월 4일 오전 10시~오후 7시, 10월 5일 오전 10시~오후 5시 -장소: 리처드슨 코튼우드 파크 (1301 W Belt Line Road, Richardson) -요금: 무료 ■덴튼 할로윈(DENTON HALLOWEEN) 덴튼은 지난해 처음으로 ‘31일간의 덴튼 할로윈’을 열었고, 올해는 공식적으로 ‘텍사스 할로윈 수도’로 지정됐다. 매일 다양한 공포 테마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영화 상영회, ‘펌프킨 드롭 블록토버’ 파티, 바 크롤, 15개 이상의 장소에서 무료로 열리는 이벤트가 포함된다. -기간: 10월 1일~11월 1일 -장소: 덴튼 시내 전역 -요금: 무료(일부 행사 유료) ■오쓰키미 달맞이 축제(2025 OTSUKIMI MOON VIEWING FESTIVAL) 북 텍사스 최대 규모의 일본 문화 행사다. 제26회 오쓰키미 달맞이 축제에서는 음악 공연, 푸드트럭, 일본 관련 벤더 부스, 일본 문화 시연 등이 마련된다. -기간: 10월 4일 오후 6시~10시 -장소: 플레이노 해가드 파크 (901 E. 15th St., Plano) -요금: 무료 ■스위치 야즈 페스티벌(FESTIVAL AT THE SWITCH YARDS) 캐롤튼을 지도에 올린 철도의 역할을 기념하는 축제다. 무료 콘서트, 놀이기구, 게임, 전시 등을 통해 도시의 역사와 미래를 조명한다. -기간: 11월 8일 오전 11시~오후 10시 -장소: 캐롤튼 옛 시가지 -요금: 무료   〈손혜성 기자〉텍사스 가을 가을 축제 텍사스주 박람회 텍사스 문화

2025.09.30.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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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여전히 따뜻한 가을

  이번 여름 토론토와 광역토론토 지역(GTA)은 긴 폭염과 높은 습도로 무더운 날들을 보냈지만, 가을 초반 날씨도 비슷하게 온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을 날씨 전망 데이비드 필립스 캐나다 환경청 수석 기후학자는 “가을은 평균적으로 10월에 9월보다 약 7도, 11월에는 6도 정도 더 선선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11월 중순까지 기온이 13도 정도 내려가도 정상 범위”라며, 여전히 쾌적한 가을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첫 서리는 10월 9일경 나타나지만, 지난해에는 11월 말까지 늦춰졌다.   2025년 여름 회고 2025년 여름은 늦게 시작해 일찍 끝나는 특징을 보였다. 필립스는 “6월 마지막 주까지는 무더위와 습도를 느끼지 못해 ‘올해 여름이 없을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며, 이후 약 55일간 늦은 6월부터 8월 중순까지 극심한 더위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특히 30도 이상 고온일이 24일로, 평년의 두 배에 달했으며, 열대야(밤 기온 20도 이상)도 두 배 더 많았다. 며칠간은 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까지 올라가 습도까지 더해졌다고 전했다.   미래 날씨 전망 필립스는 이번 여름의 기후가 2050년 GTA 지역 날씨를 미리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기적으로는 연간 최대 90일에 달하는 고온과 높은 습도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달간은 매우 쾌적했다고 평가하며, “에어컨을 켤 필요가 없고 비용 부담도 적었다. 완벽한 10점은 아니지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여름 마지막 날 토론토 기온은 20도 초반이었지만 체감온도는 25도에 가까웠다. 임영택 기자 [email protected]토론토 GTA 캐나다 캐나다날씨 가을 여름

2025.09.29.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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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가을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심 공원이자 왕립공원인 영국 런던 리치몬드 공원에 가을이 찾아왔다. 955헥타르에 달하는 공원은 사슴 등 야생동물 특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공원의 울창한 숲이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가을 정취가 아름다운 곳이다. 26일 공원 호수 위 자욱한 아침 안개를 뚫고 황금빛 여명이 번지는 가운데 왜가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있다.   [로이터]런던 가을 런던 리치몬드 가을 정취 공원 호수

2025.09.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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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가을에 온 손님

집 안의 여러 군데가 눈에 들어온다. 부엌 싱크대가 있는 뒤 벽면이 거슬린다. 물이 튀겨서 까맣고 빨간 곰팡이가 피었다. 집안의 수리공인 남편은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시꺼메진 실리콘을 뜯어내고 다시 바르고 있다. 부엌 캐비넷에도 밀가루와 양념 같은 것이 말라서 달라붙어 있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이층 손님 방은 오하이오와 시카고에서 오는 친구가 묵을 것이다.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고, 이불은 빨아 놓았다. 민트색과 하늘색의 타월 두 세트도 사 놓았다. 아래층 작은 방은 플로리다에서 온 친구가 묵을 것이다.     나는 집 안 청소와 음식 준비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이렇게 하면 마치 오래전 잘못이 없어지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삼십오 년 전, 케네디 공항으로 손님을 마중 나가기 전날이다. 아 뭐를 해야 하지. 어릴 적에 엄마가 손님이 오실 때면 김치부터 담그던 것이 생각났다. 무슨 배짱에서 배추랑 무랑 양념을 사 들고 왔는지, 그것도 다 저녁에 나가서, 김치가 한두 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았나 보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배추가 널브러진 채로, 무는 부엌 바닥을 구르고, 퍼질러진 파, 소금, 고춧가루가 얼룩진 부엌을 그대로 두고 공항으로 나갔다.     몇 년 만에 손주와 딸과 사위를 본 엄마는 기분이 최고로 좋았다. 환하게 웃으며 당시 세 들어 살던 집으로 들어왔다. 부엌을 보더니 엄마의 안색이 변했다. 이게 다 뭐니? 김치 담그려고. 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었니? 조금 사 먹지. 아니, 엄마가 온다기에 담그려고. 엄마의 얼굴에 한심한 기색이 확 번졌다. 눈썹이 올라가면서 소리가 버럭 나왔다. “내가 김치 먹으러 미국에 왔니!!” 어리숙한 딸에 대한 염려가 꾸중으로 치맡아 올라왔다.     결국 엄마는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김치를 수습하느라 도착한 하루를 꼬박 보냈다. 나는 머리가 하얘져서 별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김치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김칫소를 넣으면서 엄마는 한숨처럼 나직하게 말했다. 아 그렇구나, 엄마는 김치를 잘 드시지 않는구나.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엄마는 시커먼 부엌 바닥을 닦느라고 내가 출근한 사이에 온종일 청소했다. 마루에 깔린 꺼칠한 카펫은 하도 낡아서 회색인지 검정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집안 전체가 색깔 없는 색이었다.   엄마가 한국으로 가시기 전날 끓여 주던 미역국, 듬뿍 얹은 고기 사이로 참기름이 반지르르하던 국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나는 막 취직이 된 일년생 교사로 말 같은 고등학생을 상대하다가 지쳤는지, 나의 고가 점수를 매기는 교장과 교감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지치고 심드렁한 얼굴로 퇴근하곤 했다. 엄마는 불룩한 책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나를 반색하셨다. “미연아 이거 먹어봐라, 참 맛있다.”     나는 미역국을 흘깃 한번 보고는 할 게 많다며 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무슨 죄나 지은 사람처럼 간절한 눈으로 나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나를 보러 올 친정엄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대신에 비행기를 타고 친구가 나를 보러 온다. 보름달처럼 살이 찐 애호박은 잘라서 말려 놓았다. 앞뜰에는 가을볕에 무르익은 보라색 가지가 귀고리를 드리우고 있다. 흰색도 있어야 하니 들깻가루를 넣고 숙주도 무쳐놓았다. 주홍색 당근, 살짝 갈색이 돌게 볶은 표고버섯에, 근대국까지… 친구들이 공항에서 내리면 피곤해서 저녁은 깔끔한 비빔밥이 좋을 것이다.     나는 멀리서 오는 친구들을 맞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마치 옛날 그 누군가에 대한 잘못을 빌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가을 부엌 바닥 부엌 캐비넷 부엌 싱크대

2025.09.23. 17:30

요즘 애틀랜타 “가을인데 가을 같지 않네”

가을의 첫날인 추분(22일)을 지났지만 애틀랜타의 한낮은 여전히 덥다. 그럼에도 뒷마당에서는 벌써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음을 본다.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예보에 따르면, 조지아의 올 가을(9~11월)은 40~50% 확률로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여름부터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단풍이 물들기도 전에 잎이 갈색으로 마르고 일찍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립기상청(NWS)의 메레디스 와이어트 예보관은 애틀랜타 저널(AJC)과의 인터뷰에서 “대체로 평년보다 따뜻한 가을이 될 것”이라면서도 “구름 낀 날이 많은 10월 들어서야 때때로 선선한 날씨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메트로 애틀랜타의 낮 최고기온은 화씨 80도대 후반에서 가끔 90도대까지 오르며 이 시기의 예년 기온(화씨 80도, 섭씨 약 27도)을 크게 웃돌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애틀랜타는 10월이 돼서야 낮 최고기온이 70도대 중반 이하로 꾸준히 유지되며, 핼러윈 무렵이 되면 본격적으로 선선한 가을 날씨가 이어진다.     가뭄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초 많은 비가 내린 이후 애틀랜타의 여름철 강수량은 평년보다 약 2인치 못미쳤다. 특히 9월 들어 현재까지 강수량은 0.25인치에 불과, 예년치(3.82인치)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풀턴, 캅, 캐롤, 더글러스, 페이엇, 폴딩 등 일부 카운티는 이미 가뭄 단계(moderate drought)에 들어섰으며, 조지아 전역에서 ‘비정상적으로 건조’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건조한 날씨로 9월 1~19일 사이 115건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이는 최근 5년간 평균치보다  12% 증가한 수치다.     다만, NOAA의 가을 예보에서는 전반적으로 평균 수준의 강수량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조지아 남부 지역은 평년보다 많은 비가 내릴 확률이 30~50%여서 가뭄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지민 기자가을 애틀랜타 가을 날씨 가을 예보 애틀랜타 저널

2025.09.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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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조동진, 가을의 길목에서 다시 만나다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고 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 나뭇잎 사이로 여린 별 하나/ 그 별빛 아래로 너의 작은 꿈이.'   계절은 가을로 가고 있다. 가을이 되면서 더욱 생각나는 조동진의 명곡 '나뭇잎 사이로'의 가사다.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이자 '얼굴 없는 가수'의 효시였던 그는 1978년 첫 앨범 '행복한 사람'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1980년 발표한 2집 앨범의 '나뭇잎 사이로'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서른을 넘어 뒤늦게 솔로로 데뷔했지만, 그는 평생 여섯 장의 앨범만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그의 1집 앨범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에 밥 딜런이 있다면 한국에는 조동진이 있다고 할 만큼, 그는 계절의 변화와 삶의 진리를 주옥같은 노랫말에 담아냈다. '제비꽃', '겨울비', '진눈깨비', '빗소리' '달빛 아래서', '해 저무는 공원', '배 떠나네'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그의 노래들은 계절과 시간, 그리고 우리들의 인생과 사랑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낮은 목소리, 느린 걸음걸이, 깊은 눈빛, 그리고 맑고 청아한 통기타 선율을 떠올린다. 그를 추억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끝내 이루지 못했던 LA 단독 콘서트의 꿈을 추모 콘서트로라도 대신하고 싶었다.     지난 12일 가을의 문턱에서 그를 추억하는 많은 이들이 LA에서 모였다.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음악을 이야기하고, 이민 생활의 고단함을 서로에게 털어놓는 동안, 그의 노래는 마치 그가 우리 곁에 다가와 나지막하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한밤의 선율은 공연장 안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팝 피아니스트 김영균, 플루트와 색소포니스트 주훈, 트럼펫 연주자 강진한, 드러머 듀크 김, 보컬 겸 기타리스트 박강서, 그리고 주성까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뭉친 이들의 앙상블은 조동진의 '제비꽃'에서 절정에 달했다.   조동진이 서른여덟이 되어서야 세상에 내놓았다는 '제비꽃'은 인간의 성장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다'는 노랫말처럼, 사람에 대한 그의 깊은 애착은 공연장을 찾은 모두에게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날 공연에는 조동진이 음악의 꿈을 키웠던 7인조 재즈 록 밴드 '쉐그린'의 멤버 이태원과 전언수까지 서울과 뉴욕에서 날아와 그 의미를 더했다.   가수는 자신이 부른 노래처럼 그 인생이 흘러간다고 했던가. 불후의 명곡 '행복한 사람'을 모두가 떼창을 하는 그 순간 영상 속 그의 모습은 더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가을의 한 페이지는 조동진의 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으로 또 넘어가고 있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조동진 가을 조동진 가을 한국 대중음악사 언더그라운드 음악

2025.09.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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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텍사스에 성큼 다가온 가을, 각종 문화 축제로 ‘풍성’

 아침 저녁으로 찬 기운이 돌면서 북텍사스에 가을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온 분위기다. 이맘때면 독일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를 비롯해 다양한 축제들이 곳곳에서 열린다. 흘러가는 텍사스의 여름을 아쉬움으로 달래고, 다가올 가을의 정취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각종 축제들을 즐겨보자.〈편집자주〉   매키니 옥토버페스트 일시: 9월26일(금)~28일(일) 장소: Downtown McKinney 주소: 111 N Tennessee St, McKinney, TX 75069 입장료: 무료 문의: mckinneytexas.org/664/Oktoberfest 맥주, 브라트부르스트, 커다란 바이에른식 프레첼과 페이스트리, 춤, 활기찬 폴카 음악을 좋아한다면 2025년 9월 26일~28일에 열리는 매키니의 연례 옥토버페스트 축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통 독일 음식, 국산 및 수입 맥주, 게임(항상 인기 있는 위니도그 경주 포함), 어린이 구역, 그리고 물론 카니발을 길 수 있다.     애디슨 옥토버페스트 일시: 9월18일(목)~21일(일) 장소: Addison Circle Park 주소: 4970 Addison Circle, Addison, Texas 75001 입장료: $15.00부터 문의: addisonoktoberfest.com 애디슨 옥토버페스트에서 정통 바이에른 축제의 풍미를 텍사스 특유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디른들과 레더호젠을 입고 나흘 동안 독일 문화, 음식, 음악, 그리고 맥주를 만끽할 수 있다. 애디슨 서클 공원의 여러 무대에서 폴카 밴드와 전통 엔터테이너들의 연주를 감상하고, 맥주 애호가, 모든 연령대의 어린이, 닥스훈트 등을 위한 특별 게임에 참여해 볼 것을 권한다. 좋아하는 독일 맥주잔을 들고 “Prost Y’all!”을 외쳐 보자.   어빙 옥토버페스트 & 하프 마라톤 일시: 10월4일(토) 장소: The Plaza at Toyota Music Factory 주소: 330 W Las Colinas Boulevard, Irving, TX 75039 입장료: $116.99부터 문의: irvingmarathon.com 어빙 옥토버페스트 하프 마라톤은 어빙의 토요타 뮤직 팩토리(Toyota Music Factory)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다. 이 대회는 어빙 학교 재단을 돕기 위해 개최된다. 라스 콜리나스 시내를 통과하는 빠르고 평탄한 USATF 인증 코스, 독일 음식과 엔터테인먼트가 어우러진 경기 후 옥토버페스트 파티가 특징이다. 또한, 하프 마라톤, 10km, 5km 등 경쟁적인 종목과 일반 종목 모두 참가할 수 있다. 이 행사는 전문적인 사진 촬영, 팀 챌린지, 활기찬 분위기 등의 혜택을 통해 공동체 의식, 동지애, 그리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리스코 옥토버페스트 일시: 10월4일(토) 장소: The Star in Frisco 주소: 1 Cowboys Way, Frisco, TX 75034 입장료: 무료 문의: friscooktoberfest.com 프리스코 옥토버페스트 2025는 10월 4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프리스코의 더 스타에서 열리는 하루 동안 즐길 수 있는 무료 축제다. 참가자들은 전통 독일 음식과 맥주, 라이브 음악, 그리고 닥스훈트 달리기, 브랫 먹기 대회, 맥주잔 들어올리기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SBG 호스피탈리티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지역 업체들이 참여하며, 음식과 음료를 구매할 수 있다.   캐롤튼 컬쳐 페스트 일시: 9월27일(토) 장소: Historic Downtown Carrollton 주소: 1100 Elm St, Carrollton, TX 75006 입장료: 무료 문의: cityofcarrollton.com/culturefest 9월27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오후 9시까지 캐롤턴 역사지구에서 열리는 캐롤턴 문화 축제는 새롭게 조성된 Bevvy Blvd 거리에서 열리는 무료 가족 친화적 이벤트로, 폴리네시아, 방그라, 사자춤, 삼바와 같은 라이브 공연, 장인 및 공예품 판매업체, 그리고 대화형 문화 활동을 통해 다양한 세계 문화를 선보인다.   이 행사는 캐롤튼 다운타운을 세계적인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시켜 줄 만큼 모든 연령대를 위한 다양한 요리, 공예품,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플레이노 열기구 페스티벌 일시: 9월18일(목)~21일(일) 장소: Oak Point Park 주소: 2801 E. Spring Creek Parkway, Plano, TX 75074 입장료: 성인 $10.00, 아동 $5.00 문의: planoballoonfest.org HEB와 센추럴마켓(Central Market)이 후원하는 플레이노 열기구 페스티벌(Plano Balloon Festival)은 9월18일부터 21일까지 오크 포인트 파크(Oak Point Park)에서 열리는 4일간의 행사로, 열기구 발사 및 빛, 스카이다이빙, 불꽃놀이, 어린이 놀이 공간,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클래식 자동차 쇼와 포르티요 비프 버스 등 새로운 볼거리와 함께 가족 친화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포트워스 옥토버페스트 일시: 9월25일(목)~27일(토) 장소: Trinity Park 주소: 2401 University Dr., Fort Worth, TX 입장료: $10.00부터 시작 문의: fortworthoktoberfest.com 포트워스 옥토버페스트 9월25일부터 27일까지 트리니티 파크에서 열리는 3일간의 바이에른 테마 축제로, 독일 음식, 맥주, 알렉스 믹스너 밴드와 같은 라이브 폴카 밴드의 공연, 카니발 놀이기구, 그리고 장인 시장이 펼쳐진다. 5km 달리기 및 펀 런, 맥주잔 들어올리기, 맥주통 굴리기 등의 경연 대회, 그리고 에어컨이 완비된 다양한 행사가 포함된다. 사전에 티켓을 예매할 경우 기념 맥주잔이 제공되며 성인 동반 시 12세 미만 어린이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달라스 맥주 페스티벌 일시: 10월25일(토) 장소: Old City Park 주소: 1515 S Harwood St, Dallas, TX 75215 입장료: $50.00부터 문의: dallasbrewfestival.com 달라스 맥주 페스티벌이라고도 불리는 달라스 브루 페스티벌(Dallas Brew Festival)이 10월25일 토요일 올드 시티 파크(Old City Park)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50개 이상의 양조장과 150종의 맥주, 사이다, 그리고 기타 수제 음료가 준비된다. 80년대와 90년대 커버 밴드의 라이브 음악, 잔디밭 게임, 푸드 트럭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며, 입장료에는 시음도 포함된다.     매키니 와인 & 뮤직 페스티벌 일시: 10월11일(토) 장소: District 121 주소: 6731 Alma Rd, McKinney, TX 75070 입장료: $35.00부터 문의: mckinneywinefestival.com 제9회 맥키니 와인 & 뮤직 페스티벌이 10월11일 토요일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맥키니의 121지구에서 개최된다. 수백 가지 와인을 시음하고, 무대에서 라이브 음악을 즐기고, 현지 풍미를 맛보고, 대화형 공급업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참석자들은 다운타운 피버, 페니 앤 더 플레임스로어스, 크리스 스테이플턴 트리뷰트 밴드인 트래블러 등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어빙 마가리타 페스티벌 일시: 9월20일(토) 장소: Toyota Music Factory 주소: 316 W Las Colinas Blvd., Irving, TX 75039 입장료: $20.00부터 문의: www.irvingtexas.com 어빙 마가리타 페스티벌(Irving Margarita Festival)이 9월 20일 토요일 토요타 뮤직 팩토리에서 열린다. 이 행사에는 마가리타 시음 대회, 라이브 음악, 음식 판매대, 그리고 멕시코 여행 경품 추첨이 등이 마련된다.       〈토니 채 기자〉북텍사스 가을 애디슨 옥토버페스트 연례 옥토버페스트 문화 음식

2025.09.12.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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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귀뚜라미 때문에 가을이 온다

숨이 막힌다. 9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일주일 넘어 계속되고 있다. 요즘 더위는 평년 남가주 날씨가 아니다. 전에는 햇볕은 따가워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뜨겁고 건조했던 더위가 습하고 끈적거리는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 에어컨을 오래 켜 놓으니 몸이 찌뿌드드하다. 몸살이 날 것 같다.   밤이 되어도 여전히 후덥지근 하지만, 에어컨을 끈 채 창문을 열고 자리에 눕는다. 열린 창문으로 요란한 풀벌레 소리만 들려온다. 그중 으뜸은 귀뚜라미 소리다. 벌써 철이 이렇게 되었나. 찬 바람이 불어야 풀벌레가 우는 줄 알았더니 이 더위에 너희도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안 되겠다.   베개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마루에 얇은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한다. 조용한 집안에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언제부터인가 집안에 동거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다른 곤충과 달리 귀뚜라미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여 가끔 눈에 띄어도 못 본 척 그냥 두었더니 그 수가 늘어난 모양이다.     하지만, 울음소리가 이렇게 시끄러운지 미처 몰랐다. 너는 어쩌다 내 집에 들어와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어 주인의 잠까지 방해하며 울어댄단 말이냐.   저 녀석은 수컷이 분명하다. 귀뚜라미는 수컷만 운다고 들었다. 짝짓기할 때가 되면 날개의 돌기를 서로 비벼서 소리를 내는데 그게 바로 우는소리라 했다. 암컷을 부르는 소리다. 멀리 있는 암컷을 부를 때는 큰소리를 내고 가까이 있는 짝과 사랑을 나눌 때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지금 저 녀석의 소리는 멀리 있는 짝을 부르는 소리임이 분명하다.   어릴 적, 솜씨 좋은 동네 오빠가 여치 집을 만들어주었다. 반들반들 노란빛이 나는 밀짚으로 만든 여치 집은 집안에 걸어두어도 장식품처럼 멋이 있었다. 대청마루 서까래 기둥에 매어 놓은 여치 집에는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귀뚜라미나 여치가 들어가 울어 댔다. ‘또르르르, 치르치르.’     저녁을 마친 식구들은 쑥대로 모깃불을 피워놓고 마루에 누워 더위를 식혔다. 여치 집에서 풀벌레들이 울자 우리는 그것을 흉내 내어 소리를 내었다. 신기하게도 녀석들은 울음을 딱 멈추었다. 우리가 따라 멈추면, 그들은 침묵을 깨고 다시 울어 댔다. 그들이 울면 우리도 울고 멈추면 따라 멈추길 반복하며 귀뚜라미와 돌림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어서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옛날 풍류를 아는 양반들은 여치 집을 가까이에 걸어두고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즐겼다는데, 아마 그 흉내를 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저 소리가 하나도 즐겁지 않다. 무언가로 바닥을 두드리면 귀뚜라미는 일순 소리를 멈춘다. 그러다 조용해지면 다시 울어댄다. 제발 소리를 멈추어 나로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다.     누군가는 반박할지 모른다. 요즘 귀뚜라미나 풀벌레 소리를 저장하여 수면을 유도하는 백색소음이라고 값을 내고 듣는다는데, 대가 없이 울어준다는 녀석을 왜 구박하는가 하고 말이다.   귀뚜라미, 여치, 베짱이, 풀벌레…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귀뚜라미 우는 밤’ 유년의 가을을 아련하게 만들었던 동요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막막한 밤하늘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막연한 무엇을 그리워하면서. 아마도 유년에서 사춘기로 넘어가는 시간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이희승 선생은 ‘청추 수제’에서 다섯 가지를 일컬어 가을을 상징하는 소재로 삼았다. 벌레, 달, 이슬, 창공, 독서, 다섯을 불러와 가을이라는 이름을 완성하였다. 그중 첫 번째 소재 벌레를 통해 귀뚜라미를 가을의 전령사로 소개했다. 낭만이 있는 많은 이들도 귀뚜라미를 가을의 손님이니 가을의 소리니 하며 이름을 지어 올렸다.   가수 안치환은 나희덕의 시, ‘귀뚜라미’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그가 노래한 귀뚜라미는 시골집 초가지붕과 싸리로 만든 울타리가 아닌, 도시의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우는 귀뚜라미다. 지금은 매미 소리에 묻혀 그의 울음은 아직 노래가 아니다. 가을이 오는 소리에 매미는 가고 이제는 그의 세상이다. 어둡고 습한 밤이 오면 숨 막히게 울어댄다. 누구의 가슴 하나 울리는 노래이길 바라면서. 때를 기다리는 건 귀뚜라미나 사람이나 매일반이다. 지금은 그의 시간, 모든 것은 한때다.   이 외에도 시를 사랑하고 가슴이 따뜻한 많은 사람이 귀뚜라미를 노래했다. 가을을 부를 때는 녀석도 함께 불러올렸다. 바로 곁에서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그의 소리에 잠은 이미 천리만리 달아나 버렸다. 어느 가슴에 닿으려고 저리 울어대는가. 네가 보내는 타전 소리가 세상에 시달리고 지친 어떤 이에게 다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냐.   녀석의 수명은 일 년밖에 되지 않는다. 가을이 오면 짝짓기를 한 암컷은 땅속에 알을 낳고 죽는다. 수컷 역시 힘을 다해 짝짓기하고 추운 겨울에 이르러, 알을 낳고 죽은 암컷처럼 땅속에서 죽는다. 겨우 일 년, 신의 섭리대로 종족 번식에 이바지하고 떠나는 셈이다.   무더위 속에 가을이 숨어있다. 귀뚜라미 때문에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귀뚜루루 귀뚜루루…. 온 힘 다해 울어대는 저 녀석들 덕택에. 정유환 / 수필가문예마당 귀뚜라미 가을 귀뚜라미 울음소리 귀뚜라미 소리 귀뚜라미 여치

2025.09.11. 18:49

가뭄에 캐나다 단풍 빛바램 우려

  캐나다 전역에서 이어진 가뭄으로 올가을 단풍이 예년만큼 화려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수분 부족으로 나무가 제 색을 내기 전에 잎이 말라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붉은빛 대신 갈변 현상 확산 맥매스터대학 생물학 전문가 수전 더들리 교수는 “올해는 단풍이 예쁘게 물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며 “나무가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잎이 붉게 변하기도 전에 죽어버린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온타리오 남부 지역에서는 이미 갈색으로 말라버린 잎들이 발견되고 있다.   색 변화 원리와 가뭄 영향 가을이 되면 잎의 엽록소가 분해되며 노란색·주황색 색소가 드러난다. 단풍나무·참나무·개암나무 등은 이 시기에 붉은빛과 자주빛을 내는 ‘안토시아닌’ 색소를 합성한다. 그러나 가뭄에 시달리는 나무는 에너지가 부족해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잎을 일찍 떨어뜨린다.   더들리는 “이 색소는 일종의 ‘자외선 차단제’ 역할을 하며 광합성이 무너지는 시기에도 영양분 흡수를 돕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나무는 보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전국 70% 건조 피해 캐나다 가뭄 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전국의 70% 이상이 비정상적인 건조 또는 가뭄 상태를 겪었다. 아카디아대학 조에 팬첸 교수는 “노바스코샤에서도 잎이 말라 떨어지고 있으며, 이는 단풍의 조기 붕괴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흡수량 감소와 산불 확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날씨가 변수 다만 전문가들은 올가을 기후 조건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낮에는 화창하고 밤에는 일정하게 서늘한 기온이 이어지면 나무 잎에 당분이 갇히고, 이 당분이 안토시아닌 생성을 촉진해 붉은 단풍을 형성한다. 팬첸 교수는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며 “가을 날씨가 안정된다면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택 기자 [email protected]캐나다 가뭄 캐나다 단풍 가을 날씨 기후변화

2025.09.0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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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 활짝 핀 코스모스

  9월로 접어들었지만 남가주에서는 아직 한낮의 볕이 뜨겁다. 이번 주말인 7일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백로’다.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24절기 중 처서와 추분 사이에 있는 15번째 절기다. 통상 늦더위가 사그라지는 계절의 분기점은 다음 절기인 추분(22일)이라고 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라 흔히 ‘이분(二分’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4일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이날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탑동시민농장에 황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있다.     [연합]코스모스 가을 황화 코스모스 권선구 탑동시민농장 추분 사이

2025.09.0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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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라이트 DDP 2025’ 가을로 이어간다

올 여름 서울에서 51만명을 불러모으며 성황리에 마무리된 ‘서울라이트 DDP 2025’가 가을에도 이어진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오는 28일부터 9월 7일까지 열흘간 ‘서울라이트 DDP 2025 가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주제는 ‘EVERFLOW: 움직이는 장(場)’이다.   프랑스 개념미술가 로랑그라소는 우주 데이터와 역사 이미지를 결합한 초대형 미디어파사드를, 디지털 디자인 선두주자 디스트릭트는 몰입형 시리즈를 선보인다. 대만 미디어 아티스트 아카 창의 레이저 인스톨레이션도 DDP 미래로 하부에서 공개된다.     특히 재단은 OpenAI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AI 영상 생성 플랫폼 ‘소라(Sora)’ 기반 작품을 전면 공개한다. 작가 최세훈과 티모헬거트가 ‘자연’을 주제로 제작한 미디어아트가 가을 시즌 무대에 오른다.     개막일인 28일 오후 8시에는 아카 창의 레이저 인스톨레이션과 오프닝 퍼포먼스가 진행되며, 9월 2일에는 로랑그라소, 디스트릭트, OpenAI가 참여하는 포럼이 열린다. 세부 일정과 참여 방법은 웹사이트(ddp.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10일까지 열린 ‘서울라이트 DDP 2025 여름’은 개관 이후 처음 공원부 중심으로 진행돼 11일간 51만 명의 발길을 모았다.     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는 “여름 시즌 성원을 바탕으로 가을에는 세계 최대 비정형 미디어파사드 축제를 확장해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서울라이트 가을 가을 시즌 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초대형 미디어파사드

2025.08.14. 20:52

교통혼잡료, 최소 올 가을까지 유지 전망

시행 이후에도 잡음이 이어지고 있는 교통혼잡료 프로그램이 적어도 올해 가을까지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7일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연방정부와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는 적어도 올 가을까지는 교통혼잡료 프로그램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4일 MTA 측 변호사가 맨해튼 연방법원에 ‘MTA와 교통부는 교통혼잡료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10월 말~11월 초에 내리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제출한 것.     앞서 교통부는 주정부 관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3월 21일까지 교통혼잡료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고,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와 MTA는 즉각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교통혼잡료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후 숀 더피 교통부장관은 “뉴욕주와의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교통혼잡료를 폐지할 시간을 30일 더 주겠다”며 교통혼잡료 폐지 시한을 한 달 연장했다.     다만 교통부가 연방 지원금 삭감을 빌미로 MTA를 압박했던 만큼, 연방정부가 교통혼잡료를 더 빨리 폐지하도록 추가적인 압력을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더피 장관은 “뉴욕시 대중교통 시스템의 범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연방 지원금을 보류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MTA는 연방정부로부터 약 130억 달러 지원금을 받았으며, 이미 적자에 허덕이는 MTA에 연방 지원금까지 끊기면 각종 문제가 심각해질 전망이다.     MTA가 연방정부로부터 많은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교통부가 지원금을 빌미로 압박한다면 계속해서 교통혼잡료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뉴욕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시에나칼리지 여론조사 결과 42%의 뉴요커들이 교통혼잡료 프로그램에 찬성했으며, 35%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호컬 주지사는 “교통혼잡료 프로그램 시행 이후 교통 체증이 줄어들고, 출·퇴근 시간이 더 빨라졌다”며 프로그램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지혜 기자 [email protected]교통혼잡료 가을 교통혼잡료 프로그램 교통혼잡료 폐지 교통혼잡료 최소

2025.04.08. 21:33

주광옥 합창단 가을 공연 참가 단원 모집

 합창단 가을 합창단 가을 참가 단원

2025.03.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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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가을 해변

가을 바다 끝자락에   해수욕장 하나       같이 걷던 발자국   찾을 길 없어       하얀 모래밭에   홀로 앉아       밀려오는 하얀   물결 안으면       여윈 가슴에   갈매기 운다       사랑의 색깔은   노을보다 고아도       해변의 약속은   바람 같은 것       수평선 넘어가는   아득한 추억       하이얀 머릿결에   황혼만 곱다. 강언덕 / 시인문예마당 가을 해변 가을 해변

2024.12.05. 19:30

KCS 가을 무료 음악회 개최

뉴욕한인봉사센터(KCS)가 가을 무료 음악회를 개최한다.   ‘고향의 울림: 세대를 잇는 하모니’를 주제로 한 이번 음악회는 오는 23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뉴욕한인봉사센터 베이사이드 본관(203-05 32nd Ave, Bayside, NY 11361)에서 진행된다.   나눔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예정이며, 뉴저지 해피홈 시니어 합창단도 공연한다.     문의 718-939-6137.   윤지혜 기자음악회 가을 가을 무료 이번 음악회 뉴저지 해피홈

2024.11.17. 18:08

더나눔하우스 가을 단풍 나들이

 나들이 가을 가을 단풍

2024.11.1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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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VIP 초청 만찬 성료

      북미주 한인 기독실업인회(KCBMC) 동부연합회(연합회장 김형주)가 주최하고, 메릴랜드 엘리콧시티 지회(지회장 변보림)가 후원하는 ‘CBMC 비즈니스 성장 세미나’가 지난 25일 메릴랜드 콜롬비아 소재 이노베이션센터에서 열렸다.       50여명이 참석한 세미나에는 전 동부연합회장 안일송 변호사와 전 엘리콧시티 지회장 김경태 회계사가 강사로 나서 24명 VIP를 대상으로 비즈니스 세미나 및 CMBC 사역을 소개했다.       더불어 강고은 (북미주 KCBMC) 이사가 CBMC 정체성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으며 한기덕 증경회장이 참석해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가을 초청 만찬 성료 가을 vip 메릴랜드 콜롬비아

2024.11.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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