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베트남 3000여 개 섬과 기암괴석이 빚어낸 장관 하롱베이 원숭이섬과 매혹의 동굴 탐방 역사와 현대가 함께 숨 쉬는 하노이 도시
가을엔 더더욱 여행이 옳다. 말도 살찐다는 이 계절, 하늘은 청명하고 들녘은 풍성하다. 사과와 감, 밤과 대추가 제 빛을 뽐내고, 인간 세상 또한 수확의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리운 모국은 단풍이 물들어 고운 색동옷을 갈아입는다. 서울 북악산 자락에서, 강원 설악의 계곡에서, 그리고 남도의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붉고 노란 단풍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계절의 절정을 알린다. 아름다운 계절, 고국의 단풍을 벗삼아 떠나는 이들에게 가볍게 덧붙일 만한 여행지가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동남아의 푸른 바다와 이국적인 풍광, 그리고 저렴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음식은 가을의 기분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특히 하노이와 하롱베이는 ‘바다 위의 수묵화’라 불리는 경관으로, 고국의 단풍에 못지않은 깊은 감흥을 선사한다.
하롱베이는 크고 작은 섬과 석회암 기둥으로 이루어진 만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명승지다. [베트남 관광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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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피어난 3천개의 섬
하롱베이의 이름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외적이 침입했을 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여의주를 뿜어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 여의주가 곧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수많은 기암괴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화와 지질학이 겹쳐지는 순간, 자연은 단순한 경관을 넘어 한 민족의 정신과 정체성을 담아내는 무대가 된다.
노을빛 물결 위에 솟은 석회암 절벽, 하롱베이의 수묵화 같은 풍경. [베트남 관광청 제공]
바이짜이 선착장에서 바라본 바다는 에메랄드빛 비단을 길게 드리운 듯 고요하다.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자, 풍경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한 편의 동양화가 된다. 3천여 개의 섬과 기암괴석은 시간의 화폭 위에 찍힌 붓놀림처럼 흩어져 있고, 빛과 안개는 먹의 농담처럼 그 위에 겹겹이 번져든다. 안개가 내려앉은 아침에는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고, 햇살이 수면 위에 흩어질 때는 황금빛 선율로 울려 퍼지는 거대한 교향곡이 된다. 그 앞에서 인간은 자연의 한 줄기 붓끝에 지나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하롱베이의 대표 석회암 동굴. 종유석과 석순이 빚어낸 기묘한 조형미는 하롱베이에 또 다른 신비를 더한다. [베트남 관광청 제공]
하롱베이의 기암괴석들은 저마다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사랑을 속삭이는 암수닭 바위, 마을을 지켜주는 개바위와 코끼리 바위, 하늘 궁전을 닮은 티엔궁 동굴, 연꽃바위와 낙타봉…. 이 바위들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나라를 지켜낸 용의 숨결이 굳어져 세운 성채이자, 수백 년 동안 바다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온 기도의 기둥이었다. 파도는 여전히 그 바위에 부딪혀 용의 호흡을 되살리고, 안개는 마치 향처럼 피어올라 바다 전체를 하나의 신전으로 만든다.
작은 보트를 타고 항루원, 즉 원숭이 섬에 다다르자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받아먹으며 재롱을 피운다. 바닷바람을 가르며 뛰어오르는 몸놀림은 자유롭고도 장난스러워 섬 전체가 작은 원숭이 왕국처럼 느껴진다. 섬 속 석회암 동굴로 들어서면 바깥의 열기가 단숨에 사라지고, 차가운 공기와 함께 수천 년의 시간이 벽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천장과 벽을 장식한 종유석과 석순은 기이한 조각품처럼 빛을 머금어 반짝인다. 어느 것은 창을 든 장수 같고, 또 어느 것은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승려의 형상 같다. 5억 년의 지질학적 시간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하다.
점심으로 맛보는 씨푸드 요리는 바다의 신선한 기운을 그대로 담고 있다. 갓 쪄낸 게와 조개, 생선 요리는 바다 냄새와 어우러져 더없이 풍요로운 식탁을 차려낸다. 여행에서 음식은 단순한 배고픔의 해결이 아니라 그 땅과 바다를 몸속에 새기는 행위라는 것을 절감한다.
오후에는 티톱섬 전망대에 오른다. 400여 개의 돌계단을 따라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자 하롱베이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펼쳐진다. 마치 용이 물결을 헤치며 몸을 틀고 있는 듯,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이름은 ‘떠오르는 용’을 뜻한다. [베트남 관광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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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역사와 삶이 겹쳐진 도시
하롱베이의 황홀경을 뒤로 하고 하노이로 돌아오니, 도시의 밤은 또 다른 활력을 품고 있다. 바딘 광장에서 호치민 주석 묘를 바라보며, 한 시대를 이끈 지도자의 소박한 생가를 둘러본다. 나무 기둥으로 지어진 작은 가옥은 권력자의 저택이라기보다 학자의 서재에 가까운 듯하다. 호치민이 걸었던 좁은 마루를 따라 걸으며, 민족의 운명을 짊어졌던 그의 고독을 잠시나마 느껴본다.
하노이는 본래 베트남의 첫 번째 리 왕조에 의해 ‘탕롱(떠오르는 용)’이라 불리며 수도가 되었다. 이후 마지막 왕조인 구엔 왕조가 집권한 1802년까지 정치·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이어갔고, 1902년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에는 인도차이나 총독부 수도로 지정되었다. 1940~1945년 일본 점령기에도 행정 중심지였으며, 1945년 9월 2일에는 바로 이곳에서 호치민이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어 1975년 통일 전쟁의 종결과 함께 1976년 7월 2일, 하노이는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수도로 공식 확정되었다. 더불어 2008년 하떠이 성을 통합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천년의 역사를 품은 하노이는 곳곳에 이야기가 서려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코로아 성채, 문묘와 하노이대학교, 혁명박물관과 군사박물관, 그리고 호찌민 박물관은 역사의 굵은 줄기를 보여준다. 프랑스 식민지배의 흔적은 지금도 선명하다. 대통령궁, 하노이 오페라하우스, 성 요셉 성당,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파리’라는 별명에 걸맞은 건축들이 도시의 품격을 더한다.
그중에서도 연못 위에 떠 있는 한기둥 사원은 연꽃처럼 우아한 자태로 하노이 정신을 상징하고, 도심의 호안끼엠 호수는 시민들의 쉼터이자 베트남 사람들의 여유와 웃음을 길어 올리는 공간이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 신앙과 일상이 겹쳐져 하노이는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고 있다.
새로운 풍경 앞에서 ‘처음’이라는 감탄이 줄어들 법한 나이다. 그러나 하롱베이를 마주하는 순간 그 모든 노련함이 무너지고, 다시 어린아이처럼 경탄을 내뱉게 된다. 여행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고, 사람 앞에서 따뜻해지는 것. 그것이 투어멘토로서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배운 여행의 진실이다. 이 가을, 당신 또한 하롱베이 앞에서 다시금 ‘처음의 눈’을 되찾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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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팁
여행의 명가 ‘US아주투어’가 올가을 특별한 베트남 여행을 준비했다. 5성급 초특급 호텔에서의 안락한 휴식, 전문 인솔자가 동행하는 세심한 진행, 그리고 현지 미식으로 꾸민 맛기행까지 차원이 다른 여정을 약속한다.
상품은 모국의 단풍 여행과 연계한 ‘모국단풍+베트남(12일)’, 그리고 짧지만 알찬 일정의 ‘베트남(5일)’로 나뉘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출발일은 10월 28일, 11월 1일, 11월 17일이다. 특히 이번 여행은 한국을 경유하는 일정이어서, 한국에 볼일이 있는 여행자라면 한국 방문과 함께 투어를 이어갈 수 있어 경제적이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