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한장의 사진이 뜬다. 사진 속 남녀가 어떤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무슨 관계인지, 지금 처해있는 시대적 배경, 과거의 행적, 미래의 가능성 등등이 궁금하다. 그들이 정치에 종사하는 남녀라면 응당 이런 연상작용과 호기심이 일어나기 마련.
한장의 사진이 메시지를 전달하다니. 그들의 서로를 마주하는 자세가 하나의 ‘메타메시지, metamessage’를 창출한다. 하나의 메시지는 다른 메시지를 은닉한다. 보는 이의 감수성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감지할 수도 있고 무감각으로 지나칠 수도 있지.
오래전 수련의 시절에 내가 부러워하던 동료가 생각난다. 그녀는 남과 토론을 할 때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을 사실처럼 진술하는 버릇이 있었다. 상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화를 낸다. 그런 경우 그녀는 으레 이렇게 말한다. “Yes, you’re right. You never said it. But that was your Metamessage, you know? 네, 맞아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죠. 그러나 그게 당신의 메타메시지였잖아요?” - 상대는 잠시 말문이 막힌다. 뭐? ‘metamessage’?
‘meta’라는 접두어는 희랍어에서 비롯된다. 세 가지 뜻을 품는다. ①후(後), 중(中), 간(間)에서처럼 위치를 나타냄. ②변신, 변형에서처럼 변화(變化)를 일컬음. ③더 높음, ‘너머’에서처럼 고차원적, 초월적 의미. 예컨대 철학처럼 초경험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형이상학이라 부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을 추구하는 인문학, 특히 논리학 같은 형이상학에 반하여, 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자연과학 같은 형이하학이 상대적으로 급이 낮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AI’보다 ‘meta AI’가 더 세련된 기법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요즘 아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변화시키는 희한한 앱도 ‘meta AI’덕분이라는 것. 또 있다.
근래에 ‘디지털 패션계’를 가열차게 누비는 ‘meta fashion!’ ‘meta’는 비즈니스 클래스 또는 프리미엄 멤버십을 연상시킨다. 얼마 후 ‘meta friend’라는 컨셉도 나올지 몰라.
‘meta’로 시작되는 말들이 많다. ‘metaphor, 은유’, ‘metabolism, 신진대사’, ‘metamorphosis, 변신’. 1992년에 사이파이에떠억 등장한 신조어 ‘metaverse, 사이버공간’도 ‘universe’에 맞서서 주의를 끈다.
‘metamessage’의 우리말 번역을 고민하다가 ‘숨은 메시지’라 했더니 괜찮게 들리네. 당신과 나의 의사소통 절차에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늘 어떤 메시지가 내재하기 마련. 게다가 여간하지 않고서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우리는 암호를 써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크릿 에이전트, secret agent’들.
한 정치가가 다른 정치가에게 짐짓 말한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 엄청난 진술의 메타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①어떤 위치, 각도에서 나왔을까. ②어떤 정치적 변형과 변모를 꾀하고 있느냐. ③어떤 높이의 고차원적 초월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전인도유럽어와 고대영어에서 ‘meta-’는 ‘with, 함께’라는 뜻이었다. 우리의 언어가 표출하는 메시지 속에 은닉된 메타메시지에 진즉 ‘함께’라는 의미가 숨죽이며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