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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칭구, 깐부

수년 전 병동에 한 흑인 환자가 입원한 적이 있다. 자기는 젊었을 때 용산 미8군에서 한동안 체류를 한 적이 있다며 내게 붙임성 있게 다가왔다. 그는 복도에서 나를 보면 “칭구~, [친구(親舊)의 영어 발음]” 하며 커다랗게 소리치곤 했다.   말끝마다 “Okay, friend?” 하며 팔을 툭툭 치던 동료 의사가 생각난다. 그는 자신의 우월성을 남들에게 공격적으로 과시하는 축이었지만 나를 향한 ‘friendly 우정 어린’ 태도에는 기분 좋은 면이 있었다.   사전은 친구라는 한자어를 친할 親, 옛 舊로 싱겁게 풀이한다. 사람과 사람이, 옛날에, 또는 오랜 세월을 가깝게 지낸 사이라면, 그 둘은 친구라는 뜻이다. 세월의 길고 짧음, 그리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는, 당신과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둥근 갑 속에 말아둔 긴 줄자라도 들고 다녀야 되지 않을까 싶지.   이런 사고방식에는 계산적인 면이 숨어 있다. 인간의 감성이나 심리적 요소가 배제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마냥 오랫동안 가까이서 공존하면 친구가 된다는 말인가. 과연 그럴까.   남자친구, 여자친구 하는 대신에 ‘남친’, ‘여친’ 할 때는 옛 舊자가 삭제되기에 매우 모던한 분위기를 풍긴다. 남녀가 삽시간에 가까워져도 남친, 여친이 되는 법이거늘. 꼭 그렇게 ‘오래된 관계’만 보이프렌드, 걸프렌드가 되는 건 아니잖아.   ‘friend’는 당신이 깜짝 놀랄 정도로 순수하고 감성적 어휘다. 친구라는 한자어처럼 공간적, 시간적 개념이나 수치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 고대영어에서 ‘개인적 관심, 배려, 존경’을 뜻했고, 북구와 고대 독일어에서 ‘좋아하다, 사랑하다’는 의미였고, 전인도유럽어에서는 ‘loving’ 즉, ‘love’의 현재진행형 동사로 쓰였다는 사실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우리말 ‘친구’에서 풍기는 고리타분한 ‘세월’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친구를 고색창연한 중국어로 붕우(朋友)라 한다. 벗 朋, 벗 友. 朋자는두 개의 달(月)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양새. 네이버 사전 왈, 朋은 갑골문자에서 상(商)나라 때 중국인들이 화폐로 쓰던 ‘마노 조개’가 두 줄로 주렁주렁 달린 모양이라서 원래 ‘돈뭉치’를 뜻했지만, 조개가 서로 연결된 모습이 친밀한 관계에 있는 ‘벗’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 그 뜻이 변했다는 사연이다. 뭐라고? ‘돈뭉치=친구’라고?   2021년 9월에 전 세계를 경악시킨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에 ‘깐부’라는 우리말 속어가 등장한다. 극중인물 오영수(오일남 역)와 이정재(성기훈 역)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 - “우리는 깐부잖아. 기억 안 나? 우리 손가락 걸고 깐부 맺은 것. 깐부끼리는 니거내거가 없는 거야.”   1960년대에 미8군에서 활약했던 흑인 재즈 밴드를 ‘combo band’라 불렀는데, 이 촌스러운 명칭이 당시에 내 귀에는 왜 그때는 그리도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멋진 말처럼 들렸는지 몰라. 그때는 콩글리시로 ‘콤보뺀드’라 발음했다. 나중에 발음이 변했지. (콤→캄, 캄→깐, 보→부) ‘죽이 잘 맞는 친구’를 뜻하는 우리말 슬랭으로 통한다.   옛날 용산 미8군에서 소속이었다던 그 흑인 환자가 “헤이, 칭구~” 하며 어금니까지 내보이며 웃던 장면이 떠오른다. 문득, 그에게 넓은 보폭으로 다가가 “헤이, 깐부~” 하고 어깨를 툭 치는 상상을 한다. 요컨대 그와 나는 병동에서 서로에게 호감(好感)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 같다. 그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래.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남자친구 여자친구 friendly 우정 우리말 속어가

2025.11.11. 15:48

[잠망경] Metamessage

화면에 한장의 사진이 뜬다. 사진 속 남녀가 어떤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무슨 관계인지, 지금 처해있는 시대적 배경, 과거의 행적, 미래의 가능성 등등이 궁금하다. 그들이 정치에 종사하는 남녀라면 응당 이런 연상작용과 호기심이 일어나기 마련.   한장의 사진이 메시지를 전달하다니. 그들의 서로를 마주하는 자세가 하나의 ‘메타메시지, metamessage’를 창출한다. 하나의 메시지는 다른 메시지를 은닉한다. 보는 이의 감수성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감지할 수도 있고 무감각으로 지나칠 수도 있지.   오래전 수련의 시절에 내가 부러워하던 동료가 생각난다. 그녀는 남과 토론을 할 때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을 사실처럼 진술하는 버릇이 있었다. 상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화를 낸다. 그런 경우 그녀는 으레 이렇게 말한다. “Yes, you’re right. You never said it. But that was your Metamessage, you know? 네, 맞아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죠. 그러나 그게 당신의 메타메시지였잖아요?” - 상대는 잠시 말문이 막힌다. 뭐? ‘metamessage’?   ‘meta’라는 접두어는 희랍어에서 비롯된다. 세 가지 뜻을 품는다. ①후(後), 중(中), 간(間)에서처럼 위치를 나타냄. ②변신, 변형에서처럼 변화(變化)를 일컬음. ③더 높음, ‘너머’에서처럼 고차원적, 초월적 의미. 예컨대 철학처럼 초경험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형이상학이라 부른다.   ①이 밋밋하게 중립적이고 ②는 힘겨운 뉘앙스를 풍긴다 했더니 ③이 좀 매력적으로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을 추구하는 인문학, 특히 논리학 같은 형이상학에 반하여, 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자연과학 같은 형이하학이 상대적으로 급이 낮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AI’보다 ‘meta AI’가 더 세련된 기법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요즘 아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변화시키는 희한한 앱도 ‘meta AI’덕분이라는 것. 또 있다.     근래에 ‘디지털 패션계’를 가열차게 누비는 ‘meta fashion!’ ‘meta’는 비즈니스 클래스 또는 프리미엄 멤버십을 연상시킨다. 얼마 후 ‘meta friend’라는 컨셉도 나올지 몰라.   ‘meta’로 시작되는 말들이 많다. ‘metaphor, 은유’, ‘metabolism, 신진대사’, ‘metamorphosis, 변신’. 1992년에 사이파이에떠억 등장한 신조어 ‘metaverse, 사이버공간’도 ‘universe’에 맞서서 주의를 끈다.   ‘metamessage’의 우리말 번역을 고민하다가 ‘숨은 메시지’라 했더니 괜찮게 들리네. 당신과 나의 의사소통 절차에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늘 어떤 메시지가 내재하기 마련. 게다가 여간하지 않고서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우리는 암호를 써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크릿 에이전트, secret agent’들.   한 정치가가 다른 정치가에게 짐짓 말한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 엄청난 진술의 메타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①어떤 위치, 각도에서 나왔을까. ②어떤 정치적 변형과 변모를 꾀하고 있느냐. ③어떤 높이의 고차원적 초월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전인도유럽어와 고대영어에서 ‘meta-’는 ‘with, 함께’라는 뜻이었다. 우리의 언어가 표출하는 메시지 속에 은닉된 메타메시지에 진즉 ‘함께’라는 의미가 숨죽이며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서 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metamorphosis 변신 metaverse 사이버공간 metabolism 신진대사

2025.10.28. 17:46

[잠망경] 말 끝을 붙잡는 심리학

당신이 이를테면 서울 근교 어느 동네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고 치자. 남녀노소 모두 어둡고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대기실이 빼곡하다. 당신 아버지는 혈압이 좀 높은 것 말고 아주 건강하신 편. 정기적 피검사 차 행차하신 터.   아버지는 옆에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 말을 건다. 청년은 한동안 공손한 태도로 네네 하다가 이내 더 이상 재미없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기색. 급기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기실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아버지는 하시던 말씀을 끝내야겠다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그를 따라가며 계속 무슨 열변을 토하신다.   왜 노친네들은 말을 끊지 못하고 오래 힘들고 지루하게 계속하는가. 우리는 왜 말을 길게 하는가.   내 학설은 이렇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옆에서 오냐오냐 상대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말을 할 기회가 적어지기 마련. 두뇌의 언어기능이 마비되는 느낌. 그런 이유로 자꾸만 아무 말이라도 해서 두뇌활동을 증폭시키려는 본능적 동기의식이다. 오래된 두뇌는 내버려 두면 급속히 쇠락한다. 생명의 특징은 끊임없는 ‘역동성(dynamicity)’에 있다.   말을 길게 하는 것은 시대상에 역행하는 행동이다. 요즘 당신의 셀폰에 자주 뜨는 유튜브 ‘숏츠(shorts)’의 5초 영상을 음미해 보라. 짤막한 자극이 후다닥 찌르고 지나가는 통에 당신은 움찔움찔하지 않는가.   정신감정에서 언어는 참 중요한 부분이다. ‘우회증(circumstantiality)’은 말의 속도와 흐름, 막힘과 일탈 따위를 제쳐놓고 금세 인터뷰 무드를 장악한다.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빙빙 돌며 우회하는 긴 여정을 거치는 증상이다.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은 자칫 지리멸렬해지는 소통의 위기에 처하는 상대를 도와준답시고 말을 막아서 생각의 흐름을 끊어버리기도 하지만.   ‘circumstantiality’는 ‘circumstance(환경, 상황)’의 명사형. 원형극장을 일컬었던 ‘circus(서커스)’, ‘circle(원)’과 말뿌리가 같다. 말이 길다는 뜻으로 ‘long-winded’가 있다. 부정적 의미다. 성경 욥기 16장 3절에 그 말이 나온다. “Is there no end to your long-winded speeches(너의 긴말에는 끝이 없는가)?” (필자 譯)   요즘 부쩍 자주 보는 정치 유튜버 중 왜들 그리들 종종 한 단어의 끝을 길게 끄는지 모르겠다. 가상적 예를 억지로 들자면, ‘이순신 장군’이라고 간명하게 발음하는 대신 ‘이순신~’ 하며 단어의 끝을 길게 끈다. 민감한 화제를 다루는 조심스러운 마음일까? 다음 말을 찾으려는 은근한 술책일까? 어딘지 비겁한 태도다.     미 남부 사투리 ‘drawl(모음을 길게 빼며 느릿느릿 말하기)’가 편하고 정겹게 들린다. 전라도와 충청도 말투는 ‘이순신~’ 케이스와는 다르게 느려도 아련한 향수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셰익스피어는 그의 비극 ‘햄릿’에서 강물에 빠져 죽는 햄릿의 애인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우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간결함은 지혜의 정수(Brevity is the soul of wit).”     당신 아버지가 그때 그 젊은이에게 길게 말하지 않고 짧고 간략하게 말했더라면 나중에 그가 버르장머리 없다며 화를 내시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말이 쉽지, 하겠지. 당신은.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심리학 당신 아버지 이순신 장군 대기실 입구

2025.10.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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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긴 말, 모음 길게 빼기

당신이 이를테면 서울 근교 어느 동네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고 치자. 남녀노소 모두 어둡고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대기실이 빼곡하다. 당신 아버지는 혈압이 좀 높은 것 말고 아주 건강하신 편. 정기적 피검사 차 행차하신 터.   아버지는 옆에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 말을 건다. 청년은 한동안 공손한 태도로 네네 하다가 이내 더 이상 재미없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기색. 급기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기실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아버지는 하시던 말씀을 끝내야겠다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그를 따라가며 계속 무슨 열변을 토하신다.   왜 노친네들은 말을 끊지 못하고 오래 힘들고 지루하게 계속하는가. 우리는 왜 말을 길게 하는가.   내 학설은 이렇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옆에서 오냐오냐 상대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말을 할 기회가 적어지기 마련. 두뇌의 언어기능이 마비되는 느낌. 그런 이유로 자꾸만 아무 말이라도 해서 두뇌활동을 증폭시키려는 본능적 동기의식이다. 오래된 두뇌는 내버려 두면 급속히 쇠락한다. 생명의 특징은 끊임없는 ‘역동성, dynamicity’에 있어요.   말을 길게 하는 행동은 시대상에 역행하는 짓이다. 요즘 당신의 셀폰에 자주 뜨는 유튜브 ‘숏츠, shorts’의 5초 정도의 영상을 음미해 보라. 짤막한 자극이 후다닥 찌르고 지나가는 통에 당신은 움찔움찔하지 않는가.   정신감정에서 ‘언어’는 참 중요한 부분이다. 말의 속도와 흐름, 막힘과 일탈 따위를 제쳐놓고 금세 인터뷰 무드를 장악하는 ‘circumstantiality, 우회증’!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빙빙 돌며 우회하는 긴 여정을 거치는 증상!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은 자칫 지리멸렬해지는 소통의 위기에 처하는 상대를 도와준답시고 말을 막아서 생각의 흐름을 끊어버리기도 하지만. 우스갯소리로, 평소에 훈장 기질이 있거나 현학적인 사람들 또한 우회증의 즐거운 노예들이지.   ‘circumstantiality’는 ‘circumstance, 환경, 상황’의 명사형. 원형극장을 일컬었던 ‘circus, 서커스’, ‘circle, 원’과 같은 말뿌리다. 말이 길다는 뜻으로 ‘long-winded’가 있다. 부정적 의미다. 성경 욥기 16장 3절에 그 말이 나온다. “Is there no end to your long-winded speeches? 너의 긴말에는 끝이 없는가?” (필자 譯)   요즘 부쩍 자주 보는 정치 유튜버 중 왜들 그리들 종종 한 단어의 끝을 길게 끄는지 몰라. 가상적 예를 억지로 들자면, ‘이순신 장군’이라고 간명하게 발음하는 대신 ‘이순신~♪’ 하며 단어의 끝을 길게 끈다. 민감한 화제를 다루는 조심스러운 마음? 다음 말을 찾으려는 은근한 술책? 어딘지 비겁한 태도다. 한 사람의 말이 이토록 심리적, 사회적 상황을 숨기지 못하는 것일까.   미 남부 사투리 ‘drawl, 모음을 길게 빼며 느릿느릿 말하기’가 편하고 정겹게 들린다. 전라도와 충청도 말투는 ‘이순신~♪’ 케이스와는 다르게 느려도 아련한 향수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셰익스피어는 그의 비극 ‘햄릿’에서 강물에 빠져 죽는 햄릿의 애인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우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Brevity is the soul of wit, 간결함은 지혜의 정수’.   당신 아버지가 그때 그 젊은이에게 길게 말하지 않고 짧고 간략하게 말했더라면 나중에 그가 버르장머리 없다며 화를 내시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말이 쉽지, 하겠지. 당신은.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circumstantiality 우회증 당신 아버지 이순신 장군

2025.10.14. 17:44

[잠망경] 전환점

며칠 전 모 한국 신문에서 눈길을 끈 프로이트(1856~1939)에 대한 기사를 다시 읽는다. 엄격한 표정으로 손에 시가를 들고 있는 그의 흑백사진을 모니터에 확대한다. 1939년 9월 23일, 83세에 구강암으로 아까운 삶을 마친 정신분석 창시자의 수척한 얼굴을.   기사는 ‘고민의 상징’이라는 용어를 쓴다. ‘Symbolism of Neurosis’를 고풍스러운 우리말로 번역한 것 같다. ‘neurosis, 신경증’을 같은 뜻의 독일어, ‘Neurose’ 발음을 따서 우리는 ‘노이로제’라 한다.   정신과를 신경정신과라고도 한다. 정신은 실체가 없는 ‘추상명사’이지만, 신경은 혈관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명사’이기에 더 구체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당신과 내가 유심론보다 유물론을 더 애호한다는 방증이다.   같은 이유에서였으리라. 한국 최초의 정신병원 이름이 1945년에 개원된 ‘청량리뇌병원’이었다는 사실이. 1980년에 ‘청량리정신병원’으로 개칭됐다.     ‘뇌’라는 물질이 ‘정신’이라는 추상으로 변한 것이다. 2018년 3월, 개원 73년 만에 청량리정신병원은 폐쇄됐다. 경영난과 지역 주민들의 ‘혐오시설 논란’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혐오’는 물질이건 추상이건 개의치 않고 미움의 표적을 ‘out of business, 폐업’시키는 법. 화가 이중섭, 시인 천상병이 입원했던, 짠한 향수심을 자아내는 청량리정신병원이 그렇게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고민(苦悶)이라는 한자어에 집중한다. 쓸 苦, 답답할 悶. 마음이 쓰고 답답한 정황이다. 마음(心)이 문(門)에 갇혀 있는 모양새. 마음이 두문불출한다고? 유사어로 번민(煩悶)이 있다. 고민에 비하여 광범위하고 번잡한 마음가짐이다. [번거로울 煩: ①번잡하다 ②문란하다, ③시끄럽고 떠들썩하다]   고민이 구체적인 현실적 문제에 대한 괴로움이라면, 번민은 어렵고 추상적인 문제에 당면한 심각하고 고질적인 고통이다. 고민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 과정이라면, 번민은 큰 난관이 미해결로 오래 남아있는 속수무책의 아픔이다.   옛날 흑백영화 청춘물이 생각난다. -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 둘 사이에 어떤 갈등이 일어난다. 그들은 고민한다. 화해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자는 노이로제 상태. 남자는 밤늦게 주점에 홀로 앉아 술을 잔뜩 마시고 도로를 비틀비틀 횡단한다. 끼익, 하는 급브레이크 소리.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다음날 여자가 병원에 뛰어와서 상처투성이의 남친에게 울며불며 사랑을 다짐한다. 영화는 그들의 결혼식 장면으로 우리의 세속적 염원,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프로이트가 인류의 집단심리를 예리하게 파악해서 창시한 정신분석의 핵심은 ‘무의식’의 발견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의식과 문명이 일으키는 괴리현상, 정치적 투쟁의식 같은 갈등에 대해서 어떤 태세를 취했던가.   문(門) 속에 갇혀 있는 답답한 마음(悶)은 어떤 외출을 꿈꾸고 있을까. 성난 파도처럼 출렁이는 정치적 폭풍에 시달리는 당신과 나의 현세기를 횡행하는 이 끝없는 번민의 ‘전환점, Turning Point’은 어디에 있는가.   양극화 현상의 두 극단이 더없이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발시킬 즈음, 옛날 흑백영화처럼 제3의 현상이 일어나는 변곡점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아닌 말로 또 심리적 교통사고라도 일어나야 하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이루어 낸 힘은 소정방이라는 제3의 세력이 아니었는지. 어떤가. 당신 눈에 그런 조짐이 보이는가.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전환점 전환점 turning 정신분석 창시자 물질이건 추상이건

2025.09.30. 17:31

[잠망경] We Got Him

얼마 전부터 조짐이 보이면서 무슨 일이 터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느낌. K-pop Demon Hunters 애니메이션 시작에 깔리는 음산한 대사처럼 영웅들이 악귀들을 퇴치하는 스토리의 전주곡 같은.   “악귀들은 언제나 우리 세상을 탐했어/ 인간의 혼을 훔쳐 그 힘을 왕한테 전달했지/ 귀마에게/ …”   2025년 9월 10일. 미 유타주 밸리 대학 캠퍼스. 32살의 젊은 정치인 찰리 커크(Charlie Kirk: 1993~2025)가 강연 도중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쏜 저격수의 총탄을 목에 맞고 사망했다. 커크는 18살에 ‘Turning Point’라는 보수성향의 정치단체를 창립하여 도널드 트럼프가 아주 좋아하는 사회운동가로 잘 알려졌다.   22살의 타일러 로빈슨이 그를 죽였다. 아버지의 권고를 받아 경찰에 자수한 대학 중퇴자. 9월 12일. 유타 주지사 스펜서 콕스가 전 미국을 향하여 “We got him, 우리가 잡았습니다.” 하며 어두운 첫 마디를 던진다.   어제오늘 사이에 지구촌 SNS 화면이 요동친다. 전 세계가 커크의 죽음을 애도하는 반면 젊고 원기 왕성한 보수성향 젊은이의 피살을 축하하고 망자를 조롱하는 사람들 또한 어처구니없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게 우리의 진면목이라는 말인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사람이 총 맞아 죽은 것이 그다지도 기쁜가.   누군가 말한다. 현대는 보수와 진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끊임없는 투쟁의 장이라고. SNS에게 삶을 깡그리 지배당하는 당신과 내가 구독자, 조회수, 엄지척의 노예의 일상을 살아간다고.   수년 전부터 모든 한국인이 관심을 쏟아 온 말, ‘팬덤정치’를 생각한다. ‘fandom’은 ‘fanatic, 광신도’ 또는 ‘fancy, 공상, 욕망’의 첫 부분 ‘fan’과 영토라는 뜻을 지닌 ‘-dom’이 합쳐진 단어로서 19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한 말.   그래서 ‘kingdom’이 ‘왕국, 王國’이니까 직역해서 ‘fandom’은 ‘광신도국, 狂信徒國’이 되는 셈이다. ‘팬덤’은 정치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노사모’에서 비롯됐다는 기록이다. 팬덤정치는 현대의 ‘포퓰리즘’, 그리고 고대의 ‘중우정치’와 깊은 연관을 맺는다.   “중우정치(衆愚政治, ochlocracy), 또는 떼법(mob rule, mob justice)이란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를 이르는 말로, 민주주의의 단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플라톤은 다수의 난폭한 폭민들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의 ‘폭민정치’라고 하였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의 빈민이 이끄는 ‘빈민정치’라고도 하였다. (후략)…” (위키백과에서 퍼옴, 2025년 9월)   고리타분한 사설을 늘어놓아서 당신에게 미안하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와 민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일 뿐. 긴 세월 동안 달라진 것은 언어가 약간 순화됐거나 위선적이고 능청맞아진 것이라고나 할까.   오늘, 9월 16일 로빈슨은 법정에 나간다. 사방에서 이 사건은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오랫동안 치밀하게 기획된 일이라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를 배후에서 면밀하게 가르치고 준비시킨 거대한 세력이 있다는 의견 또한 분분하다.   K-pop Demon Hunters 대사대로 “인간의 혼을 훔쳐” 그 힘을 전달받는 수혜자, 왕(귀마, 鬼魔)은 과연 누구인가. 어쨌든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누가 소리친다, “We‘re gonna get him!”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중우정치 ochlocracy 보수성향 젊은이 정치인 찰리

2025.09.1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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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How It‘s Done

2025년 여름. 지구촌이 열띤 케이팝 비트를 탄다. 지난 6월 넷플릭스에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가 나오자마자 세 단어의 첫 발음을 따서 ‘케데헌’이라는 별명이 붙은 후.   8월 23일 토요일. 늦은 저녁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올려보는 케데헌 싱어롱 대형버스. 6살에 미국에 이민 온 서울 태생 ‘Rei Ami’와 캘리포니아 태생 ‘Kevin Woo’가 깜짝 이벤트를 흥겹게 주도한다. 이 두 한국 젊은이는 케데헌에서 ‘How It’s Done’과 ‘Soda Pop’ 히트곡을 열창한 장본인들.   만화영화에 구미가 당긴다. 만화는 어린애가 크레용으로 투박하게 그려 놓은 사물의 원형질. 울긋불긋한 만화책을 읽는 아동 심리상태로 케데헌을 연거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좀 음산하게 울리는 영화의 프롤로그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 “악귀들은 언제나 우리 세상을 탐했어 - 인간의 혼을 훔쳐 그 힘을 악귀의 왕한테 전달했지, 귀마에게 - 그러던 어느 날, 영웅들이 나타나 인간을 수호했어 - 어둠을 몰아내는 목소리를 타고난 이들이었지 - 그 목소리로 용기와 희망을 노래했어   … (중략) 이 결속력 덕분에 최초의 헌터들은 이 세상을 지킬 방패를 만들었어 그게 혼문이야 - 각 세대마다세 명의 헌터가 새롭게 발탁돼 - 최종 임무를 향해 나아가지 - 절대 뚫을 수 없는 방패를 만드는 거야 - 악귀와 귀마를 영원히 이 세상에서 몰아낼 수 있는 황금의 혼문을.”    이 내레이션이 현 지구촌의 정치와 세태에 대한 상징적 진술이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스토리는 걸그룹 ‘헌트릭스’의 런던행 전용 제트기를 악귀들이 납치하려는 현장에서 시작된다.   헌트릭스의 루미, 미라, 조이는 가짜 승무원의 피부에 나타난 ‘문양’을 알아차린 후 그들과 격투를 벌인다. 악귀들이란 아무리 애써 신원을 감추려 해도 기어이 본색이 드러나는 법. 연이어 스토리의 결말을 예고라도 하는 듯 OST 히트곡 ‘How It’s Done’이 사납게 귓전을 때린다.    “… 너는 끝, 끝, 끝/ 꺾이지 않는 우리 목소리 밤을 물리칠 때까지/ 두려움은 숨을 죽이고 빛은 어둠을 삼켜/ 너는 끝, 끝, 끝/ 봐봐, 우리 발아래 전 세계에 울려 퍼져/… (중략)… 끝까지 쫓아, 다, 다, 다/ 다 손에 넣을 거야 너, 너, 너/ 보여 줄게 다, 다, 다 놓치지 않아/ 너는 끝, 끝, 끝! How it’s done, done, done!”   루미는 자신 또한 피부에 문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고민한다. 게다가 걸그룹에 대적하는 ‘사자보이즈’의 리더 진우와 사랑에 빠진다. 급기야 악귀의 왕 귀마와 사투가 진행되는 중 둘 사이에 뛰어든 진우의 죽음을 방패 삼아혼문을 탈환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이 역사의 뒤안길에 희미한 기억의 그림자로 남을 것을 예측하면서.   주문처럼 자꾸만 반복되는 ‘How It’s Done’의 “done, done, done” 부분이 내 재래식 한국 귀에는 “짠, 짠, 짠” 하는 감탄사, 또는 “쫑, 쫑, 쫑” 같은 선포로 들린다. ‘너 이제 쫑(終)났어!’ 할 때처럼.   ‘do’의 현재 완료형 ‘done, 끝내다, 끝나다’는 원래 고대영어로 ‘ado, 소동, 고생’에서 ‘a’가 없어진 말이다. 불어의 ‘adieu’, 스페인어 ‘adios’와도 어원이 같다. ‘잘 가라’는 인사말처럼 들리지만, ‘잘 먹고 잘살아라’, 하며 통쾌한 작별을 고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캘리포니아 태생 우리 목소리 서울 태생

2025.09.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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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악당들

‘파인(巴人): 촌뜨기들’ - 2025년 여름.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화면에서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한다.   1975년. 신안군 해역에서 한 어부가 청자 꽃병을 발견한 후 세상에 알려진 거대한 침몰선을 ‘신안선’이라 부른다. 1323년에 원나라에서 출발한 상선이 일본으로 항해 중 서해로 표류하다가 그곳에서 가라앉았다는 것.   원작은 웹툰 작가 윤태호. 이 같은 실화에서 픽션으로 가지에 가지를 뻗어 보물선(寶物船)을 발굴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의 연속이다.   주인공 청년 오희동은 어릴 적부터 삼촌 오관석의 도둑질을 돕는다. 신안선에 삼촌과 함께 눈길을 주기가 무섭게 촌뜨기 부랑자들 여럿이 이들 ‘서울 양반’ 주위로 모여든다. 서울말,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충청도 사투리가 내 거실 벽을 때린다. 독특한 개성과 수(手) 싸움에 뛰어난, 순진하면서도 그지없이 잔인한 불한당들의 숨소리가 세차다.   큰 재벌 천사장이 음습한 표정으로 보물선 도굴 음모를 짠다. 부산 출신 ‘김교수’가 농간을 부리고 마침내 오관석은살인 청부를수행하기까지에 이른다. 드라마 끝부분에서오관석과 희동이의 도굴 트럭이 낭떠러지로 추락한 지 1년이 지난후화면에 나타난 그들의 웃는 모습이 측은지심을 부른다. 파인은 중국의 시골 지방 이름 파시(巴市)에서 유래한 한자어. 그냥 ‘촌뜨기들’이라 해도 될 걸 굳이 그런 식으로다가….   ‘보물섬’ - 1999년도 영화를 새삼 다시 본다. 1883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의 명작. ‘해적의 황금기’라 불리던 18세기를 누비며 지중해, 카리브해, 대서양에 실존했던 해적들의 전설과 사건에 바탕을 두었다는 해설이다.   영국 남서부 해변. 한적한 마을 여관집 주인 아들 짐 호킨스(Jim Hawkins)가 주인공. 하루는 얼굴에 칼 상처가 있는 뱃사람이 큰 상자를 들고 투숙한다. 그는 ‘외다리 남자’가 나타나면 곧 알려달라고 짐에게 부탁한다. 수상한 인물들이 여관에 꼬이고 뱃사람이 죽은 후, 상자에서 해적선 선장이 남긴 보물섬 지도가 나온다. 짐은 동네 의사와 지주를 설득하여 선박을 만들어 보물섬을 찾아간다. 존 롱 실버(John Long Silver)라는 외다리 남자가 앵무새를 어깨에 얹은 채 목발을 짚고 승무원으로 등장한다.   전에 해적이었던 존 실버가 반란을 계획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짐은 선장에게 이를 알리고 해적 세력과 맞서 싸운다. 보물섬에서 홀로 생존해온 한 해적의 도움으로 짐 일행은 반란 세력을 물리치고 보물 궤짝 앞에 선다.   항복한 존 실버는 짐 일행과 함께 보물섬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가는 중 은화 몇 자루를 훔쳐 배를 탈출한다. 짐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존 실버가 편안하게 은퇴했을 것이라 짐작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정말 그랬으면 좋으련만, 글쎄, 다른 세계에서 그가 편안할 가능성은 희박할지도 몰라.” 이 부분도 내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pirate, 해적’은 중세 라틴어로 ‘sailor, 뱃사람’이라는 뜻이었고 애당초 전인도 유럽어로는 ‘try, risk, 시도하다, 모험하다’라는 의미였다.   존 롱 실버는 이런 말을 남긴다. “Them that die’ll be the lucky ones, 죽는 놈들이 오히려 운이 좋은 놈들이지” - 이것은 그야말로 삶을 ‘시도’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지성을 약탈하는, 그런 몸서리치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한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악당 해적선 선장 보물섬 지도 보물선 도굴

2025.08.19. 21:47

[잠망경] 빌런(villain)

- I am fond of children, except boys. (나는 어린애들을 좋아한다, 사내애들을 제외하고) - Lewis Carroll (1832~1898)   비 갠 후 온 천지가 수채화처럼 맑아 보이는 어느 날, 웅덩이에 철버덕 발을 굴러 속절없이 고여 있는 빗물을 튀겨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겨우 대여섯 살 밖에 안되는 나이에.   이제 예절 바른 어른이 된 당신은 어느 늦여름 소나기 멎은 미국 소도시 아스팔트 길을 운전한다. 쿵, 하며 ‘pot hole, 도로에 움푹 팬 곳’을 지나다가 아, 나는 왜 그때 그 웅덩이에 고인 물을 내버려 두지 않고 발로 찼을까, 하는 호기심이 불현듯 드는 것이다.   흥부전에 나오는 놀부는 성격이 고약하기로 소문난 위인이다.    남을 괴롭히기 위한 놀부의 ‘즐겨찾기’ 목록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우는 아기 똥 먹이기, 애호박에 말뚝 박기,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아이 밴 아낙네 배 차기. 이쯤 해서 당신은 사내애가 웅덩이 물을 철버덕 차는 발길과 임산부를 타깃으로 하는 발놀림을 비교하기에 이른다. 나이 어린 사내애의 본능과 어른의 고의적인 악행(惡行)의 엄청난 차이에 대경실색하면서.   그렇다. 나는 시방 악행이라 했다. 이제 악당(惡黨), 악한(惡漢)이라는 뜻의 ‘villain’이라는 영어단어를 검토할 단계다.   ‘villain, 악당’, ‘village, 마을’, ‘villa, 별장’의 말뿌리가 다 같다. ‘villain’은 ‘시골 사람, 촌사람, 촌놈’이라는 뜻으로서 13세기에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호칭이었고, 16세기에 악한, 19세기에는 소설이나 연극에 나오는 현대적 의미의 ‘빌런’이 된 것이다. ‘빌런’이 촌놈에서 악당으로 변하는 데 600년이 걸렸다.   ‘village’는 14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한 말. 군청소재지로 약간의 도시 냄새를 피우는 읍(邑)보다 더 작은 농촌에 해당하는 면(面) 또는 ‘마을’에 해당한다.   ‘villa, 별장’은 한국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말. 아파트보다 격식 있는 사회계층이 선호하는 입주환경으로서 17세기 로마와 이탤리언들이 좋아하던 말이었는데 현대의 그들은 ‘빌라’를 아파트나 다름없이 취급한다는 소문이다.   올해 들어 입때껏 인기 영화에서 주인공보다 빌런들이 각광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낀다.     우리는 영웅보다 악당의 기행(奇行)에 애정을 쏟는다. 삶의 기복을 영화를 감상하듯 넘기는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은 선보다 악(惡)이 우월하다는 슬픈 각성에 시달리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은유법이 성행한다. 세상을 섭렵하는 영웅의 힘이 달린다는 증거가 도처에 즐비하다.     변화무쌍한 악행의 역할분담이 두 시간 정도 기획으로 펼치는 스토리라인으로는 불가능하다. 악당도 한둘이 아닌 여럿이 혼돈의 도가니에서 부글거리는 동안 엄지 척을 받지 못하는 ‘never-ending drama’의 세례를 받는 우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여자애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남자애들을 제외한 어린애들이 좋다고 하는 루이스 캐롤의 발언에 이해가 간다.     웅덩이 물에 발을 넣는 당신의 조그만 흥분이 바늘도둑이라면, 아이 밴 아낙네 배를 발로 차는 놀부의 고의적인 악행이 소도둑이라는, 수컷들의 공격본능을 몹시 꺼리는 자신의 ‘insight, 통찰(洞察)’을 그는 발설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villain mentality, 악당 정신’을 향한 혐오감을.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villain 빌런 villain 악당 villain mentality village 마을

2025.08.05. 22:08

[잠망경] Moody

1. 기분   ‘mood’는 고대영어로 ‘지성적인, 자랑스러운’이라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다. 옛날 서구인들은 겉으로 보이는 표정이나 태도에 따라 상대의 기분을 가늠했을 터이다.   16세기에 ‘in the mood’, 즉 무엇을 ‘하고 싶다’는 관용어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서 당신 여친이 ‘I am in the mood’, 하며 곱고 살갑게 눈웃음치며 말했다면 그녀가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한 것으로 냉큼 알아차렸어야 했었다.   ‘mood’ 끝에 ‘y’를 붙여 ‘moody’라 하면 12세기 까지만 해도 성질이 사납다는 뜻으로 통하다가 16세기에 이르러 ‘어둡고 우울한, gloomy’라는 뜻으로 변했다. 자랑스러운 마음이 우울한 심정으로 바뀐 것이다.   기분(氣分)이라는 말은 고기압, 저기압 할 때처럼 일기예보를 연상시키는 한자어. ‘대상, 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이라고 사전은 자상하게 풀이한다. 당신과 내 기분은 환경의 변수다. 기압골의 높낮이가 좌우하는 날씨,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의 왕왕대는 ‘ambience, 앰비언스’ 같은 외부여건과 깊은 함수관계를 맺는다.       2. 느낌   ‘feel’은 고대영어로 ‘touch, 만지다’라는 뜻이었다. ‘촉감(觸感)’이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갓난아기처럼 우선 대뜸 만진 후 나중에 느끼는 이벤트. 당신과 내 감각은 유아기(乳兒期)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12세기에 들어서서 ‘feel’에 ‘느낌’이라는 의미가 깃들여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촉감=느낌’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한가지 난점이 있다. 촉감도 느낌도 언어라는 도구를 빌려서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 정신상담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항으로서 자기감정을 말로 옮기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치유의 진도가 느리다는 통설이 그것이다. 언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정신적인 진화를 일으키기 쉽다는 견해.   아니다. 꼭 그렇다고 우기지 못한다. 생물체와 생물체 사이에 언어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살아온 뼈저린 체험이다. 일종의 전자파장, 당신과 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에헴, 영혼의 와이파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3. 감정   ‘느낌’은 순우리말. ‘감정(感情)’은 한자어. 당신은 부디 ‘느낄 感’을 ‘유감(遺憾)’의 ‘섭섭할 憾’과 혼동하지 말지어다. 발음이 같다고 해서 자칫 ‘느낌=섭섭함’이라는 엉뚱한 등식을 내세우고 싶은 유혹이 솟는다. 느낌이나 감정이 지나치면 섭섭한 마음이 싹틀 수도 있으려니.   性, 또는 情에서처럼 심방변(心傍邊)에 느낄 감(感)이 합쳐진 모습을 숙지해주기 바란다. ‘너 나한테 감정 있어?’ 할 때는 憾情이고 ‘감정이 솟구치다’ 할 때는 感情인 것을.       4. 퉁치기   정치가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 유감(遺憾)을 표명함으로써 자기의 원망심에 방점을 찍는다.   세상에 이런 발칙한 발언이 또 있을까. 육중한 한자어를 교묘하게 사용하는 그들은 이런 말장난을 부리는 습관에 익숙하다. 국가와 국가가 우물쭈물 서로 퉁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줄 것과 받을 것을 서로 없는 것으로 치다’라는 뜻의 퉁치기! 사과하기는커녕 ‘섭섭한 마음’을 들어냄으로써 자신을 피해자로 그리고 상대를 가해자로 탈바꿈시킨 후, 이제는 가도 좋다는 시그널로 퉁! 하며 승용차 문을 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면서 나는 불현듯 기분이 ‘moody’ 해진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moody 대신 유감 정신과 의사 언어 이상

2025.07.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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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두 가지 명상법

‘Visualization Meditation, 시각화 명상’! 당신에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명상법이다.   이 명상은 심안(心眼, 마음의 눈)을 활용한다. 꿈과 다른 점은 멘탈 이미지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점. 꿈과 같은 점은 명상을 하는 동안에 청각, 촉각, 후각 같은 감각이 의외로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명상은 꿈처럼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고의적으로 피하는 설정이 있을 뿐. 멘탈 이미지의 해상도는 오로지 당신의 집중력에 달렸다.   나는 열 살 때 처음으로 대천해수욕장에 간 기억이 입때껏 고스란히 살아있다. 평생 처음 보는 광활한 수평선, 철석이는 파도 소리, 살에 와 닿는 바닷바람의 감촉과 소금 냄새 속에서 경이롭고 편안했다. 시각, 후각, 촉각, 그리고 총체적 체험을 되살리는 순간 영락없이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명상이 끝나고 나면 온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당신도 이런 기억을 되살려 보라.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다르다, 하는 계산적 추리를 벗어나서.   지금으로부터 6, 7천년 전, 인류에 무당(巫堂)이라는 직업이 처음 생겨났을 때쯤에 시각화 명상이 성행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문헌상으로는 기원전 1500년경 힌두교, 1000년경 유대교, 600년경 중국의 도교, 현대 불교의 명상수행, 그리고 가장 최근 1970년대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미국식 명상법이 거론된다.     예컨대, 인류의 올림픽 역사상 금메달을 가장 많이 획득한 미국인 Michael Phelps (1985~)의 ‘머릿속으로 하는 수영연습’ 즉 ‘image training’도 시각화 명상과 많이 닮았다. 그는 자신이 올림픽 경기에서 수영하는 일거수일투족의 이미지를 규칙적으로 상상하는 훈련을 쌓았다.     인간의 뇌는 현실과 상상을 확연하게 분별하지 못한다는 특성이 있고 바로 이것을 그가 십분 활용한 것이다. 같은 연유에서 당신과 나도 본능적으로 현실처럼 생생한 꿈을 꾸며 시각화 명상을 연마해왔는지도 모르지.   ‘Mindful Meditation, 마음챙김 명상’이라는 명상법은 시각적 이미지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 ‘염두(念頭)에 두다, 유념(留念)하다’라는 뜻의 ‘mindful’이라는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는데 고민을 많이 한 티가 나는 우리말 번역, ‘마음챙김’!   ‘챙기다’는 참견(參見)한다는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발음상 ‘아기’가 ‘애기’로, ‘아비’가 ‘애비’로 변했듯, 참견이 ‘챔견’으로, ‘참기름’의 방언이 ‘챙기름’이듯, 참견의 ‘참’이 ‘챙’으로 변한 후 ‘참기다’가 ‘챙기다’로 변했다는 학설이다. ‘-기다’라는 어미는 ‘엉기다’, ‘개기다’, ‘웃기다’, ‘섬기다’에서처럼 어떤 상태가 된다는 의미.     ‘참견하다’는 사전에 ①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일이나 말 따위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다. ②어떤 자리에 직접 나아가서 보다, 라고 나와 있다. ①은 부정적이지만 ②는 중립적이라는 점에 유념하시라. 그런 각도에서 ‘마음챙김 명상’은 ‘시각화 명상’에 비하면 참 여유로운 말이다.     나는 시각화 명상으로 숙련된 정신집중의 묘법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이미지를 추구한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는 중에 얼토당토아니한 연상작용이 일어나더라도 친절하게 넘어가려 한다. 그리고 내 마음 씀씀이에 은근슬쩍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는 뇌 기능의 양면성을 향유하며.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명상법 시각화 명상 마음챙김 명상 meditation 마음챙김

2025.07.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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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Bad Fish in 3 Days

‘3일 지난 나쁜 생선’이라는 영어 슬랭이 귓전을 때린다. 논리의 비약이 일어난다. 처음 얼떨결에 매력적이던 사람의 언행이 3번쯤 반복되면서 식상해진다. 식언(飾言, 거짓으로 꾸며 하는 말)을 밥 먹듯이 하는 나쁜 사람에게서 오래된 생선 냄새가 난다는 상상에 사로잡힌다.   이 험담은 고대 로마 시대 극작가 ‘Plautus’가 원조로 손꼽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The guest is like fish: after 3 days it stinks.” (손님은 생선처럼 3일이 지나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현대에 이르러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 격언을 약간 수정했고, 요즘은 다섯 단어의 짧은 경구로 통한다.     신선한 생선이건 반가운 손님이건 3일이 지나면 호감의 신선도가 뚝 떨어지거늘, 하물며 빈번한 허언(虛言, 거짓말)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야구경기 규칙, “3 strikes, you’re out!”가 우리의 일상에 늘 적용되고 있다.     SNS에서 ‘관종(關種)’이라는 말을 접한다. ‘관심종자(關心種子)’의 줄임말. ‘3일 지난 생선’ 사고방식에 의하면, 한 사람이 감언이설이나 거짓말로 당신의 관심을 끈다 해도 같은 수법이 세 번 이상 반복되면 ‘관종’ 취급을 당하기 마련.     ‘관심종자’를 사전은 “일부러 특이한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풀이한다. 이때 ‘행동’에는 말까지 포함된다.   우리는 왜 남의 관심을 받으려 안달하는가.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결과일까. 관종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유전적인 컨셉에 매달리는 마당에서.     종자(種子): ①식물에서 나온 씨 또는 씨앗. ②동물의 혈통이나 품종, 또는 그로부터 번식된 새끼. ③사람의 혈통을 낮잡아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씨 種’은 찰스 다윈의 엄청난 저서 “종(種)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 그리고 사업가들이 장사 밑천으로 묵혀두는 ‘종잣돈, seed money’의 ‘종’에서처럼 ‘씨 種’이다. 그나저나 위에 인용한 ③은 듣기에 좀 거시기하지. 당신이 걸핏하면 들먹이는 혈통이며 사람을 품종(品種)으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이.   영어에서는 종을 ‘species’라 한다. 믿거나 말거나 ‘species’는 양념이라는 뜻의 ‘spice’와 말 뿌리가 같다. 원래 라틴어로 물품, 제품이라는 의미였다가 18세기에 양념이라는 뜻으로 변한 ‘spice’! 사람의 씨앗에도 양념처럼 각양각색의 미각(味覺)이 숨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니까.     한 사람을 종자, 상품, 양념 취급하는 태도에는 어쩔 수 없이 모욕적인 구석이 있다. 그것은 한쪽이 다른 쪽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의 결과이기도 하다. 관종들은 곡마단에서 눈길을 끄는 광대처럼 어떤 동정심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괜스레 어설프게 같은 내용으로 ‘시선 강탈’을 하는 행동은 역겹기가 일쑤다. 3일 지난 나쁜 생선이 따로 없어요. 정치인들도 생선 취급을 당하는 경우를 곧잘 목격한다.   우리 민요 밀양아리랑,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하는 시작 부분이 한참 애절하다. 자기를 봐 달라는 간청을 3번씩이나 하다니. 정치인들이 아닌 남녀 간에 터지는 사랑 타령일지도. 이런 경우에 아무래도 관종이라는 컨셉을 적용하지 못한다는 거다. 요새 세상에 성희롱 취급을 받을 수는 있어도.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fish days bad fish 생선 취급 생선 냄새

2025.06.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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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황야의 7인

-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우리가 그를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자신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 니체의‘즐거운 학문’에서. (1882)   1960년 서부영화 ‘Magnificent Seven, (직역으로) 멋진 7인’을 인터넷에서 다시 본다. 우리말 제목은 ‘황야의 7인.’ 의기투합한 7인의 총잡이가 무법자들에게 약탈당하는 멕시코의 한 마을을 구출하는 줄거리.   요즈음 내 SNS 곳곳에 올라오는 명언에 심취한다. 차제에 내가 금과옥조로 삼는 명언들을 많이 남긴 7명을 선출한다.   ①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화가, 판화 제작자, 신비주의자, 낭만파 시인. 내가 좋아하는 그의 명언은, “무절제의 길이 지혜의 궁전에 도달한다.” 그의 시와 산문집,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 나오는 얼른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말. (1790) 워낙 글이 난해하다고 소문난 블레이크.   ②도스토옙스키(1821~1881): “사랑이 있으면 행복 없이 살 수 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79)에 나오는 예리한 말. 또 있다. “행동에 옮기는 사랑은 꿈속 사랑에 비하면 거칠고 두려운 일이지요.”라고 작품 초반부에서 가톨릭 신부가 망나니 주인공 드미트리에게 속삭이는 말.   ③마크 트웨인(1835~1910):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빌어먹을 놈의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그는 거짓말을 믿는 바보들에 관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진실은 거짓말을 믿기로 결심한 바보에게는 별로 대책이 없다.”   ④니체(1844~1900): 허두에 인용한 니체의 말을 숙독하시라. “신은 죽었다!”고 니체가 마치 무슨 사망선고라도 내린 것처럼 사람들은 오해한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⑤아인슈타인(1879~1955): “A가 인생의 성공이면, A=x+y+z. x는 일하기, y는 놀기, z는 입을 다무는 것.” 숫자만을 중시하는 과학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경고한다. “셀 수 있는 것들이 다 중요한 것이 아닐뿐더러 중요한 것들이라고 다 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⑥라캉(1901~1981): “언어는 무의식의 구조를 닮았다.”라는 진실을 설파하며 프로이트의 고전적 학설을 많이 업데이트시킨, 난이도 높은 말을 잘하는 프랑스 정신과 의사. “우리가 시를 찾는 이유는 지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혜를 해체하기 위해서다.” 사랑에 대한 냉소적인 발언도 프랑스식으로 팍팍 한다. “사랑은 원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주는 것.”   ⑦스누피(1950~):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스누피야, 우리는 딱 한 번 산단다. 틀렸어! 우리는 딱 한 번 죽는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거든.” 마크 트웨인처럼 스누피도 바보들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너는 멍텅구리들에게서 멀어지지.”   허허로운 지구촌 황야, 2025년 6월 중순에 격동하는 한국과 미국의 정세를 절감한다. 위에 손꼽은 7인 중 위대한 정치가, 지도자는 한 명도 없다는 걸 당신이 인지하기 바란다. 나는 무던히도 사적(私的)인 사람인 것 같다.     멕시코의 어느 마을을 약탈하려는 오만방자한 무법자들을 소탕하는 저 ‘멋진 7인’은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 블레이크, 도스토옙스키, 마크 트웨인, 니체, 아인슈타인, 라캉, 그리고 1950년 이후 지금껏 그대로인 스누피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한 작금의 무법자들을 너끈히 이겨낼 것 같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황야 블레이크 도스토옙스키 트웨인 니체 지구촌 황야

2025.06.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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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유리. 죽여… 도깨비.

2025년 4월, 5월에 걸쳐 맨해튼 소극장 ‘The Public’에서 공연된 연극의 제목이 희한하다. “Glass. Kill. What If If Only. Imp.” 우리말로 “유리. 죽여. 만약 만약이라면 어쩌지. 도깨비.”라 옮기기로 한다. 영국 극작가, 올 86세 ‘Caryl Churchill’의 걸작품.   첫 번째 무대, ‘Glass’에서는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여성의 취약성을, 두 번째, ‘Kill’에서는 곧잘 전쟁을 일으키는 인류의 뿌리 깊은 가학성을 묘파한다.   세 번째, ‘What If If Only’. 아홉 살짜리 내 손녀딸 세실리아(Cecelia)가 등장한다. 심한 상실감에 빠진 사내에게 그녀는 말한다. “I am going to happen!” “나는 발생할 것이에요,”라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린다. “나는 피어날 거예요.”는 어떨까. “나는 일어설 거예요?”   마지막 무대, ‘Imp’에서 마약중독자, 지체부자유자 등등 사람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계속되지만, 소통의 흔쾌한 연속성은 여전히 부재한다. 도깨비가 무서워서 병 속에 넣어 코르크로 입구를 막아 두는 정황. 이들의 대화에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버금가는 단절감이 범람한다. 이 연극은 만화경 같은 구성으로 짜여졌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실체는 없고 그림자만 있는, 말이 사라지고 느낌만 살아나는 예술적 분위기.   당신과 내 대화에서 서로 딴소리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나마 의사가 대충 전달되는 게 재미있지. 사실주의 그림보다 추상화에 마음이 쏠리는 이치와 비슷하다. 문맥이 엉망이라도 바닥을 치는 진실 같은 것이 확 느껴지는 순간에.   옛날에 문라이팅을 할 때 병동에서 두 노인환자가 양지바른 창문을 향해 앉아 대화하는 정경을 접한 적이 있다. 한쪽이 말한다. 자기 아들이 음주운전에 자꾸 걸려 감옥에 갈 것 같다고. 다른 쪽이 말한다. 자기 딸의 두 번째 임신이 또 아들이라는 소식을 듣고 아주 기쁘다고.   이들은 짐짓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계속한다. 공감이나 적개심이 전혀 없이 다정하고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허언(虛言). 빌 虛, 말씀 言. 빈말은 허망하다. 망상에서 나온 말을 망언(妄言)이라 하지. 망령될 忘, 말씀 言. 망상은 내 소관이다. 허언과 망언을 분별하기가 어려워서 고심하는 것 또한 직업의식이다.   사전은 허언을 ‘실속이 없는 빈말’ 외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어 말을 함’이라 풀이하고, 유의어로 ‘거짓말, 공염불’을 든다. 우리는 거짓말을 거짓말이라 하는 대신 ‘허언’이라는 한자어로 포장한다. 거짓말쟁이를 허언증 환자라 지칭하며.   기원전 1세기. 줄리어스 시저의 양자(養子) 옥타비아누스는 그의 정적(政敵)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알콜중독, 바람둥이, 클레오파트라의 꼭두각시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린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우누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자살한다. 이것이 위키피디아가 지적한 인류 최초의 ‘fake news, 가짜뉴스’다. 고의적으로 한 새빨간 거짓말!   세 번째 무대, ‘만약 만약이라면 어쩌지’에 나오는 이런 대사가 뼈를 때린다. “I‘m the ghost of a dead future. I’m the ghost of a future that never happened…”, “나는 죽은 미래의 유령이에요. 한 번도 생겨나지 못한 미래의 유령이요….” 다시 말해서, 당신과 나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미래의 유령인지도 모른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도깨비 유리 허언과 망언 허언증 환자 거짓말 공염불

2025.05.27. 18:04

[잠망경] 환경 변화

당신과 나는 환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물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던 옛날, 판자때기처럼 펀펀한 세상 끝을 벗어나는 순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믿었던 선조를 둔, 그야말로 육지에 서식하는 뭍살이동물이다.   시대적 배경 또한 우리가 처한 환경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 법. 생각해 보라. 중세기를 살던 사람들과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완전 딴판이라는 점에 대하여. 중세기인들은 종교적 사고방식에 매달리는 경건한 삶을 살았고, 지금 지구촌 누리꾼들은 의식이 깨어 있는 동안 셀폰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다는 시대적 배경의 차이점에 대하여.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 - “정신과 약이 내 영혼에 해롭다고 신이 알려줬기 때문에 약 먹기를 거부한다.” - “신이 내게는 정신과 약이 모든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고 하는 것 같은데?” - “그렇다면 나의 신과 너의 신이 만나 말다툼을 해서 이기는 쪽이 시키는 대로 하면 돼!” - “그럴 필요가 없다. 너와 나는 이미 지금 각자의 신을 대변해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잖아!” - “미친 소리 하지 말아라. 아무리 의사지만 어찌 니가 신을 대변하느냐. 신이 너를 대변해야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정신적 환경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종교인 것 같다. 종교는 모든 정신기능의 초석(礎石, cornerstone)이요, 율법(律法, Commandment)이기도 한 것을. 전 인류가 음으로 양으로 준수해온 질서와 격식이다.   수련의 시절. ‘FBI’가 자신을 감시하고 따라다닌다고 굳게 믿는 입원환자가 있었다. 의대 본과 3학년 임상 실습 때 중앙정보부에서 저를 미행한다고 우기던 농촌 출신 젊은 환자도 떠오른다. 시대 배경이 달라지면서 환자들 망상의 소재 또한 변천하는 것이다.   정신상담에서 거론되는 ‘holding environment’라는 컨셉이 있다. 구글은 우리말로 ‘안아주는 환경’ 또는 ‘보듬어주는 환경’이라 낭만적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holding’을 유아의 양육과정에서 목격하는 모성애의 현현한 발로라고 그리 쉽사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hold’에는 정지시킨다는 의미가 철철 넘치고 있기 때문이지.   발음도 비슷한 군대용어 ‘Halt!’는 ‘제자리 섯!’ 하며 동작을 중지하라는 명령어. ‘hold’와 ‘halt’는 말뿌리가 같다. 당신의 요가강사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Hold your breath!” 하면, 잠시 숨을 멈추라는 말. 전화 도중 상대가 “Please, hold!” 하면, 잠자코 기다리라는 요구. “Hold on!” 하면, “잠깐만!”   내가 좋아하는 정신의학자 로버트 클로닝거(Robert Cloninger: 1944~)는 사람의 기질(temperament)을 셋으로 구분한다. ①새로움 추구(Novelty Seeking) ②손상 회피 (Harm Avoidance) ③보상 의존(Reward Dependence).   다른 말로 하면, ①자극(스릴) 추구 ②위험 회피 ③사회적 민감성. -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거나 위험을 피하면서, 또 한편 무엇에 의존하며 사는 것이다. 남녀 사이에 성행하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정신상태는 중세기식 종교적 경건성에서 세 번째 밀레니엄에 대두하는 챗GPT의 정보력에 의존하는 경로를 밟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신이 내리는 충고대로 약 먹기를 거부하는 그 환자에게 인공지능이 속전속결로 전해주는 정보를 따르라는 지시를 가볍게 내려볼까 하는데. 속으로는 글쎄다, 하면서라도.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환경 변화 환경 변화 정신적 환경 holding environment

2025.05.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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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Goodbye 명사, Hello 동사!

오래전 미정신과협회 간행,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제4판(DSM-4)에 ‘Wha-byung’이라는 진단명이 출현했다. 우리말 ‘화병(火病)’을 소리 그대로 옮긴 말. 한국문화권에서 발생한다는 주석이 붙는다. 그리고 2013년 ‘DSM-5’에서 화병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다.   화병은 정신적 고통(distress)과 육체적 증세가 공존하는 증후군. 가슴이 답답하고, 두통, 소화불량, 불안, 우울 같은 증상이 정신질환을 방불케 하지만 정신병명이 아니라는 소견이다.   원인으로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위계질서를 손꼽는다. 대가족 제도에서 일어나는 고부간의 마찰도 빼놓을 수 없을뿐더러 유교적 형식주의에 얽매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서 온다는 의견도 분분하다. 어제도 오늘도 한국 정치인이 제꺽하면 상대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경우를 본다. 미국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한국드라마에서 분노조절 장애라는 말을 듣는다. 상대의 부화를 엄청나게 갈구어 놓은 후 정신장애자 취급을 하는 수법으로 보인다. 자신이 남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아랑곳없이 그가 보이는 반응의 강도만을 측정하는 아마추어 정신감정사들이 화를 내는 당사자에게 정신치료를 강력 추천한다. 분노조절 장애는 정신과의 공식적 진단명이 아니다. ‘DSM-5’에 ‘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간헐적 폭발 장애, 間歇的 暴發障碍’라는 거창한 병명이 있기는 하지만, ‘Anger Control Disorder’라는 병명은 새벽에 일어나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생각한다. 호랑이 가죽도 한 사람의 이름도 오직 붙박이 명사(名詞)로 남을 뿐. 형형한 눈빛으로 울창한 숲을 드나들던 호랑이의 잰 발걸음이며 어느 세상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는 한 촌부(村夫)의 눈썹 웃음이 우주 한 공간을 흔들던 동사(動詞)는 영원히 부재한다.   정신과 치료에서는 한 사람의 금단 없는 정서적 동작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당신과 나의 정감은 눈 하나 깜짝 않는 부동의 여권 사진이 아니다. 사람의 감정은 살펴보면 볼수록 새로운 면이 많이 발견되는 부산스러운 동영상이다. 정신과 의사는 외과나 내과처럼 육체적 병명을 상대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표적으로 삼는다.   환자는 의사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일 뿐. 사람의 감성은 죽는 순간까지 역동적(dynamic) 현상이다. 사람은 이름이라는 고유명사를 남기기보다 각자각자 특유의 에너지를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 남기는 것이다.   환자가 내게 말한다. “나는 불안 장애가 있습니다, I have anxiety disorder.” - 아, 이분도 불안 장애라는 명사에 매달리는구나. 종양이나 충수염처럼 자기의 병을 의사가 처리해주기를 바라는구나. 걱정거리가 많아 잠이 오지 않는 동적(動的)인 마음에 불면증이라는 붙박이 진단명을 급하게 붙여준 후 수면제를 요구하는 것처럼. 직장에서나 또는 친척 간의 갈등이 불화의 씨앗으로 작동하는 화병을 의사에게 거두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이분에게 명사를 버리고 동사를 검색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의사(醫師)에 ‘스승 사’가 들어가듯이 ‘doctor’도 라틴어의 ‘가르치다’라는 뜻에서 유래했음을 상기한다. 이 사람이 “나는 왠지 지금 불안합니다.”라고 현재진행형으로 말할 때쯤 그가 과연 무엇이 어떻게 불안한지를 다이나믹하게 파고드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goodbye hello 붙박이 명사 정신과 의사 오래전 미정신과협회

2025.04.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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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도깨비 나라

버지니아주 소도시 ‘Falls Church’ 가는 길에 폭우가 왕창 쏟아진다. 차들이 꽉 막히고 윈드쉴드 와이퍼가 끽끽 요동치고 짙은 안개가 장대비에 합세한다. 날씨가 도깨비 같다.   2025년 재미 서울의대 컨벤션 길. 내가 맡은 강의에 ‘귀신(鬼神)’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귀신 鬼는 그렇다 치더라도, ‘귀신 神’은 좀 난처하다. ‘하느님’을 귀신이라 부르는 것은 불경스럽다. 신을 도깨비라 할 수도 없는 노릇.   민속설화에 「혹부리영감」, 「도깨비방망이」가 있지. 전자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왔다’는 관용어가 나올 지경으로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스토리.   도깨비들이 사는 집에 무단 투숙한 혹부리영감은 자기의 구성진 노래가 목에 달린 혹에서 나온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그들은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 영감의 혹을 떼어주고 방망이의 요술로 재운(財運)도 준다. 이 소문을 듣고 다른 혹부리영감이 똑같은 수법을 시도했지만 이미 사태를 파악한 도깨비들은 혹을 떼어 주기는커녕 전에 입수한 혹까지 붙여준다.   「도깨비방망이」는 혹을 거론하지 않지. 주인공은 육체적으로 건전할뿐더러 정신적으로 이기성(利己性)보다 애타성(愛他性)이 돈독한 나무꾼. 나무를 하는 중, 첫 번째로 굴러온 개암 열매를 아버지에게, 두 번째 개암은 어머니에게 드리고, 마지막 세 번째 것을 자기 몫이라며 주워 넣는다.   그는 날이 저물어 도깨비들이 외출하고 없는 집에 들어가 자려 한다. 집에 돌아온 그들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요술을 부리는 광경을 숨어 본다. 그가 개암을 딱! 하고 깨물자 그 소리에 놀라 방망이를 놓고 도망치는 도깨비들. 나무꾼은 도깨비방망이를 하나 얻어 곧 부유해진다.   다른 나무꾼에게도 개암 열매가 굴러온다. 그는 첫 개암을 자기 것, 두 번째를 자기 아내에게, 세 번째를 부모 몫으로 할당한다. 각본대로 개암을 딱! 깨물자 도깨비들은 방망이로 그를 실컷 두들겨 팬다.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하지 않는 도깨비들.   어릴 적 부르던 ‘도깨비 나라’가 떠오른다. -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방망이로 두들기면 무엇이 될까/ 금 나와라와라 뚝딱/ 은 나와라와라 뚝딱. - 한국이 도깨비 나라라는 생각, 이 순간에도 많은 도깨비가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 숱한 나무꾼들이 도깨비방망이를 차용해서 재운(財運)을 타기도 하지만, 이기성과 애타성이얽히고설킨 대인관계의 우선순위가 비틀어진 흉내쟁이 나무꾼들이 흠씬 두들겨 맞는 시나리오를 예감한다.   영어로 도깨비는 ‘goblin’이라 하지. 고대 영어로 ‘화내다, 짜증 내다’라는 뜻이었단다. ‘goblin’은 방망이 대신 초승달 모양의 고대 무기로서, 길이 2m 정도의 ‘scimitar 언월도, 偃月刀’를 들고 다닌다는 기록.   내 첫 시집 『맨해튼 유랑극단』(2001)에 「도깨비 하나」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 // 내가 좋아하는 친구 하나 있더니/ 사실은 이 친구가 도깨비다/ 낮에 자고 밤에 찾아온다/ 초승달 등 넘어 내 옆에 온다/ …(중략)… 잔뜩 눈알만 부라리다가/ 이윽고 키득키득 웃어대는 도깨비 자식/ 그때 밤하늘 별무리 금싸라기가/ 온통 내 눈까풀 위에 쏟아져 내렸다/ 눈을 감아도 그냥 뜬 채로 였다//   도깨비는 참 외로운 존재로 보인다. 도깨비는 내 친구. 서구적 도깨비보다 우리의 도깨비가 마음에 든다니까.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욕심으로 혹부리영감의 거짓말에 한 번쯤 슬쩍 넘어가는 우리의 얼떨떨한 도깨비들이.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도깨비 나라 도깨비가 방망이 도깨비 나라 도깨비가 마음

2025.04.1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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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관음증

관음증을 한자로 觀陰症이라 쓰는 줄 알았다. 볼 觀, 그늘 陰. - 그늘을 바라보다.   관음증은 한자로 觀淫症이라 쓴다. 볼 觀, 음란할 淫. - 다른 사람의 알몸이나 성교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면서 성적인 만족을 얻는 증세라고 네이버사전은꼰대스럽게 풀이한다.   트위터 단어사전은 觀淫을, 타인의 계정을 사찰하며 그 사람이 쓴 트윗과 멘션(mention) 등을 찾아보는 것이라 산뜻하게 해석한다.   관광(觀光)이 병이 아니듯이 觀淫도 觀淫症도 병이 아니라는 견해다. 만약에 당신이 관음증을 질병이라고 우긴다면 지구촌 모든 SNS 참가자들을 다 환자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 인터넷에 만연하는 성범죄는 어디까지나 죄질이 저열한 범법행위로써, 지금 나의 주제에 크게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觀은 황새 관(  )자와 볼 견(見)자가 결합한 모습.    은 새 추(  )자 위에 커다란 눈과 눈썹을 그려 놓은 황새 모양의 상형문자.    과 見이 합쳐진 觀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황새처럼 넓게 본다는 뜻이다. (네이버사전)   그래서 觀光은 황새가 빛(光)을 바라본다는 뜻이 된다. 황새는 설악산을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구경하지 않는다. 애오라지 빛을 묵묵히 바라보는 황새는 고즈넉하게 그늘을 바라보는 당신만큼이나 시적(詩的)인 모양새다. ‘sightseeing’이라는 영어단어의 닝닝한 뒷맛과 비교해 보라.   ‘sight’에는 시야, 시력 외에 장관(壯觀)이라는 뜻이 깃들여져 있다. 눈에 뵈는 대상 자체에 역점을 둔 서구인들에 비하여 동양인들은 대상이 보이게끔 도와주는 ‘medium, 매개체’인 ‘빛(光)’이 주제가 되는 것이 흥미롭다.     당신과 내가 거창한 장관(壯觀) 여행에 오르지 않고, 오붓한 관광(觀光)길을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觀淫症을 다시 분석한다.     淫자에는 음란하거나 무엇을 탐한다는 뜻이 담겼다고 사전은 해명한다. 淫은 물 수(水)와 가까이할 음(   )이 결합한 문자.    자는 허리를 숙인 채 무엇을 잡아당기는 사람 모습. 마치도 무엇인가를 가까이하려는 형상이다.     접근의 대상은 물! 급기야는 ‘물=욕정’이라는 은유법에 의하여 淫자가 욕정을 가까이한다는 뜻으로 변했다고 풀이하는 한자사전이참 고지식도 하지.   때는 바야흐로 11세기 초엽. 영국 코번트리(Coventry) 지역의 레오프릭(Leofric) 백작의 아내 고다이버(Godiva)가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고통에 깊은 동정심을 품은 나머지 남편에게 세금을 내려줄 것을 간청한다. 남편은 그녀가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면 청을 들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남편의 조건을 받아들인 그녀는 자신이 말을 타는 동안 모든 주민이 집에 머물면서 창문을 가리고 밖을 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들은 고다이버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준다.     단 한 사람, 양복 재단사 톰(Tom)이 그녀의 알몸을 몰래 훔쳐본 후 나중에 장님이 된다. 이 전설에서 유래한 단어, ‘Peeping Tom’이 인류 최초의 관음증 환자로 기록에 남는다. 그리고 ‘Godiva’는 1926년 벨기에에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 고급 초콜릿 상표명으로 태어난다.   관음증의 대상이 벌거벗은 남녀의 몸에 국한돼야 한다는 법은 없다. 황새와 관광객은 어원학적으로 빛을 추구하는 법. 우주의 관광객 아인슈타인도 빛의 속도를 탐색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갤럭시와 인간의 진리와 정신활동을 관음(觀淫)하고 있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관음증 관음증 환자 관광객 아인슈타인 한자사전이참 고지식도

2025.04.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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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생각난다 그 오솔길

2005년 3월 중순. 한국 유튜브 서핑을 하던 중 얼떨결에 은희의 노래 〈꽃반지 끼고〉를 클릭한다. 1971년 당시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웠던 추억…” 은희는 지금껏 꽃반지와 오솔길과 사랑했던 남자의 손을 메모리 속에서 더듬는다.   1955년, 남인수의 〈청춘고백〉의 어처구니없는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것 이 내 심사/ 믿는다믿어라 변치 말자/ 누가 먼저 말했던가/ 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내 청춘.” 당신도 잘 알다시피 유행가의 근본은 생각보다 감성을 피력하는 데 있다. 조국을 잃은 슬픔 또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안쓰러움보다 인간의 감성이란 누가 뭐래도 남녀의 사랑이 가장 으뜸이다.   상사병(相思病)을 사전은 ‘남자나 여자가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이라 풀이한다. 서로 相, 생각 思.   그렇다. 서로를 생각하는 병이 상사병이다. 이건 완전 정신과 영역이다.     ‘나와 너’가 등장하는 디폴트 세팅이라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사랑이라는 드라마에는 늘 두 사람이 출현한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결코 상사병에 걸릴 수 없다네.   ‘Brook Benton’은 1961년 〈Think Twice〉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대답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해요/ 예스라고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해요/ 당신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지 묻는 거예요/ 내 행복이 걸려 있으니까요.”   이렇듯 남녀의 사랑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때가 미국에 있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Yes’라 응답하기 전에 생각을 다시 한번 더하거라, 하던 시절이.   그러나 자유분방한 미국에서 그런 보수성향적 의식구조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 1963년. 시대의 반항아 ‘Bob Dylan’이 통기타를 튕기며 부른 노래 중,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이런 부분이 있다. “동틀 무렵 당신의 수탉이 울 때면/ 창밖을 보세요, 난 떠나고 없을 거예요/ 내가 길을 나서는 이유는 바로 당신/ 두 번 생각하지 마요, 괜찮으니까요.”     60년도 중반에 미국을 쓰나미처럼 강타한 히피들을 생각해 보라.     머리에 꽃을 달고 다니며 일정한 주거지도 없이 큰 공간에 몰려 살며 혼음을 일삼던 히피족들을. 그들은 ‘Bob Dylan’의 노래가사 대로 앞뒤 가리지 않고 떠돌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또 있다. 남녀간 일어나는 생각의 소용돌이가. 전 세계의 팝송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Tayler Swift’의 2019년 히트곡 〈I think he knows〉.   “그의 발자국이/ 보도 위에 남겨져/ 내가 멈출 수 없는 곳으로 이어지는 걸/ 매일 밤 그곳으로 내가 가는 걸/ 난 그가 안다고 생각해/ 차가운 유리잔을 감싼 그의 손/ 내가 그 몸을 내 것처럼/ 알고 싶게 만든다는 걸.”   ‘가요 반세기’보다 훨씬 긴 세월이 흐르면서 유행가와 팝송에 반영된 우리의 ‘생각’들은, 연인과 함께 걷던 오솔길의 그리움, 죄 많은 청춘을 위한 고해성사, 세심한 사랑의 예식, 그리고 ‘너와 나’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두 번씩이나 하는 수순을 거부하는 대담한 체험을 쌓기도 했다.     급기야는 상대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생각의 공감의식(共感意識)에 몰입하고 있다. 온통 자기 멋대로라니까.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오솔길 bob dylan 보수성향적 의식구조 팝송 시장

2025.03.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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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방안에 코끼리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요령이 많이 있다. 그중 미국인들은 이런 방법을 선호한다. ①냉장고 문을 열고 그 속에 앉아있는 사자를 끄집어낸다. ②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③냉장고 문을 다시 닫는다. (혹시 ①에서 사자가 아니라 기린이 서 있으면 기린을 침착하게 끄집어낼 것.)   인터넷에 떠도는 한국식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①식품영양적 방법: 코끼리를 도축하여 통조림을 만든 후 냉장고에 넣는다. ②정치적 방법: 코끼리에게 냉장고에 들어가라는 판결을 내린 후 불복하면 구속영장을 때린다. ③의사들이 쓰는 방법: 수련의에게 일을 떠맡긴다. 이 심오한 명제에 대한 토론의 범람이 인터넷에서 당신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렇다. 방금 상상(想像)이라 했다. 생각 想. 모양 像.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 또는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일이 상상이다. 나무(木)를 바라보는(目) 마음(心)이 생각 想. 사람 人과 코끼리 象이 합쳐진 모양 像의 오른쪽 부분은 누가 봐도 코끼리를 그려 놓은 상형문자다.   고대 중국 은나라 시절의 기후는 지금과 달리 열대에 가까웠기 때문에 황하 유역에 코끼리가 많이 서식했다 한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인구증가와 기후변화로 인하여 코끼리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후대에 이르러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코끼리의 모습을 상상으로 그렸다 해서 ‘모양 像’자가 만들어졌다는 사연이다.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발췌)   철학적 뜻을 내포하는 현상(現象)에는 ‘코끼리 象’이 등장하는 반면에 사진현상(寫眞現像), 할 때는 ‘모양 像’이다. 철학은 사물의 심오한 의미를 추구하지만 달랑 사진 한장은 사진에 그칠 뿐.   감상(感想), 공상(空想), 몽상(夢想), 망상(妄想) 같은 글자에는 코끼리가 개입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런 단어들이 강한 중량감을 풍기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고통이다. 객담이지만, 코끼리가 동물계 패션쇼에 참가하면 예선에서 떨어질 것임이 분명해요.   ‘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희한한 관용어를 생각한다. 어떤 확연한 화제, 질문사항을 모두가 뻔히 알면서 누구도 언급하기를 꺼리는 상황을 뜻한다. 상상해 보라. 쑥스럽거나 난처한 이슈를 앞에 놓고 누군가 용기 있는 사람이 결국은 말문을 트는 장면을. “There’s an elephant in the room that nobody wants to talk about…” 하며 닥쳐올 논란을 감수하면서.   이 관용어는 러시아의 우화작가 이반 크릴로프(Ivan Krylov: 1769~1844)가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는 우화에서 박물관을 구경하는 한 사람이 소소한 것들에만 신경을 쓰다가 코끼리를 전혀 보지 못하는 정황을 묘사한 데서 시작했다 한다. 그 후 당신이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내가 좋아하는 마크 트웨인이 그 표현을 부각했고그 후 1959년에 뉴욕타임스가 그 비유법을 미국에서 처음 썼다는 기록이다.   안데르센 동화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솔직한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런 옷을 걸친 왕을 가리키며 “왕이 벌거벗었다!” 하며 한 어린이가 소리친다. 부정직한 어른들은 부재하는 옷을 존재하는 옷으로 치부했다. 무(無)를 유(有)로 착각한 것이다.   방 안의 코끼리는 어떤가. 거대한 코끼리가 떠억 자리 잡고 있는데 사람들은 코끼리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코끼리를 냉장고 속에 은닉했기 때문일까. 하여간 현상계(現象界)는 코끼리 세상이다. 당신 눈에 방 안의 코끼리가 보이건 보이지 않든 간에.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코끼리 방안 식품영양적 방법 정치적 방법 우화작가 이반

2025.03.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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