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의 빛과 프레임 사이에 여행을 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이집트 별빛 아래 떠나는 영화 같은 나일강 크루즈 신화와 현실이 만나는 영원의 필라이 신전 아부심벨, 과거가 살아 숨 쉬는 태양의 제단 룩소르의 석양과 아스완의 새벽이 맞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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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추리소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두 가지는 영화와 추리소설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의 로망이 완벽하게 녹아든 작품이 바로 1978년작 ‘나일강의 죽음(Death on the Nile)’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한 편의 살인 미스터리이자, 이집트 문명의 경이로움이 넘치는 명작이었다.
그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어린 시절, 3년간 살았던 아프리카 말라위 교외의 자동차 극장 ‘카무비(Drive-in Theater)’에서였다. 일주일에 한 번, 온 가족이 자동차 안에 옹기종기 앉아 팝콘을 나눠 먹으며 하늘 아래 스크린을 바라보던 그 시간은 내 삶의 가장 빛나는 기억 중 하나였다. 도시의 불빛도, 거창한 시설도 없었지만 스크린 속 세계는 내게 무한한 상상력과 감정을 선물했다.
영화의 중심 무대이자 움직이는 문명의 무대는 바로 나일강 크루즈다. 낮에는 고대 유적의 장관이, 밤에는 어둠 속 긴장감이 교차하며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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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크루즈: 움직이는 문명의 강
‘나일강의 죽음’의 주요 무대는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이어지는 나일강이다. 증기선 크루즈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심리극은 긴장감과 함께 고대 유적의 비경을 배경으로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수십 년이 지난 뒤, 나는 영화 속 장면을 따라 실제로 나일강 크루즈에 올랐다. 갑판 위에 서서 바라본 풍경은 영화보다도 훨씬 생생했다. 이집트의 태양 아래 반짝이는 강물, 강둑을 따라 늘어선 야자수와 무너진 신전의 기둥, 저 멀리서 밀려오는 사막의 모래바람까지. 이곳은 살아 있는 역사이자 감성의 공간이었다.
“People have the same hopes, fears, and loves wherever they are.”
“어디에 있든 사람들의 희망과 두려움, 사랑은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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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이 신전: 여신 이시스의 마지막 안식처
아스완 근처의 섬에 자리한 필라이 신전은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실루엣으로 여행자를 압도한다. 필라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에서 이시스 여신을 모시던 가장 성스러운 장소 중 하나로, 나일강 수위 상승으로 인해 유네스코가 신전을 통째로 다른 섬으로 옮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고고학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속에서도 인상적으로 등장했던 이 신전은 과거와 현재가 마주보는 듯한 고요한 울림이 있다. 나는 천천히 기둥 사이를 거닐며 신화와 역사, 그리고 영화적 상상을 한데 껴안았다.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 앞에서 주인공들이 운명을 마주하는 장면에 나오는 아부심벨은 사막의 신전은 인간의 욕망과 숙명을 웅장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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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심벨: 람세스 2세의 영원한 자화상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아부심벨은 실로 경이로운 장소였다.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위대함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건설한 이 신전은 두 개의 거대한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대신전은 태양신 라-호루아크티와 람세스 2세 자신을 숭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매년 2월과 10월 두 차례, 태양빛이 신전 깊숙이 들어와 내부 신상 네 개 중 세 개만을 밝히는 천문학적 설계는 고대 이집트 과학과 종교가 결합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The past is never dead. It's not even past.”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사실 과거는 아직도 현재에 살아있다.”
아부심벨에 서 있는 순간, 나는 수천 년을 뛰어넘는 왕의 숨결과 인간의 집착을 함께 느꼈다.
카르나크 신전 기둥을 따라 이어지는 복도 장면은 고대의 신비와 영화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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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과 룩소르: 문명의 시작과 끝
아스완은 이집트 남부의 평온한 도시다. 향신료 시장에서는 계피와 커민 향이 풍기고, 전통 찻집에서는 민트티 한 잔이 여행자의 피로를 녹인다. 영화 속 긴장과 아름다움이 교차하던 장면들이 현실의 거리와 겹쳐지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반면 룩소르는 이집트 문명의 진정한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카르나크 신전 입구에 늘어선 양 머리 스핑크스들, 기둥마다 새겨진 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나일강 건너편의 '왕가의 계곡'은 무려 60개가 넘는 파라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고대의 영묘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마치 고대 파피루스에 적힌 대서사시를 읽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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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나일강: 별빛과 사색의 강
밤이 되면 크루즈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영화 속 살롱에서는 음모와 모임이 벌어졌지만, 현실의 밤은 고요하다. 잔잔한 물결 위로 별빛이 반짝이고, 갑판 위로 스치는 바람은 사막에서 온 듯 따스하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카무비로 돌아간다. 영화 속 살인 사건 대신, 내 삶의 감정과 기억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깨닫는다. 진짜 미스터리는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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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로 스타일의 인삿말로 떠나는 여행
“사랑하는 여행자 여러분, 이제 나일강의 미스터리를 따라 인생의 한 페이지를 쓰러 떠나보실까요? 수천 년을 흐른 문명과 한 편의 영화처럼 낭만적인 밤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지금, '당신만의 추리소설'을 시작해보세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영화 초반, 주인공들이 이집트에 도착하며 처음 마주하는 고대 문명의 상징적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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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팁
푸른투어와 함께하는 '왕의 귀환 고대문명의 이집트 일주 10일'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닙니다. 카이로, 룩소르, 에드푸, 콤옴보, 아스완 등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적지들을 모두 포함한 프리미엄 일정. 나일강 위 5스타 디럭스 크루즈에서의 3박과 전 일정 5성급 호텔 숙박으로 구성되어 있어, 고대 문명과 영화적 감성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