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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트렌드] 경량시대 속 교회

Los Angeles

2025.11.10 16:20 2025.11.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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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트렌드 분석가 송길영의 ‘경량시대(경량문명의 탄생)’를 보고 느낀 점을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 ‘무거운 세상’이 저물어가는 전환기에 서 있다. 거대 조직, 권위 중심의 구조, 위계적 명령 체계는 더 이상 생존의 보증이 되지 않는다. 빅데이터 분석가 송길영은 이를 ‘경량문명’이라 부른다. 그는 ‘대마필사(大馬必死·큰 말은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며, 무거운 조직이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방향을 잃는다고 진단한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규모의 성장’이 교회의 건강을 상징하던 시대가 있었다. 대형 예배당, 수천 명의 성도, 다단계 조직 구조, 정교한 프로그램 운영이 성공의 지표였다. 그러나 이제 그 무게는 점점 교회를 지탱하기보다 짓누르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교회는 여전히 과거의 질서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뒤 교회도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
 
경량시대의 핵심은 단순히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가볍게 움직이며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존 교회가 ‘건물 중심, 조직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관계 중심, 네트워크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 Z세대 신앙인들은 거대 담론보다 진정성 있는 대화, 형식보다 의미 있는 만남을 원한다. 그들은 ‘예배당에 와야 신앙생활을 한다’는 말보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에 더 크게 공감한다. 경량시대의 교회는 따라서 소속이 아니라 연결을 통해 존재해야 한다.
 
경량문명은 플랫폼의 시대다.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연결 방식’이 플랫폼을 만든다. 교회 역시 이제 건물이 아니라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소유한 자산은 예배당이 아니라 사람, 콘텐츠, 가치관이다. 예를 들어, 교회가 설교나 예배만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돌봄 네트워크, 청년들의 멘토링 허브, 문화와 예술의 창작 커뮤니티, 사회문제에 대한 실천적 대응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다면, 그것은 경량시대의 교회다.
 
교회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직접 운영할 필요가 없다. 신앙의 주체를 성도로 돌려주고, 교역자는 ‘연결자’이자 ‘촉진자(facilitator)’로서 새로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송길영은 리더의 역할을 “위대한 쇼맨”이라 표현한다.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고 사람들을 무대로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교회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는 더 이상 모든 것을 통제하는 관리자라기보다, 성도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도록 돕는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경량문명은 단순히 기술적·사회적 변화가 아니라 문명의 철학적 방향 전환을 말한다. 교회 역시 사람을 살리고, 진리를 나누며, 공동체를 이루는 그 본질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 건물과 프로그램, 조직의 무게를 덜어낼수록 복음은 더 멀리, 더 가볍게, 더 깊이 퍼질 수 있다. 교회가 스스로를 가볍게 할 때,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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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 J&B푸드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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