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짧은 가곡이다. 가사에 가을도 들어가니 가을노래라고 생각했다. 오래전 대학동창의 약혼식에 참석한 내가 지목이 되어 갑자기 축가를 불러야 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생각이 오갔다. 가볍지 않고 품위 있게 하려고 선곡한 게 가곡인 이 노래였다.
한껏 고상하게 보여 신랑친구들한테도 점수 좀 딸 절호의 찬스였는데, 노래 마치자 분위기가 썰렁했다. 가을 노래인 줄 알았던 이 노래가 박목월 작시 김성태 작곡의 ‘이별의 노래’였던 거다. 축하의 자리에서 이별 노래로 초를 치다니.
실수를 크게 한 후 알아보니 이 시의 배경엔 6·25 전쟁 때 조국의 앞날을 노래했다는 설도 있고, 목월이 사랑한 제주에 두고 온 연인을 그리는 노래라는 설도 있는 사연 있는 이별가였던 거다. 그 이후 40년도 넘는 세월을 지나면서 축가를 불렀던 약혼식의 주인공들이 어찌 사는가 늘 마음을 졸였다. 만일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 노래 탓이려니 노심초사했다.
한국 살던 그 친구가 남편의 연수로 미국에 들어와 눌러 살게 되면서 멀지 않은 거리에 살아서 소식을 잘 듣고 있다. 자손들이 잘되고 잘 풀린다니 얼마나 다행한가. 그녀가 잘 살고 있는 게 내일처럼 고맙다. 노래의 저주에서 풀린 듯 마음이 이젠 편하다.
늦가을이어도 낙엽을 잘 볼 수 없는 이곳에 살지만 마당 한 귀퉁이의 대추나무도 노란 단풍이 들고 감나무는 감색으로 이파리가 물들었다. 연못의 연잎도 금빛으로 변한다는 걸 알았다. 여물어가는 것들은 제 색을 버리고 덜어내면서 다 선한 빛으로 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덜어냄이나 잃음의 미덕을 마음 깊이 새기고 난 잘 여물었는가. 잘 여물어 이웃과 나눌 선한 열매가 있는가.
마침 읽은 이호준 시인의 시 ‘11월’에서 답을 찾아본다. ‘괜히 11월일까/ 마음 가난한 사람들끼리/ 따뜻한 눈빛 나누라고/ 언덕 오를 때 끌고 밀어주라고/ 서로 안아 심장 데우라고/ 같은 곳 바라보며 웃으라고/ 끝내 사랑하라고/ 당신과 나 똑같은 키로/ 11/ 나란히 세워놓은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