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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리포트] AI 시대, ‘모른다’는 말의 가치

Los Angeles

2025.11.12 19:01 2025.11.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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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

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

아직도 클로드,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만일 한 번이라도 써 봤다면, 오늘 이 이야기는 당신과 분명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은 놀랍습니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기도 하고, 업무 메일을 대신 써보기도 합니다. 회의록을 정리하고, 블로그 글 초안을 뽑는 것도 이제 버튼 하나면 됩니다. 처음 써보면 마법 같습니다. 마치 내가 갑자기 천재가 된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AI를 이용해서 코드를 짭니다. 소위 바이브 코딩 (Vibe Coding)이라는 겁니다. 앱을 만들기도 하고, 간단한 웹 페이지를 활용한 마이크로 서비스는 최근 3개월 동안 10여 개 만들어 봤습니다. 코드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기분은 마치 천재 개발자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저는 기업의 홍보물 텍스트를 넣으면 네 컷의 만화를 만들어 주는 AI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작업하는 도중 최근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 네 컷 만화를 여러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웹 사이트로 열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답했습니다. “네. 만들어 볼게요. 30분이면 될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 만들어 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연결하면 그 정도 시간 안에 충분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AI와 코드를 짠 경험상 한방에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자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그 제품을 넘겨주기 까지 2시간이 걸렸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AI와 함께 일을 하다보니, 나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사람은 원래 자신과 관련된 것들은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타인과 관련된 것은 냉정해 지려고 하는 비대칭성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외유내강이 더 희귀한 덕목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AI가 더해지면, 어느새 나의 능력이 나의 생각보다 과대평가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도구를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마치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시속 3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거나, 비행기를 통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AI를 통해 슈퍼 파워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AI 덕분에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짐작했던 일이 실제로는 너무 어렵다거나, 실패로 끝난다면 그건 얘기가 다릅니다. 그건 AI로 인해 탄생한 인간의 환상, 즉 ‘할루시네이션’에 다름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태도를 하나 꼽자면 단연 ‘지적 성실성(Intellectual Integrity)’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적 성실성은 간단합니다. 내가 아는 건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태도입니다. 나아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시도해 보며, 그 시도 이전에는 ‘모름’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태도입니다.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무식하다’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자격이 없다’는 말과도 사회적 동의어가 바로 ‘모른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말을 하기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AI한테 물어보면 답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기업이, 조직이, 국가가, AI가 아닌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AI가 하지 못하는 일을 사람이 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의 존재이유는 더더욱 “AI가 아직 학습하지 못한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될 거란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가면 갈수록 “AI한테 물어도 큰 도움이 안 되고, 아직 아무도 해 보지 않았거나,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될 겁니다. 한마디로, “모르는 게 당연한 일들”이 사람들에게 일거리로 주어질 거란 겁니다.
 
그렇다면 개인들이 해야 할 일은 뚜렷해 집니다. 바로 지적 정직함과 지적 성실성입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 (지적 정직함), “모르지만 해 보겠다고 하는 것.” (지적 성실성)  
 
사회가 해야 할 일도 뚜렷해 집니다. “몰라도 괜찮다고 하는 것.” (지적 정직함에 대한 인정) “해 보고 실패하는 사람을 우러러 보는 것.” (지적 성실성에 대한 사회적 보상) 하지만 “해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 “하지도 않고 아는 척하는 것”등과 같은 지적 비성실성은 극도로 보상을 낮추거나, 때로는 불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AI 시대에 있어서 정직함은 이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솔직해 지면 신뢰받을 수 있다”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직함이 인간에게 실질적인 돈을 벌어다 주는, 손에 잡히는, 중요한 덕목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쭤봅니다. 챗GPT를 쓰는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언제 “모른다”라고 말해 보셨나요?

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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