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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칼럼] 작아졌지만 더 넓어진 삶

New York

2025.11.17 21:05 2025.11.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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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 리스팅 상담을 위해 한 노부부를 만났다. 무려 36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아온 분들이었다. 그들이 사는 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늘 북적이던 공간이었다. 마당 한켠에는 잘 관리된 수영장이 있었고, 주말이면 지인들이 찾아와 식사를 나누고 담소를 즐기던 따뜻한 집이었다. 가족행사도 자주 열렸고, 아이들의 생일파티와 명절 모임으로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아이들이 자라 독립하고, 손주들이 찾아오며 그 집은 오랫동안 행복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두 분만 남았다. 커다란 거실과 계단, 손길이 필요한 정원은 점점 버거운 존재가 되었다. 집이 넓다 보니 손이 가는 곳이 많아 예전처럼 쉽게 챙기기 어렵다고만 간단히 말씀하셨다. 특별히 힘들다고 표현하신 건 아니었지만, 그 짧은 말 속에 오래된 집을 지켜오며 감당해야 했던 수고들이 은근히 비쳐 보였다. 들으며 문득, 실제로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을 혼자 버텨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집을 ‘관리하는 일’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정작 본인들을 위한 시간은 줄어드는 상황. 두 분의 담담한 얼굴 너머로 그 현실이 조용히 전해졌다.
 
오랜 세월 정들었던 집을 떠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한 뒤에도 추억이 깃든 공간을 정리한다는 건 마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부담은 점점 커진다. 관리비와 세금, 난방비에 더해 보일러와 지붕, 잔디 손질과 눈 치우기까지, 집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이제는 손이 많이 가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다운사이징’은 단순히 집의 크기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새로운 균형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망설인다. 두 분도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용기 있게 마켓에 집을 내놓기로 했다. 미래의 편안함을 위해 내린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오랜 세월 가족의 추억이 쌓인 교외의 넓은 집은 좋은 조건으로 매각되었고, 두 분은 시니어 코압으로 이사했다. 더 이상 잔디를 깎을 필요도 없고, 폭설이 내려도 제설기를 꺼낼 일이 없다. 주차장에서 바로 현관으로 들어서면 따뜻한 거실이 맞아준다.  
 
관리비에 포함된 정원 손질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여유가 생겼고,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집에서 두 분은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며 걷는 산책길, 필요한 것이 손 닿는 곳에 있는 편리함, 그리고 조용한 오후의 햇살이 어느새 일상의 행복이 되었다. 예전에는 집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집이 두 분의 삶을 품어주는 듯했다.
 
얼마쯤 지나 전화를 드렸더니 두 분의 목소리에는 여유와 웃음이 묻어났다. “넓은 집을 정리하니, 우리 마음도 정리된 것 같아요.” 그 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작아진 집이 오히려 마음을 넓혔다는 표현처럼 들렸다. 다운사이징은 단순한 부동산 거래가 아니다. 재정적으로는 집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고, 남은 자산으로 여행이나 건강, 자녀 지원 등 ‘살아 있는 돈’을 만들어 쓸 수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다. 크고 화려한 집이 주는 만족보다, 관리가 쉽고 생활이 단순한 집에서 느끼는 평온함이 훨씬 크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두 분의 선택처럼, 공간이 줄어드는 대신 삶의 질은 오히려 확장되는 것이다.
 
집은 작아졌지만, 그 안의 삶은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다. 집이란 결국 크기가 아니라 관계의 온도로 완성되는 공간이 아닐까. 다운사이징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단단해지는 삶의 전환이다. 두 분의 미소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

제이 윤 / 재미부동산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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