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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임의 마주보기 칼럼- 나의 대나무!

Chicago

2025.11.25 11:37 2025.11.2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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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임

손원임

어느 쌀쌀하게 가을 바람이 몹시도 세게 부는 날이었다. 나는 당이 떨어져, 전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졸린 눈을 비비며 무작정 카페로 향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말 운 좋게도 오븐에서 막 구워 나온!) 블루베리 머핀을 따뜻한 커피와 함께 먹을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백인 여성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와우, 머리를 위로 아주 간단히 한 번에 틀어 올리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네요. 나도 내 머리를 그렇게 쉽게 하고 싶어요. 무척 예뻐 보여요!” 아마도 그날 아침 거울도 보지 않고 부시시하게 나선 내가, 무의식 중에 혹시나 해서 머리를 만져 정돈하고 있었나 싶다. 아무튼 낯선 사람의 예상하지 못한 칭찬 한마디는 그날 아침의 달콤한 머핀보다 훨씬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생각났다. 어느 오후 면담 중에 선생님은 내 성적 등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나의 성격에 대해서 “너는 참 착하고, 대나무 같이 매우 곧고 바르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조금 과장을 섞는다면, 사실 그때 이후로 ‘대나무’라는 단어는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혀서 내 삶의 스키마(schema)와 동시에 길잡이(guide)가 되었다.  
 
물론 나는 실수하고, 오류를 범하며, 의지 또한 약하다. 하지만 대나무라는 개념은 내게 분명히 하나의 ‘자정 장치(self-correcting mechanism)’의 역할을 해주었다. 대나무(bamboo)의 특성을 보면, 보통 푸른색에 줄기가 바르게 자란다. 또한 강하고 유연한 성질에 더해서 탄력성도 있으며, 지조와 절개, 정직함, 장수 등을 상징한다.  
 
지금 돌아보면 비록 이런 대나무의 모든 상징성을 알지도, 특별히 굳이 의식하며 살 지는 않았어도, 어쩌면 대나무의 이미지가 나의 잠재 의식에 자리잡아 세상사의 힘든 여정 속에서 그나마 나를 잡아주었던 것 같다.  
 
자기계발 전문가로 매우 유명한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2024)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의 주변 환경은 감정의 수영장과 같다. 당신은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다. 그러므로 환경을 통제해서 물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사실상 이 구절은 원초적으로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 하루 동안에 아니 한 시간만 놓고 보더라도, 느끼고 겪게 되는 그 수많은 정서를 품은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충분히 이해와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예를 들어 아침에 산뜻하게 가벼운 기분으로 일어났어도, 출근길 지나가는 차에 튀긴 흙탕물로 새로 입은 바지가 젖어 더러워지면 이내 기분이 무척 상하고 안 좋게 된다. 그런데 점심에 동료가 위로해주고, 부드러운 에그 샌드위치를 먹고 포만감에 차면, 또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유쾌하게 일에 전념하곤 한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이리저리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정서의 만화경(kaleidoscope) 속에서, 특히 나쁜 감정들의 소용돌이와 분노와 좌절들을 잘 관리하려면, 일종의 자정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상 적절히 유효한 ‘자정 장치’는 맛있는 음식도, 한바탕의 큰 웃음도, 친구의 위로도, 낯선 이의 칭찬도, 혹은 어느 현자가 남긴 훌륭한 문구도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내게 ‘대나무’라는 상징성을 심어준, 그 선생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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