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여행을 할까? 그 유명한 동화, 소설 『어린 왕자』의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는 여행에 대해서 매우 경건하고 겸손하며, 또 진지하게 말했다. “여행은 당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한다. 세상이 얼마나 광대하고, 우리를 둘러싼 경이로움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사실상 여행을 가는 목적과 이유는 개개의 사람들마다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이는 그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또 어떤 이는 미식가로서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거나 신선한 레시피(recipe)를 찾아서 간다. 또 어떤 이는 전혀 새로운 나라에서 낯선 문화와 언어를 경험하고 싶어서 정처 없이 떠난다. 또 어떤 이는 짜릿하고 정열적인 로맨스를 기대하며 길을 나선다. 또는 회사의 집단과 조직 구성원 간의 단합과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려 웃고 즐기는 오락과 재미가 그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이 진부한 질문에 대해서 아주 상투적인 대답을 하고 싶다. 그것은 한마디로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인 것이다. 아무리 특별한 이유가 없이 휴가나 여행을 다녀왔더라도, 막상 여행 가방을 풀며 짐들을 정리하다 보면, 기존의 자신의 생각이나 확신 또는 삶의 자세에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를 느끼게 마련이다. 물론 이런 느낌과 사고의 진동은 잔잔히 오래 갈 수도 있고, 또 금세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어느 정도 자아의 시공간적 확장에 물리적, 심리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가져오며, 때로는 놀라운 창의적 사고와 생각지도 못한 영감의 원천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서 미식가나 식도락가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정규 방송 프로그램과 SNS의 각종 소셜 플랫폼에서 ‘foodie’나 ‘gourmet’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국이나 외국의 각 곳을 여행하며,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소개하지만, 특히 음식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그 지방 사람들의 일상적인 음식, 또 오랫동안 전해온 전통적인 음식과 특이한 음식 재료 등도 소개해준다. 물론 이들은 방송 프로그램을 목적으로 촬영하고, 또 물적, 인적 지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이 먹는 것 자체를 열성과 열정을 다해서 즐기지 않는다면, 그 ‘쇼’가 지속되고 성공하는 데에 어려움들이 따르게 된다. 어쨌든 이들 미식가들은 다양한 장소를 가보고 시음하면서 더욱더 자신의 음식에 대한 식견과 이해와 지식을 확장해 간다. 그리고 이후 새로운 요리법을 창안해서 선보이고, 더 나아가 대중에게 아주 유익한 요리책을 내기도 한다. 언젠가 ‘다이어트(diet)’라는 단어로 만든 재미난 유머에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Did I Eat That?”이라는 질문을 줄인 약자로, “D.I.E.T.?”로 표현했던 것이다. 맞다! 나는 이에 두말할 것 없이 흔쾌히 100%로 동의한다. 그런데 여기서 특히 나를 웃게 만든 것은 바로 ‘음식 긍정성’이었다. 이것은 ‘food positivity’로서 호기심이 섞인 흥미진진한 접근이다. 사실상 다이어트라는 단어는 일상적인 식사를 의미하지만, 안타깝게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식이요법을 의미할 때도 많다. 그래서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고, 무척 괴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가 말했던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먹는 즐거움’에 비할 수 없다고 말이다! 이렇게 다이어트라는 한 단어에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삶에는 다음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한 가지 방식은 ‘세상에는 기적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이는 매우 부정적이다. 그러나 또 다른 방식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기적과 같다’고 믿고 사는 것이다. 이는 아주 긍정적이다. 물론 세상사를 오직 두 가지 잣대로 재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사에 호기심을 갖고서 조금만 더 경이롭게, 약간 더 기적스럽게 본다면, 어쩌면 저렴한 음식도 맛있고, 소소한 여행도 재밌고, 나아가 단순한 삶도 꽤 좋아 보이며 좀 더 즐거워질 수 있을 것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기적 음식 재료 여행 가방 사실상 여행
2026.05.26. 13:56
어떤 유명한 팬케이크하우스에서, 한 명의 중장년 여성이 혼자서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던 그 여성은 음식이 나오자마자, 그 양에 당황한 듯이 잠깐 멈칫했다. 그녀는 바로 두 개의 투고 박스를 요청했고, 이내 웨이트리스가 박스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녀는 음식을 전혀 따로 박스에 덜어 담지 않은 채, 바로 맛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한 개의 박스에만, 그것도 아주아주 조금 남은 양만 담아 가져갔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혼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나를 포함해서 아마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이에 기꺼이 공감하고 이해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 여성은 처음에는 음식이 너무 많으니 조금만 먹고, 두 박스를 채울 만큼 많이 남겨 가려고 마음을 먹었으리라. 하지만 군침이 돌게 하는 음식 앞에서 배고파서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식욕을 참지 못해 과식하기 쉽다. 이렇게 소식의 결심이 간 데 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우리 몸은 먹어야 산다. 자고로 식욕이 심각하게 저하되거나 없으면, 건강의 ‘악신호’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인 것이다. 사실상 인류의 과거에 수렵채집인의 삶이 일상이었을 때에는 음식을 보면, 미리미리 많이 먹어두어야 했다. 왜냐하면 다음 사냥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언제 또 소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지가 그 자체로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걷고 달리며 꾸준히 온몸으로 칼로리를 태웠기에, 비만이나 당뇨도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과거의 자연과 공존하는 수렵채집인의 삶은, 현대의 미국 할리우드의 SF(공상과학) 영화 〈아바타(Avatar)〉에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현대인은 더 이상 수렵채집인(hunter-gatherer/forager)이 아니다. 우리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기술혁명을 거쳐서 이제 첨단 과학과 혁신적인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은 매일마다 음식을 찾아 사냥하러 산과 들 그리고 강으로 헤매고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의 풍요와 함께 실내의 좌식 생활이 주가 되었지만, 여전히 많이 먹고 싶은 욕구는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 누가 편안히 소파에 기대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재미있는 쇼나 영화를 보는 짜릿한 ‘유희’를 거부하겠는가? 물론 식욕과 과식에는 호르몬도 크게 한 몫 한다. 우리는 배가 (몹시!) 고파서 음식을 찾게 하는 그렐린(ghrelin) 호르몬과 배가 (몹시!) 불러서 음식을 그만 먹고 싶게 하는 렙틴(leptin)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이들 호르몬을 ‘신호탄’으로 해서, 우리는 식사 시간과 양, 게다가 음식의 종류까지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마냥 바쁜 현대인은 또 수면 부족이나 지나친 스트레스처럼 식욕을 증가시키는 요인들에 시달린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넘치는 삶은 식욕 호르몬들의 작용과 균형을 아주 쉽게 망가뜨린다. 다행히도 ‘식욕의 유혹’을 견디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우선, 음식을 먹을 때는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는 것이 좋다. 그래야 식후 20~30분 후에, 공복호르몬이 아니라 식욕억제 호르몬이 작용해서 두뇌에 포만감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는 데에 충분하다. 그리고 평소에 숙면을 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한다. 또한 과음과 야식을 삼가고, 건강한 양질의 음식을 먹고,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을 강구한다. 결국 또다시 호르몬과의 투쟁이다. 즉 공복호르몬인 그렐린, 식욕억제 호르몬인 렙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잘 조절하면, 과식과 폭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식욕 충동의 조절은 참 어렵다. 나 자신도, 솔직히 말해서, 매일마다 집 앞뜰의 다람쥐마냥 단 음식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절제 있는 식사를 하고, ‘식욕의 유혹’을 물리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작은 ‘의식적인 실천’이 멀리 간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다람쥐 손원 식욕억제 호르몬 식욕 호르몬들 식욕 충동
2026.04.28. 13:33
현대는 한마디로 풍족한 세상임에 틀림이 없다. 이는 음식과 각종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대형마트에 가서 구경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빈곤층이 존재하고, 특히 자국민들을 배고픔에 시달리게 내버려두는 배부른 독재자의 통치가 계속되는 나라들도 있다. 하물며 전쟁과 폭력도 그렇다. 하지만 현시대는 본인이 열심히 일하고, 또 행운까지 따라준다면, 다소 복지를 누리며 책임지는 자유인으로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2015년도 책인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에서, 인류의 역사는 세 가지의 중대사를 극복해 온 과정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바로 ‘기아’, ‘역병’ 그리고 ‘전쟁’인데, 우리가 이들 문제들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또 그래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현세에는 굶주림보다는 과식이 더 문제가 된다. 오히려 설탕과 당뇨병, 비만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질병이다. 과거 인류에게 신의 저주와 무서운 벌로 여겨졌던 흑사병이나 에이즈 등 각종 전염병과, 암과 수많은 질병을 이제 첨단 의학기술과 처방약으로 치료하고, 보다 나은 신약 개발에 힘쓴다. 게다가 기대수명이 늘어나서, 노화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100 세 시대’를 과감하게, 희망적으로 낙관한다. 마지막으로 국가 간의 치명적인 전면전이 상당히 줄었고, 대체로 평화롭게, 자유롭게 복지시대를 살고 있다. 와우! 우리 인류는 참으로 기아와 질병과 전쟁을 넘어서 엄청난 기적과 개혁을 이루었다.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참으로 지혜롭고 슬기롭다! 나는 인류사의 진보에 박수를 힘차게 보낸다. 그리고 이런 발전에는 각각의 가정과 개개인이 피와 땀을 흘려 일하고 아끼며 열심히 살아온 덕 또한 매우 크다. 일반 시민의 알뜰한 소비와 저축과 투자가 밑받침이 되어 ‘잘 먹고 잘 사는’ 복지국가를 이루어 온 것이다. 칼럼니스트인 모건 하우절은 『돈의 심리학: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에서 돈의 경영과 경제에 관해서 여러 조언들을 한다. 이들 ‘돈 교훈’은 젊어서 일찍 알고 실천하면, 매우 좋을 만한 점들이다. 그 중 두 가지를 들자면, 첫째는 ‘당신이 밤에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돈 관리를 (잘) 하라’는 점이다. 나는 이 의견에 진정 공감하며 100 퍼센트 동의한다. 사실상 과거에 내 아버지도 투자를 잘못해서 사기를 당했고, 아주 많은 돈을 날렸었다. 아버지가 밤마다 잠은커녕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거실을 왔다 갔다 방황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건 화병과 절망감이었다. 그때 아빠의 (완전 가짜!) 절친은 값진 굴비세트에 배상자 등을 선물하며 아빠의 환심을 사고 마음을 홀렸지만, 결국 모두가 다 사기 작전에 불과했다. 따라서 너무 투자에 극단적으로 무리하지 말도록 하자. 밤에 편안히 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건전한 인생 투자인 것이다. 둘째는 ‘무조건 저축하라’다. 하우절은 저축에는 굳이 특별한 이유가 필요 없다고 강조한다. 쓸 데 없는 낭비를 하지 말아야, 이후 정말 필요할 때나 불의의 사고 시에 돈을 쓸 수 있다. 세상의 삶이란 ‘불확실성’ 그 자체라서 사전에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지나친 허영과 사치는 또 다시 빈곤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결국 가정과 사회에서 경제 문해능력을 키우고, ‘돈 교훈’을 배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어려서 배웠듯이, ‘티끌 모아 태산’이요, 저축도 습관이다! 물론 저축을 열심히 하고, 더 나아가 자신에게 맞고 적절한 주식 종목을 사서 지긋이 기다리거나 다른 투자 방법도 잘 활용하면 좋다. 단지 진정한 경제적 독립과 심리적 자유가 없는 삶은, 그 자체로 처절한 빈곤이자 재난이요 불행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교훈 투자가 밑받침 이스라엘 역사학자 위스콘신대 교육학
2026.03.31. 13:22
현대인은 운동을 왜 해야만 하는가? 운동이 왜 우리 삶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는가? 이는 아마도 그동안 인간의 삶의 방식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과거 수렵 시대에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음식과 수많은 일상사를 해결했었다. 하지만 이제 온라인 세상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좌식 생활과 외식 문화가 대세가 되어, 따로 시간을 내서라도 우리의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사실상 몸 즉 신체를 끊임없이, 가벼운 운동을 해서라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뇌도 정신도 마음도 굳기 때문이다. 즉 운동은 심신의 건강과 삶에 활력소가 된다! 일례로, 뇌-장 연결축(brain-gut axis) 메커니즘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기능한다. 말하자면, 산보를 하면, 인간 뇌의 뉴런들과 장의 신경세포들이 살아 숨쉬고, 몸에 좋은 여러 호르몬들을 생성하고 분비해서 기분도 좋아진다. 그래서인지 운동에 관해서 흔히 회자되는 문구들은 참 많다. 그중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건강이 제일의 재산이다’, ‘운동은 정신 건강과 행복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은 몸과 정신, 특히 두뇌 발달과 훈련의 아주 좋은 수단이다’, ‘몸의 움직임은 마음의 평화의 문을 여는 아주 값진 열쇠다’ 등등 차고 넘친다. 요즈음 운동의 중요성과 필요성 때문에 그런지, 여행 중 호텔에 가면 피트니스 클럽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사실 호텔마다 운동 기구의 양과 질이 천차만별이지만, 나는 손님의 편의를 위해서 24시간 내내 운영하는 곳을 선호한다. 한번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호텔에서 머물며 짐(gym)에 갔었는데, 아직도 그 곳의 기억이 생생하다. 짐의 규모가 의외로 아주 작았지만, 아늑한 분위기에 저녁 늦은 시간에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트레드밀(treadmill)이 두 개밖에 없어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는데, 문득 벽에 걸려있는 작은 액자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액자의 내용을 읽고서 너무나 놀랐다. 왜냐하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정작 40가지나 리스트로 아주 길게 나열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가 그 40가지를 5가지 정도로 매우 짧게 요약하고, 약간 살을 붙여서 설명한 것이다. 첫째, 운동은 정신 건강에 좋다. 즉 스트레스를 줄이고, 불안을 떨쳐내고, 기분을 환기시킨다. 둘째, 운동은 자존감 향상에 효과적이다. 즉 운동 성취와 만족으로 자신감이 쌓인다. 셋째, 운동은 융통성과 창의적 사고의 기회를 높인다. 즉 새롭게 도전하게 하고, 학습 능력을 키운다. 넷째, 운동은 바른 자세의 유지와 균형 감각의 향상에 도움이 된다. 즉 젊게 사는 저속 노화의 방법이다. 다섯째, 운동은 행복감과 긍정적 사고를 가져온다. 즉 수면의 질을 향상시키고,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물론 운동은 쉽지 않다. 많은 시간과 인내력과 참을성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운동 효과를 운동한 시간과 소모한 칼로리 등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운동 후에 바로 운동에 대한 ‘보상 심리’로 자신의 운동량의 ‘두세 배’를 순식간에 먹어 버리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운동이란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정인 것이다. 하지만 건강하게 살려면 움직이라고 한다. 그리고 운동은 사람의 신체와 정서와 정신 상태를 변화시키는 자연스럽고 안전한 ‘약’이다.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여보자.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운동 다섯째 운동 운동 성취 운동 기구
2026.03.17. 13:09
자녀를 둔 부모는 장단기적으로 계획하고 소망하고 바라는 것이 참 많다. 그렇다면, 세상의 부모들이 가정을 이뤄 자식을 낳아 기르고 교육시키면서 자녀들에게 무엇을 진정으로 바라는 것일까? 나는 한마디로 자식의 ‘독립’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자녀가 잘 커서 성인이 되어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다. 독립적인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며 배워 나간다. 더 나아가 변하고 발전하는 첨단 산업과 정보통신기술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융통성과 지혜를 갖추고, 특히 경제적 안목도 있어야 한다. 사실상 내 어린 시절, 과거에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주로 하는 말은 “공부나 열심히 해!”였다. 그리고 “내 말 잘 들어!”였다. 말하자면 암기식 교육에 순종과 강요만을 시키는 식이었다. 그래서 솔직하고 진정한 대화를 통해서 사람과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우지도, 또 경제의 흐름과 돈에 대해서 이해하고 파악하는 경제적 마인드와 관리 방법 역시 배우기가 어려웠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어른들에게서 자주 듣던 말을 하나 꼽자면, “너는 알 필요 없어!”였던 것 같다. 이런 말은 아동에게 소외감을 들게 하고 자존감을 저해하고 만다. 다행히도 초등학교부터 경제 교육과정을 통해서 ‘돈 공부’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식과 그 실행이 증가하고 있다. 아이들의 자주 독립을 위한 균형 있는 양육과 교육에는 돈에 대한 이해와 산지식과 담론이 필수인 것이다. 이제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기존의 ‘돈을 밝힌다’는 편견이 아니라 ‘돈을 배운다’는 열린 사고로의 전향이 필요하다. 그래야 건전한 디지털 문해력과 함께 경제 문해력도 점차 키울 수 있다. 언젠가 비행기가 연착되어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샀는데,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이해와 돈을 쓰는 행동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잘 설명했다. 이 책은 모건 하우절이 2020에 쓴 ‘The Psychology of Money’다. 한국에서는 2021년에 『돈의 심리학: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로 번역되었다. 다음은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쓴 편지의 구절들이다. “어떤 사람은 교육을 권하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교육을 반대하는 가정에서 태어난다. 어떤 사람은 모험 정신을 장려하는 경제 번영기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전쟁과 결핍의 시대에 태어난다. 나는 네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네 힘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모든 성공이 노력 덕분도 아니고 모든 빈곤이 게으름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꼭 알아두어라. 너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를 판단할 때는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라. 너는 네가 비싼 차, 고급 시계, 대궐 같은 집을 원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너는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 네가 원하는 것은 남들로부터의 존경과 칭찬이다. 비싼 물건들이 존경과 칭찬을 불러올 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나 네가 존경과 칭찬을 받고 싶은, 그런 훌륭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나는 여기서 그의 ‘돈 철학’을 본다. 인생이란 본인이 ‘돈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많이 해도, 자기 뜻대로 안 될 수 있다. 돈벌이에는 행운과 여러 위험 변수가 작용하는 법이다. 또한 돈과 물질을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허망하다. 따라서 우리 아이들이 ‘돈 공부’를 제대로 해서 경제의 흐름과 변화에 잘 적응하고, 나아가 ‘돈 철학’을 갖고 자신과 사회 전반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서 경제적, 금융적 지식과 정보를 잘 활용하며, 현명하게, 제대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자. 결국 우리는 돈에도 철학을 담아야 하는 것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철학 경제 교육과정 위스콘신대 교육학 교수 교육학
2026.03.03. 13:00
인간의 생명 유지와 성장과 발달에는 물을 포함해서 5대 영양소, 즉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과 무기질이 필요하다. 그리고 쌀과 밀은 탄수화물이라는 필수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음식의 재료다. 그런데 또 다이어트를 하려면, 칼로리 섭취에 신경을 써서 탄수화물의 양을 줄이는 식단을 짜야 도움이 된다. 이렇게 우리는 주변에 널려 있는 양질의 식사를 위한 영양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몸에 밴 음식 선호를 바꾸기는 너무나 어렵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하는 인사말 중에 아주 흔한 것이 바로 (너 오늘) “밥 먹었어?”다. 또한 빵집의 이름들도 흥미롭다. Tous Les Jours(뚜레쥬르)는 프랑스어로 ‘매일’이란 뜻이고, Le Pain Quotidien(르 빵 꼬티디앙)은 ‘일상의 빵’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밥과 빵’은 우리 인간의 진정한 솔푸드(soul food), 즉 영혼의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미국 농무부(USDA)가 2026년 1월에 발표한 새로운 식품 피라미드에 따르면, 통곡물(whole grains)을 최하단에, 단백질과 유제품, 건강한 지방을 왼쪽 최상단에, 야채와 과일은 오른쪽 최상단에 배치함으로써, 완전히 역피라미드 구조로 전환을 했다. 이는 기존의 곡물 중심이 아닌 보다 단백질 등을 강조한 식이 지침으로서, 현대의 흐름 중 하나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쌀과 밀가루 음식을 배제하지 않는다.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따르면, “인간의 웰빙에는 4가지가 꼭 필요하다. 즉 밀, 포도, 올리브, 그리고 알로에다.” 그는 “밀은 인간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포도는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고, 올리브는 조화를 가져다주며, 알로에는 인간을 치유해준다”고 했다. 물론 세상에는 영양에 풍미를 더한 다양한 음식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곡물, 곡식은 아주 기초적인 생존 에너지원으로서 여전히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미쉐린(Michelin)’ 식당이라고 하면 고급 식당의 대명사로서, 온갖 산해진미와 특히 캐비아, 트러플, 푸아그라로 유명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고급 식재료를 듬뿍 사용한 곳에 가도 가끔 실망할 때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빵이다. 아무리 ‘미쉐린 3스타’라 해도, 식전 빵에 인색하면, 나는 일단 바로 기분이 상한다. 아마도 난 미식가가 아닌가 보다! 아무튼 간에 내가 가장 좋게 기억하는 곳 중 하나를 꼽자면, 영국 런던에서 간 미쉐린 3스타 식당이었다. 훌륭한 음식들에다가 정말로 빵에 진심이었고, 나온 빵들이 너무나 다 맛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빵 찬가(Ode to Bread)’라는 시를 프린트 해서 주고, 서비스로는 테이크아웃 빵(코스 메뉴였던!)과 캔디를 따로 챙겨 주었다. 다음에 내가 그 시의 일부분만 직접 번역했다. 빵, 너는 정말 단순하고 심오하다! 너는 인류의 에너지, 종종 감탄을 자아내는 기적, 그 자체로 살고자 하는 의지다. 지구, 아름다움과 사랑, 모두가 빵처럼 맛이 난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덧붙여서 말하고 싶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밥, 게다가 담백, 고소, 쫀득쫀득한 시루떡까지, 아하, 참으로 감칠맛 나고 풍미 넘치는 세상이구나! ‘밥과 빵’ 너희는 진정 심신의 위안이자 근원적 힘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미쉐린 손원 미쉐린 3스타 탄수화물 단백질 밀가루 음식
2026.02.03. 13:16
건강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의 설탕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하고 또 강조한다. 사실 당분의 결정체인 “달콤한 설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많은 음식과 음료에 들어간다. 문제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어도 장기간에 걸쳐서 지나친 섭취를 하면, 결국 피부 트러블, 심혈관 질환, 당뇨병과 비만 등 각종 건강상의 해를 가져올 확률과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의 하루당 권장량을 총 에너지 섭취량의 5%에서 10% 미만으로 할 것을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설탕 섭취량 또한 정말 상당하다는 점이다. 대략 4세에서 10세 사이의 아이들이 연간 섭취하는 설탕의 양이 각설탕(sugar cube)으로 계산하면, 무려 5,500개에 달한다고 한다. 보통 아동의 하루 설탕 적정량은 각설탕으로 5개 정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어린이들이 매우 많은 양의 당을 날마다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이 즐기는 주스나 캔디, 나아가 모든 스낵 종류에 포함된 설탕의 양에 더 주의하고 신경을 써야 함을 의미한다.(참고: 코카콜라 355ml 캔에는 각설탕 약 10~13 개!) 물론 패스트푸드와 외식, 배달 음식 등이 일상화되고 있는 식문화 속에서 설탕을 제거하기는 점점 더 어렵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에서 다 같이 협력하여 최신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실천하면 성과를 볼 수 있다. 부모와 교사가 먼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본을 보여서, 아이들도 그 지도와 행동을 잘 따르도록 하자. 이에 내가 2016년에 낸 책, 『미국의 유아교육: 손원임 박사의 자녀교육 실전경험과 코칭』에 실었던 한 편의 시를 조금 다른 맥락에서 재인용하고자 한다. 사실 나는 이 시를 직접 번역했고, 그 제목은 ‘두 명의 조각가(Two Sculptures)’다. 이 시는 부모와 교사를 조각가에 비유하여, 아이를 위해서 서로가 진정으로 협동하는 것을 예술적으로 담아 묘사하고 있다. 나는 스튜디오에 서 있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거기서 두 명의 조각가를 보았다. 그들이 사용한 점토는 어린아이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주의해서 다루었다. 한 명은 교사였다. 그녀가 사용한 도구는 책과 음악과 예술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아이를 자상하게 사랑으로 지도해 준 부모였다. 매일마다, 교사는 능숙하고 정교한 손질로 열심히 일했다. 부모는 그녀 옆에서 고심하며 광택이 나도록 열심히 갈고 닦았다. 그리고 마침내 작업이 완성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조각 작품을 자랑스러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이의 교육과 양육을 위해서 한 일들은 살 수도 팔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사와 부모는 각자가 만약에 혼자서 일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라고 동의했다.부모와 학교, 교사와 가정. 그런데 말이다. 만약에 그 조각상을 빚은 재료, 즉 점토 자체에 문제가 생겨서, 이후 애써 완성한 아름다운 조각상이 손상되어 무너져내려 버린다면 어떻겠는가? 세상사의 많은 것이 그렇듯이, 당류 또한 우리 몸의 중요한 에너지원이지만, 과하게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따라서 아이가 건강한 생활방식 하에 달콤한 설탕의 유혹을 물리치고, 설탕중독증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건강해야 인류의 미래가 건강하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설탕 설탕 섭취량 하루 설탕 에너지 섭취량
2026.01.20. 12:41
아무리 좋은 지도와 교훈이라도,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한낱 사소한 잔소리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의 가슴이 시꺼먼 구름으로 싸여 교란 상태이거나 정신이 심히 혼란스러울 때는 더 더욱 남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통 인간의 자아(ego)는 초자아(superego)에 앞서며, 감정과 정서는 이성과 논리, 합리적 사고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와 크고 작은 문제들로 충돌할 때, 우선 침착과 안정을 찾고 나서, 상대방과 연결과 교류를 통해서 마음을 트고, 시야를 열어야 한다. 그러면 보다 이성적으로 초자아를 발휘하여 서로 간에 협력하며 해결책을 모색하게 된다. 말하자면, ‘심신의 규제와 정서적 유대와 합리적 이성’의 세 가지 개념을 내재화하고, 지속적으로 습관화해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먼저 안정을 찾고, 화의 감정이 가라앉은 다음에 비로소 반성, 반추의 사고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정과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 상황을 보다 더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해준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만약 어린 아들이 집 안에서 뛰어놀다가 가보인 값비싼 도자기를 깼다고 치자. 부모는 당연히 엄청 화가 날 것이다. 반면에 아이는 이미 상당히 겁을 먹고, 그저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거나 아니면 몸이 얼어붙은 상태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너는 항상 왜 그렇게 부주의하냐!”며 소리 질러 비난하고, 다그치고, 나무라기 쉽다. 하지만 일단 참자. 그리고 아이와 한 5분 내지 10분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떨어져서, 각자 숨을 고를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이제 아이가 눈물도 어느 정도 멈추고 안정을 찾았으면, 아이를 안아주고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해준다. 부모는 이내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무척 미안해하고 있을) 아이와 앞으로의 해결책을 모색하게 된다. 또 다른 예로, 내가 실제로 바로 눈앞에서 우연히 보았던 일이다. 한 딸아이가 계속해서 엄마가 이미 산 샌드위치를 안 먹는다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엄마는 심하게 생떼만 쓰는 아이에게 절대로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의 작은 ‘손가락 세 개’만 살짝 잡고서, 조그만 목소리로 조곤조곤 달래기 시작했다. 그 엄마는 딸에게, ‘자신이 무엇을 원할 때 상대방에게 요청하는 방법’을 대화로 가르치고 있었다. 이내 엄마와 아이는 포옹을 했고, 아이는 사과주스에 엄마가 작게 잘라준 샌드위치를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이 사건에서 엄마는 몹시 성질을 부리는 아이에게 시종일관 침착하게 대함으로써, 아이와 함께 평온한 오라(aura)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아이의 ‘손가락 세 개’의 끝만을 아주 가볍게 터치해서 아이와의 연결 끈(감정선)을 만들었다. 이는 아이가 자신의 성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엄마 말을 들을 준비가 되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 아이가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깨무는 것을 보고, 괜스레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던 기억이 난다! 결국 자아가 먼저 심신의 균형을 이루어야 초자아가 타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이해와 수긍을 하고, 조언을 받아들여 비로서 내면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내면의 평화는 타인이나 외부적 요인들이 우리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싹이 트고 꽃을 피운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의 역사 자체가 타자의 억제와 통제, 강요,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자주와 자유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타인에게 조언과 지도를 할 때, 조금 더 조심스럽게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의 상황을 존중해주며 다가가자. 자고로 평화로운 관계의 형성에 있어서 용서와 인내심과 이해는 필수적인 요건임에 틀림이 없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가락 손원 합리적 이성 문제 상황 위스콘신대 교육학
2026.01.06. 13:26
요즈음은 영상 매체 등을 통해서 사람들이 트라우마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본다. 물론 이런 현상들은 보는 각도나 보다 구체적인 통계치를 놓고서 달리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유아, 초등학생, 청소년을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와 심신의 상처들로 고생하고 때로는 고군분투하며 지낸다. 그렇다면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까? 이에 관한 영역에서는, ≪개로 길러진 아이≫의 저자이기도 한 브루스 페리가 제시한 접근법이 매우 유효하다. 그는 아동 정신의학자로서, 뇌의 신경 발달과 인간이 주변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과정에 입각하여, ‘트라우마(trauma)’, 즉 ‘심리적 외상과 정신적 쇼크’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체계화했다. 그것은 바로 ‘3R’–‘Regulate’, ‘Relate’, ‘Reason’이다. 이는 각각 ‘규제’, ‘유대’, ‘이성’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사실상 교육에서도 세 가지 기본 기술인(Reading/Writing/Arithmetic)이 아주 중요하다. 이렇게 읽기, 쓰기, 산수가 인간의 문화와 정신의 발달에 필수적이듯이, 인간관계에서도 ‘규제, 유대, 이성’의 ‘3R’은 가정과 학교에서 여러 갈등과 문제의 해결 방식으로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첫째, 규제의 단계에서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우리 몸의 자율 신경계인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교감 신경(sympathetic nervous system)은 스트레스에 대해서 투쟁과 도피 반응을 일으킨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한 상황에서 심박수가 증가하고, 호흡 조절이 잘 안되고, 잠도 제대로 못 잔다. 그 반대로 부교감 신경(parasympathetic nervous system)은 신체를 안정시킨다. 그래서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잘 자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넘치는 상황에서 잠깐 동안 심호흡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이다. 둘째, 유대의 단계다. 일단 상대방의 기분이 안정되면, 상호 간의 유대감을 갖도록 포옹 등의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신뢰감, 즉 라포(rapport)를 형성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감정이입과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을 통해서 평온한 공감대를 이룬다.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 완전히 들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 듣지 않는다.”라고 했다. 난 ‘우리가 자신의 맘을 조금 더 비우고 상대방에게 귀 기울여 다가가면, 어느새 우리 본래의 선하고 착한 천사 모습이 살아나 그 역할을 하게 된다’고 믿는다. 마지막은 이성의 단계다. 이제 스트레스로 몸을 떨던 사람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아이가 진정되어 호흡을 고르고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믿게 되면, 부모의 충고를 들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는 지원과 격려를 통해서 아이가 고도의 사고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즉, 마음의 상처를 ‘숨쉬고 안정 찾기–연결–사고’의 순으로 치유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강조한다면, 그것은 바로 “절대 서두르지 마라”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그래서 적어도 50 번 정도는 꼭꼭 씹어 먹어야 소화흡수가 잘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먼저 진정되고 감정 정화가 이루어진 다음에 비로소 타인의 충고나 교훈들을 제대로 잘 듣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3R’를 제대로 적용하자면, 다소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뇌의 속성상 불안한 감정이 먼저 해소되어야 뇌의 상위 영역인 전두엽이 충분히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한다. 따라서 때론 성가시고 귀찮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으로, ‘규제, 유대, 이성’의 시스템을 돌려 적용해보자.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문제 부교감 신경 신경과 부교감 스트레스 호르몬
2025.12.23. 13:53
어느 쌀쌀하게 가을 바람이 몹시도 세게 부는 날이었다. 나는 당이 떨어져, 전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졸린 눈을 비비며 무작정 카페로 향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말 운 좋게도 오븐에서 막 구워 나온!) 블루베리 머핀을 따뜻한 커피와 함께 먹을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백인 여성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와우, 머리를 위로 아주 간단히 한 번에 틀어 올리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네요. 나도 내 머리를 그렇게 쉽게 하고 싶어요. 무척 예뻐 보여요!” 아마도 그날 아침 거울도 보지 않고 부시시하게 나선 내가, 무의식 중에 혹시나 해서 머리를 만져 정돈하고 있었나 싶다. 아무튼 낯선 사람의 예상하지 못한 칭찬 한마디는 그날 아침의 달콤한 머핀보다 훨씬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생각났다. 어느 오후 면담 중에 선생님은 내 성적 등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나의 성격에 대해서 “너는 참 착하고, 대나무 같이 매우 곧고 바르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조금 과장을 섞는다면, 사실 그때 이후로 ‘대나무’라는 단어는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혀서 내 삶의 스키마(schema)와 동시에 길잡이(guide)가 되었다. 물론 나는 실수하고, 오류를 범하며, 의지 또한 약하다. 하지만 대나무라는 개념은 내게 분명히 하나의 ‘자정 장치(self-correcting mechanism)’의 역할을 해주었다. 대나무(bamboo)의 특성을 보면, 보통 푸른색에 줄기가 바르게 자란다. 또한 강하고 유연한 성질에 더해서 탄력성도 있으며, 지조와 절개, 정직함, 장수 등을 상징한다. 지금 돌아보면 비록 이런 대나무의 모든 상징성을 알지도, 특별히 굳이 의식하며 살 지는 않았어도, 어쩌면 대나무의 이미지가 나의 잠재 의식에 자리잡아 세상사의 힘든 여정 속에서 그나마 나를 잡아주었던 것 같다. 자기계발 전문가로 매우 유명한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2024)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의 주변 환경은 감정의 수영장과 같다. 당신은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다. 그러므로 환경을 통제해서 물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사실상 이 구절은 원초적으로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 하루 동안에 아니 한 시간만 놓고 보더라도, 느끼고 겪게 되는 그 수많은 정서를 품은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충분히 이해와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예를 들어 아침에 산뜻하게 가벼운 기분으로 일어났어도, 출근길 지나가는 차에 튀긴 흙탕물로 새로 입은 바지가 젖어 더러워지면 이내 기분이 무척 상하고 안 좋게 된다. 그런데 점심에 동료가 위로해주고, 부드러운 에그 샌드위치를 먹고 포만감에 차면, 또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유쾌하게 일에 전념하곤 한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이리저리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정서의 만화경(kaleidoscope) 속에서, 특히 나쁜 감정들의 소용돌이와 분노와 좌절들을 잘 관리하려면, 일종의 자정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상 적절히 유효한 ‘자정 장치’는 맛있는 음식도, 한바탕의 큰 웃음도, 친구의 위로도, 낯선 이의 칭찬도, 혹은 어느 현자가 남긴 훌륭한 문구도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내게 ‘대나무’라는 상징성을 심어준, 그 선생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대나무 손원 자정 장치 위스콘신대 교육학 교수 교육학
2025.11.25. 12:37
노화라는 말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슬프고 속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러나 좋든 싫든 노화, 즉 영어의 ‘에이징(aging)’은 이제 우리 모두가 잘 넘겨야 할 숙제가 되었다. 이에는 현시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어마어마한 의학 기술과 과학 발전의 덕이 매우 크다. 21세기의 우리에게 그야말로 ‘양질의 노화’를 위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최첨단 장비들과 더불어 다양한 서비스들이 넘쳐 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요즈음 모든 매체와 수많은 책에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양질의 노화 과정’이다. 그렇다면 우선 노화의 개념을 보자. 아주 쉽고 간단히 말해서, 노화란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인 면에서 두루두루 쇠약해지는 현상이다. 인간은 대체로 거의 성장이 다 이루어졌다고 보는, 26세 정도부터 서서히 노화에 들어선다고 본다. 그러면 이제 추상적 개념을 떠나서, 젊음의 시간을 건너 뛰어서, 현재의 나에게 좀 더 진지하게, 보다 직접적으로 우리의 피부와 실생활에 와닿는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과연 언제 내가 노화한다고, 정말로 나이가 들었다고 느꼈는가?”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 키를 둔 곳을 종종 잊어버리거나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찾아 헤매기 일쑤이다. 머리에 안경을 꽂은 상태로 자신의 안경을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 어떤 이는 대형마켓에서 자신이 산 물건들의 계산이 맞지 않는다며, 큰소리로 점원에게 따졌다고 한다. 게다가 자꾸 쓸 데 없는 이유로 오해하고, 민감해지고, 토라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마치 화살처럼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 들며, 마음이 너무나 허전하고,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고, 전신의 기운이 싹 빠져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기억력이 떨어지는 등의 여러 가지 사건과 경험들이 쌓여서, 결국 노년기 우울증과 불안감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 모든 것들을 경험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상 나의 노화 증상은 비문증/날파리증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책을 읽는데, 갑자기 눈 앞에 수많은 검은 점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정말로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에 매우 충격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른쪽 무릎이 시큼하니 힘이 쭉 빠져버려서 거의 넘어질 뻔했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오직 ‘걷기’ 뿐이었기에, 그때 당시 느낀 상실감은 무척 컸었다. 이제는 돋보기가 필수품이 되었고, 걸을 때에도 항상 오른쪽 무릎에 신경이 간다. 게다가 최근에는 영국 런던의 어떤 호텔에서 체육관(gym)의 투명한 유리문이 열려 있다고 완전히 착각하고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다가 급기야 얼굴을 정면으로 세게 부딪혀서 코피를 상당히 많이 흘리고, 한동안 코에 멍이 들어서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런 노화 과정을 잘 견뎌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년기를 우울하지 않게, 스스로의 삶과 생활을 잘 통제하며, 보다 생기 있게 지내기 위한 생활 방식을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몸건강에 보약인 음식에 관한 ‘넘버원 룰’을 좀 더 챙기자. 이는 ‘인공이 아닌 자연에서 난 음식을 먹자’로, 영어로는 ‘Eat foods with ingredients you can see and pronounce.’다. 즉, 검정콩이나 사과, 파 같은 자연 식품이 몸에 좋다는 말이다. 다음은 이것이다. ‘긍정의 힘으로 자신의 행복지수를 끌어 올리자.’ 물론 사람들의 타고난 행복지수는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신체적 및 정신적인 건강을 두루두루 잘 챙겨서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우리네 덧없게 느껴지는 인생사를 즐겁고 여유롭게, 그리고 평온한 표정으로 보낼 수 있다. 이제 이가 약해져 더 이상 신 오렌지나 귤을 먹지 못하면, 바나나나 따뜻한 사과 파이를 먹으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양질의 노화가 숨어 있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양질 노화 과정 생활 방식 노화 증상
2025.10.28. 13:21
부모가 소중한 자녀를 애지중지 키워 결국 품 안의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은 일종의 심리적 트라우마다. 이렇게 다소 충격적 상태나 경험을 일컬어서 ‘빈둥지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고 말한다. 이는 평소에 시끌벅적했던 집 안에 아들 딸 없이, 엄마 아빠의 가슴 속이 허전하고 허탈하며 가슴이 쓰라리며 슬프기까지 한 현상을 ‘새의 둥지가 텅 빈 상태’에 비유한 것이다. 주로 자녀가 성장해서 대학을 가거나 독립적인 삶을 위해서 출가할 때, 부모가 느끼는 마음 상태를 적나라하게 잘 표현해 준다. 물론, 나도 이 심리적 증후군을 겪었다. 딸아이를 키워서 대학에 보냈을 때 정말 내 심정이 말이 아니었다. 그 공허감과 상실감은 뭐라고 딱히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표현하기도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딸과 떨어져 사는 지리적 거리가 아주 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장성한 딸이 컬럼비아 대학교와 코넬 대학교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게 되어,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이사했다. 엄마인 나는 이 좋은 소식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빈둥지증후군과 매우 흡사한 감정을 아주 찐하게(!) 느끼게 되었다. 2024년 가을, 남편과 함께 딸의 아파트에서 이삿짐을 정리해주고 나서 저녁도 먹고 산보를 갔다. 우연히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있는 ‘거북이 연못’에 들르게 되었는데, 새끼 거북이가 간간이 엄마 아빠 거북이 옆에 다가오기도 했지만 다시금 멀리 헤엄쳐가는 장면에 갑자기 눈물이 글썽여졌다.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난 독백하듯이 생각했다. “아, 이제 정말 내 딸이 어른이 되어서 완전히 독립하는구나.” 그런데 이후 그것은 나의 완전한 착각으로 드러났다. 사실 자녀들은 기쁘거나 슬플 때, 또 아프거나 괴로울 때는 물론 온갖 소식과 일들로 부모에게 돌아오고 자문을 구한다. 그래서 부모는 언제든지 성인이 된 자녀를 조언하고 필요시에 도와주어야 한다. 이렇게 부모의 나이가 50, 60, 70이더라도 육아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심리학자 로렌스 스타인버그는 ≪50이면 육아가 끝날 줄 알았다≫(You and Your Adult Child, 2024)에서, 부모는 ‘성인 자녀’와 강하고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더욱 돈독히 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는 자녀와 대화를 나눌 때 다음의 사항들을 강조한다. “반드시 말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의견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자녀가 당신의 의견을 특별히 요구하지 않는 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의 선택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이상 실수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당신 말이 맞았음을 보여주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는 또한 부모는 항상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보다는 말을 아끼고 신중을 기하고 조심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특히,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식의 명령조의 말, 자녀가 친구나 애인 등과 다투도록 오히려 갈등을 조장•심화시키는 말, 자녀의 결정에 대해서 악담을 던지거나 비난하고 모욕하는 말들을 삼가라고 당부한다. 그 대신에 부모의 의견을 약간 돌려서 질문하듯이 하거나 아니면 자식에게 정보를 요구하는 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부모와 자녀가 서로 격하게 언성을 높이거나 심하게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서도, 자녀 스스로 생각해보고, 보다 건설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북돋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스타인버그가 강조한 대화법들이 그렇게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노부부와 성인 자녀가 한 집에 같이 살 때 발생하는 갈등을 포함해서, 부모와 성인 자녀의 지속적인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삶의 문제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려면, 부모가 먼저 참고 양보할 뿐 아니라 자율적인 존재로 성장한 자녀를 믿고 존중해주어야 함은 분명하다. 현명한 부모는 자식에게 되도록이면 ‘자상하고 다정하게’ 다가간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성인 성인 자녀 사실 자녀들 50이면 육아가
2025.09.23. 12:45
‘화(火)’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화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일단 아기들은 누운 자세가 불편하거나 배고프고, 또 기저귀가 젖어서 짜증이 나면 그냥 울어버린다. 세상에 태어나 온전히 엄마 아빠, 즉 보호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아기는 다소 소극적인 ‘울음’이 유일한 표현 수단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성장하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자유롭게 사지를 쓰는 등 다양한 표현 수단을 갖게 된다. 이에 자신의 화나는 감정을 자유자재로, 때론 보다 적극적이다 못해 아주 공격적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다 자란 사람이 화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좋은데, 제대로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고서, 혹은 말을 함부로 내뱉거나 신체적인 폭력을 구사하여 타인에게 해를 입히면, 그때는 가정과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 게다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많은 정신병의 근원이 자신에게 무척이나 화가 나서 생긴다. 그 이유를 들자면 끝이 없겠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해서, 코로나 때 강제 은퇴를 당해서,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서, 명문대를 졸업하지 못해서,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 자식이 말을 듣지 않아서, 공들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성적 불만이 쌓여서, 다이어트가 실패해서, 나이가 들어서, 얼굴의 코가 너무 낮아 맘에 들지 않아서, 변비가 심해서, 돈이 풍족하지 않아서, 그저 우울해서 등등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 특히 성난 ‘화’를 잘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에 이 불만들이 쌓이고 쌓여 제대로 풀지 못하면 결국 정신병과 화병, 갖은 병마에 시달리게 되기 쉽다. 다행인 것은 요즈음은 예전과 달리 어른과 아이, 청소년 할 것 없이 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이들은 불안증과 불면증, 학교 문제, 애정 문제, 가정 문제, 더 나아가 심각한 정신병까지 마음껏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항정신병제 등 각종 약물의 처방도 받는다. 이렇게 상담을 받는 사람 중에는 남을 치료하는 각 분야의 의대 전공의는 물론 결혼 정년기에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도 다수 포함된다. 우리는 결국 이 모든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특히 불안, 분노와 화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전략과 기술들–자가 제어 방법, 분노 관리 수업, 마음 수련 명상법 등을 개발해서 추천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들 방법들의 요지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세 가지의 중요한 원리를 말하고 싶다. 그것은 ‘명상’과 ‘정서’와 ‘행동’의 순환적 원리다. 첫째는 ‘명상(mediation)’이다. 이는 한마디로 자신의 화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도가 치는 바다의 물결이 잠잠해지는 광경을 상상해보자. 이에 ‘4-7-8’ 호흡법처럼 각자에게 맞는 호흡법을 곁들이면 훨씬 효과가 좋다. 둘째는 ‘정서(emotion)’다. 나 자신에게 일어난 감정 상태를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희로애락의 원인을 찬찬히 감정해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난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 내가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나서 회사에 또 지각한 거야.” 셋째는 ‘행동(action)’이다. 이제 내적 동기 또는 외적 동기를 동원해서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즉, 다음에는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시계를 맞추고 잔다. 이렇게 먼저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회복탄력성을 발휘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순서를 따른다. 사실상 어렵지만 다이어트를 비싼 약과 주사, 식이 보조제에만 의존할 수 없듯이, 우리의 고민과 고충, 공격성, 특히 ‘화’의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비싼 상담과 수업, 다양한 종류의 테라피에 기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 때, 아주 크고 깊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나서, ‘명상’과 ‘정서’와 ‘행동’의 사이클을 통해서 스스로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사이클 손원 감정 상태 애정 문제 표현 수단
2025.09.09. 13:07
세상사는 대체적으로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이 반반씩 차지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상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매일 좋기만 한 것도, 결코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날씨의 경우도 타오르는 태양과 땡볕, 그리고 시원한 바람과 무시무시한 천둥 번개, 구름과 비 모두 다 자연의 일부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왜 삶 자체가 때로는 무지막지할 정도로 고뇌, 고통으로 다가오고, 게다가 온통 스트레스로만 가득 차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의 뇌가 강한 생존 본능과 맞물려 무서운 자연과 ‘불확실성’ 속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해 오면서 부정적 사건사고에 더 경도되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발달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 뇌의 무게의 추가 긍정의 마인드 쪽으로 기울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하자면, 가급적 ‘의식적으로라도’ 긍정적 마음과 자세를 갖고서, 적극적으로 행동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물론 인간 뇌의 속성상 잘 잊고, 또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순작용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사람들이 여행이나 탐험에 나서는 것도 지루한 일상 속에서 긍정적 ‘활력’과 밝고 환한 ‘웃음’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다. 그러나 새로운 모험과 여행 역시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예측 못한 일들과 실수로 범벅이 될 수도 있다. 2025년 5월, 뉴욕에 여행 갔을 때, 내게도 행운과 불운이 동시다발로 얽혀서 찾아왔었다. 일단 나의 불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뉴욕에 머무는 기간 내내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내렸고, 나는 감기로 고생했다. 이미 비행기 지연과 연착, 그리고 도로 교통체증 때문에, 호텔 도착 시에 내 몸은 아주 지쳐서 감기 걸리기에 딱 좋은 상태였다. 며칠 지나 날씨가 조금 개고, 몸도 꽤 상쾌하고 가벼워져서, 나는 일기 예보를 무시한 채 호텔에서 빌려주는 우산도 챙기지 않고서 당당하게 걸어서 쇼핑몰에 갔다. 근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백화점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비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그것도 억수로 쏟아져 내렸다. 결국 내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아끼던 나의 소중한 명품(!) 가방마저 비에 아주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냉랭한 한기를 느끼며 울상이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여성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일 출발하는 비행기가 갑자기 취소되어서 너무나 속상해요.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그때 그녀의 하소연에 비하면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은 정말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또 나는 뉴욕시에서 내 인생의 ‘최고’의 파스타와 ‘최악’의 파스타를 맛보는 경험을 했다. 어느 날은 소문난, 그러나 아주 초라한 파스타 맛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아주 뜨끈뜨끈한 그야말로 감칠맛이 넘치는 파스타를 먹었다. 그런데 타임스 스퀘어에 있는 아주 유명한 식당에 갔을 때는 그야말로 최악의 파스타가 나왔다. 돈을 그냥 길바닥에 버린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의 나쁜 일은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실 타임스 스퀘어가 바로 정면에서 내려다보이는 식당 라운지가 있는 호텔에서 지냈다. 그런데 내가 도착했을 때 마침 라운지가 한창 재건 공사 중이었다. 결국 나는 그 멋진 ‘파노라마 전경(panoramic view)’를 구경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호텔에서 오래 일한 컨시어지(concierge)와 대화하면서 뉴욕 호텔들의 건립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 인생사가 좋게 풀리다가 일이 나쁘게 꼬이기도 하고, 또 당시에 분명한 불운이 훗날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행운으로 완전히 탈바꿈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유명한 ‘전화위복‘(轉禍爲福)’과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인생이란 그래프 위에서 행운선과 불운선의 양선은 엎치락뒤덮치락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자의적으로라도 ‘골든 크로스(Golden cross)’를 감행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각자의 황금빛 본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Stay Gold(황금빛 본성을 지켜라)’는 내가 뉴욕에서 행운의 공짜 티켓으로 보았던 바로 그 뮤지컬, ‘아웃사이더(The Outsiders)’로 유명해진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어려운 세상에서 불행과 고통을 헤쳐 나가려면, 긍정적인 자세로 자신의 황금빛 본성 혹은 영혼, 즉 고유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황금빛 품격’은 좋은 일에 기뻐하고 나쁜 일을 견뎌내는 원천이요, 또 재생적 힘이 되어준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황금빛 손원 황금빛 본성 뉴욕 호텔들 파스타 맛집
2025.07.22. 11:50
아주 화창한 날 뉴욕시의 번화한 거리에 있는 빵집에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러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로 바닥에 구리색 빛깔의 페니(1 cent)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요즈음은 땅바닥에 버려진 페니를 그저 하찮게 여기거나 더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왠지 호기심에 그냥 주워 봤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서 또 한 개의 페니가 아주 밝게 반짝거렸고, 그 주변에 매우 시꺼매진 페니가 또 한 개 보였고, 이런 식으로 결국 총 7개의 페니를 줍게 되었다. 그야말로 ‘러키 세븐(lucky seven)’이었다! 나는 바로 그 순간 행운을 직감했고, 잠시나마 어떤 행운들이 찾아올까 싶어서 은근히 마음이 설렜다. 우리 인간은 매우 감성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존재라서 때때로, 그것도 자주 ‘소소한 행복’이 필요하다. 사실상 평범한 일상 속에서 뭔가 이렇게 다가오는 작은 행운들이 모이고 모여서 매우 큰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바로 자기 충족적 예언의 버튼을 작동시켜 버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소망해 보았다. “아마도 내게 좋은 일들이 생길 거야!” 여기서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란, 아주 간단히 말해서, “긍정적인 기대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의미의 심리 작용이다. 원래 이 개념은 그리스의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옛날 옛적에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조각상을 진정으로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고, 이에 결국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그 조각상에 실제로 여자의 생명을 부여했다는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다. 비록 이처럼 우리가 원하고 기도하는 모든 것이 다 ‘기적적으로’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희망과 꾸준한 노력은 삶에 보람과 가치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내게 뜻밖의 행운은 이렇게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 약간 어둑어둑해질 무렵 타임스 스퀘어 근처에 있는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극장가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잠깐 서서 무슨 쇼들을 하나 반짝반짝 빛나는 전광판들을 쳐다보았고, 내 옆에 있던 여성과 우연히 한 두 마디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내게 표를 구입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살짝 얼떨결에,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에게 남는 표가 몇 개 있으니, 그 중에서 한 장을 내게 주겠다고 했다. 연유를 들어보니 대학교 교수인 그녀가 자신의 학생들과 함께 보려고 티켓을 여러 장 구입했는데, 갑자기 오지 못하게 된 학생이 있어 표가 남는다는 것이다. 나는 무척이나 고맙게 그 ‘공짜 표’를 받았고, 그날 생각지도 못했던 뮤지컬 ‘아웃사이더(The Outsiders)’를 아주 감동스럽게, 매우 흐뭇한 마음으로 관람했다. 와! 그야말로 참 감사하고 행운이 넘친 날이었다! 또 어느 날은 뉴욕의 한 공원 근처에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한 웨이터가 감기 기운이 들었던 내게 따뜻한 레몬차를 충분히 마실 수 있도록 요청하지도 않은 레몬을 듬뿍(!) 가져다주었다. 게다가 어떤 유명 백화점에서는 향수 코너에서 일하는 직원이 향수도 사지 않은 내게 뉴욕시에서 가 볼만한 쇼핑몰들의 위치를 주소까지 적어서 아주 상세히 알려주었다. 이렇게 나의 뉴욕 여행은 공짜 뮤지컬 티켓을 비롯해서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의 아주 친절한 배려와 모습 덕에 더욱 더 알차고 재미있었다. 아마도 길에서 ‘7개의 페니’를 줍고서, 나 스스로에게 했던 ‘자기 충족적 예언’이 아주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뉴욕에서 짧다면 짧은 여행 중 일어난 운 좋은 것들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보았다. 나는 평소에 자기 충족적 예언이 ‘항상’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지도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보면 이 세상에 작지만 즐거운 일들이 의외로 많고, 또 그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다소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이는 바로 우리 주변에서 종종 소리 없이 다가오는 소소한 행복들이다. 따라서 오늘도 즐겁게, 미소 지으면서, 우리 다 같이 긍정적인 자기 충족적 예언을 발휘해보자!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충족 자기 충족적 뉴욕 여행 위스콘신대 교육학
2025.07.08. 14:21
2025년, 미국의 유명한 여성 팝스타인 케이티 페리(Katy Perry)가 방송인 게일 킹(Gayle King)을 포함해서 5명의 여성들과 함께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설립한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의 값비싼 로켓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 말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완전히 ‘사랑’ 천지로 들린다. 그녀는 우주 공간을 경험하면서 이 세상에서 참으로 사랑의 힘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지 깨닫게 되었고, 더욱 더 서로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자는 식의 매우 상투적이지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다, ‘사랑은 진짜다, 진짜로 존재한다!’ 즉, ‘Love is real!’인 것이다. 그리고 단연코 인류가 느끼고 행하는 모든 종류의 사랑은 아주 소중하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애인과의 사랑, 자연사랑, 동물사랑 등등 다 포함해서 말이다. 게다가 그 어떤 사랑의 감정과 행태도 확증 편향의 속성을 분명히 갖고 있는 듯하다. 인간이 보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양날의 검으로서, 아집과 편견처럼 악하고 부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사랑과 우애처럼 선하고 긍정적인 면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개념이다. 일단 에로스적 사랑의 감정이 싹튼 사람들을 보자. 이들은 자기 확신에 차서 마치 자신들의 눈에 ‘꽁깍지가 씌워진’ 것처럼 행동한다. 매사에 머리보다 가슴이 앞서며, 팔딱팔딱 뛰는 심장으로 정열적이며 불과 같은 열정을 태운다. 즉 강도 높은 확증 편향이 사랑의 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것은 이 로맨틱한 사랑도 일반적으로 3년 정도면 사그라진다고 한다! 아마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가족을 돌보고, 생업에 종사하며, 인류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라는, 그런 우주의 더 큰 진화의 원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가 하면 현대인의 결혼관이 다양한 면에서 급속도로 변화하는 지라, 더 이상 부부가 가정을 유지하고 평생을 해로하며 살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조차 그다지 쉽지 않다. 또한 결혼도 이혼도 더 빨리 결정하는 것이 기정사실로 보이기도 한다. 미국의 어떤 설문조사에서 ‘약혼하기 전에 몇 달이나 데이트하는지’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 대답이 매우 흥미롭다. 요즘엔 커플들이 약혼하기까지 평균적으로 겨우 15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사람마다 상황마다 변수가 작용하지만, 그래도 그 결정이 매우 빠르게 짧아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또 다른 설문조사의 결과는 그다지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이성 간에 남자는 사랑에 더 빨리 자주 빠지는 반면에, 여성은 처음에는 ‘슬로우 모션’을 취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자는 처음에 남성을 선택하고 결정하기 전에 이것 저것 많은 조건 사항들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보고 생각해보지만, 일단 정하고 나면 남성보다 상대방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훨씬 더 강해진다고 한다. 여하튼 분명히 정보기술 사회에 사는 현대인은 예전보다 훨씬 개방적인 분위기와 환경, 열린 의식하에 다양한 데이팅앱 등을 사용하여 연애도 약혼도 결혼도 이혼도 보다 더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말의 확증 편향에 힘입어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빨리, 쉽게, 그것도 섣불리 미래를 약속하고 또 파기하는 실수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심리적,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비용과 대가를 치르게 해버린다. 때로는 여성들의 ‘슬로우 모션’이 더욱 돋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아마도 애초의 확증 편향을 넘어서서 보다 더 깊고 진실된 사랑을 이루어 나가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매우 신비스럽고 특이하며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문어(octopus)는 심장이 3개, 팔다리는 8개, 그리고 파란 피와 9개의 뇌를 지닌 생물이다. 물론 이에는 다 나름대로 생리적, 물리적으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겠지만, 나는 인간이 뇌도 심장도 하나씩 갖고 있어서, 매우 다행이고 큰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인간이 문어 같은 조건이었다면, 너무 에로스적 사랑에만 빠지고 치여서 차마 이렇게까지 인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하고 문화인으로서 성장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조금 달리 생각해서, 심장이 세 개도 뇌가 아홉 개도 아닌 인간이 세상과 사물, 인류와 우주에 대한 사랑이 폭넓게 풍성히 넘치는 존재라는 데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사랑이란 고귀한 기쁨을 주기에 인간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심장 뇌도 심장도 에로스적 사랑 사랑 자연사
2025.06.24. 13:44
오래 전에 그려진 르네상스 시대의 목판 유채화 중에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그림이 있다. 바로 1560년, 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의 작품인 〈Children’s Games〉(어린이 놀이)라는 그림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이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놀이들을 다 종합적으로 모아 놓았고, 아이들의 다양한 노는 모습을 어느 사소한 공간의 낭비 없이 아주 빼곡하게, 그렇지만 꽤 유쾌하게 잘 묘사했다. 다시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따뜻한 느낌의 배경에 어린이들이 실제로 바로 눈 앞에서 노는 것처럼 느껴지고, 매우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포착해서 여러모로 재미있게 감상할 수가 있다. 브뢰헬의 풍속화에 표현된 어린이 놀이들의 종류를 잠깐 들여다보자면,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물론 그림 뒷부분에 작게 그려진 놀이들은 도저히 (나로서는!) 무슨 놀이인지가 파악이 잘 안되고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 실린 80여 가지 놀이 중에는 소꿉놀이, 굴렁쇠놀이, 가마태우기, 말타기놀이, 춤추기, 기마전놀이, 자치기놀이, 술래잡기, 씨름 등등 혼자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누구나 매번 이 그림을 볼 때면, 이 네덜란드 화가의 거장다운 재능에 놀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을 ‘종합 놀이 선물세트’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내 어린 시절, 아이들이 특별한 날에만 선물로 받기를 기대(!)할 수 있었던 ‘종합 과자 선물세트’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솔직히 놀이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그 자체로 갖가지의 달콤하고 바삭바삭한 과자들처럼 여전히 우리네 마음을 흥분케 하고 들뜨게 하며 즐겁게 해준다. 이제 우리 다같이 브뢰헬의 그림에서 모든 종류의 놀이와 게임의 모습을 한번 지워보자. 말하자면, 텅텅 빈 ‘종합 과자 선물세트’ 상자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아마도 무척 속상하고 심심하고 허전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의 빈 그림에 홀로 컴퓨터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를 그려보자. 마치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과자 하나가 있는 상자처럼 말이다. 여전히 허전하다. 마음에 썩 차지 않는다. 아마도 어딘가 모르게 중립적이고 차고 딱딱한 이미지가 그려진다. 내 마음이 별로 신나지 않는다! 시카고 지역의 어떤 카페에서 본 일이다. 자매로 보이는 두 명의 여자아이가 상당한 시간 동안 전자매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니로 보이는 아이는 자신의 태블릿으로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하며 웃고 있었다. 때때로 볼륨을 더 높여서 옆에 앉은 동생에게 보여주곤 했다. 그 여동생은 언니가 방해하지 않는 한 시종일관 귀에 이어폰을 끼고서 빈종이에 뭔가를 그리고 쓰며 여러 가지의 낙서를 하고 있었다. 또 한번은 뉴욕으로 가는 비행장에서 본 일이다.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며 무척 바빠 보였고, 옆 좌석에 앉은 어린 딸아이는 태블릿으로 자신의 아바타(avatar)에 귀엽고 예쁜 옷들을 갈아입히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처럼 직접 손으로 그리고 오려서 애써 만든 것이 아니라, 아주 쉽게 ‘검지 손가락’만 움직여서 매우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혔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의 놀이는 그 모양과 모습이 매우 달라졌고, 그 성질과 속성 또한 많이 다르다. 게다가 인류는 로봇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가정에서나 식당에서 그리고 학교에서도 “다재다능한” 전자매체가 급격히 일상화되고 있다. 말하자면 요새 아이들은 점점 더 밖에 나가서 놀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에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딱딱하고 차가운 전자매체를 벗어나 안전한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현명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굳이 예쁘고 팬시하고 비싸고 많은 장난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놀이 종합 선물세트’에서 볼 수 있듯이,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와 함께 직접 경험과 관찰과 실험을 하고, 전신을 움직여서 마음껏 뛰어 놀고, 또 꿈꾸고 생각하고 몽상을 펼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선물세트 손원 어린이 놀이들 종합 놀이 놀이 종합
2025.04.15. 13:39
아이들의 학습이나 혹은 어른들이 취미로 삼아 무엇을 배우려 할 때 가장 중요시되는 요인으로 집중력을 꼽을 수 있다. 이 집중력은 곧 집중 시간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주의 집중 기간/시간(attention span)’은 본인의 타고난 체력, 영양 상태, 환경, 부모나 교사, 코치 내지 강사의 지도 등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중에 으뜸은 본인의 흥미와 관심의 여하다. 왜냐하면 흥미가 있으면 집중 시간도 같이, 그다지 별 어려움을 들이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상승세”를 때에 따라서는 매우 높이 타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주의를 집중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아무리 그 내용이 재미가 있다고 해도, 광고를 제외하면 TV 드라마의 경우는 45분, 시트콤(sitcom)의 경우는 20분 정도로 그 분량을 잡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의 경우, 나이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또 개인차에 따라서 차이가 다분하지만, 대체로 유아들은 한번에 3분에서 7분 정도 집중이 가능하다. 물론 청소년에 이르면 충분히 30분에서 50분까지도 집중할 수 있다. 따라서 학습의 능률을 높이려면, 멘토의 자질과 학습 내용의 질에 더해서 학습자의 주의 집중 능력과의 “적절한 조율”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결국 육아교육과 학교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동이 ‘주의집중기간’ 동안 스스로 최대한 힘을 발휘하고, 그 가치를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아이들에게 내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감을 살릴 수 있도록 보다 내용을 알차게 꾸며야 한다는 사항을 내포한다. 교육에 있어서 제일의 ‘황금률’은 바로 “학습자는 자발적으로 정말 의미 있게 뭔가를 배울 수 있다고 느끼고 인식할 때 집중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특히 어린이는 놀이 시에 똑같은 혹은 유사한 행동을 끝없이 반복한다. 이 반복 행위는, 때로는 어른들의 눈에 시간 낭비로 보여도, 아이들에게 오감을 통해서 사물과 시공간의 개념을 깨우치는 절호의 기회다. 즉 아이가 자아 개념을 쌓고, 자신감을 키워가는 “진실된 경험들의 축적”이 된다. 최근에 나는 어린 여자아이가 노는 장면을 우연히 관찰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정말 오랫동안(!) 집중력을 보여 혼자서 자발적 놀이에 흥미를 갖고서 열심히 집중했기에 아이의 ‘집중력 살리기’의 아주 좋은 예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 상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 명의 어린 여자아이가 바닥에 앉아서 두 개의 가늘고 긴 막대기를 갖고 놀고 있었다. 그 아이는 긴 막대기 하나를 자신의 운동화 뒤꿈치 부분에 달린 끈으로 된 고리에 끼워 넣기 위해서 여러 번 시도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고리 구멍을 찾아서 한참을 이래저래 손과 몸을 움직여 조작하다가 드디어 막대기 한 개를 한쪽 신발 뒤의 구멍으로 끼워 넣었다. 그리곤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힘들게 끼운 막대기를 빼버렸다. 뭔가 매우 만족스럽지 않은 듯이 말이다. 그러다가 또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결국 다시 하나의 막대기를 신발 한 개의 고리 구멍에 끼웠다. 그런데 이제 무엇인가가 달라진 것이 있었다. 먼저는 막대기를 왼쪽 신발 고리에 끼웠으나, 이번에는 똑같은 막대기를 오른쪽 신발 고리에 끼웠던 것이다.(이것은 참으로 그 아이에게는 엄청난 발견인 것이다!) 마침내 그 아이는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무척 만족하는 듯 미소를 띄었고, 연이어서 신나는 듯 두 팔을 허공에 “최대한 높이” 올려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이렇게 아이들은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오감으로 사물을 인식해 간다. 물론 사람들은 이 신발의 뒷부분에 있는 고리를 신발을 편리하게 신을 때 사용한다. 그래서 성인은 어쩌면 아이가 하는 고리의 본래의 목적에 맞지도 않고, 별 의미 없이 수없이 반복하는 행위를 못마땅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배워 나가야 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타당한 행동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기억하자. 아이들은 오감을 통해서 배운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보고, 들어보고, 맛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아 보고 하면서 성장하고 발달한다. 즉 어린이의 재미난 오감놀이는 아이의 집중력을 “신나게” 살려준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집중력 손원 고리 구멍 막대기 하나 위스콘신대 교육학
2025.04.01. 12:33
감정 오염은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이 겪는 매우 일반적인 정서적 현상 중 하나다. 그리고 감정의 오염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결코 피해갈 수 없으며, 매일 같이 일상 생활 속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시시각각으로, 곳곳에서 발생한다. 사람들은 ‘감정 오염(emotional contamination)’이란 말을 ‘오염’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악성 인플루엔자(influenza) 바이러스처럼 나쁜 의미로 사용해 왔다. 즉 남들에게 스트레스나 불안감,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거나 다소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하고 전파시킴으로써 상대방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그 사람의 일과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오염과 전이는 사람들 간에 눈빛, 말, 제스처, 행동 등으로 서로의 감정 상태에 악영향을 미쳐서 상대방의 기분을 망치거나 우울하게 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마치 모임에서 ‘흥을 깨는 사람(party pooper)’처럼 우리네 일상생활 속에서의 즐거움과 기쁨을 순간순간 빼앗아 가는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감정 오염’이란 말이, 그 반대로, 다소 역설적이기는 하나 긍정적인 감정의 전달과 모방이나 공유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감정 오염, 즉 감정 전달의 예는 마치 우리가 말도 안되는 코미디 쇼를 보면서 신나게 따라 웃거나, 슬픈 영화를 보면서 마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하염없이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는 경우들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타인이 만들어 놓은 때로는 허구의 세계 속으로, 가상의 이야기에 끌려서 나도 모르게 철저한 ‘감정의 전입’을 일으키는 것이다. 가정에서 아빠가 버럭 화를 내고 엄마가 짜증을 내며 싸움과 잔소리가 계속되면, 이런 불안과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아이는 학교에 가서도 왠지 모르게 하루 종일 기분이 처지고, 슬프게 우울한 하루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반면 아빠가 든든하며 자상하고 엄마가 밝고 환하게 웃으면, 아이는 좋은 기분으로 그날 학업에 보다 열중하고 친구와 사이좋게 보낸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가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가족 구성원 간에, 친구 간에, 이웃 간에, 동료 간에 서로가 긍정적, 부정적인 감정을 주고받는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은 함께 원초적인 ‘정서의 씨(emotional seed)’를 공유하며, 감정의 공감 즉 ‘감정 이입(empathy)’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전의 칼럼, 〈공명 행위와 감정 조절 능력〉에서 들었던 “어떤 화난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그날 새로운 아침을 맞아 카페 안에는 자신이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며 서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고,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키보드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다들 따뜻하고 부드러운 커피나 시원하고 달달한 리프세서(refreshers), 버터향을 한껏 풍기는 크루아상 또는 향기로운 블루베리 머핀 등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잔잔한 음악소리와 함께 고요했던 카페 분위기를 깨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서서 바리스타들에게 고함을 치는 여성은 한 번에 모든 이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때 난 너무 놀라서 가슴이 철렁했고, 실로 내게 만큼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래도 오래간 만에 느끼는 청천벽력(!)이었다. 여기서 나는 부정적인 감정 전달을 분명하게 목격하고 경험했다. 나는 실제로 바로 내 앞에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인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나는 아직도 99% 확신한다. 그날 그 사건은 나를 포함해서 주문 이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을 황당하고 어리둥절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아니면 카페 안에 있었던 상당수가 최소한 감정이 상했거나 다소라도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엄마의 행동은 분명히 아침에 모든 이들의 평온을 깨뜨리는 행동이었다. 물론 어린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엄마의 바쁜 모습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행위는 바로, 그야말로 감정의 오염이었다. 즉 사람들의 기분을 망친, 그날의 밝고 생생한 활력을 떨어뜨린 상당히 부정적이고 나쁜 감정의 전달 그 자체였음이 분명했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감정 손원 감정 오염 부정적 감정 감정 조절
2025.03.18. 13:38
사람들은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먹으면서 자란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 역시 정말 많이 먹고 자란다. 즉 엄마의 말과 감정은 엄마의 따뜻하고 포근한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가 잘 자라도록 하는 데에 든든한 토대가 되어준다. 게다가 아기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고,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쳐서 한 성인으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자아 통제 능력, 특히 ‘감정 조절 능력’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 부모는 자녀가 항상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자아 형성을 이루는 진정한 모델이자 본보기다. 나는 “사람이 정서적 스트레스 요인들에 대처해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인생 여정에 있어서 행복과 웰빙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고 강하게 믿는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의 ‘감정 조절 능력’의 성장과 배양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자녀는 부모의 언행, 태도와 행동에 매우 민감하며, 끊임없이 보고 느끼며 따라하고 배우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부모의 안색, 호흡 소리, 심장 박동, 몸의 전율, 안녕, 침착한 상태, 불안한 몸가짐 등을 모두 포괄한다. 사실상 아이는 부모와 가족, 교사 등을 포함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운다. 그러나 특히 감정과 정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를 관찰하고 따라하는 법이다. 즉 부모는 자녀에게 절대적인 스승이다! 나는 이것을 ‘모방 행위’에서 더 나아가 ‘공명 행위’라고 부르고 싶다. ‘공명 행위’는 영어 단어로 하면, ‘resonance behavior’로 말할 수 있겠다. 사람이 누군가를 ‘공명’한다는 것은 꼭 똑같거나 일치하지 않더라도,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감정, 생각, 행동에 매우 깊이 공감하고 뜻을 같이 하는 행동이다. 즉 어떤 식이 되든 간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유명한 커피 전문점에서 보게 된 사건이다. 갑자기 어떤 여성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바리스타를 향해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왜 자신이 주문한 드링크가 “45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느냐”고 매우 화를 내고 있었다. 두세 명의 바리스타에게 왜 아무 것도 안 하고 늦장 부리며 서 있기만 하냐고 아주 큰 목소리로 나무라며 신경질을 부렸다. 마치 엄마가 자식의 잘못을 큰소리로 나무라듯이 말이다. 그 난처한 상황에서 어떤 바리스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어떤 이는 아예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못 들은 채 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먼저 온 사람들과 긴 줄을 뒤로 하고 (무척 오래 전에!) 자신이 주문한 드링크를 받아서 여전히 성난 모습으로 씩씩거리며 아이의 손을 잡고 아주 당당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 그 때 교육학 박사인 나는 당연히 반사적으로 아이의 얼굴과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 가에 초점을 두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가 그 아이라면 어떤 감정 상태일지도 상상해 보았다. 한마디로 온통 ‘불안감 덩어리’ 그 자체였다! 분명한 점은 그때 그 엄마가 보인 행동은 자신의 아이에게도, 바리스타들에게도, 다른 손님들에게도 아주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모의 역할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부모는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할 때마다, 말과 행동, 그리고 특히 감정 조절에도 상당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보이는 얼굴의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 언어가 감각적으로, 온몸에 너무나 직접적인, 때로는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육아와 교육에 있어서 이 사회의 성인 모두가 기억해야 할 점은, 아이는 항상 부모나 주변 사람이 어떻게 자아를 통제하고 감정을 조절하는지를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인의 부정적 본보기가 아동의 ‘공명행위’를 통해서 안타깝게도 악순환이 되지 않도록 매사에 더욱더 유념해서 행동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 공명 감정 조절 공명 행위 감정 생각
2025.03.04. 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