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암 환자 55년 진료한 한인의사, 희소근육병과 싸우며 글 쓴다

Atlanta

2025.12.23 15:30 2025.12.23 16:3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행복대학 글여울 문학상 수필 우수상 신규호씨
음성인식기 이용해 집필
“할아버지 어떤 사람인지
손주들에게 전하고 싶어”
휠체어에 앉은 채 인터뷰하고 있는 연규호씨. 최근 발병한 희소근육병 때문에 목소리로 글을 쓴다.

휠체어에 앉은 채 인터뷰하고 있는 연규호씨. 최근 발병한 희소근육병 때문에 목소리로 글을 쓴다.

매미는 15년을 땅속에서 보내고 세상 밖으로 나와 겨우 한 달을 산다. “제가 매미가 됐어요. 50년 넘게 일만 하다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지난 9일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산하 시니어 행복대학 문예창작반인 글여울이 선정한 올해 수필 우수상 수상자 신규호 씨(81)는 5살, 10살 손주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어린 손주들이 나중에라도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글을 통해 알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1960년대 이민 온 뒤 ‘NII'(Nothing Is Impossible, 불가능은 없다) 정신으로 평생 살았다. 자식들에겐 그 교훈을 가르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 손주들에겐 글로나마 전하려 한다.”
 
196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곧장 캐나다로 떠나 토론토대에서 물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55년 동안 암 환자를 진료했다. 1974년부터 퀸즈대, 맥길대, 캘거리대 등 캐나다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다 1991년 뉴욕주립대(버펄로) 방사선종양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하며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에서 CCS 종양센터도 설립해 운영했다.
 
뉴욕주립대(버팔로) 방사선종양학과 학과장 재임 시절 신규호 씨와 마리오 쿠오모 뉴욕주지사

뉴욕주립대(버팔로) 방사선종양학과 학과장 재임 시절 신규호 씨와 마리오 쿠오모 뉴욕주지사

그가 은퇴 5년 차에 접어든 지난 6월 갑작스레 희소 근육병이 발병했다. 그는 현재 음성인식 기능을 활용해 글을 남기고 있다. “지난주까진 손가락 근육이 멀쩡했는데, 최근 근육이 약해지면서 목소리로 글을 쓴다. 글에 오타가 많은 건 그 때문이다.” 주로 쓰는 글은 의사로서 만났던, 유난히 기억에 남는 환자들에 관한 것이다. 올해 신인문학상에 출품한 수필도 유방암 생존자 마가렛 수녀와의 일화다. 환자가 된 후의 감상도 시로 썼다. “슬퍼서일까 분해서일까 봐 나무에 붙어서 기운차게 운다// 나도 지금은 매미 같다/ 수십 년 일만 하다 이제 안정을 찾았지만/ 노년의 삶에 제동이 걸렸다” (매미의 울부짖음)
 
강화식 글여울 문예창작반 강사가 기억하는 그는 지난 3년간 매주 셔츠에 보타이를 메고 개근했던 학생이다. 20~30여명의 학생 가운데 가르치는 대로 성실하게 글을 고쳐오는 이는 드물다. 그 역시 강화식 강사를 ‘어머니’로 부를 만큼 애정이 크다. 그는 “60년대부터 낯선 땅에서 타지 생활하면서 차별을 많이 받았다. 높게 달린 이파리일수록 더 흔들린다고 하지 않나. 브로큰 잉글리시를 여태껏 쓰면서도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려고 높은 자리에 외롭게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삶이 심플해졌다. 글쓰기를 통해 작은 행복을 알게 돼 기쁘다.”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