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전쟁범죄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카리브해에서 벌어진 군사 작전 중 이미 전투력을 상실한 적 선박에 대해 2차 공격을 명령해 승조원을 전원 사살했다는 주장은 국제법상 전쟁범죄 가능성을 제기한다. 군사적 필요였는지, 불필요한 살상이었는지 여부는 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지만, 이 사건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전쟁범죄란 무엇이며, 왜 인류는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을 만들려 해왔는가다.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참혹한 현실이었다. 고대에는 승자의 약탈과 도시 파괴, 여성과 아동의 포로화가 당연한 관행이었고, 성경의 ’바빌론 유수‘ 역시 패배한 민간인이 대규모로 강제 이송된 사례다.
전쟁은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었고, 인간의 존엄은 보호받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였다.
네덜란드 법학자 그로티우스는 전쟁에도 ’규칙‘이 존재해야 문명이 성립한다고 주장했고, 19세기 말 헤이그협약, 20세기 중반 제네바협약은 민간인 보호와 포로 처우와 같은 기본 원칙을 국제법으로 제도화했다.
오늘날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포로수용소‘ 장면도 사실 이러한 국제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제네바협약이 없었다면 포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국가의 명령이 개인의 책임을 면제할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하며 전쟁범죄 개념을 법적으로 구체화했다. 인간의 존엄은 어떤 명령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오늘날 국제법상 전쟁범죄는 민간인 공격, 포로 학대, 고문, 무차별 폭격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를 의미한다.
미국 또한 제네바협약의 당사국이며, 군형법(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과 연방법에 따라 전쟁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 이스라엘, 하마스, 미군, 사우디 등 여러 분쟁 당사국들이 전쟁범죄 조사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전쟁을 수행한 국가라면 누구나 의혹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전쟁범죄가 본질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해 은폐되기 쉽다는 점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전쟁범죄를 규제하려는 인류의 노력에는 분명한 법적, 철학적 전제가 존재한다. 전쟁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되, 전쟁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문명적 합의다.
그래서 국제법이라는 최소한의 울타리를 만들어 전쟁 속에서도 지켜야 할 규범을 설정해 왔다. 이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인간이 야수성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 부과한 제한이다.
특히 강대국일수록 이러한 규범을 더욱 엄격히 지켜야 한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규범적 리더십을 주장하려면 헤그세스 장관과 관련된 의혹부터 투명하고 엄정하게 다뤄야 한다. 강한 나라가 규범을 약화시키는 순간, 전쟁범죄를 억제하는 국제 규범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전쟁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본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인간성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울타리를 세워온 것 또한 인류의 노력이다. 전쟁범죄 규범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다.
디케의 저울이 힘의 논리가 아니라 규범과 책임의 편으로 기울기를 바란다. 그 방향이야말로 인류가 걸어가야 할 문명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