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LA 요식업계 덮친 복합 위기 산불·이민단속·관세 삼중고 직격탄 손님 급감, 임대료 압박에 폐업 속출 영업시간 직원·메뉴 줄여 겨우 연명
━
원문은 LA타임스 12월24일자 “L.A. restaurants‘ year of misery” 기사입니다.
롱비치에 위치한 베이커리 ’샌 앤 울브스(San & Wolves Bakeshop)‘의 공동 대표 킴 에스트라다와 아빈 토레스는 관세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개업 첫해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향후 예산을 어떻게 짜고 사업을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다. [줄리아나 야마다 / LA타임스]
LA의 한 유명 피자 레스토랑 운영진은 지난 10월 말, 이례적으로 소셜미디어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당장 손님이 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며, 칵테일 한 잔이나 기념품 하나만 사줘도 큰 도움이 된다는 절박한 호소였다. 팬데믹을 견뎌낸 식당이 다시 “살려 달라”고 외쳐야 할 만큼, 2025년의 LA 외식업 환경은 급격히 악화됐다.
공동 운영자인 케이틀린 커틀러는 인터뷰에서 “나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식당을 시작한 ‘코로나 세대’ 업주이지만, 지금 상황은 그때와 다르지 않게 심각하다”며 “그땐 그래도 각종 지원책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안전망조차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24년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2025년에 들어서며 상황은 오히려 한 단계 더 악화됐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식당주들이 꼽은 가장 큰 위기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파업 여파로 인한 소비 위축, 최저임금 인상과 인건비 부담, 코로나 시기 밀린 임대료와 대출 상환이었다. 그러나 2025년에는 여기에 대형 산불,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대적인 단속, 일부 지역의 야간 통행금지, 관세 인상과 원자재 가격 폭등이 한꺼번에 덮치며 LA 식당가를 사면초가로 몰아넣었다.
에코파크에 있는 사케 바 ’오토토(Ototo)‘의 공동 대표 코트니 캐플런과 찰스 남바는 올여름 이민 단속과 도심 통행금지 조치로 인해 소비자 수요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멜 멜콘 / LA타임스]
커틀러와 남편 다니엘은 올해 초 1만 달러의 보조금과 상환을 미룰 수 있는 5만 달러 대출을 받았다. 이 자금이면 연말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 계산했다. 하지만 여름철 ICE 단속과 국제 관광객 급감으로 매출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줄었고, 확보했던 자금은 몇 달 만에 소진됐다. 이제는 대출금을 어떻게 상환해야 할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캘리포니아 레스토랑협회(CRA)의 조트 콘디 회장은 “문제들이 만화경처럼 동시에 터지고 있다”며 “식당 산업을 둘러싼 거의 모든 악재가 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업계는 지금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파파 크리스토스, 게릴라 타코스, 히어스 루킹 앳 유 등 LA를 대표하던 식당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오랜 외식업 경력을 가진 상 윤 씨 역시 지난해 말 부활시켰던 컬버시티의 상징적 제과점 헬름스 베이커리를 올해 12월 폐업한다고 발표해 충격을 줬다. 그는 “운영자로서 감당할 수 있는 비용 한계를 넘어섰고, 소비 지출도 지나치게 들쭉날쭉하다”며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커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LA는 늦은 밤 문화가 거의 사라졌고, 식당들이 점점 일찍 문을 닫는다. 도시 전체에 무기력감이 퍼져 있다”고 토로했다.
CRA가 매년 수백 명의 식당주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에서도 LA의 상황은 유독 비관적이었다. 조사 대상의 84.8%가 전년 대비 손님이 줄었다고 답했다. 가격 인상으로 손님을 더 잃을까 우려한 업주들은 대체로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고, 대신 영업시간 단축(36%), 메뉴 축소(25%), 추가 휴무일 확대(13%) 등으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었다. 콘디 회장은 “식당 수는 많은데 외식 지출은 줄어들었다”며 “모두가 나눠 가질 몫이 극도로 작아졌다”고 말했다.
2025년 식당가를 강타한 첫 번째 요인은 산불이다. 1월 7일 발생한 대형 산불 이후 알타데나, 퍼시픽 팰리세이즈, 토팡가, 말리부 지역은 아직도 복구 과정에 있다. 일부 유명 식당은 전소됐고,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 재개장한 곳도 있다. 화재 직후 몇 주 동안 LA 주민들이 도시를 떠나거나 외출을 자제하면서, 카운티 전역에서 매출 급감이 보고됐다.
여름 들어서는 이민 단속이 또 다른 직격탄이 됐다. LA카운티 외식업 종사자의 약 66%는 이민자이며, 이 중 79%가 라티노다. ICE 단속과 그에 따른 시위는 소비 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 한 식당주는 단속 이후 주방 핵심 인력 두 명을 잃었다고 전했다. 그는 “오랜 기간 가게를 속속들이 아는 직원들은 대체하기 어렵다”며 “남은 직원들이 모든 업무를 떠안고 있다. 모두가 지쳐 있다”고 말했다.
6월 도심 지역의 야간 통행금지 역시 저녁 장사에 치명적이었다. 리틀 도쿄 일대에서는 시위 과정에서 약탈과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 에코파크의 사케 바 ‘오토토’ 공동대표 코트니 캐플런은 “7~8월 두 달 동안 예상 매출의 60~70%를 잃었다”며 “연말 성수기가 와도 그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관세 인상과 원재료 가격 급등은 식당들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 롱비치의 베이커리 ‘샌 앤 울브스’는 필리핀산 코코넛 밀크, 코코넛 가루, 우베, 커피 원두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었다. 필리핀산 바라코 커피 원두는 한 포대당 70달러에서 90달러, 다시 237.50달러까지 올랐다. 공동대표 킴 에스트라다는 “가격을 올리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지만, 단골 손님을 더 잃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국제 관광객 감소도 외식업을 압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관광청에 따르면 올여름 LA의 국제 관광은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멜로즈 힐의 치킨 전문점 ‘르 쿠프’는 2025년 매출이 전년보다 20% 줄었다.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던 이 가게도 올해는 해외 관광객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롱비치에 위치한 베이커리 ’샌 앤 울브스(San & Wolves Bakeshop)‘의 공동 대표 킴 에스트라다와 아빈 토레스는 관세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개업 첫해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향후 예산을 어떻게 짜고 사업을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다. [줄리아나 야마다 / LA타임스]
이처럼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도 일부 식당주들은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마이클 피오렐리와 엘리자베스 구티에레즈는 최소 인력, 단일 메뉴, 카운터 서비스로 운영비를 극단적으로 낮춘 피자 가게를 열었다. 모든 직원이 청소·설거지·조리를 함께 맡는 방식이다. 피오렐리는 “성공을 매출 규모로만 정의하지 않는다”며 “직원에게 제때 급여를 주고,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티에레즈 역시 “이제는 기존의 ‘표준’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6년 월드컵과 2028년 LA 올림픽을 계기로 회복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많은 식당주들은 2025년을 LA 외식업 역사상 가장 혹독한 해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어렵게 회복하던 산업은 다시 한 번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