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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리포트] AI 거품론에 반대되는 생각들

Los Angeles

2025.12.29 18:18 2025.12.2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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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

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

지난 12월 17일. 오라클이 데이터센터를 짓는 대규모 투자유치를 하는데 자금투자 계획이 틀어졌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뜸 오라클과 상관없는 구글, AMD, NVIDIA 등의 주가가 3~5%씩 떨어졌습니다. 분명히 투자자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AI 데이터센터를 하나 짓는데 보통 조 단위의 비용이 들어가. 그런데 그에 반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불확실해.”
 
“지금 돈 버는 AI 회사가 있긴 한거야?”
 
“밑빠진 독에 물을 서로 붓고 있는거 아냐? 오픈AI가 투자를 엄청 받으면 그걸로 엔비디아 GPU를 사고, 엔비디아가 그 돈을 다시 오픈AI에 투자하고…”
 
“결국 몇몇 회사만 살아남을텐데 다른 AI 회사들에 투자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결국 요약하자면 ‘AI 거품론’ 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비싼 반도체인 GPU 구매비용에다가, 그 GPU가 먹어치우는 어마어마한 전력량, 그리고 그 전력을 감당하는 발전인프라 등을 생각하면 투자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돌아오는 수익은 미미합니다. 오픈AI, 앤쓰로픽 등의 대표적인 AI 회사들은 계속 적자를 보고 있고, 그들이 제공하는 가치가 언제 큰 돈이 되어 돌아올지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여기에 멈춰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투자가 크다’, ‘그런데, 이익은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면 거품이네’ 라는 3단 논리에 그쳐버립니다. 하지만 지금 AI 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 AI 거품론이 만드는 불안감은 다른 투자자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 장벽입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오랜 기간 적자를 본 기업이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쿠팡도 마찬가지죠. 거의 10년간 두 회사는 막대한 투자를 했고, 적자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때마다 두 회사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과도한 투자다”, “결국 거품이다.”  
 
하지만 지금 결과는 어떤가요? 두 회사는 거의 독점기업이 됐습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사태가 났지만 SKT때와는 다르게 일반 소비자들은 갈아탈 KT가 없습니다.) 막대한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이 감히 덤비지 못할 인프라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막대한 투자가 헛된 것이었을까요? 아니죠. 경쟁자들을 몰아낸 겁니다. 결국, 돈이 일을 한 겁니다. (Money Worked!)
 
AI 투자도 같은 국면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픈AI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 규모를 보며 많은 기업과 국가는 사실상 두 손 두 발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렇게 못 한다”는 체념이 먼저 나옵니다. 현실적으로도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도 국가 주도의 AI를 포기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몇몇 AI 회사들이 전 세계 AI 인프라를 다 휩쓸고 난 뒤에야 우리는 이렇게 소리칠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는 거지?” 어쩔 수 없지만, 지금 AI를 믿는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를 비롯한 전 세계 AI 개발에 관심 있는 모두를 향해 머니게임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 판돈은 이처럼 커. 쫄리면 접으시던가.”
 
둘째. 이미 AI는 여기저기서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거대모델, 초대형 데이터센터 등등만이 AI의 전부는 아닙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설립된 지 1년 남짓 된 한국의 AI 스타트업 ‘마지글’은 정유 조선 전자 건설 현장에서 흩어져 있는 지식들, 문서화되지 않은 노하우 들을, 활용가능한 지식구조로 다시 바꿔서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몇백억 정도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주문오류를 잡아주기도 하고, 정유 공장에서는 베테랑만 할 수 있던 일을 신입사원도 대응 가능하도록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실제로 AI가 창출하고 있는 가치들은 뉴스의 헤드라인에는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치들이 ‘거품’일까요? 무언가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려면, 그게 없을 때를 상상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지글’ 같은 회사의 솔루션을 쓰던 곳이 갑자기 그 솔루션을 잃게 된다면, 마치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을 느낄 거라 생각이 됩니다.
 
AI만 놓고 보면 과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뒤에서 일하고 있는 돈의 논리는 실제 AI가 창출하고 있는 가치가 나중이 되면 마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향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AI 거품론이 투자자에게 주는 경고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AI 거품론이 AI에 도전하는 이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손실을 보는 사회는 기술이 없거나 자본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그러한 관점이 없는 채로 판단을 미루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거품이라는 말은 편합니다. 불안하다고 피하는 것도 너무 편합니다. 하지만 판단을 미룬 대가는 나중에 어마어마한 청구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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