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 한인커뮤니티, 나아갈 방향은] 한인사회, 차세대로의 세대 교체 답보 상태 “젊은 한인들에게 의사결정 권한 부여, 니즈 파악 중요”
지난달 5일 열린 차세대 한인 네트워킹 행사에서 네트워킹하는 20·30대 한인들.
“굳이?”
지난달 코리아소사이어티와 이노비, 뉴욕총영사관이 공동 주최한 차세대 한인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한 20대 이 모 씨는, 한인 네트워킹 행사를 포함해 한인 관련 행사에 참석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그는 ‘굳이’ 한인 단체 활동에 참여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다 바쁘지 않냐.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돼 있고 그걸 투자하려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굳이 한인들끼리 네트워킹하고 단체 활동하는 데 참여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미국에 와서 살고 있으니, 네트워킹도 주류사회 사람들과 연결되는 방향으로 하고 싶었다”라는 게 이 씨의 입장이다.
반면 각종 한인 단체들은 “차세대로의 세대 교체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차세대는 ‘굳이’ 참여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데, 기존 커뮤니티는 세대 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 간극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한인커뮤니티 세대교체의 현주소: “관심은 있지만, 지속성 부족”= 차세대 한인들의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제중 동포담당영사는 “부임 후 차세대 네트워킹 행사를 두 번 개최했는데, 확실히 수요는 있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단발성 참여가 기존 한인 단체에서 차세대 한인들의 지속적 활동이나 리더십 참여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뉴욕·뉴저지 한인약사협회 김준성 부회장은 “최근 약사협회 행사에도 20·30대들이 30~40명 정도 참여했지만 지속적인 참여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과거에는 정보 접근성이 낮아 한인 네트워킹이 필요했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정보를 얻을 경로가 많다 보니 ‘내가 가서 얻는 게 뭐냐’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고 설명했다.
◆세대교체, 왜 어려울까= 취재진이 만난 젊은 한인들 사이에서는 비슷한 반응이 반복됐다. “재미가 있거나, 실질적인 이익이 있거나,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
약사협회 김 부회장은 이를 ‘기대치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1세대는 한인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면, 젊은 세대는 성장 기회와 시간 대비 성과를 본다”고 했다.
김 영사 역시 “차세대들이 1세대 중심 한인회나 기존 단체 행사에서 참여의 유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오랜 기간 한인 이민사회를 연구해 온 민병갑 전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석좌교수 역시 문제의 본질을 구조적인 충돌에서 찾았다. 민 교수는 “한인 단체 다수가 여전히 이민 1세 중심의 운영 방식과 한국적인 관습에 머물러 있다”며 “차세대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험이 반복되면 참여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커뮤니티 파워, 중요한 이유는= 취재 중 만난 한 30대 한인은 “굳이 한인커뮤니티가 유지돼야 할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이 의문에 일부 한인들은 “커뮤니티 파워는 개인의 안전판이자 성장의 기반”이라고 답한다.
미국에서 창업가이자 투자자로 활동 중인 한인창업인연합(UKF) 이기하 공동대표는 “미국에는 분명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그 벽을 넘는 데는 네트워크와 추천이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육주선 변호사 역시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1.5세·2세일수록 더 단합해야 한다”며 “커뮤니티 입지가 없다면 위기의 순간 쉽게 외면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전문직 단체의 경우, 커뮤니티 결속은 정책·권익 보호로도 직결된다. 한인약사협회는 협회 차원의 집단 대응을 통해 체인 약국에서 약사들의 점심시간 보장을 이끌어낸 사례를 들었다.
◆한인커뮤니티, 나아갈 방향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해법은 분명하다. 차세대 한인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서 행사를 기획하고, 단순히 한인 단체 활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것이 아닌 오너십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노비 김재연 사무총장은 ‘눈높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0~30대가 ‘와볼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며 “지난해 행사에서 네트워킹을 통해 취업한 사람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평소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사람을 만나는 재미와 실질적 기회가 보장되면 참여는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영사관 역시 차세대의 수요에 맞춘 구조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영사는 “젊은 세대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난번 열린 행사에서는 동의한 사람들에 한해서 연락망을 공유했다. 일회성 행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필요할 경우 계속해서 연락을 이어나가고 도움을 주고 받으라는 목적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세대교체의 핵심은 ‘오너십 부여’라는 의견도 있었다. 약사협회 김 부회장은 “젊은 세대가 단순히 단체 활동을 ‘돕는 사람’으로 머무는 구조에서는 지속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차세대들에게 의사 결정 권한을 부여하고, 실제 운영을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한인들은 한인 단체에 남아야 할 이유를 아직 찾지 못한 것”이라며 “권한과 목표가 분명해지면, 능력 있는 차세대들은 충분히 움직일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