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좀 든 이들은 월간잡지 '샘터'를 기억할 것이다. 작고 얇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뜻밖에 가슴을 울리는 글들이 알차게 실려 있던 잡지, 맑고 시원한 물 찰랑거리는 샘터 같은 책…. 개인적인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이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그 월간 샘터가 2026년 1월호(통간 671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창간 56년 만이다. 무기한 휴간에 대해 김성구 발행인은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이고, 힘을 길러서 맑은 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마트폰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영상 콘텐츠의 수요가 활자 미디어를 월등히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을 이기지 못한 데 따른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독서 인구의 감소, 인쇄 매체의 전반적 쇠퇴로 영상 콘텐츠가 활자 미디어를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을 못 이겨 일단 멈출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한 시대가 저물고, 종이책의 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위기를 실감하며 마음이 짠하다. 출판 잡지계 전체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월간 샘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1970년 4월 창간된 한국 최장수 교양지다. 창간발행인 고(故)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샘터는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스타 필자’들의 맛깔나는 글과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쓴 진솔한 글들이 어우러져 공감대를 이루며 큰 사랑을 받아, 디지털 시대 전인 1990년대 초까지는 월 50만 부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 교수, 법정 스님, 소설가 최인호, 이해인 수녀, 동화 작가 정채봉, 장영희 교수 등이 지면을 빛냈다. 소설가 한강, 정호승 시인 등 많은 문인들이 샘터의 맑은 물을 마시며 성장했다. 최인호는 자전적 이야기인 연재소설 〈가족〉을 34년간, 법정 스님은 수행 중의 사색을 기록한 〈산방한담〉을 16년간 연재했다. 장욱진, 천경자, 이종상 등 유명 화가들이 그린 표지 그림과 삽화로도 유명하다.
샘터가 월간지로 사랑받아 온 비결의 핵심은 독자들의 사람 냄새 물씬한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만1000여 개에 이르는 독자의 사연과 목소리를 담았다. ‘어머니에게 편지 보내기’ 공모에서는 한 달에 1만여 통의 편지가 날아들기도 했다고 한다.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깊은 공감과 감동, 웃음을 자아내는 소박한 삶의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을 위로했다.
휴간호인 2026년 1월호의 표지는 창간호와 같은 반 고흐의 그림 ‘장미와 해바라기’로 꾸며졌고, 특집도 창간호와 마찬가지로 ‘젊음을 아끼자’를 주제로, 창간호에 기고했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오랜 단골 필자였던 이해인 수녀, 편집부 기자로 근무했던 정호승 시인 등의 글이 실렸다. 창간호와 같은 표지그림과 특집을 실은 의미를 더듬어 보게 된다.
월간 샘터는 지난 2019년에도 그해 12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 방침을 발표했으나, 당시 기업 후원과 애독자들의 구독 참여 등 각계에서 뜨거운 성원이 잇따르면서 재발간되어 발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떨지?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오는 현장에 서 있는 심정은 참 복잡미묘하고 서글프다. 나 같은 아날로그 글쟁이의 마음은 한층 심하게 일렁인다. 세상이 변해도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걸 지켜내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저력이다. 그래서 김성구 발행인의 말에 더 희망을 걸게 된다.
“월간 샘터는 잠시 쉬어 가지만… 물질보다 삶의 태도를 중시하는 샘터의 정신을 계속 지켜나갈 방법을 모색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