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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그대는 벗이 있는가?

New York

2026.01.18 17:12 2026.01.1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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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親舊)의 순우리말은 ‘벗’입니다. 친구라는 말에도 따뜻함이 있습니다만, 벗이라는 말에는 온기와 함께 깊이가 느껴집니다. 옛 친구를 죽마고우라고 하는데, 사실 죽마고우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처럼 사는 곳이 자주 바뀌지 않으면 죽마고우는 오래 만나는 사이가 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고향에서 뿔뿔이 흩어지기에 그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죽마고우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운 친구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벗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로가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안도감이 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즐거울 때나 힘들 때 마음을 나누고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내 기쁨을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요? 자랑으로 여기지 않고, 질투하지 않을 친구는 얼마나 있나요? 슬픔이나 괴로움을 함께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은 꽤 있는 듯하나 사실은 오랫동안 힘듦의 무게를 같이 짊어질 친구는 거의 없습니다. 한번은 연락하고 만나겠지만, 또다시 연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물보다 피가 진하다고 하며, 가족에 매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벗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벗 사이에 나이가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나이가 적어서 벗이 될 수 없다면 사귀는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라는 걸림돌을 치워야 좋은 벗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벗은 마음이 맞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다른 조건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맞아야 합니다. 다투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나다’는 말이 ‘맛나다’와 관련이 있다는 말은 민간어원으로 보이나 생각은 참 좋습니다. 벗은 맛난 만남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만나서 참 좋았다는 말이 절로 나와야 합니다.
 
벗은 만나서 무엇을 할까요? 첫째, 밥 한 끼 하면 좋겠습니다. 만나면 밥을 먹는 사이, 밥을 먹고 싶은 사이라면 벗입니다. 싫거나 불편한 사람과 밥을 먹으면 체합니다. 만나서 체하는 관계는 좋지 않습니다. 둘째, 이야기를 오래 나누면 좋겠습니다. 이야기가 재미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은 말도 길어집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말벗’이라고 합니다. 서로에게 말벗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겁니다. 셋째, 같이 걸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길을 같이 걷다가 보면 더 가까워짐을 느낍니다. 서로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어 가며 걷는 겁니다. 때로는 아무런 말 없이 걸어도 기쁩니다. 서로가 있기에 힘이 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길벗’이라고 합니다. 함께 걸으면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도 벗을 생각해 봅니다. 이미 죽마고우는 만나지 않은 지 오랩니다. 제 고향은 서울이지만 서로 하는 일이 달라서 만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참 벗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울 듯합니다. 대학 시절의 친구도 자주 보지는 않습니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도 스치듯 지나갑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사람도 많은데 벗이라고 부르기에는 왠지 어색합니다. 그도 어색할 겁니다. 벗은 상호관계니까요. 그러고 보니 벗이 별로 없습니다. 벗도 현재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연락하고, 만나고,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벗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벗 이야기를 써 봅니다. 어쩌면 매주 같이 국악 연습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요양원에 공연을 가는 사람이 벗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만나는 벗일 테니까요. 한 달에 한 번은 같이 밥을 먹거나 먹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몇 명 떠오릅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도 있고, 선후배나 제자도 있습니다. 먼 나라에 있지만, 그곳에 가면 꼭 연락하고 만나고, 같이 밥 먹는 사람도 모두 벗입니다. 멀리에 있어도 평소에 연락을 주고받으니 심리적 거리는 가까운 편입니다. 벗이 그리운 하루입니다.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걷고 싶네요. 말벗, 길벗과 함께.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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