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허허한 들판 어느 후미진 곳에서 들개가 하는 사랑처럼 본능적인 행위가 아니다. 계산된 발언은 더더구나 아니다. 사과는 영악한 머리가 아닌 훈훈한 가슴으로 해야 제대로 먹혀들어가는 법.
누가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사과는 사과처럼 들리지 않는다. 시늉일 뿐. 시쳇말로 “사과쇼”라 한다. 어떤 시늉을 한다는 것은 모종의 효과를 노리는 속임수다. 상대의 지능을 얕잡아 보는 마음 자세.
유튜브에서 들었다. 그런 식으로 하는 정책적인 사과를 음식의 간을 보는 행동에 비유하여 ‘간사과’라 하고 말도 안 되게 엉망으로 하는 사과를 ‘개사과’라 지칭하는 것을.
‘개’가 접두사로 쓰이는 의미를 사전은 크게 넷으로 분류한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각 부분마다 세 가지씩의 예를 들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①‘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 개밥, 개떡, 개살구 ②‘헛된, 쓸데없는’: 개소리, 개꿈, 개죽음 ③‘정도가 심한’: 개고생, 개망나니, 개망신 ④‘매우’: 개좋다, 개멋있다 (근래 젊은 층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자주 쓰임)
자신의 과오(過誤)를 인정하는 부분은 전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과’라는 말 대신 ‘송구스럽다’는 말이 나온다. [송구(悚懼)스럽다: 마음에 두렵고 거북한 느낌이 있다 (네이버 사전)] 영어로 하면, ‘feeling anxious and uncomfortable’. - 마음이 불편하다니.
사과, ‘사례할 謝, 지날 過’라는 어휘를 파헤친다. ‘지난 일 (과거)를 사례하다’. ‘사례’를 네이버 국어사전은 ‘언행이나 선물 따위로 상대에게 고마운 뜻을 나타내다’라고 소상하게 풀이한다. 영어로 옮기면 ‘to express gratitude by words or present’가 된다. 즉 사과의 뜻은 ‘지난 일에 대하여 말이나 선물로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된다.
아뿔싸! 그러니까 ‘사과’라는 한자어에는 잘못을 뉘우친다는 일상적인 의미가 아예 없는 것으로 보인다. 큰일 났다. 어원학적 차원에서 보면 중국어와 우리말이나 영어 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간사과, 간을 보는 사과’를 연구한다. ‘간장(醬)’ 할 때의 ‘간’은 순수 우리말로서 ‘갈다’에서 유래했고 ‘간’은 천일염 덩어리를 ‘갈아 놓은’의 준말. 한자어 장(醬)은 발효음식이라는 뜻. 즉 간장은 소금을 갈아서 만든 장이다.
간장의 ‘간’은 몽골어의 칸(khan, 으뜸, 강하다)에서 왔다는 학설 또한 유력하다. ‘칭기즈칸, Genghis Khan’의 ‘칸’과 같은 발음. ‘ㅋ’ 발음이 ‘ㅎ’으로 변해서 ‘칸’이 ‘한’으로 변천한 것이다. 결국 간은 으뜸 맛, 강한 맛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한다.
다채로운 양념이 없었던 옛날에는 짠맛이 입맛을 돋웠다. 성경 말씀에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돼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썩지 않고 하고 마음을 정화시키고 강한 입맛으로 삶을 소화시키라는 전갈이려니 한다.
사과를 하면서 상대의 간을 본다는 것은 치사한 짓이다. 반면에 성심껏 남김없이 사과를 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예컨대 남녀가 데이트하면서 너무 심하게 상대의 간을 보는 것도 상대를 설렁탕, 육개장 취급하는 짓이다.
사과를 강요하는 사람이 문제의 씨앗일 수도 있다. A를 대변해서 B가 C에게 사과를 하라는 압력은 사람들의 바운더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거기에 장단 맞춰 억지로 춤을 추는 정신적 신탁주의 노예들을 나는 개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