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치노 힐스 주립공원에서 만개한 캘리포니아 파피꽃. [앨런 J. 셰이븐 / LA타임스]
야생화 전문가 나오미 프라가는 올겨울 기록적으로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올봄 남가주에 이례적인 대규모 야생화 개화, 이른바 '수퍼블룸(superbloom)'이 펼쳐질 가능성에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주 남가주를 덮친 계절에 맞지 않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그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클레어몬트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보태닉 가든(California Botanic Garden)의 보전 프로그램 책임자인 프라가는 “비가 많이 왔다고 해서 수퍼블룸이 매년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수퍼블룸이 발생하면 정말 장관이지만, 강수량과 기온, 시기 등 모든 조건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몇 가지 조건은 갖춰졌지만, 날씨가 과연 협조해 줄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분명히 캘리포니아에 충분히 많은 비가 내렸다. LA 알마낙에 따르면, LA는 올해 1월까지 기준으로 지난 21년간 두 번째로 많은 강수량을 기록했다. 프라가는 이러한 비가 남가주에서 전통적으로 야생화가 만개하는 시기인 3월 중순부터 4월 사이를 앞두고 적절한 시점에 내렸다고 설명했다.
카리조 플랜 내셔널 모뉴먼트 지역에 만개한 야생화들. [양희관 작가 제공]
하지만 야생화의 성장에는 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발아 이후 최소 6주 이상 비교적 서늘한 날씨가 이어져야 제대로 자랄 수 있다. 프라가는 “강수량은 충분했지만 남가주는 지난해 11월과 12월에 기록적인 고온을 기록했고, 1월 역시 같은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주처럼 갑작스럽게 기온이 치솟는 현상은 어린 식물에 치명적일 수 있다. 프라가는 “급격한 고온은 식물들을 성급한 조기 개화로 몰아넣어 금세 시들게 하거나, 이제 막 올라오고 있는 꽃봉오리를 말라 죽게 만들어 아예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기상대(NWS) 옥스나드 지부의 기상학자 로즈 쇼엔펠드에 따르면, LA 도심의 1월 평균 최고기온은 화씨 68도이지만, 지난 수요일 최고기온은 화씨 83도까지 올랐다. 남가주 전역이 이번 주 사상 최고기온을 경신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상당히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수요일 기온은 1975년 1월 14일 기록된 LA 도심 최고기온 88도보다 불과 몇 도 낮은 수준이었다.
프라가는 다음주 남가주에 다시 서늘하고 습한 날씨가 찾아온다면 수퍼블룸 가능성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불확실하다. NWS의 마이크 워퍼드 기상학자는 “기온이 다소 내려가기는 하겠지만, 다음 주에도 평년보다 약 5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로서는 1월 22일부터 24일 사이에 소량의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지만, 강수량은 많아야 약 0.25인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프라가는 지난해 대형 산불을 겪은 이후 맞는 이번 봄의 야생화 개화를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그는 “남가주가 올해 수퍼블룸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신 산불 이후에 나타나는 '파이어 팔로워(fire followers)'라 불리는 토종 야생화들이 인상적인 장관을 연출할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피어난 플러머스 마리포사 릴리. [크리스티나 하우스 / LA타임스]
이러한 파이어 팔로워에는 토종 금어초, 빽빽하게 피어나는 루핀, 위스퍼링 벨, 그리고 남가주 고유종으로 깊은 분홍색과 연보라색, 흰색, 노란색 꽃을 피우는 플러머스 마리포사 릴리가 포함된다. 이 꽃은 야생화 애호가들이 특히 기다리는 종 중 하나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자연학자 데이먼 타이는 2022년 이 꽃들이 만개한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해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이미 안자보레고 사막 주립공원에서는 지난해 가을 내린 비의 영향으로 이른 야생화 개화가 관찰되고 있다. 프라가는 LA 일대에서도 올봄 인상적인 꽃 풍경이 펼쳐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20년간 남가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개화 해로 2005년, 2016년, 그리고 2023년을 꼽았다. 특히 2005년은 그가 젊은 식물학자로서 현장을 처음 경험한 해였다. 당시 남가주의 언덕과 들판은 캘리포니아 포피, 루핀, 파셀리아, 블레이징 스타 등 다양한 토종 한해살이 야생화로 뒤덮였다.
프라가는 “시각적인 장관도 물론 대단하지만, 내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향기”라며 “평범한 해에는 결코 맡을 수 없는 냄새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레드록 캐니언 주립공원에서 레이스 파셀리아가 대규모로 군락을 이룬 장면을 떠올렸다. “보통은 여기저기 작은 군락으로 피어 있지만, 그해에는 거대한 꽃밭이 펼쳐져 있었고, 공기 전체에 향기가 가득 퍼져 있었다. 그 냄새가 꽃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깨달았고, 수많은 수분 곤충들이 그 향기에 이끌려 몰려들고 있었다.”
때로는 그 향기가 지나치게 강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식물 애호가인 남편과 함께 있었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리난투스 존세이(linanthus jonesii)’라는 소박한 흰색 한해살이 식물이 빽빽하게 피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이 꽃은 낮에는 꽃잎을 닫았다가 해 질 무렵 나방을 유인하기 위해 꽃잎을 연다.
하루 종일 야외 활동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던 순간, 갑자기 공기 중에 강한 냄새가 퍼졌다. 프라가는 “남편에게 ‘컵라면 냄새가 난다’고 말했는데, 땅을 내려다보니 꽃들이 일제히 피고 있었다”며 “라면 같은 감칠맛 나는 향이었지만 점점 너무 강해져 결국 메스꺼워 차로 뛰어가야 했다”고 회상했다.
야생화 개화 상황을 확인하는 데 유용한 테오도르 페인 재단의 '와일드 플라워 핫라인’은 오는 3월 1일부터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 전까지 야생화 애호가들은 기온이 내려가기를 바라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프라가는 여전히 이번 봄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수분이 더 공급되고 기온이 내려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수퍼블룸은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비가 충분히 왔기 때문에 올해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결과가 되든 봄은 야외 활동을 즐기고 자연이 보여주는 놀라운 풍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번 봄이 무척 기대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