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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Snow Moon

New York

2026.02.03 19:40 2026.02.0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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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북미 보름달은 ‘Hunger Moon’, ‘배고픈 달’이다. 이 정서적 호칭은 ‘Snow Moon, 설월(雪月)’이라 불리는 2월 대보름달의 별명이기도 하다.
 
‘full moon, 만월(滿月)’이 암시하는 포만감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프다니. 입맛을 돋우는 오곡밥, 다채로운 나물들, 부럼 깨기에 곁들여 ‘귀밝이 술’을 마시면서 한 해의 복을 비는 우리 정월 대보름 풍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2월은 연중 적설량이 가장 많은 달. 미 원주민들과 초기 정착인들이 사냥하지 못해서 심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던 달. 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음력 4, 5월에 겪었던 ‘보릿고개’, 춘궁기(春窮期)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달에도 많은 빛깔이 있다. 눈 부신 햇살과는 달리 달은 얼마든지 맨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인류는 달빛에 색깔을 입히는 것이다.
 
‘once in a blue moon’. 푸른 달이 한번 뜨면? 16세기에 정말 파란 달이 떴던 기록이 있다더니. 현대식 해설은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뜨는 확률만큼 드물다는 의미란다. ‘어쩌다 한 번’, 또는 ‘가물에 콩 나듯이’ 그렇게. 그러나 ‘blue moon’, 하는 순간 파란 보름달이 눈앞에 떠오르는 건 무슨 변고인지.
 
‘Red Moon’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문구로서 ‘Blood Moon, 혈월(血月)’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한다. 천체와 땅의 대변동을 일어나는 종말의 징조, 또는 심판의 서막이라는 뜻. 달이 피를 흘리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연출된다.
 
‘Pink Moon’도 있다. 4월의 보름달. 달이 분홍색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북미에서 4월에 분홍색 잔디꽃이 만발하는 시기를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붙인 이름이다. 천상의 달과 지상의 잔디꽃을 바꿔 놓은 컨셉.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장난질을 친 것이다.
 
‘Moonstruck’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우리말 제목 또한 ‘문스트럭’이라 했던 1987년 작. 겨울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로맨스 무비에서 셰어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열연한다. 마치 벼락을 맞듯 달빛에 맞아 사랑에 미치는 남녀 스토리. 달은 늘 그렇게 정신질환과 연계된다. ‘lunatic asylum’이라는 용어가 ‘mental illness, 정신질환’이라는 뜻으로 영국에서 쓰이기 시작된 것이 18세기 말경. ‘luna’는 유식한 라틴어로 ‘달’이라는 의미. 평생동안 내가 심혈을 기울여 종사해온 분야다.
 
배고픈 달, 푸른 달, 피 흘리는 달, 핑크빛 달은 도무지 과학적인 달이 아니다. 계수나무 밑에서 떡방아를 찧는 우리의 귀여운 토끼 한 마리도, 달 속에 박힌 서구적인 사람 얼굴, ‘the Man in the Moon’ 또한 로맨틱한 픽션이다.
 
단테의 신곡(神曲) 지옥편에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이 달 속에 유배됐다는 언급이 있다. 독일 전설에는 안식일에 일한 나무꾼이 벌을 받아 달에 갇혔다는 둥, 양을 훔친 도둑이 구금 당해 있다는 로마 전설도 있다. 인류는 그들 집단의식의 파편들을 달에 투사해 온 것이다.
 
2월의 달은 당신과 나의 스토리텔링이다. 허드슨 강에 전혀 녹을 기색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얼음 쪼가리들이 유유히 떠내려가고 있다. 뉴욕의 도로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인 눈더미 TV 뉴스에 혀를 차면서 창밖의 ‘Snow Moon’을 흘겨보며 겨울을 견디는 도시의 신화에 심취한다. 4월의 ‘Pink Moon’을 기다리면서 달콤한 달의 품에 안기는 ‘honeymoon, 밀월(蜜月)’의 꿈을 꾼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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