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어김없이 봄이 왔다고 동백과 목련을 재촉한다. 게으른 텃밭 주인에게 속히 파종하라는 채근이기도 하다. 별수 없이 농부 흉내라도 내려고 찾은 씨앗 봉지에는 단아한 필체로 ‘단호박’이라 적혀 있다. 호박 중에도 달고 밤 같은 식감을 가진 데다, 속까지도 황금색을 띠고 있어서 혹시 보석인 호박의 이름을 여기서 따 왔나 했던 적도 있다. 물론 서로 아무런 고리가 없다.
보석인 호박은 나무가 상처를 감싸려고 내보내는 수지가 오랜 세월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수지가 끈적하기에 자주 곤충이나 식물 조각 등이 들어가서 특이한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단단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색이 마음을 편히 안정시켜 주기에 실제로 중국에서는 안정을 위한 약재(본초강목)로도 썼다고 한다.
먹는 호박이야 그 맛과 항산화 기능에서 각광받는 음식이니 말할 나위가 없지만, 호박씨까지도 건강에 유익을 주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들어온 복을 말할 때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고 말하나 보다. 이렇듯 우연히 같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불리게 된 호박은 하나는 상처를 감싸며 은은한 빛을 내는 보석으로, 하나는 우리의 식탁 건강을 지켜 주는 먹거리로 우리 곁에 있다.
이렇게 보면 교회를 ‘호박스럽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상처 입은 아픔을 사랑이라는 수지로 감싸서 결국 보석을 만들어 내는 곳이고, 맛나고 따뜻한 속살로 서로에게 평안이 되어 주는 공동체를 바라보니 말이다.
그러나 호박 속 호박씨는 겉과 속이 다르게 몰래 실속을 챙기는 경우를 빗대기도 한다. 따뜻하고 풍성했던 호박인데, 뒤에서는 호박씨를 까서 그 속만 챙기는 일은 뜻밖이다. 더 충격이고 더 아프다. 막상 호박씨는 오해라고 억울할 수도 있지만, 몰랐던 호박에게는 놀람과 실망일 수밖에 없다. 역시 호박씨는 뒤에서 몰래가 아니라 속 시원히 까야 하는 것이다.
그럼 호박씨를 호박이 감싸 주고, 호박을 또 다른 호박이 감싸 준다면 어떨까? 몰래 깐 호박씨가 아니라 건강한 호박 안에서 생명과 치유가 되는 호박씨로 말이다. 실수나 오해가 아니라 잘못을 보고 참된 회개를 통해 건강해진 호박씨, 그리고 이런 상처를 지닌 호박을 품어 보석을 만들어 간다면 어떨까. 회개를 통해 상처를 품는 보석이 되듯, 끊임없이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호박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호박(琥珀) 속의 호박”, 곧 상처조차 영광이 되는 호박이 되기를 기도한다.